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꼬박꼬박 돌아오는 아이들의 방학
방학.
아이가 기관에 다니기 시작하면서부터 어김없이 1년에 두 번의 방학이 찾아왔다.
육아를 하는 친구들이나 SNS를 보면
방학이 올 때쯤엔 공포에 질리듯이 무서워하고, 꺼리는 표현들이 등장한다.
내게도 아이의 방학이 다소 긴장되는 때인 것은 분명하다.
왜냐면 학기 중에 유지했던 시간과 같은 루틴이 깨지고,
아이가 하루 종일 나와 붙어있으며,
(내 기준 가장 중요한) 점심도 차려줘야 한다...
그럼 아이의 방학이 오지 않길 기다리고,
방학이 어서 끝나기만을 기다려야 할까?
난 SNS 상의 방학을 안 좋게만 표현하는 부모들의 게시물들이 다소 불편했다.
그리고 방학을 기회삼아 선행이나 과도한 학습일정으로 가득 채운다는
공부 열정을 불태우는 게시물도 불편하다.
왜냐면, 아무리 생각을 돌이켜봐도,
나의 어린 시절 방학은 분명 즐거웠기 때문이다.
방학에서 제일 싫었던 것은 숙제뿐이었다.
직접 물어보지는 않았지만 나의 엄마가 나나 동생의 방학을 불편해하거나,
"너네 빨리 학교 가면 좋겠다.", "애들 방학은 왜 이렇게 길어"라는
부정적인 표현을 했던 기억은 없다.
뭐 오래전 기억이니 한 두 마디 했을 수도 있지만 그즈음이면 나 역시
하도 뒹굴대다 방학이 지겨워져서 학교 가서 뭐라도 했으면 좋겠다, 고 생각할 때라
그냥 '지루하다' 정도의 뉘앙스로 받아들였던 것 같다.
이런 어린 시절을 겪었던 나로서는 우리 아이의 방학을 마냥 부정적으로 보기 어려웠다.
일종의 양심의 가책이랄까.
다만 한 번씩 부러움의 말은 내뱉곤 한다.
"엄마도 방학이 있어서 쉬고 싶다~ 아이들은 참 좋겠네. 엄마도 학교 다닐 때가 좋았지."
이러면 아이는 방학을 맞이할 수 있는 나이라는 이유만으로도 마냥 뽐낼 수 있게 된다.
내 마음은 방학 동안 어떻게 짬을 내서 내 일을 할 시간을 확보해야 할지,
매 점심은 어떻게 준비해서 먹고살아야 할지,
그래도 방학이니까 어디 놀러 갈 데는 없는지.
이런저런 걱정과 고민이 밀려오더라도 아이한테 티 내지 않으려고 한다.
그리고 그냥 마음 자체를 내려놓기도 한다.
아직 어린데 학기 중에 투정 부리지 않고 기관에 잘 다닌 것으로도 기특하지.
아이에게 주어지는 상 같은 시간이라고 생각하고 즐기자~
다행히도 어린이집과 유치원을 거치는 동안 아이의 방학은 일주일정도밖에 되지 않았다.
유치원에서 종일반을 선택하지 않은 이후로는 2주, 3주로 길어지긴 했지만
나와 아이는 같이 푹 놀고 쉬었기 때문에 그리 길게 느껴지진 않았다.
오히려 아이의 방학 전에 더 바빴다.
아이와 같이 있으면서 하기 어려우면서도
미리 할 수 있는 일들을 최대한 몰아서 끝내놓고,
그 짧은 방학기간 안에서 어떻게 알차게 놀고먹을 수 있을지 계획을 짰다.
몇 번의 방학을 거치니 나도 방학을 마냥 무서워만 하지 않게 된 점 중의 하나가,
방학 동안은 아이와 같이 늦잠을 자는 것이다.
출산 이후에 늘어난 잠이 퇴사를 하고는 더 굳어져서
아침에 부지런히 일어나 아이의 아침 준비를 하는 것이 영 힘들었는데
방학은 일찍부터 나갈 일이 없으니 늦게까지 잘 수 있었다!
일주일에 두 번 정도는 남편의 휴가 찬스를 써서 셋이든, 아니면 둘이서든,
평일에 가면 좋을 것 같은 곳으로 나가서 하루 종일 놀다 왔다.
나머지 시간은 같이 밥도 해 먹고, 집안일도 같이 하고, 재미있는 만화영화도 같이 보고,
시간이 오래 걸리는 만들기나 레고 같은 것도 특별히 방학을 위해 미리 준비했다가
짜잔 하고 바쁠 때 꺼내주면 혼자서 30분 이상, 둘이서 한 시간은 거뜬히 놀 수 있었다.
이런 갖은 노력에도 하루가 유독 길게 느껴져서 나도 아이도 지겨운 날은 있었지만,
같이 바깥 산책도 나가고 같이 낮잠 자자고 꼬셔서 휴식을 취했다.
