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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탈리 Feb 04. 2023

주말의  손님

동장군의 기세가 맹렬하던 주말 저녁, 우리 집에 빵이가 왔다. 집을 비우게 된 빵이의 언니(조카)와 엄마(시누이)가, 추운데 집에 홀로 남을 빵이가 안쓰러워 우리에게 어렵사리 부탁을 해 온 것이다. 하루쯤이야 뭐, 괜찮겠지. 다들 빵이를 좋아하는 터라 흔쾌히 수락했다. 고 작디작은 빵이가 뎅그러니 집에 혼자 남겨지면 얼마나 외로울까나. 귀요미가 외로우면 안 될 일이다. 


드디어 저녁도 한참 지난 시각, 빵이의 품위 유지를 위한 짐보따리와 함께 빵이가 왔다. 주홍과 청색의 줄무늬 옷을 입은 빵이는 언제 봐도 귀엽고 사랑스럽지만 오늘따라 치명적인 귀여움을 뿜뿜, 내뿜고 있었다. 오자마자 난리법석을 떨며 우리에게 온몸으로 신고식을 하는 귀요미.


요란한 인사를  마치자마자 쉴 새 없이 코를 킁킁대며 탐색하느라 바쁘던 빵이는 깔아놓은 패드에 볼일부터 보았다. 긴장했나 싶어 상냥하게 말을 건넸다.

"빵이, 긴장하셨어요?  긴장 풀고 자,  뒤처리를  해 줄게요."

딸애가  빵이의 몸을 잡고 내가 빵이의 엉덩이에 휴지를 갖다 대었더니, 이 귀여운 맹수가   불유쾌한지 연신 으르렁거린다. 하찮고도 귀여운 중저음의 으르렁거림을 어쩌면 좋아.....


이윽고 빵이가 이 방 저 방을 돌아다닌다. 쪼그만 네 발의 바지런한 움직임에 눈과 귀가 온통

쏠려버린다. 평소 방에만 있던 아이들이 거실로  나왔다. 빵이 덕분에 거실이 꽉 찼다. 도란도란 이야기꽃도, 웃음꽃도 만발하여 모처럼 사람 사는 집같이 훈훈하다.


"아니, 뭐야, 이거?"

갑가지 안방에서 비명에 가까운 호통소리가 들렸다. 이를 어째, 빵이가 그새 안방까지?  불안한 예감은 적중했다. 빵아, 부르니 안방에서 빵이가 뛰쳐나왔다. 어쩌자고 안방까지 간 거니? 못 말리는 빵아.


따뜻한 방바닥이 좋다며 일찍부터 바닥에 누웠던 그는, 어느새 잠이 들어 빵이가 온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 코 고는 소리가 이따금씩 문을 뚫고 나오던 중, 열린 문틈(꼭 닫아 놓았는데 언제 열렸는지 아무리 생각해도 의문)을 비집고 들어간 빵이가, 빵이의 부드러운 털이 잠든 그의 몸 어딘가(얼굴 께)를  스쳤을 것이다. 잠결에  와닿는 요상스러운 감촉이 얼마나 그를 소스라치게 했을지. 무장해제 상태에서의 낯선 감각은  사람을 오싹하게 만드는  위력을 지녔음에, 그가 놀라 소리를 지른 것도 당연했다.


"빵이가 왔어요, 놀라지 말아요."

"그럼 그렇다고 말을 해 줘야지."

"잠들어서 말 못 했지요."

"쥐선생인가 했네. 참 나."


"빵아, 너 땜에 아저씨가 놀라셨잖아."

큰소리에 놀랐을 빵이를  안아 주며 말했다. 빵이는 커다란 눈망울만 껌뻑거리며  아무 말이 없다.


사람 아기 마냥 사람 품에만 안겨 있으려고 하고, 잘 때도 딸애의 침대에 동그마니  웅크려 자고, 고 조그만 몸을  훌쩍 뛰어 소파에 잘도 뛰어오르고 내리던 빵이. 관절에 무리가 갈 것 같아 눈치껏 내려주고 올려주고 해도, 스스로 오르내리는 것을 즐겨하는 듯 자꾸 시도하여 우리를 놀라게 하던 빵이. 가끔씩 시무룩한 모습이 신경 쓰여, 빵아, 엄마랑 언니 어디 갔어? 물어보면 귀를 쫑긋 세우고  얼굴을 갸웃거리는 모양이 예술이다. 어느 별에서 왔니, 빵아.


오른쪽 팔에 고개를 살포시 올린 앙증맞은 자세로 가만 안겨 있던 빵이가 고개를 돌려 그윽이 나를 바라보는 순간이 있다. 그럴 때마다 빵이의 눈을 마주 보며 자꾸만 묻고 싶어 진다. 무슨 말을  하려는 거니, 사랑스러운 아이야. 빵이가 강아지 아닌 사람 아기로 느껴지는 순간이다.  빵이가 선사해 주는 평화롭고 안온한 시간. 젖먹이 아이를 안고 있을 때와 비슷한  것도 같은.....


아이들은 빵이를 데리고 카페에도 갔다. 애견 동반이 가능한 카페에서 빵이와 '지금 이 순간'의 행복을 느껴보고 싶었나 보다. 빵이와의 행차를 위해서는 준비할 게 많았지만, 무엇보다 힘든 건 빵이가 가방에 들어가 있지 않고 자꾸만 몸을 빼어 딸애의 품에 안기려고 하는 점이었다. 이동할 때 가방에 얌전히 있기가 빵이로서는 힘든 모양이었다.


한참을 애쓴 끝에  아이들은 카페로  출발을 하였다. 그러나 카페란 공간이 익숙하지 않은 빵이로 인해 일행은 생각보다 빨리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둘 다 지친 기색이 역력했다. 집에 오자마자 딸애가 한 일은 빵이의  네 발을 씻기고 드라이어를 가져와 말리는 등 빵이를 돌보는 일이었다. 이번 외출을 계기로 빵이의 집사 노릇이 만만치 않음을 아이들은 절실히 느낀 듯했다.


이틀밤을 묵고 빵이는  갔다. 빵이가 가고 나니 집안이 휑하니 텅 빈 것 같다. 빵이의 발소리가  마룻바닥에서 들려오는 듯하다. 이래서 어른들이 든 사람은 몰라도 난 사람은 안다고 하는구나..... 빵이 덕분에 반려견을 안고, 출근하는 그를 배웅하는  행복도 맛보았다. 아주 익숙한 느낌이었다. 오래 전부터 반려견을 길렀던 듯한 익숙함.


작은 강아지가 우리에게  안겨 준 충만함은  육아와 맞먹는 수고로움을 상쇄하고도 남을 만큼 크고 넉넉한 선물이었다.  빵이야, 우리에게 지울 수 없는 웅덩이를 만들어 놓고 가버린 빵이야! 복수할 거야, 앞으로 더더욱 이뻐함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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