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나탈리 Sep 29. 2023

쿠키는 주몽 형을 사랑해

그 집에는 주몽이와 쿠키가 산다네

오가며 그 집 앞을 지날 때는 조심하세요. 녹차와 국화향에 이끌려 잠시 발길을 멈추었다간, 주몽이의 우렁찬 포효에 놀라 기절하거나 호흡이 가빠질 수도 있으니, 꼭 주의 바랍니다. 담장 위로 살금살금 지나다니는 고양이도 조심하렴. 네가 아무리 사뿐사뿐 걸어도  십 리 밖 하품 소리도 놓치지 않는 청력 최고인 주몽이한테는 안 걸릴 수가 없을걸? 괜히 균형을 잃고 고양이로서의 체면을 구기면 낭패잖니. 그리고 참새들아, 혹시라도 주몽이의 밥그릇을 얼쩡거리는 헛수고는 하지 말아라. 주몽이는 반들반들 윤이 나도록 밥그릇을 핥아먹는단다. 떨어질 콩고물이라고는 눈을 씻고 보아도 없으니 시간 낭비하지 말고 풀숲의 벌레나 찾는 게 나을 게다. 제 영역을 지키려 항의가 이만저만 아닌 주몽이가 목청을 가다듬기  전, 날개를 폴짝이며 날아가렴아.


그 집은 울 동생 집이다. 결혼 십수 년 만에 주택을 장만하여, 옥상엔 텃밭을, 마당엔 애견-주몽이와 쿠키를 기르는 로망을 실현시킨 동생네. 오래된 집이라 입주 전 수리하는 데도  상당한 금액이 들었고, 또 살던 도중 옥상에서 누수가 되는 바람에 거금을 들여 옥상 방수 공사와  내부수리를 했던 집으로, 동생의 집에 대한 애착과 자부심은  대단했다. 집이 너무 넓어서 전화벨 소리가 안 들린다며 엄살을 피우고, 편백나무 인테리어로 습도가 자동 조절된다고 자랑, 자랑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생수통을 잘라 만든 개성 만점의 우체통과, 녹차와 국화 향 그윽한 철제 대문을 열고 들어서면, 뜰 한 귀퉁이 돌확에는 통통한 금붕어- 까망이와 빨강이가 헤엄치고, 담벼락 선반에는 올망졸망 다육이가 조막만 한 손을 벋어 해바라기를 하는 아담한 보금자리다.

주름진 얼굴로 무슨 상념을 ......          쓰다듬어 주세요!

아닌 게 아니라, 오디오 시스템까지 갖춰진 널따란 주방에서 음악을 들으며 식사 준비를 하고, 방수공사차 지붕이 생긴 옥상에서 시래기를 말리고 빨래를 널고, 또 언제든 지인을 불러 삼겹살 파티를 열곤 하는 동생이 부럽긴 하다. 번거로움은 동생에게 문제가 되지 않는다. 동생은 삼겹살 파티를 무척이나 즐겨했고 언제든지 파티를 열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는 듯했다. 그런 보금자리를.....


동생 부부가 출근하면 그 집은 온전히 주몽이와 쿠키의 세상이나 마찬가지다. 집을 지키랬더니, 주인이 애지중지하는 그 집을, 그 귀중한 집 현관 앞 방부목을 주몽이란 녀석은 간식처럼 야금야금 갉아먹었다. 심심해서 한 입, 지루해서 한 입, 주인이 보고파서 한 입, 물어뜯다 보니 계단은  녹슬고 무딘 연장처럼 보기가 좀 그랬다. 만약 내 집이 그런 상태라면 애완견을 길러야 되나 한 번쯤 고민이 될 듯도 한데 동생네는 이미 고민을 포기한 모양이다. 흉물이 다 된 계단을 내버려 둔 채 지내는 걸 보니.


주몽이로 인해 포기해야 했던 또 한 가지가, 동생 부부에게는 있었다.  그것은 바로 마당 가의 고추밭. 제부는 청양고추 모종 여남은 그루를 심어 정성껏 길렀다. 고추가 열리고 하나, 둘 익어갈 무렵, 호기심 많고 구잡스런 주몽이 그것을 가만 놔 둘 리가 없었다. 울타리는 무용지물! 녀석은 단숨에 울타리를 뛰어넘고 그 맵디 매운 청양 고추를 따먹었다. 그리고는 탈이 났는지 한쪽에 고대로 토해  놓았다.

 

아니, 주몽아! 빠알간 고추가 그렇게 먹음직스러워 보이던?  이 녀석아, 그것은 네 먹을 것이 아니여!


