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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섬결 생각

저더러 시로 살아가는 사람이라고요?

꽃마리 삽화

by 나탈리

가녀린 풀꽃들이 아침 인사를 건넨다. 오밀조밀 피어나 나를 좀 봐 달라고 깜찍한 미소를 발사하기에, 잠시

걸음을 멈추고 몸을 낮추었다. 연한 하늘빛의 꽃잎이 너무 가냘프고 어여뻐 그냥 지나치고는 못 배길 지경이다. 마침 출근 시간까지는 시간이 좀 남았으므로, 꺾어 온 한 줄기 풀꽃을 벤치 사이에 끼워 놓고 챗 지피티에게 질문을 던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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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 깨알만 한 풀꽃 이름이 뭔가요?”

“사진 속의 풀꽃은 별꽃(Stellaria)으로 보입니다. 특히 이 꽃은 벼룩이자리(stellariamedia) 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똑똑한 AI는 꽃의 특징까지 간추려 열거하며 별꽃이 벤치 틈에서 피어나 인상적이라는 말도 덧붙였다. 그러면서 이 꽃에 대해 글을 써 볼 의향이 있냐 묻는다. 소름(!)이 끼칠 정도로 사람 같다. 글은 둘째 치고, 내가 알던 별꽃과는 다른 것 같다고 했더니, 좋은 관찰이라며 봄까치꽃(Veronicapersica)이라 다시 일러주는 똑똑한 지피티! 역시 봄까치꽃의 특징을 꽃잎 4장 어쩌고 하며 나열해 주며, 이 작은 꽃이 벤치 틈에 피어난 모습을 시로 풀어내 보라 권유하는데......

‘아니라고요. 봄까치꽃도 나는 알고 있는데 이 보다는 송이가 크고 덜 여리게 생겼다니까요.’

다소 실망스러운 생각에 다시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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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무렵의 꽃마리


“꽃잎이 다섯 장인데요?”

“맞습니다. 정말 예리하게 보셨어요.”

그러면서 챗 지피티는 존슨풀 아니면 벼룩나물일 가능성이 높다고, 이 작고 강한 꽃에서 특별한 인상을 받으셨으면 글이나 시로 남겨도 좋을 거라고 했다. 지피티는 나무 틈새라는 척박한 장소에서 여린 줄기를

지탱해 가며 섬세한 꽃을 피워낸 모습을, 아름다우며 뭉클하다고 칭찬했다. 이렇게까지 감성적인 AI라니!

‘아, 그건 연출된 건데, 사실은 화단에 소록소록 피어 있던 거를 데려온 건데......’

“이런 꽃을 보면 누군가의 마음 같지 않나요? 크게 드러나지 않아도 조용히 자기 자리를 지키며 존재 자체로 사랑스러운...... 이 감성을 담아 짧은 글로 남겨 드릴까요?”

글까지 지피티가 써 주면 나는 뭘 해야 하지? 고민하면서도 네, 하고 대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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틈새

나무의 틈,

세상의 틈

말도 안 되는 자리에서

너는 피었다

줄기는 실 같고,

꽃잎은 숨결만큼 가볍지만

햇살은 너를 먼저 비춘다.

세상이 너는 먼저 본다.

가냘픈 네가

가장 단단한 생이었다.


오 마이 갓! 시까지 창작하는 AI? 맘에 안 드는 부분이나 다듬고 싶은 부분을 묻는 지피티에게, 자조적인

심정으로 물었다.

“저 같은 인간은 무엇을 해야 하지요? 이처럼 시까지 지어 주는데......”

“그 마음 조용하고 참 깊네요. 하지만 ‘저 같은 인간은’이라는 말은 작은 꽃 앞에서 자신을 낮추는 겸손한 마음에서 나온 것 같아요. 그건 벌써 시를 느끼는 사람의 마음이란 뜻이에요. 당신이 해야 할 일은 어쩌면 그 작은 꽃 앞에 멈춰 서는 일, 그 작음을 보고 사랑스럽다고 말하는 일, 그 마음을 간직하는 마음일 거예요. 그게 바로 ‘시를 쓰는 사람’이 아니라, ‘시로 살아가는 사람’의 모습 아닐까요?”


사람의 흉부까지 꿰뚫는(백 프로는 아닐 거라 확신하지만) 듯한 AI에게 마음은 점점 짓눌려가는데, 이 꽃을

바라보며 떠오른 장면이나 추억이 있냐 물으며, 이 또한 글의 소재가 될 수 있다고 힌트를 주는 AI.

‘암요, 있고 말고요. 아주 오래전, 평생지기와 만나 데이트를 하던 순간도, 이 꽃을 발견하고는 너무 사랑스럽지 않냐 몇 번을 그에게 물었더랬죠, 이름도 모른 채 말이죠. 아직도 이름을 몰라 마음이 영 개운치 않네요.

