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바 수업

봄날의 인생 수업

by 나탈리

'섬결 기상 출발 도착'

오늘 하루, 알바 수업을 받을 자격이 내게 주어졌다. 탈의실로 들어가 낯익은 얼굴들과 인사를 나눈다. 각자의 계급을 인식하며 알바답게 공손히 고개를 갑삭거린다. 그들은 정직원, 근로지원팀 파견직 직원, 장애인 훈련생, 알바들(굳이 구분을 하지 않으려 해도, 각자의 머리에 뿌리 깊게 자리하고 있는 개념이다)로 나뉘는데, 성실하게 알바를 하다 파견직이 된 이들도 있고, 손이 워낙 빨라 직원으로 발탁된 이도 딱 한 명 있다. 사회적 기업이라 장애인 훈련생들은 수습을 거쳐 자연스레 직원이 된다.


무릎을 꿇고 아래층 사물함을 열어 본다. 대개 위층은 직원이나 오래 다닌 알바들이 차지하고 있다. 누가 벗어 놓았는지 모를 일회용 부직포 가운을 몸에 꿴다. 투엑스라지 한 사이즈밖에 없어 몸 따로 가운 따로가 되어버린다. 마치 허수아비에 도포 걸친 격이다. 일회용인데 일회용이 아니다. 해질 때까지 입고 정 안 되겠으면 버리란다. 상하가 붙은 검은색 투엑스라지 가운을 입고 일회용 모자를 덮어쓰고, 신발도 사물함 아래쪽에 쑤셔 넣는다. 신발 보관함이 따로 없어 그리 하라는데, 위생상 개운치 않다. 시간이 될 때까지 좁아터진 탈의실 내에서 서성이며, 부담스러운 침묵을 떨어내려 애를 써 본다. 알바들끼리 몇 마디 일상적인 대화를 주고받다가, 직원들이 묻는 말에 성의껏 대답도 하다가, 수업 시작을 십 분 정도 남기고 '교실'로 들어간다.


비누 향기가 슬며시 마스크를 뚫고 들어온다. 천정에 닿을 듯 겹쳐진 플라스틱 바구니마다 비누가 빼곡히 담겨 있다. 이윽고 수업이 시작된다. 수업 지시를 내리고, 젊은 남직원들이 중간중간 조언을 구하는 걸로 보아, 손이 빨라 발탁된 여직원이 제일 고참인 모양이다. 섬결 님은 비누를 넣어 주시고, 누구 님은 뚜껑을 닫아 주시고.... 그녀가 수업지시를 내린다. 누구누구 님 호칭에 소름이 돋는다. 하필 호칭이 '님'일까. 익숙지가 않다. 더더구나 젊디 젊은 직원들이 섬결 님 이리 불러주니 낯이 간지럽다. '누구 씨'에 익숙해진 귀에 '누구 님' 호칭은 영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다.


귀청 떨어지도록 크고 빠른 음악 소리에 뒤질세라 모두가 일사불란하게 손을 움직인다. 과연 단 한 명의 정직원인 그녀는 손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동작이 빠르다. 사람이 아닌 것 같다. 서너 사람이 서포트하기가 힘겨우리만큼 일처리가 빠르다. 아마도 무언의 압박이리라. 이 정도로는 못 해도 알아서 움직이라는. 파견직 직원들도 그녀만큼은 아니지만 굉장한 속도로 일처리를 해나간다.


직원들의 지시와 제지 사이에서 '감'을 터득하는 게 수업의 요점인 듯하다. 직원들은 손은 손대로 움직거리며, 매의 눈빛으로 알바들을 감시하는 것을 잊지 않는다. 알바들이 흐름을 잘 타면 더 이상 직원들의 날 선 제지는 없지만 그렇지 않으면 다른 자리로 밀려난다. 알바라 주눅, 버벅대다 주눅, 알바 수업도 인생 수업이려니.....


비누엔 회사 로고가 새겨져 있다. 앞뒤가 바뀌면 큰일, 위아래가 바뀌어도 안 된다. 빠른 음악 탓인지 숨까지 헉헉대며 손을 놀리다 보면 어느새 일 교시가 끝난다. 쉬는 시간은 십오 분. 가운을 벗고, 신발을 갈아 신고, 화장실을 다녀오고 하는 일도 번거롭다. 탈의실도 쉬기에 편하지 않고, 교실도 불편하다. 십오 분의 쉬는 시간도 길다. 젊은 직원들이 왠지 두렵다. 기분 탓일까, 알바들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는 듯한 눈초리는. 꼭 필요한 말 외엔 말도 붙여주지 않는다. 웃고 떠들고 화기애애한 그들만의 울타리에 낄 수는 없는 걸까..... 알바들끼리 무슨 얘기라도 나누면 눈을 번뜩이며 귀를 기울이는 것만 같다. 얼른 일과가 끝났으면...... 수업은 그다지 어렵지 않은데 물 위에 몇 방울 기름 같은 서먹함이 버거워 못 견딜 지경이다.


오전 3교시가 끝났다. 알바들은 점심도 각자 알아서 해결해야 한다. 처음 그 사실을 알았을 땐, 정말이지 너무도 어이가 없었다. 아니, 세상에, 밥심으로 사는 대한민국에서 그것이 될 법이나 한 일인가? 수업을 하면서, 그것도 꼬박 6교시나 하는데, 급식을 안 주다니, 이리도 매정할 수가 있을까 말이다. 그러나, 우리는 '을'이고 회사는 갑인 것을. 갑이 못 주겠다는데 어쩌란 말인가. 공고란에 급식 제공이라는 대목은 분명 보이지 않았건만, 당연히 제공될 줄 알고 문의조차 안 해 본 자신을 탓할 수밖에.


