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02. 낯선 여백 앞에서

#02. 그만큼의 여백이 필요하다는 것

by De easy
02. 그만큼의 여백이 필요하다는 것


퇴사한 지 딱 4개월째.


사실 4개월이 이렇게 휙 지나갈지 몰랐다.

다시 오지 않을 소중한 순간을 훌쩍 지나가 버린 게 아쉬웠다.

이렇게도 살아갈 수 있었구나 하는 성찰과

오늘 하루도 잘 살아 내겠지 하는 마음으로 아침을 시작한다.


회사에 다닐 땐 하루가 시작되기 전에

이미 수많은 마음의 준비를 했었다.

쫓기듯 출근준비하는 나의 모습은 이제 필요 없다.


낯선 환경과 낯선 일에 대한

마음 가짐만 필요할 뿐이다.


자유는 생각보다 느슨하고, 때로는 불편하다.

무언가를 시작해야 한다는 압박감은 있었지만,

몸은 이상하게 따라주지 않았고, 마음은 해야 할 일들 앞에서 망설였다.



회사밖의 하루는 달랐다.

오롯이 나만의 선택과 결정만 있을 뿐.


첫 한 달은

6시에 일어나는 것이 멈췄다.

이런 삶이 드디어 내게도!!


아! 좋다! 행복하다!


이내 찾아온 나의 마음이 요동쳤다.

난 소심한 사람을 인정한순간이었다.


한 번도 꿈꿔보지 못했던 비현실이었기에

감탄과 찬사를 누리지 못했다.


나는 이 새로운 시작 앞에서 무엇을 해야 할지 몰랐다.

아니 사실해야 할 건 너무 많았다.

그리고 용기 없는 나를 들킨 거 같아서 숨고만 싶어졌다.


끝내 외면하고 싶었지만,

혼자 해낸다는 건 결국 서투름과 다시 마주해야 한다는 뜻이었다.

들키고 싶지 않았던 나의 민낯과 외로움의 사투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회사에 워너비 같은 사람이었기에

늘 주변은 북적였다.

나. 이런 걸 좋아하고 즐겼구나.


급작스레 밀려오는 동료들과의 아쉬움.


시절인연이라 치부하기엔

그들과 나눈 따뜻함까지 날려 보내기 싫었다.


퇴사 후,

나만큼이나 그들도 나를 잊지 않고

찾아준 덕분에


홀로서기하며 스며든

불안과 외로움을 차분히 녹여낼 수 있었다.


그들은 곁엔 없었지만

따뜻한 마음이 온전히 전해졌다.


진심으로 고맙습니다.


그렇게 지나가는 하루들 속에서,

나는 하나의 중요한 진리를 깨달았다.


마음에도 ‘정리 기간’이 필요하다는 것.


14년의 회사생활을 청산한다는 것이

이렇게 오래 걸릴지 생각해 보지 못한 결과였다.

안식년 한번 없이 잘 견뎌온 일상이었다.


그런 시간들이 있었기에

지금의 내가 있었구나

그렇게 나는,

오랜 시간 달려온 나에게 조심스럽게 안부를 물었다.


그리고 깨달은 것은

"오랫동안 달려온 사람에게는,

그만큼의 여백이 필요하다는 것"


4개월 간의 혼란 속에서, 나는 서서히 나를 찾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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