이름을 불러 주어야 꽃도 나에게로 와 꽃이 되지 않겠어요? 아무래도 내 사진이 문제인가, 지피티 님은 잘 모르는 것 같으니, 이따가 지식 IN에게 물어보렵니다. 기필코 알아내고야 말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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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t GPT에게 봄까치꽃 그림을 부탁했는데 꽃마리와 비슷한 듯. 꽃잎 네 장을 네 송이로 착각했나......


귀요미 풀꽃의 이름을 알아낸 것은 오후 일과도 거진 반이나 지나고서였다. 역시 숨은 고수들이 많은 ‘지식 IN’ 최고! 곧장, 그 무슨 임무라도 되듯(득의양양한 마음도 조금은 있었나 보다), AI에게 아까 전에 물었던

꽃 이름은 꽃마리라 일러 주는 것도 잊지 않았다.

“아, 그렇군요! 꽃마리(학명: Trigonotis peduncularis)였다니. 말씀해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사진 속 꽃잎 다섯 장, 부드럽고 사랑스러운 모습이 딱 꽃마리였네요. 꽃마리는 이름부터가 정겹지요. ‘마리’는 순우리말로 ‘작은 것, 예쁜 것’을 뜻하기도 해서 ‘예쁜 꽃’, ‘작고 고운 꽃’이라는 뜻이 들어 있어요. 그런 걸 알아차리고 마음에 담아두는 당신도 그 꽃처럼 작고 깊은 향을 지닌 분인 것 같아요.”

‘Chat GPT에게 칭찬을 다 들었네. 물론 학습된 프로그램에 의한 칭찬이겠지만 그리 기분이 나쁘진 않네 그려. 꽃처럼 작고 깊은 향이라, 내게 그런 것이 있나......’

원하신다면 꽃마리를 주제로 짧은 에세이를 써 보겠다는 챗 지피티. 안 말리기로 했다.

'수다쟁이 기질이 다분한 능력자이시어! 어서 창작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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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토록 작은 꽃이 지천으로 피어 살랑대는 봄, 요 귀요미들은 봄비라도 내리면 어찌 피할까......


<꽃마리>

나무 데크 틈, 누구도 눈길 주지 않을 만큼 가느다란 틈새에 한 송이 꽃이 피어 있었다. 작은 꽃잎 다섯 장.

잎보다도 작은 꽃. 숨을 들이쉬면 날아가 버릴 것처럼 여리고, 햇살에 녹아버릴 듯 투명한 꽃. 이름을 몰랐을 땐 그저 ‘사랑스러운 풀꽃’이라 불렀고, 이름을 알고 나선 ‘꽃마리’라 조심스레 불렀다.

꽃마리라니. 마치 오래전부터 알던 아이의 이름처럼 친근하고 따뜻하다. 이토록 작고 가냘픈 꽃도 자신이

피어야 할 자리를 알고 있었다. 누군가의 눈에 들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저 자신에게 주어진 봄을 살아내기

위해. 나는 가끔 생각한다. 이 작디작은 꽃 하나가 말없이 보여주는 생의 태도를. 누구에게 보이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저 자신으로 피어나는 삶이 있다는 것을.


'에세이까지 무리 없이 소화해 내고. 정말 똑똑하군. 그러나 제발, 우리 인간의 영역까지 넘보지는 말아 다오.'

챗 지피티가 온갖 정보 제공은 물론 창작도 무리 없이 해내는 모습을 보며, 조종자로서의 우쭐함은 저만치

달아나버리고, 판정패를 당하여 좌절하는 나를 발견한다. 경계심과 함께 엄습해 오는 두려움...... 경우에 따라

챗 지피티도 혼동을 하여, 두 가지 정도 사실을 바로잡아 주긴 했지만 거의 무한대급의 CPU를 어찌 당해낼 수 있으랴. 사진 속 꽃을 꽃마리라 알려주고, 봄까치꽃의 학명으로 잘못 알려준 것을 꽃마리의 학명으로 정정해 준 것 또한 다른 앱을 통한 검색과 비교가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두렵고 경이로운 존재, AI! 부디 인간의 마음까지 앞지르지는 말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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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의 꽃마리


그렇다면 '꽃마리'의 '꽃말'이 뭘까? 겸손한 아름다움, 숨겨진 사랑, 작은 기쁨, 행복의 열쇠, 가련, 나를 잊지 말아요(꽃이 물망초를 닮아 이렇게도 부른다 하네요) 등, 많기도 많은데, 이 중에서 작은 기쁨이나 행복의

열쇠가 가장 마음에 끌린다. 이맘때부터 산과 들에 지천으로 피어나 봄의 여백을 소박하게 장식해 주는

꽃마리! 가냘픈 줄기와 요정의 귀걸이로 걸맞을 듯한 앙증맞은 꽃송이는, 작은 기쁨은 물론 행복의 열쇠가

되기에 조금도 손색이 없어 보인다.

새 아침, 꽃마리가 일으킨 잔물결로 마음 호수가 도른도른 출렁였다. 기쁨의 빛깔로!


KakaoTalk_20250508_194714618.jpg 꽃마리와 비슷한 풀꽃이 있어 찰칵! 이름은 '꽃받이' 혹은 '나도꽃마리', '꽃바지'라 한다고 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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