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아가 시작되던 그날,

아이가 태어난 날의 회상

by 황하루



임신 중 산부인과를 찾으면 어느 순간부터 주욱 들었던 말이 있었다.

"아이가 주수보다 조금 작네요."

아이는 뱃속에서부터 머리 크기는 보통이었지만, 무게는 작았다.

그러나 중간중간의 각종 검사에서는 아무 이상 없었고,

내가 많이 먹는다고 그게 다 아이로 갈 것 같지도 않았기에

특별히 내가 해줄 수 있는 게 없었다.


뱃속의 아이는 내내 그랬다.

나와 한 몸이지만, 내가 무엇하나 해줄 수 있는 것이 없었다.

작게나마 노력한 것은 내가 슬프거나 분노했을 때

그런 부정적인 감정을 고스란히 받지 않기를 원해 배에 손을 얹고 말을 건넸다.

"아가야, 엄마는 괜찮아. 우리 아가도 괜찮을 거야."


다른 태교를 열심히 해본 것도 아니고,

(딱히 태교가 아이에게 얼마나 영향이 있는지 정확한 판단이 서지 않아

내가 하기 싫은 태교를 억지로 하는 것이 더 안 좋을 거라 생각해서 안 했다.)

무엇이 좋은지 몰라서 나쁘다는 것은 하지 않기로 했다.

술은 원래 회식자리 아니면 즐기지 않아서 회식에 빠지면 됐고,

담배는 입도 댄 적 없으니 문제없었다.

다만, 커피는 원래도 좋아했고 회사 다니면서 더 꼬박꼬박 챙겨마셨었는데

임신 중만 참기로 하고 꾹 참으며 버텼다.


다른 걸 더 해줄 게 없었다.

내 몸 안에 있지만 배를 가르지 않는 이상 어떻게 할 수 없는 상태였다.

고작 무게가 덜 나간다는 이유로 내 배를 가를 수는 없으니 말이다.

나는 아이가 어서 태어나길 바랐다.

실체가 보여야 뭐라도 해줄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렇게 예정일이 다가왔고, 날을 넘기려나 싶었을 때

예정일을 하루 남기고 진통이 찾아왔다.

새벽 5시에 그리 심하지 않은 생리통처럼

배가 싸르르한 것이 규칙적으로 반복되었다.

정말 생각보다 크게 아픈 게 아니어서 긴가민가한 상태로

혹시 모르니 목욕을 하고, 짐을 챙기고, 남편을 깨웠다.



작은 아이가 태어나다,


병원으로 가는 택시에서 새벽의 라디오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아, 오늘은 13일의 금요일인데...'

하는 안타깝다는 생각을 했던 기억이 난다.


병원에 간 나는 많이 아픈 건 아니지만,

날짜도 그렇고 진통인 것 같다며 접수를 했고

여러 다른 산모들이 진통하고 있는 병실의 침대에 누웠다.

검사해 보니 진짜 진통이 맞았고(!) 아직 출산까지는 시간이 많은 것 같다고 해서

그 상태로 담당 의사 선생님이 오시는 9시까지 누워있었다.


그 사이 관장을 했던가, 전후 순서는 기억 안 나지만 장을 비우고

계속 누워있어도 난 크게 아프지 않은 진통만 하고 애기는 나올 기미도 안보였다.

진짜 고통은 분만유도제를 맞고 나서였다.

물주머니 인가 하는 것을 넣고나서부터는 그냥 '끙' 소리도 내기 힘들 만큼 배가 아팠다.

누가 내 배를 꾸욱 쥐어짜고 있는 것 같아서

내가 할 수 있는 거라곤 몸을 둥글게 말고 참아내는 것뿐이었다.


사실 병원에 가면 여러 미디어에 나오는 것처럼

남편 머리채도 한번 잡아보고 싶었는데 그럴 기력도 없이 그냥 아파서

가만히 눈물만 흘렸다.

다시 살아난 건 무통 주사를 맞은 후였다.

등에 무통주사를 맞고는 언제 아팠냐는 듯 진통의 세기가 확 줄어서

다시 처음처럼 버틸만했다.

