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설의 시작

4

by 박연수


프성비.그림3.png


1987년 5월 이재창 시장이 부임하였다.

내무부 민방위본부장을 역임하고 부임한 이재창 시장은 행정고시 출신으로 내무부의 정통관료였다.

박 국장의 고민이 시작되었다.

이 프로젝트를 계속 추진할 수 있을 것인가.

왜냐하면 내무부의 친구들에게 수소문해 본 바에 따르면 이재창 시장은 “이 주사”로 불릴 만큼 깐깐한 실무형이라는 평이 대부분이었기 때문이다.

결재서류는 건건이 끝까지 읽어보아야 사인을 했으며, 보고서는 서류 보따리를 싸가지고 집에 가지고 가서 다 보고야 마는 사람이라는 것이었다.


고민 끝에 인천의 미래, 나아가서 나라의 미래를 구하자는 염원을 여기에서 놓아버릴 수는 없다고 마음을 다잡은 박 국장은 최선을 다해 이재창 시장을 설득해 보기로 하고 더욱더 상세하게 프로젝트에 대한 설명을 마쳤다.

오랜 시간을 집중하여 진지하게 설명을 들은 이재창 시장은 그러나 가타부타 대답을 주지 않았다.

박 국장은 주섬주섬 서류를 챙겨서 국장실에 돌아와 못 피는 담배를 피워 물었다.

“그만두자, 다 그만두자.”

그리고 여비서를 시켜 별실에 쌓아둔 그동안 기획하면서 모은 자료들을 정리했다. 라면박스로 10여 개가 되었다. 다시 보기도 싫었다.

그리고는 한 달여,

박 국장은 이재창 시장으로부터 인터폰을 받는다.

프로젝트 자료를 가지고 시장실로 오라는 것.

시장이 물었다.

“얼마나 있으면 되지?”

“50억 원만 주십시오.”

이렇게 프로젝트는 다시 살아났다.

그리고 혼신의 힘을 다하여 전방위적인 설득과 ‘인천발전 시민협의회’ 구성 등 프로젝트 추진 기반을 단단히 했다. 돈이 마련되었으니 용역사를 활용하여 프로젝트 기획서도 전문적으로 단장했다.

그러나 프로젝트는 진척이 되지 않았다.


그리고 정권이 바뀌었다.

1988년 노태우 대통령이 취임했다.

박 국장은 다시 한번 대통령 직접 설득을 추진했다.

이재창 시장은 노태우 대통령 초도순시와 이듬해 연두순시의 별실보고에서 연이어 이 프로젝트를 보고 했다.

대외적으로는 ‘북방정책’, 국내적으로는 ‘서해안시대’를 기치로 내걸었던 노태우 대통령에게는 절대로 놓칠 수 없는 준비된 프로젝트였다.

일명 ‘포스트 홍콩전략’으로 명명한 ‘동북아 국제비즈니스 중심도시 정책’은 노태우 대통령이 구상하는 중국의 개방이라는 다시 오기 어려운 역사적 대변혁의 대비에 맞춘 것이었고, 구체적인 프로젝트로 제시된 송도신도시 건설과 영종도 국제 HUB 신공항, 그리고 영종용유국제해양관광산업단지 조성 등은 바로 서해안시대를 여는 것이었다.

강력한 반응이 있었다.

노태우 대통령은 1988년 12월 정기국회에서 지방자치법을 개정하여 당시 경기도 땅이었던 영종도, 용유도, 무의도를 경기도의 강력한 반발에도 불구하고 인천으로 준다.

그리고 이듬해 연두순시에 다시 한번 보고를 받은 대통령은 결단을 내린다.


그리고 지시한다.

“영종도에 수도권신공항을 검토할 것”(1989.3.)

수도권 억제정책 그리고 이미 수도권신공항으로 건설 중인 청주공항 등

정치적 행정적 논란을 무릅쓴 것이다.

그래서 ‘결단’이고 이 결단은 나라를 살리는 가치를 발휘한다.

오직 인천발전의 염원으로 새로운 꿈을 그려낸 범 무서운 줄 모른 하룻강아지 박연수 국장, 불가능을 알면서도 과감하게 도전한 행정의 프로 이재창 시장, 그리고 나라를 경영하는 비전과 능력의 리더십을 보여준 국가경영의 프로 노태우 대통령, 이들 셋의 만남, 그것이 전설의 시작이었다.

이전 02화프로젝트가 시작되는 풍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