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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죠작가 May 09. 2023

도망가자, 합정으로

#20230410

아침까지는 괜찮았다. 분명히

치열한 오전이 지나 점심을 먹으려 하자 가슴이 막막해지기 시작했다.

그날의 나는 정말 이상했다. 한숨이 눈치 없이 새어 나왔고, 눈물이 자꾸만 범람할 것만 같았다.

평소와 다른 모습에 사람들은 걱정하기 시작한다. 급하게 반차를 쓰기로 한다.

컨디션 난조로 포장할 여유조차 없어 우울함을 이유로 서둘러 도망쳐 나왔다.

이곳이 아닌 어딘가로 가야만 할 것 같았다.


처음엔 단순한 월요병, 일하기 싫은 투정이겠거니 싶었다.

하지만 회사를 나와도 기분은 풀리지 않는다. 애써 미소를 지어봐도 입꼬리가 무겁다.

서둘러 집에 온 나는 짐을 덜어 다시 밖으로 나섰다. 5평 남짓한 내 방에 있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빌딩에 둘러싸이지 않은 탁 트인 곳을 가고 싶었고, 가야만 한다고 마음이 말해준다.

‘그래. 한강... 한강을 가야겠다. 근데 어디로 가지...”


고민의 시간은 그리 길지 않았다. 익숙한 곳, 자주 갔던 곳..

내 대답은 합정이었다. 그렇게 합정으로 탈출을 시도한다.


합정은 우리 집에서 지하철로 50분이 걸린다. 처음엔 이게 뭐 하는 짓인가 싶었다.

실컷 우울하다고 칭얼대놓고, 정작 가는 곳은 집 근처도 아닌 합정이라니... 우습지 않나..

쉬는데 정작 쉬지 않는 스스로가 참 의아했다. 마음이 시끄러워 밖으로 시선을 돌려본다.

그러고 보니 평일 낮에 지하철은 정말 오랜만이다. 주말과는 달리 조용하다. 번잡하지 않다.

각자의 표정을 한채 각자의 목적지에 내리는 사람들을 보니 갈 곳 없던 마음이 조금은 가라앉는 기분이 들었다.


역에 내려 한강공원으로 가는 길, 오늘을 기념하기 위한 분홍색 도넛을 하나 샀다.

이걸 먹으면 내 우울이 마법처럼 사라지리라. 스스로 주문을 걸어보며 한강에 도착했다.

너무 당연하게도 내 기분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탁 트인 곳에 오면 내 감정도 쏟아낼 수 있을 것 같았는데

아직 그 정도는 아니었나 보다. 아님 뱉는 방법을 모르는 건가?


다만 이곳에 처음 왔을 때가 생각났다.

첫 출근을 앞둔 일요일의 저녁, 김밥에 맥주를 마시며 혼자만의 다짐을 했던.

그 벤치를 보며 무겁게 내려앉은 입꼬리를 있는 다시 올려보곤,

하늘이 붉어질 때 즈음 합정으로의 탈출을 끝내기로 한다.


돌아오는 지하철엔 각자의 월요일을 견뎌낸 사람들로 가득했고,

그 틈에 조용히 섞인 나는 지난한 내일을 다시 맞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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