그 상태로 아이가 언제나 오나 궁금해하던 차에

자궁문도 너무 안 열리고 아이가 안 내려오고 있는데 아이의 심박수가 줄었다.


나는 그냥 영문도 모른 채 응급 제왕을 해야겠다는 말에 '으잉?' 싶었는데,

아이가 작아서 그런가 걱정이 되었다.

하지만 의사 선생님이 "엄마가 울면 안 돼요. 아이 잘 버티게 길게 호흡해요."라고 해서

슬퍼지려던 마음을 다잡고 숨쉬기에 집중했다.

워낙 빠른 시간 내에 이뤄진 거라 단편적으로만 기억이 나지만,

차가운 수술대에 발가벗고 누운 상태로 마취제가 들어가자 3.. 을 세고 바로 기절했다.


깨어나니 아이가 태어나고 나는 병실로 올라와 있었다.

2.63kg의 작은 아이가 태어났다.

계속 작다고 해서 그냥 살이 안 쪘나 보다-했는데 예상보다도 더 작은 아이였다.

심박수가 떨어졌던 만큼 긴급했던 수술이고 소아과 선생님도 대기하셨다고 했는데

다행히 아이는 잘 태어나서 특별한 이상도 없어 신생아실에 잘 있다고 했다.

정말 다행이었다.



아이를 만나다,


제왕절개는 전혀 생각해보지 않았기에,

수술에 대한 준비가 하나도 안 되어있었다.

그냥 수술할 사람이라면 챙겨뒀던 물건이 하나도 없었다.

하지만 회복하면서 곧 필요 없기도 해서 그냥 '아쉽다'정도로 넘어갔던 것 같다.


수술 후 누워있을 때는 딱히 다리 쪽이 마비된 느낌 말고는

진통제 덕에 크게 아프지도 않아 몰랐는데 회복을 위해 걸어야 했기에

몸을 일으키는 순간 모든 고통이 밀려들어왔다.


그야말로 갓 태어난 송아지의 모습이 그런 게 아닐까.

다리에 힘은 안 들어가고 배는 칼로 찢었다 붙여놨으니 너무 아프고

수술에 대한 지식이 전혀 없었기에 덜컥 겁이 났던 순간이었다.

침대에서 내려와 첫걸음, 그리고 내 발로 화장실 가기까지가

제왕절개에서 가장 고통스러운 순간이었다.


그래도 아이 얼굴은 꼭 보고 싶어서,

걸을 수 있게 되자마자 다음 면회시간에 아이를 보러 갔다.

남편이 전해준 사진으로는 봤지만 실물은 어떨지 정말 기대되는 순간이었다.

수유실에 들어가고 아이를 건네받았는데,

첫인상은 정말 동그란 아이였다.

두상이 잘 빚어놓은 호빵처럼 동그래서

내내 납작두상 콤플렉스를 가지던 나로서는 그 두상이 정말 마음에 들었다.


그리고 정말 작았다.

신생아실에 줄지어 누워있는 아이들 보면 덩치가 큰 아이,

머리숱이 많은 아이, 이렇게 눈에 딱 들어오는 아이들이 몇 있는데

우리 아이는 그중 작은 아이였다.

정말 손대면 부서질 것 같아서 어떻게 안아 들어야 하나 싶을 정도로 작고 가벼웠다.

그리고 수유는 한 번도 안 하고 내내 잠만 잤다.

간호사 선생님들이 잘 먹여주시는지 엄마 젖에는 영 관심도 안보였다.

그래도 너무 예쁘고 이 작은 존재가 내 아이라는 게 믿기지 않아서

면회시간 내내 눈으로도 담고 사진도 찍고 그랬다.


첫 만남 후에,

나는 아이의 이름을 정해주었다.

후보로 생각해 뒀던 이름들이 있었는데,

아이를 보고 나니 '이 이름이 딱이다'하는 이름으로 고를 수 있었다.

아이의 동그란 얼굴을 닮은 동그란 느낌의 이름으로,

그리고 태어난 생년월일에 맞춘 한자와 뜻까지 정해서.

진짜 그 작은 아이가 우리 가족이 되는 거구나, 하는 실감이 났다.






일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