말귀를 알아들었는지 어쨌는지......  매운맛에 혼쭐이 난 주몽은 끝내 모종을 망가뜨려 놓고는 그곳을 자신의  놀이터로 삼아버렸다. 흙 속에 엎드려 해맑게 웃고 있던 주몽! 퇴근 후 귀가한 동생은 그 광경을 보았고, 그만 할 말을 잊었더라는. '왔노라, 보았노라, 할 말을 잊었노라!'

주인님, 여기는 제가 접수했어요!

하는 수 없이 제부는 텃밭을 포기하고 시멘트로 발라두어야 했다. 그래도 옥상 텃밭이 있으니까 덜 섭섭하였으려나......


동생의 차가 대문께에 주차하는 순간부터 견공들은  주인을 반길 준비로 온몸이 분주하다. 대문 앞을 마구잡이로 서성이며 꼬리를 있는 대로 흔들어댄다. 주몽, 들어가! 동생의 호통에도 아랑곳 않고 킁킁대며  달려들어 혀를 할짝거리는 주몽과 달리 쿠키는 두 세 걸음 거리를 두고 꼬리를 흔들며 관망의 자세를 취한다. 이방인을 탐색하느라 열심인 주몽. 짤막한 꼬리는 한시도 가만 안 있고, 커다란 두상을 들이밀며 친한 척을 하는 양이 밉지는 않은데, 주몽의 침이 옷에 도배될까 걱정스럽고 부담스럽다. 얼른 도망가는 게 상책이다 싶어, 냅다 현관문을 열고 숨었다. 동생도 힘이 부치는지 주몽을 떠밀고 재빨리 문을 닫다. 동생의 원피스에는 주몽의 침이 여기저기 묻어 있다.


집사 오실 시간, 의관을 정제하고,  일단 점잖은 척 하기!

숨 쉬는 옹기뚜껑에서 알록달록 구피들이 파닥거리며 헤엄을 친다.

"참 바지런도 하다. 열대어도 기르고."

"큰오빠 집에서 몇 마리 얻어왔는데 새끼를 낳아 많아졌어. 언니도 길러 봐. 생각보다 재밌어."

"나는 너만치 부지런하지 못해 포기할란다."

한창 수다 삼매경인데 방충망 앞으로 검은 형체가 나타났다.

염탐이라도 하듯, 뚫어져라 안을 응시하는 검은 형체..... 주몽이었다. 곁에는 쿠키도 있었다. 견공들이 살다 보면 인간화가 되어가는 걸까? 어쩜 하는 짓이 개구쟁이 남자애들 같다.

"심심한가 보네. 간식 좀 줄까?"

"언니, 간식 주려면 강아지들과 놀아주는 옷으로 갈아입고 가야 해!"


심심해요, 좀 놀아 주심 안 될까요? 간식 좀 주시든지.....

주몽이와 쿠키를 위해 준비해 온 간식을 들고 밖으로 나갔다.

아니나 다를까. 주몽은 손까지 삼킬 기세로 간식을 낚아채 꿀꺽 삼키고는 쿠키 곁으로 다가갔다. 그러더니 입맛을 다시고 있는 쿠키의 머리통을 입으로 냉큼 물었다.

"안 돼, 주몽!"

동생이 다가와 말렸다. 너 자꾸 그럴래? 동생이 엄하게 야단을 치자 주몽은 벌러덩 누워 배를 보였다. 애교로 주인의 마음을 녹이는 능구렁이 주몽.

"쿠키가 불쌍해. 주몽이란 놈, 우악스럽게 쿠키의 머리를 입으로 물다니!"

"장난이야. 심심하면 저래." 

"아무리 장난이라지만 쿠키는 참말로 괴롭겠다."

"하긴 그래, 쿠키의 머리털이 주몽이의 침에 젖어 있을 때가 많아." 

그런 쿠키가 가엾어 한 번 쓰다듬어 주고 싶어도 그 녀석은 좀체 곁을 내주지 않는다. 도도하고 까칠한 견공 같으니! 옛다,  얄미운 쿠키, 간식하나 더 주마!


주몽이란 놈이 내 손을 삼키려 하더라 말했더니 동생이 간식 주는 시범을 보여 준다.

"주몽, 쿠키 앉아!"

천방지축 주몽이 얌전히 앉는다. 간식이라는 보상을 위해 오두방정을 참고 새초롬하게 앉아 있는 주몽이가 기특하다. 쿠키도 마찬가지.

