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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죠작가 Aug 06. 2023

여름, 더위 그리고 지렁이

8월이다. 여름이란 계절은 몇 번을 겪어도 익숙하지 않아서

나는 이 더위를 요령없이 있는 그대로 받아들인다.

에어컨은 길어야 2시간이고, 창문을 열고 선풍기와 함께 잠을 청한다.

남들 다 가는 여름휴가도 글쎄. 나에게 계곡과 바다, 레저활동은 수고로움이 더 크게 다가오곤 한다.

올해도 나의 피서는 서울에서 커피 한 잔 기울이는 것, 그게 전부.

그래서 여름하면 떠오르는 추억은 거의 없다.


딱 하나, 여름방학 숙제로 제출하려 했던 시의 구절.

정확히 기억나지 않지만 지렁이에 대한 이야기였다.

내가 살던 곳은 분명 숲이 가득했다. 하지만 그 푸르름은 얼마 가지 못하고

건조한 콘크리트로 덮여 아파트 단지로 바뀌었다.

높은 건물 틈바구니에 끼워넣은 조경들이 있었지만,

그것들은 숲의 푸르름에 비견될 것이 아니었고 더위를 피할 그늘은 없었다.


이는 지렁이에게도 마찬가지.

아파트 옆으로 뻗은 긴 인도 위에서 지렁이들은 뜨겁게 말라가고 있었다.

우리와 달리 고통에 신음하지도 못하고, 날벌레들에게 자신의 살을 내주던 그들. 펜을 들지 않기가 힘들었다.

시의 시작은 분명 매년 죽어간 그리고 죽어갈 지렁이에 대한 연민이었지만,

그들을 위해서 내가 해줄 수 있는게 없다는 무력감이 시를 완성시켰다.


끝내 제출하지는 않았지만

여전히 여름이 오면 한 구절이 어렴풋이 떠오른다.

"해줄 수 있는 일이 없어 미안해."

10년이 지난 지금 한 구절 더 적으려 한다.

"아무것도 변한게 없어서 미안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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