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이 잔뜩 찌푸린 날, 아침 식탁에서는 이러한 대화들이 오간다. 아직 비는 시작되지 않았다. 창문을 열어 손등에 비의 촉감은 없는지 확인해 본다. 설마 출근길에는 오지 않겠지. 자전거를 끌고 엘리베이터를 탄다.
아니, 이럴 수가! 땅이 젖었네?
분명 조금 전까지도 내리지 않던, 보슬비가, 내리고 있다. 엉킨 실타래처럼 복잡해지는 머릿속....... 1초도 아까운 출근 시간, 다시 집 앞까지 올라갈 마음의 여유는 없다. 할 수 없이 1층 한 구석에 자전거를 세우고 버스정류장으로 향한다. 빗발이 굵어지는 듯하다. 톡톡 우산을 건드리고 이내 튕겨 나가는 빗방울! 어느새 행진곡 수준이다. 거리엔 각양각색의 우산꽃이 활짝 피었다. 컬러풀!
우리 집에 없는 무지개 색깔의 우산이 젤 맘에 든다. 흰구름 몽실거리는 파아란 우산도 눈에 담아 두기로 한다.
행진곡에 맞춰 종종걸음으로 도착한 정류장. 출근이 늦을까 조바심 일색인 사람들에 합류하여 버스 오는 쪽만 목이 빠져라 바라본다. 버스가 온다. 기다리던 버스다. 버스가 달려와 멈춰 설 때는 간혹 있을지 모를 물세례를 피해 약간 뒤로 물러서는 센스가 필요하다. 고여 있던 빗물이 버스 타이어와 만나면 누군가의 바짓가랑이를 향한 미사일로 돌변할 수 있으니.
만원 버스다. 그래도 타야 한다, 지각을 면하려면. 앞문으로는 도저히 못 탈 거 같아 뒷문으로 달려든다. 운 좋게 승차에 성공하면 왜 빨리 안 가는가고 조바심 또 조바심..... 발 디딜 곳도 마땅치 않다. 움직거리다 누군가의 발을 밟을까, 발에 밟힐까 두렵다. 방송에서 손잡이를 꽉 잡으라 한다. 손이 저리도록 꽉 잡는다. 꼭이 맞나 꽉이 맞나, 그 와중에도 의문이 파고든다. 다음 차 이용해 주세요! 기사님의 단호한 교통정리가 있은 후에 '포화의 포화상태'가 되어서야 버스는 출발한다.
우산에 묻어 있던 빗물이 옷자락을 적신다. 선뜩하다. 잠시 눈을 감아본다. 음악소리가 귀를 자극한다. 저만치 이어폰을 꽂은 학생이 보인다. 낮지만 비트가 강하고 규칙적인 선율. 거슬림의 원인에 대해 말을 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모두가 핸드폰을 뚫어져라 들여다보며 정보의 흡수에 열심일 뿐이다.
몇몇 정류장을 지나기까지 버스는 줄곧 승객들을 태우기만 한다. 내리는 사람은 거의 없고 내리려 해도 불가능해 보인다. 목적지가 가까워온다. 내려야 한다. 내릴 채비를 안 하면 낭패이므로, 두 발에 온갖 신경을 모아 디딜 곳을 확보하며 출입구를 향해 떠밀려 간다. 만 원짜리 지폐 한 장이 발치에 뒹굴고 있다. 좁은 틈새에서 용케도 버티고 있는 만 원짜리!
주울까, 말까, 주워서 기사님 드릴까? 아님 돈 잃어버리신 분? 하고 소리칠까..... 주우려면 몸을 구부려야 하는데, 그럴 만한 공간도 없을뿐더러 남의 시선도 부담스럽고, 소리쳐 주인을 찾아 줄 용기도 없고, 젖은 돈을 줍는 것도 꺼려진다. 에라 모르겠다, 누군가 줍겠지. 내버려 두자. 외면하기로 마음을 먹는다. 누가 돈을 흘려서 아침부터 심경을 복잡스럽게 만드는 거야...... 괜스레 이는 트집을 토닥여 본다.
카드 찍는 소리, 감사하다는 기계음...... 안도의 한숨, 내심 살았다는 표정으로 한 무리의 사람들에 섞여 내리고 나면, 휑하니 빈자리를 찾아 앉는 나머지 승객들. 비에 젖은 무수한 발자국으로 인해 바닥은 그야말로 난장판이다. 그것은 출근전쟁의 치열함을 말해주는 표지(標識)이자 회사에 앞서 찍는 발도장인 것. 그 무수한 발도장을 받기 위해 버스는 화창한 날도 눈비 오는 날도 쉬임 없이 도로 위를 달린다. 오늘을 지나 내일을 향해 힘차게 달려 나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