"주몽, 쿠키, 기다려!"

동생이 간식을 녀석들 앞에 놓아주고 기다려, 를 명령한다.

"먹어!"

그제서야 두 녀석들은 간식을 순식간에 삼키고 주인의 눈만 열심히 바라본다. '더 주세요, 주인님!' 호소하는 눈빛을 어찌 모른 척하랴. 생존을 위해  진화를 거듭해 온, 바로 그 눈빛에는  못 당한다.

역시, 애견인은 다르다. 간식도 주는 법이 있구나, 감탄과  존경을!

주몽은 케인코르소, 쿠키는 보더콜리인데, 대형견인 주몽과 중형견인 쿠키는 덩치차이가 상당하기에 머리를 통째로 무는 장난이 가능한 것 같다. 둘 다 수컷이고 여섯 살이다. 활달하고 덩치답지 않게 애교스러운 주몽과 조금 소심한 듯한 쿠키는 여태껏 사이좋게 지내왔다. 그런데 얼마 전부터 주몽이 걸핏하면 쿠키의 머리를 물어서, 쿠키의 머리에는 동전만 한 상처가 생겨나, 연고를 수시로 발라주어야 했다. 그래도 주몽은 미워할 수 없는 악동견이다. 쿠키가 예쁘다, 하면 자신도 좀 예뻐해 달라고, 쿠키를 밀어내고 주인에게로 다가와 몸체를 들이민다. 질투쟁이, 애교쟁이 주몽을 어찌 미워할 수 있을까. 그러니 이름과 달리, 찬바람만 쌩쌩 날리는 쿠키보다 주몽에게 애정이 더 감은 말할 필요도 없다.


동생이랑 텃밭구경하러 옥상에 올라가면 여지없이 따라와  고무통에 오줌을 갈기던 주몽. 멀찍이 따라오던 쿠키. 주몽은 대형견이라 소변량도 대단했다. 소리도 줄기도 거센  소낙비 저리 가라였다. 텃밭 푸성귀들이 고사할까 평소엔 옥상으로 향하는 문도 꼭 잠근다고. 열리기만 하면 활개를 치며 올라갈 거고, 아무 데나 소변 세례를 주면 그 엄청난 양에 야채는 말라죽고 말 게 뻔하니, 잠가 놓는 게 상책일 것이다. 옥상까지 올라다니며 두 마리 애완경의 대소변을 치우기는 갑절로 힘들 것이으로, 옥상은 주인과 함께 가끔씩 맛보는  별미로 남겨둔 채, 주몽이와 쿠키의 영역은 마당에 한정되었다.


잠결에 듣는 주몽이의 우렁찬 소리는 가히 예술이다. 목청 좋은 테너의 절제된 노랫가락 같이, 안정감 있고 울림을 주는 소리였다. 쿠키는 좀체 소리 없다. 주몽이의 기에 눌려 짖지도 않는지  주몽이의 곁을 따라다니기만 하고 존재를 드러내지도 않는다. 그래도 늘 붙어 다니는 것이 형 동생마냥  정다워 보인다.


제부는 주몽이의 리드줄을 잡고 동생은 쿠키의 리드줄을 잡은 채 나란히 산책하는 풍경. 참 평화롭지 않은가. 동생집의 마당은 두 녀석이 놀기엔 좁고 시멘트 바닥이라 견공들에겐 그다지  좋은 환경은 아니지만,  산책을 통해  견공들도 스트레스를 날려버리고 흙내음을 맡을 수 있어 다행이지 싶다.


오가며 그 집 앞을 지날 때는 호기심일랑 금물이다. 내년이면 일곱 살이 되는 주몽이가 커다란 눈망울을 굴리며 귀청이 떨어져라 인사를 건네오기 때문이다. 그 주름진 얼굴을 들여다보며  놀아주고 싶어도 일단 참아야 한다. 손을 잡아주고 싶어도 한 번 더 생각해야 한다. 놀이옷으로 갈아입지 않고는 그만두는 게 좋다. 나들이옷이 온통 침투성이가 되기 전에  무조건 참고 또 참아야 한다. 멀찌감치 서 있는 쿠키와도 친해지려면 도 닦는 심정으로 다가가야 한다. 오가며 그 집 앞을 지나는 분들이시여, 아직 도를 덜 닦아 쿠키의 손도 못 잡아 본 이방인의 충고를 꼭 잊지 말아 주시길!

주몽이와 쿠키의 아이 때 모습




매거진의 이전글 주말의  손님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