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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탈리 Nov 30. 2023

사과가 너무 비싸!

얄미운 고객

요즈음 사과 가격이 왜 이렇게 비싼 건지, 적정가격에 맛 좋은 사과를 구매하기가 하늘의 별 따기 만큼 어려운 것 같다. 겉보기에 괜찮아 보여도 맛이 따라주지 않는 사과가 많아, 도대체 감을 잡을 수가 없다. 사 온 사과를 한 입 베어 무는 순간 그날의 사과 구입이 성공인지 실패인지 대번에 깨닫는다. 만약 사과 구입에 실패하면 그날 구입한  사과는 모두 나의 차지가 된다. 사과 대장에게는 어떤 사과라도 괜찮지만, 아이들은 아니다. 사과 맛이 왜 이래? 하며 포크를 내려놓는 상황이 벌어지니, 나는 우리 집의 과일 바이어로서 막중한 책임을 지고, 맛있는 사과를 찾아 헤맬 수밖에 없다.


몇 년 전인가, 마트 앞에서 사과를 수북이 쌓아 놓고 팔고 있었다.

"사과를 세일합니다, 골라 골라 담아 가세요!"

열심히 호객 멘트를 날리는 직원의 음성이 낭랑했다.

그 당시 시세로 만 원에 일여덟 개쯤 했던가......

이끌리듯 사과무더기 앞으로 다가갔는데, 서너 걸음 떨어져 바라볼 땐 먹음직스러워 보이던 사과가 막상 가까이서 보니 이상했다. 맛있어 보이는 사과는 몇 개 안 되고, 색깔도 푸르뎅뎅하고 덜 익은 듯 보이는 것들이 대부분이었다. 때깔이 좋지 않은 사과를 팔아 치우려고 상태 좋은 사과를 섞어 놓은 듯한 합리적 의심이 살짝 들기에 그냥 가려다 물었다.  


"골라도 되나요?"

"물론입니다. 안 골라도 다 맛있습니다."

젊은 남직원은 두말하면 잔소리라는 듯 자신 있게 대답했다.

'으흠, 골라도 된다 했으니깐.'

미소를 감추며 바구니에 만 원어치의 사과를 골라 담아 계산을 하려는 찰나, 직원이 볼멘소리로 소리쳤다.

"너무 얄미워요!"

"엥? 뭐가요?"

벙쪄서 직원을 빤히 바라보았다.

"맛있는 것만 용케 알고 골라 가시니까....."

"......."

할 말이 없었다. 얄밉게도 맛있는 사과만을 골라내어 직원의 비위를 상하게 만든 고객은, 열적어 얼른 그 자리를 떠나고 말았다.


사과를 고르는 데도 요령이 있다. 빨갛게(요즘은 색깔을 인공적으로 내는 수도 있다 한다.) 잘 익고 신선한 사과가 맛이 좋으며, 세로줄 무늬가 선명하고, 겉이 너무 매끄럽지 않고 만져 보았을 때 단단한 것, 그리고 암사과(사과에는 암사과와 숫사과가 있는데 가로로 퍼진 듯한 게 암사과이고 세로로 긴 게 숫사과이다.)가 숫사과보다 맛있다.


'그래, 파는 입장에서는 내가 얄미운 고객일지 몰라도, 골라도 된다 해서 고른 거뿐인데, 좋은 상품을 골라 사는 건 소비자로서 당연한 권리 아닌가. 좋지 않은 상품을 땡처리하는 게 세일의 목적이라면 가격을 좀 낮춰야 할 것 같은데.....'

미안한 생각보다 이런 생각이 우세했다. 잔뜩 볼이 부은 그 직원의 말투와 표정이 생각나 쿡쿡거리며 웃지 않을 수 없었던 그날, 아무튼 나는 적정가에 때깔 좋은 사과를 구매했고, 맛도 만족스러웠다. 퍼걱거리지 않고 사각사각다.


그땐 그랬는데, 요즘은.....  하기야, 추석 전에는 요즘보다 더했다. 눈알이 튀어나올 정도로 과일 가격은 최상을 달리고 있었다. 바이어는 과일 가격을 보면서 입이 다물어지질 않았고 명절 때 사과 선물은 엄두로 못 낼 지경이었다. 바나나, 샤인 머스켓이 그나마 과일 마니아들에게 착한 가격으로 이쁨을 받았고, 자두나 사과 배는 천정부지로 값이 치솟으니 상등품은 '자린고비의 굴비'나 마찬가지였다.


'세상에, 사과 한 알에 오천 원이 말이 되냐고! 게다가 제수용은  만 원씩이나?'

'사과 가격이 떨어지길 기다리느니 차라리 사과나무를 심는 게 빠르겠군. 스피노자도 혹 이럴 때를 대비하여 사과나무를 심겠다고 한 것은 아닐까?'

'과일 안 좋아하는 사람들이 부러워. 우리 집 식구들은 과일을 다  좋아하여 냉장고에 과일이 떨어지면 안 되는데....'

별의별 생각들을 하다가 검색을 다 해 보았다.


검색창에 사과 가격이 비싼 이유를 쳤더니, 사과 꽃이 필 무렵(3, 4월)의 날씨, 여름날의 고온 다습한 날씨와 부족한 일조량 같은 요인을 꼽는 불로거도 있고, 어떤 불로거는 '수상한 움직임'에 대해 얘기하기도 했다. 중간 유통상인들이 중국의 싼 과일을 수입하기 위한 명목을 만들기 위해 출하량을 조절함으로써 가격이 높이 형성되게 조정하고 있다는.


유럽 왕실에서 우리나라 과일이 인기가 좋아, 사과 배의 가격이 높아지고 있다는 소식은 진작 알고 있었지만 이런 상인들의 움직임은 너무 뜻밖이었다. 이기적인 상술의 극치를 믿고 싶지 않지만, 사실이래도 어쩌겠는가. 우리는 일개 소비자에 지나지 않는데.....


얼마 전부터 겨울 사과, 부사가 나왔다. 뭐니 뭐니 해도 사과는 부사가 최고인 듯하다. 홍옥도 좋지만 홍옥은 너무 귀하신 몸이 되어 올해는 구경조차 못했으니, 달콤하면서도 아삭아삭한 맛이 일품인 부사에 올인! 내년 여름 아오리가 나올 때까지 사과 마니아들에게 사랑을 받을 부사. 초여름 아오리가 나올 때까지, 신선하게 있어 주라, 부사여!


학계에서는 이상 기후로 사과 재배지가 점차 북쪽으로 옮겨갈 것이라 한다. 대구, 충주, 괴산, 예산을 대신하여 앞으로는 최적의 사과 재배지로 강원도가 될 거라는 기사를 보고, 기상이변에 대한 위기감을 실감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내년에는 제발 사과꽃이 제때에 피어 냉해 피해 없이 잘 영글어 풍년을 맞았으면, 사과를 궤짝째 들여놓고 식구대로 하루 한 알씩 소비할 수 있었으면.....  사과를 떠나, 우리 모두를 위해, 지구가 더 이상 아프지 않기를 바라 마지않는다. 꿀벌도, 꽃, 나비, 열매, 사람들 모두 건강하게 지구에서의 삶을 영위할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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