늦은 봄이었다 .꽃을 떼어낸 나무들이 울창함을 자랑하던 봄. 기숙학원이라는 작은 사회에 그가 들어 왔다. 다른 교실에 있던 나는 한 박자 늦게 그의 등장을 알아 차렸다.
크고 깡마른 몸에 어울리는 가는 손가락.
각진듯 둥근 얼굴형. 학생의 티를 벗지 않은 앳된 인상.
긴 속눈썹으로 가린 두 눈을 가진 사람.
나는 그와 친구가 되고 싶었다. 20살 인생 처음으로.
초여름이 서둘러 찾아 오듯, 우리는 생각보다 빨리 친해졌다.서로를 질투하기도, 의지를 다지기도 하면서. 하지만 2개월 남짓한 시간을 뒤로 하고, 그는 돌연 학원을 떠났다. 그 이유에 대해서는 전혀 기억나는게 없다. 다만 생각나는 건, 시험이 끝나고 보자는 말과 잠시동안 멍-해진 나의 생각 뿐. 그때의 나에겐 꽤 큰 충격이었던 일이었지만, 10년이 지나버린 지금, 그의 이름 조차 희미하다. 잊지 않겠다. 다시 만나리라 분명 다짐했는데..
그의 존재는 검게 칠해지다 10년이 지나서야 색을 거둬냈다. 처음 만났던 푸른 여름의 색이 아닌, 눅진하고 무거운 회색의 기억으로 말이다. 이제와서 그리워 하는 건 염치 없는 일이려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