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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탈리 Dec 29. 2022

예림이와  빵이

사랑의 라이벌

시누이 집에 갔더니 예림이가 와 있다. 찰랑거리는 머릿결, 조막만 한 얼굴, 키는 훌쩍 커서  초등학생 같은  꼬마숙녀가 배꼽인사로  우리를 맞아 준다. 예림이는 조카가 낳은 딸아이로 올해 여섯  살이다. 얼마나 발랄하고 활동적인지,  에너자이저가 따로 없다. 늦게사 터진 말이 청산유수와 같아, 보통의 인내심으로는 감당하기 어려울 만큼 말을 잘한다. 어른들과도 막힘없이 대화를 하는 모양에 우리 부부는 내내 입을 다물지  못했다.


시누이 집에는 이 귀염둥이 말고 또 한 마리 귀요미가 있다.

''이라 이름하는 강아지일곱 살. 예림이보다 한 살 많지만 견생이므로 훨씬 연세가 있는 셈이다. 가자마자 입구로 달려 나와 격한 환영을  해 주는 빵이. 환영해 주는 모습이 너무 귀여워 안아 주면 얼마나 좋은지 가끔 소변을 찔끔거리기도 한다.


그럴 때, 요란한 환영으로 에너지를 발산하는 빵이를 애써 진정시키기 위해서는 자리에  앉아 다독거리며 '빵이 릴랙스!'를 명령해야 한다.  그러면 빵이는  무릎 앞에 앞에 배를 깔고 누워  가만히  내 눈을 응시한다. 여우인지 강아지인지. 강아지인지 사람인지.


처음 왔을 때부터 빵이는 작고 귀여운 모습으로 시누이와 조카들의 사랑을 한 몸에 받으며  살고 있었다. 영리하기도 하고 눈치가 빠삭해서 누구든 사랑하지 않고는  못 배길 녀석이 빵이었다.  

그런데  어느 날 맏언니가 결혼하고는 생각도 않던 동생이 생겼다. 그리고는  엄마와 언니들의 사랑을  빼앗아가 버렸다. 엄마와 언니들의 사랑은 오로지 빵이의 것이었는데. 비록 그 사랑이 온전히 사라지지는  않았지만  영리한 빵이는 줄어든 사랑, 관심을 온몸으로 체감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랬다. 예림이와 빵이는 사랑의 라이벌이었다. 애초부터 서로를 탐탁잖아했다. 아기와 강아지가 서로 좋아하는 모습을  동물농장에서 많이 봐서 그런지, 둘의 그런 모습은 낯설고 우습기까지 했다. 일정한 거리 두기와 밀어내기로 일관하던  빵이와 예림이.


그러나 곰곰 생각해 보면 그런 모습은 이해  못 할 바도 아니었다. 사랑을 독차지하던 존재끼리의 충돌. 예림이도 빵이도 경쟁자 없이 사랑을  받는 처지였다. 예림이가 외갓집에 가면  빵이라는 경쟁자가 생기고, 예림이의 방문은 빵이에게 경쟁자의 출현이 된다. 그러니 서로를 달가워하지 않을 수밖에......

그래도 두 경쟁자들이 화해하여 서로 마음껏 사랑을 주고받을 날이 곧 오리라. 사랑은 주는 기쁨인 것을 깨닫는 날도 오리라.


딸들은 힐링을 위해 빵이를 보러 가곤 했다. 빵이 사진을 찍고 그림도 그리고 같이 놀아주고 하다 행복 바이러스에 한껏 감염(?)되어 온다.


우리 집도 강아지 키우면 안 돼?
 안 돼!
왜?
좋아한다고 다 키울 순 없어. 애 하나 양육할 정도로 손이 많이 가.  


빵이를 보고 오면 한동안 되풀이되는  대화였다. 빵이로  인한 힐링후유증은  제법  오래 지속되었다. 반면에 예림 양에 대한 사랑은 후유증이 짧았다. 예림이가 갓난아이적부터 조카가 생겨 기뻐하던 아이들은 예림이를 보러 자주 갔다. 갔다 오면 언제나 예림이에 대해 이야기꽃을 피웠다. 귀여워서 어쩔 줄 몰라하는 표정으로, 예림이가, 예림이가 어쩌고를  반복하곤 했다.


요즘 들어 아이들은 예림이가  성장함에 따라 예림이와 놀아주는 것이 만만한 일이 아님을 슬슬 깨닫는 눈치다.  쏟아내는 말에 대답해주는 일조차도  힘이 들어했다. 유치원 선생님들 참 힘들겠다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기도 했다. 예림이를 보러 가는 일은  힐링이면서 '큰맘 먹고 가야 될 일'임을 알았다고...... 이러니 후유증이 발을 못 붙일 수밖에.  그래도 예림이는 딸들의 사랑스러운 조카임에는 틀림이 없다.


예림이와 숨바꼭질을 하며 놀아주다가, 빵이도 실컷 만져주고 눈도 응시하고 하다가 귀여움만 잔뜩 담아 왔다. 후유증이 있어도  귀여운 걸 어떡해. 귀여운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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