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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는 1986년, 33세의 인천직할시 도시계획국장 박연수는 1년여 본인이 직접 밤을 새워 완성한 프로젝트 기획서를 들고 박배근 시장을 찾는다.
긴 시간 설명을 들은 박 시장은 먼 산을 보며 한참을 생각하더니 박 국장과 지긋이 눈을 맞추며 운을 뗀다.
“박 국장이 알다시피 나는 평생 경찰에 몸담았던 사람이야. 정보분야라면 내가 전문가지만 행정은 잘 몰라. 하지만 나라의 미래를 위해서 필요한 계획이라는 느낌이 들어. 이 계획을 청와대에 보고해 보는 게 어때?”
“그렇게 하겠습니다.”
“그런데 청와대에 가기 전에 먼저 전경환 새마을회장에게 설명하고 의견을 들어 봐요. 내가 전화를 해놓을 테니까.”
당시는 전두환 대통령 집권 시절,
박배근 시장은 경찰 총수인 치안본부장(현 경찰청장)을 역임하고 인천시장으로 부임한 대통령의 신임을 받는 사람이었다.
전두환 대통령의 친동생인 전경환 새마을운동중앙회 회장은 명실상부한 권력의 실세였는데 새마을중앙회장을 맡아 영종도를 새마을의 메카로 만들기 위해 새마을 연수원 등 여러 가지 구상을 추진하고 있을 때였다.
박 국장은 가슴을 쓸어내리며 시장실을 나섰다.
우선 시장이 이 어려운 프로젝트를 수용하고 기대보다 더 적극적으로 추진 의지를 보여주었을 뿐만 아니라 전혀 예상치 못했던 위험까지 미리 방지해 준 것이 고마웠다. 전혀 상상도 못 하고 있었던 영종도와 관련한 전경환 회장이라는 변수는 자칫 프로젝트는 고사하고 박 국장 자신의 공무원 생명을 나락으로 떨어뜨리게 할 수도 있는 상황으로 전개될 수도 있었음을 생각하니 오싹했다.
박 국장은 진심으로 박배근 시장에게 감사했다.
그런데 그 후 30년도 훨씬 지나 박배근 시장이 작고한 지 한참 후인 2023년, 네이버 자료 검색을 하던 중에 깜짝 놀랄만한 내용을 발견하게 된다.
고 박배근 시장의 프로필에 박배근 시장 본인 이외의 사람이 등장하고 있었던 것이다.
박 국장은 또 한 번 가슴이 뜨거워지는 것을 느낀다.
그분의 그런 심성과 인품이 이 불가능의 프로젝트를 시작할 수 있게 했던 것이었음을 절감한다.
왜냐하면 수많은 사람들이 수 십 년의 노력을 통해 어렵게 일군 프로젝트의 수확기에 와서 프로젝트에 도움이 되기는커녕 프로젝트의 본질을 망가뜨리고 큰 위기에 빠트렸던 어떤 사람은 송도신도시 사업을 본인이 한 것이라고 주장하고 다니고 있기 때문에 더욱 박배근 시장이 존경스럽지 않을 수 없었다.
더운 여름날 정장에 넥타이까지 맨 박 국장이 전경환 회장을 방문했다.
당연히 사전에 전경환 회장에 대해 백방으로 알아봤다. 그러나 그 결과 얻은 정보는 가슴을 더욱 무겁게 하고 있었다.
“전 회장은 5분이 넘는 보고는 견디기 어려워한다.”는 결론이었기 때문이다.
아무리 요약해서 보고를 한다 해도 40분은 필요했다. 더구나 이 보고는 “NO”를 받아서는 안 되는 설득의 과정이었다.
대책이 있을 수 없었다.
“재떨이가 날아오면 머리로 받고 주먹이 날아오면 얼굴로 받는다.”라고 마음을 정하고 애써 밝은 표정을 지으며 보고에 들어갔다.
5분, 10분, 30분, 40분. 몇 번의 표정 변화를 무시하고 갔다. 끝났다.
땀으로 범벅이 되었다.
“이 사람 대단(지독)한 사람이네.”
“나는 알았으니 청와대에 보고해 봐요.”
새마을 본부를 나온 박 국장은 전화로 박 시장에게 보고한다.
“시장님, 됐습니다. 오케이입니다.”
물론 전경환 회장은 “예스”라고 말한 바 없었다.
그렇다고 “노우”라고 하지도 않았다.
박 국장은 “오케이”라고 해석했다.
다음은 청와대 차례였다.
해당 비서관은 경제수석 산하의 국토교통비서관이었다.
담당 행정관과 약속을 잡고 청와대를 찾았다.
먼저 행정관에게 설명을 했다.
장시간에 걸친 설명을 참을성 있게 들어준 행정관은 말했다.
“알았습니다. 놓고 가세요.”
“아니, 비서관님은요? 비서관님께는 보고해야 하는데.”
“내가 보고 드려 줄게요. 그냥 가세요.”
이것이 이 프로젝트를 살렸다.
그 비서관은 후에 이들 프로젝트를 강하게 반대한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보고했으면 당연히 “노우”라고 면박을 받았을 것이다. 그랬으면 시작조차 불가능했을 것이었다.
담당 행정관이 보기에 하도 황당한 내용이라서 후배인 박 국장이 곤경에 처하는 것을 보고 싶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확실하지는 않지만 비서관에게는 보고조차 하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왜냐하면 훗날 전두환 대통령께 보고하기 전까지 청와대로부터 아무런 반응이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일단 청와대에 보고는 된 셈이었다.
그것은 큰 의미를 갖는다. 청와대에 보고도 없이 그렇게 큰 규모의 프로젝트를 추진하는 것은 당시로 보면 용납되기 어려운 분위기였다.
“시장님, 청와대에도 보고를 마쳤습니다.”
이렇게 해서 이 역사적인 프로젝트는 시작이 되었다.
그러나 진척이 될 리 없었다.
“시장님, 마지막으로 대통령께 직접 보고 드려 주십시오. 그래도 안 되면 제가 포기하겠습니다.”
박 국장의 건의를 받은 박 시장은 전두환 대통령 마지막 해의 연두순시(1987)에서 이를 보고 하기로 하고 박 국장에게 자료를 준비시킨다.
박 국장이 직접 만들어 준 미니차트를 가지고 박 시장은 별실보고에서 대통령께 보고를 한다. 당시는 해마다 대통령의 시도 순시가 있고 의례적인 일반보고회와는 별도로 시도지사가 대통령에게 거의 독대하여 보고하는 별실보고가 있었다.
“좋은 계획이오. 한번 추진해 보세요.”
프로젝트 보고를 받은 전두환 대통령의 반응이었다.
공식적인 추진의 무대가 열렸다.
그런데...
박배근 시장이 대구직할시장으로 발령이 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