'최저시급보다 눈곱만치 더 준다고 점심을 안 주다니!'

그새 안면을 튼 알바 두어 명과 함께, 편의점에서 삼각김밥과 컵라면으로 점심을 때우면서, 우리는 울분을 토하기에 여념이 없었다. 세상에, 사회적 기업이면 나라에서 받는 혜택도 많을 텐데, 알바들 급식쯤 줘도 될 것 같은데, 해도 너무 한다. 장애인은 훈련기간이 끝나면 자연스레 직원이 되고, 4시간 일하고도 점심을 제공받는데, 우리는 얼마를 다녀도 직원 될 가망도 없고, 급식도 없다. 이건 역차별이다. 그러나, 우리의 대화는 공허한 메아리만 허공에 남긴 채, 매번 소득 없이 끝나곤 했다.


갑은 아웃소싱 회사에 모든 걸 위탁했고, 아웃소싱 회사는 손가락만 까딱 해서 알바들을 모집하고 관리한다. 회사와 알바를 연결해 주는 아웃소싱 회사는 또 하나의 '갑'이 된다. 기상부터 퇴근까지 알바들은 그들의 요구대로 단톡방에 입력을 한다. '섬결, 기상입니다'로 시작하여 '섬결, 퇴근입니다'로 마치는 알바 수업은 처음엔 이상해도 적응되니 할 만했다. 여섯 시간 수업받고 수당도 챙기고! 다만 두 '갑' 중 어느 갑도 알바들에게 급식을 주지 않았다.


오후에는 장애인 직원 G가 출근한다. 그가 출근하는 순간부터 또 한 줄기의 소리가 귀를 점령해 버린다. 라디오소리, 작업 시 발생하는 소리, 기계 소리, 그리고 G가 떠드는 소리. 스테레오도 아닌데 극도의 긴장으로 단련된 귀는 그의 소리를 잘도 구분해 낸다. 끊임없이 그는 말을 뱉어냈다. 어디서 읽고 들었음직한 구절들을 마구잡이로, 쉴 새 없이 배출하는 그. 전문적인 시사용어들도 심심찮게 나오고 스포츠 경기의 해설 멘트들도 나왔다. 직원들은 그가 떠드는 소리를 참아가며, 때로는 누님처럼 형처럼 보듬고 이끌어 줬다. 어떤 경우에도 G님 어쨌어요, 경어를 쓰며 존중하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대개 그는 제일 쉽고 단순한 일을 배정받는다. 박스를 접는 일, 박스에 최종적으로 제품을 넣고 테이핑 하는 일, 쓰레기 버리는 일, 청소, 정리 등등. 가끔 직원들이 어렵다 싶은 일을 시키면, '너무해요', 하고 우는 소리를 하는데, 어린애다운 천진함과 귀여움에 모두가 웃음을 터뜨리고 만다. G가 어엿한 직장인으로 살아가는 데는 직원들의 살뜰한 배려와 보살핌이 반드시 필요할 것이고, 그것은 든든한 버팀목으로 G를 받쳐 주고 있는 듯했다. 모든 걸 제쳐두고, 효율보다는 상생을 택한 회사의 정책에는 박수를 보내고 싶다.


5교시 쉬는 시간에 카톡을 확인했다. 이튿날 출근부에 섬결이란 이름이 없다. 이런, 내일은 수업을 쉬어야 하나. 마음이 심란해진다. 알바들이 수군거린다. 그래도 명단에 오른 알바들은 안도하는 눈치고, 못 오른 알바들끼리는 근심스러운 눈빛을 교환한다. '수업이 없을 때는 2주, 3주도 안 부를 수도 있어요.' 파견직 직원이 걱정이란 섶에 성냥을 그어댄다. 이런 일이 다반사니 맘 비우고 하루쯤 쉬란 뜻이겠지만, 그들이 이런 심정을 짐작하기는 할까. 연차는커녕 언제 잘려나갈지조차 모르는 하루살이 알바 심정을.


무사히 6교시를 마쳤다. '섬결, 6시 퇴근입니다' 단톡에 올려야 한다. 그래야 나중에 수업을 받은 대가를 입금받는다. 기상부터 퇴근까지, 모든 절차가 번거로워 투덜거렸건만 내일은 그마저 허여 되지 않았다. 언제 임금의 부름을 받을까, 하염없이 궁궐 쪽으로 고개를 향하는 위리안치(圍籬安置)된 죄인의 심정으로 자꾸만 아웃소싱 회사의 톡을 들여다본다. 그사이 결원이 생겨, 혹, 내 이름이 다시 올려져 있지 않을까 하여.


결코 유쾌할 수 없는 상황. 수모스럽다.

여기서 벗어나 새 수업을 알아보든, 이런 모든 시간을 견뎌내든, 어쨌거나 선택은 내 몫이다. 새삼 귀찮다. 뭐든 시도한다는 게. 안일함에 너무 길들여져 버렸다. 이 안일함의 둥지를 박차고 날아오를 그날을, 그날을 향해 난, 얼마나 많은 결심과 시도의 날갯짓을 해야 할 것인가.

하늘은 저리도 맑은데, 햇살은 날로 화사해져 가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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