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냅스의 반란

안경을 부탁해!

by 나탈리
생애 두번 째 맞춘 안경

안경이 없다. 큰일이다. 아차 싶어 가방을 거꾸로 들고 탈탈 털었다. 역시나 안경은 보이지 않는다. 분명 챙겨 나온 것 같은데 어디서 빠뜨렸을 리는 없고 어떻게 된 일일까...... 출근 직후라 집으로 되돌아가기엔 너무 늦었다.


딸아이에게 다급히 전화를 걸어 안방으로 갈 것을 종용했다. 안방 화장대에 곱게 놓여 있다는 딸아이의 확인에 안도한 것도 잠시, 좀 갖다 주면 안 될까? 말투는 금세 부탁조로 바뀌었다. 작업하려면 꼭 필요하거든. 엄마가 노안이라서 미세한 티끌을 잡아내려면 안경이 꼭 있어야 한단다. 점심시간이 열두 시 반부터 한시 반이니까 그 안에 갖다 줘. 바쁘거든 대신 동생에게 말해 보고.


아침부터 이런 낭패가 어디 있을까. 긴요한 준비물을 빼먹고 등교한 학생처럼 난감했다. 만일 학생이라면, 총 없이 전쟁터에 나간 얼빠진 군인으로 치부되어 선생님께 호되게 질책을 당했을지도 몰랐다.


삶도 전쟁이라 했다. 일용할 양식을 위해 자신의 능력을 바쳐야 하는, 총성 없는 전쟁. 총과 다름없는 안경을 두고 전쟁을 치를 수는 없었다.

중복을 지나 더위가 한창 맹위를 떨치는 날씨에 딸내미에게 심부름을 시켜 미안한 마음이 한가득 일었지만, 불량률 제로에 도전하려면 안경은 필수품인 것을.


온통 하양투성이인 필터를 눈이 빠져라 들여다보며, 먼지와 티끌을 털고 포장을 한다고 하는데도, 미세한 먼지를 발견하여 완성품의 지퍼백을 뜯어야 할 때의 기분이란. '쓰레기가 또 하나 늘어가는군'

그저 씁쓰레할 뿐이다. 안경을 쓰고도 이럴진대 안경 없이는 미세한 먼지 자체가 안 보인다. 완제품을 포장하려면 안경의 도움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연세'에 도달해 버렸다. 서러움이 대폭발해도 순응하는 수밖에 없다.


속도와 섬세함 사이의 적절한 균형을 찾아 찬찬히 그리고 빨리 해야 하는 일이다. 또 여럿이 하는 일인 만큼 한 마음 한 뜻으로 일에 임해야 하고, 누구나 생산자인 동시에 소비자일 수도 있으니 고객의 입장도 헤아릴 줄 알아야 한다. 속도를 너무 쫓다 보면 클레임 가능성이 높아지고 찬찬히 검수하다 보면 생산량에 지장이 생긴다. 정말이지 세상에 만만한 일은 없다.


한참을 1차 포장에 몰두하던 중 누군가 내 이름을 부른다. 고개를 들어보니 밖에 나갔다 온 동료의 손에 내 안경집이 들려 있다.

전화소리 못 들었어? 전화해도 안 받고 해서 문을 여러 번 두드렸대. 딸이 이거 전해달래.

황급히 전화기를 열었다. '젤 예쁜 딸'에게 온 일곱 번의 최근 기록!

이런! 새까맣게 잊고 있었다. 안경 좀 부탁해, 출근하자마자 딸내미에게 귀찮은 임무를 떠맡긴 사실을.


빛의 속도로 달려 나갔다. 요가복 차림의 딸내미가 복도에 서 있다. 땀에 젖어 불쾌할 텐데. 한시라도 빨리 안경을 전해주려 운동 끝나자마자 곧장 온 모양이다.

점심시간 끝나기 전까지 오면 되는데 왜 이리 서둘러 왔어? 샤워나 하고 천천히 오지는. 아무튼 고맙고 미안하구나. 조심히 가고.....


딸아이를 보내고 생각하니 안쓰럽다. 시원한 음료라도 먹여 보내야 하는데 여건상 어렵고. 이 더위를 뚫고 심부름온 딸을 그냥 보내다니. 당신은 무정한 엄마군요? 또 하나의 목소리가 내쪽으로 예리한 화살촉을 겨눈다. 꾸물대면 여지없이 날아올 태세다.


휴게시간을 기다려 톡을 날렸다. 거듭 고마움을 표하고는 시원한 거 사 먹으라고 고마움의 대가를 쏘아주었다. 대가를 바라고 한 일은 아니겠지만, 생각지도 않은 보상이라도 챙겨주어야 덜 미안할 것 같았다.


딸아, 알바 치고는 꽤 괜찮지 않으냐? 어디 가도 이런 시급 못 받을걸?


요즘 들어 자꾸만 뭔가를 빠뜨리고 잊고는 한다. 건망증이 심해져 걱정이다. 안경에 관한 에피소드는 또 있다. 한 번은 남편에게 놓고 온 안경을 갖다 달라 부탁해야 했고, 또 언젠가는 일과 후 안경을 챙기지 못하고 잃어버려 새로 맞춰야 했다. 생각할수록 아깝고, 속이 상했다. 그럴 수도 있지, 하는 주위의 '위로'는 도저히 위로가 되지 않았다.


대체 무슨 정신으로 사는 건지 모르겠다.

뇌의 시냅스가 반란을 일으켜 정보 전달이 둔해진 것인지. 복잡한 세상, 기억할 게 하도 많아 지난 기억을 렌덤으로 삭제하는 것인지. 자연스러운 세월의 작용인지.


혀끝에 맴도는 이름을 한참만에 건져 올리는 건 애교로 봐줄 만했다. 래도 스로 생각해 낸 것이 대견하잖은가. '스스로'에 후한 점수를 매겨버린다. 옆 사람의 도움을 받을 경우엔, 자꾸 이러면 안 되는데 싶어 위기경보를 황급히 타전한다.

'정말 이러지 맙시다. 아직 갈 길이 먼데, 벌써부터 이러면 안 됩니다. 정신 차리자구욧!'

가스불 위에 찌개를 올려놓고 잊어버려 남편에게 퉁셍이를 먹기도 다반사였다.

'뭘 올려놨으면 그 자리를 떠나지 마, 제발!'

'넵, 죄송합니다.'

일단 잘못은 인정하여도 속마음은 '그럴 수도 있지 뭘 그래요?' 다.


아이들은 저희가 어렸을 적 듣던 똑같은 말투로 엄마를 다그친다.

'엄마, 가스불을 안 끄고 어디 갔어? 나한테 미리 말을 해 주든가.....'

아이들에게 이런 소리를 들으면 자존심이 마구 구겨져도 내색도 못하겠다. 꾸깃꾸깃해진 자존심일랑 혼자 조용히 펴 주어야 한다.


그래도 할 말이 없는 건 아니다.

너희 낳느라 엄마 정신줄도 살짝 금이 갔고, 엄마 나이쯤 되면

기억력이 서서히 떨어져 간다더라. 그래도 엄마는 냉장고에 전화기를 넣지는 않잖니?

한참을 구시렁거리던 어미. 느슨해진 기억줄을 팽팽하게 되감는 특효약 뭐 없을까, 궁리, 궁리가 꼬마전구처럼 연이어 불을 밝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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