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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탈리 Feb 01. 2023

기술 없어 미안해

한가한 틈을 타 운동도 할 겸, 약수도 떠 올 겸해서 약수터에 갔던 그가 돌아오더니 주저리주저리 이런 말을 늘어놓는다.

"여보, 아까 내가 약수터 중턱에 앉아 있으려니까  때마침 지나가던  부부가 옆에 앉아 있던 부부에게 알은체를 하고 지나가더라고. 뭐 하는 사람이냐고 옆의 아내가 묻더군. 남편은  문구점을 하고 아내는 미용사로 일을 다닌다고 남편이 말해주대. 잠시 침묵이 흐르고 옆의 아내가, '여보, 나는 기술 없어서 미안해' 하고 말하는  거야. 난 이해가 안 가. 대체  기술 없어서 미안하단 말은 왜 한 걸까?"


그의 무심한 말이 우스꽝스러워 배꼽을 잡고 웃다 보니 단순히 웃을 일만은 아니란 생각이 서늘히 머리를  훑고 지나갔다. 가뜩이나 힘들고 어렵다는 요즘-가장 혼자 벌어서는 자녀 교육, 내 집 마련, 노후 대책이라는 굵직굵직한  생의 과제를 수행하기에 너무  힘겨운 시기, 맞벌이는  선택이 아닌 거의 필수가 되어버린 요즘인데, 보아하니  기술 없어 미안하단 아내는 전업주부인 모양이었다. 아내는  '미용사 부인'에 대한 한없는 부러움을 느꼈을 것이고, 남편의 무거운 짐을 덜어 주고 싶어도  뭐 변변한 기술 하나 가진 것 없으니 무심결에 그런 말이 나오지 않았을까.....


미안해하는 아내의 처지가 나와 별반 다름이 없음을 느끼는 순간  나도 그에게 미안해해야 할 것 같은 심정에 빠져 들었다.  '증'이라고는  주민등록증과 의료보험증밖에 없는, 초라한 생. 아, 나도 자격증이란 걸 갖고 싶다. 자격증이 있다고 무조건 만사형통할 리는 없겠지만, 그래도  취업 전선이든 부업 전선이든 아무 '증'도 없는 사람보다  자격증을 갖춘 사람이 훨씬 경쟁력이 있는 것만은 사실일 것이다.


정말이지, 나도 자격증을 갖고 싶다...... 아이를 둘 기르며 남편과 자영업 하고 있는 나에게 주는 자격증은 어디 없나..... 자격증 하나 없이 지금까지 뭐 하며 살았누..... 남들 다 갖고 있다는 장롱 면허조차도 없는.... 야속하게도 상념은 한쪽으로만 치달려 언짢은 마음을 캐내고 캐내어 쌓아만 가는 것이었다.


..... 하루도 쉬지  않고 일하던 그가 가끔 셔터맨이 부럽단 소리를  했었다. 부양의 의무를 떠나, 낮동안에는 운동이나 좋아하는 일에 소일하다가 밤에 부인을 모시러 오는 철거반 셔터맨. 부인이  종사하는 가게- 이를테면 미용실-에 문 닫을 시간이 되면 나타나는 셔터맨이 부럽다고.  


그러려면 부인이 전문기술이 있어야 하는데 나는, 유감스럽게도 기술이 없다. '갈대가 갈 데가 없듯'(임영조  시: 갈대는 배후가 없다), 그가 그런 소망을 성취할 길은 아마도 없을 것이다. 힘겨운 그의 짐을 덜어 줄 길은 거의 불가능할 듯. 그것이 또 마음을 불편하게  만든다. 그가 오죽 힘들면 그런 생각을 다 할까.....


그 이후 한동안 남편만 보면  '기술 없어 미안해' 하고 사과 아닌 사과를 하기에 이르렀고, 남편은 남편대로 '그런 줄 알았으면 앞으로 나한테 더욱 잘해' 하며 능청스러이 웃었다. 사실 생업이 너무 한가하여 본의 아니게 빈둥거리다 보면, 기술이라도 지니고 있으면 파트타임이라도 뛰어 볼 텐데 싶은 생각이 간절할 때가 많았다. 그러니 그 말은, 꽁꽁 숨겨 놓았던 나의 진심을 파고드는 예리한 화살촉이나 마찬가지였다.


자꾸 그런 말 하니 내가 가엾어 보인다며 이제 그만하라는 그. 싫은데, 생각날 때마다 할 건데? 때마침 라디오에서 트로트  가락이 신나게 울려 퍼진다. 사랑해서 미안해, 사랑해서 미안해~. 이때다 싶어  선율에 맞춰 흥얼거렸다.  '자기, 기술 없어 미안해, 기술 없어 미안해~.

장난 속에 고이 숨은 진심을 그는 알아줄까. 미안하고 고마운 마음을.

파도야 어쩌란 말이냐, 파도야(청마의 시: 파도야 어쩌란 말이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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