다행히 나의 일은 일정만 지키면 되는 일이라서,
아이보다 먼저 깬 아침, 아이가 잠든 저녁, 그리고 주말 틈틈이 진행할 수는 있었고
몸이 바쁘고 내 시간이 없지만 방학이 끝나면
아이도, 나도 미련 없이 다시 원래의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아이가 유치원을 졸업하고 학교에 다니자,
엄마들의 걱정인 그 방학이 훨씬 더 길어져버렸다.
맞벌이를 하는 가정은 당연히 아이를 긴 시간 혼자 둘 수 없으니 돌봄 교실에서 보내게 한다.
나는 내가 집에서 일하는데 굳이 아이를 학교에 오래 두고 싶지 않아서
돌봄은 신청 안 했는데, 늘봄과 방과 후 교실은 아이가 선택하게 하여 신청했다.
늘봄과 방과 후 교실로도 방학은 꽤 버틸만하다.
오전에 잠깐 학교에 가는 거지만,
아이가 늦게 자고 늦게 일어나는 습관을 방지할 수 있는 정도로 습관을 유지하기에 좋다.
그리고 내 일도 늘어서 이전처럼 몰아서 하는 것만으로는 일 할 시간이 모자랐기에
아이가 학교에 가 있는 오전 두 시간 남짓이라도 일 할 시간을 확보했다.
그리고 방학이어도 학원은 운영하니까,
아이는 다니던 피아노와 수영을 계속 가니 그 시간도 확보할 수 있었다.
오히려 이런 일정들로 방학임에도 평일 하루를 쉬는 것이 애매해졌는데,
방학 때 운영되는 학교도 일주일정도는 그냥 쉬니 그때를 이용했다.
그리고 초등학생인 지금 여러 번의 방학을 거쳐본 나로서는
클수록 방학을 같이 보내는 것이 그리 큰 일은 아니게 되었다.
아이는 혼자 책도 보고, 피아노도 치고, 그림도 그리고, 슬라임도 갖고 놀고,
한 번씩 나를 찾긴 하지만 나는 뭔가의 준비를 해주거나 리액션만 하면
다시 혼자서도 오랜 시간을 잘 보내게 되었다.
아이의 미디어 노출 시간은 학기 중이나 방학 때나 동일하게 유지하고 있다.
'방학 때 푹 쉬며 놀자'는 내 계획과는 별개로,
미디어 사용 시간을 방치하는 것은 다시 학기 중의 일상으로 돌아가기 힘든
빌미를 제공하는 것이라 생각하기 때문에 이것만은 지키려고 하고 있다.
아이가 '심심해!'를 외칠 때쯤엔
산책을 겸하여 도서관에 가기도 하고, 마트에 가기도 한다.
사실 학교에서 맞이하는 겨울방학은 처음이라
무려 두 달이나 되는 기간을 어떻게 보내야 하나 막막하기도 해서
아이와 같이 할 영어공부, 한자공부 등도 찾아보았는데
막상 아이에게 '이런 거 같이 할래?'물어보니 완강히 거부해서 다 던져놓았다.
긴 시간이 생긴 만큼 학습적으로 미진한 부분을 보완하는 등을 하기엔 적기인데
다행히도 아이가 학기 중에 학교에서의 공부는 잘 따라가 주었기에 이런 것도 패스했다.
무언가 아이의 공부와 미래에 같은 욕심이 슬쩍 고개 들 때면,
나는 현재 아이 상태를 확인하고 아이 역시 그 공부를 필요로 하는지 묻는다.
저학년 때의 공부를 강제로 떠먹여 아이가 잘 먹는 것처럼 보이게 할 수는 있지만,
이미 그 시절을 겪어본 나로서는 그런 강제 공부는 길게 갈 수 없다는 믿음이 있다.
그래서 현재 학년에서 미진한 부분이 없고,
아이가 추가로 무언가 배울 마음이 없는 때 강제로 밀어붙이면 안 된다는 생각이 나를 막아섰다.
그럼 긴 시간 동안 뭐 하려나, 하던 나의 이른 걱정이 무색하게
아이는 종일 놀거리를 찾느라 바빴다.
그 와중에 심심할 때 한 번씩 책을 찾아 읽어주는 모습이 기특할 뿐이다.
내가 돌아보았을 때 '방학'이라고 하면 '뒹굴뒹굴', '재미'정도가 떠오르듯이
아이들에게 방학이란 그 정도로 남았으면 좋겠다.
그런 의미로 방학이 거의 없이 돌봄 교실에 가는 아이들은 조금 안타깝다.
맞벌이고 아이를 돌볼 사람이 전혀 없는 상태의 저학년 아이들은
당연히 돌봄의 손이 필요하기에 어쩔 수 없다는 것은 알지만,
그 아이들의 기억에도 방학은 즐겁고 놀 수 있는 시간이길 바란다.
우리 아이는 아직 저학년이라 그런지,
내가 기억하던 나의 옛날과 달리 딱히 '숙제'라고 할만한 방학숙제가 없는데
그나마 여름방학과 겨울방학 모두 '생활계획표'를 학교에서 그려왔다.
아이의 생활계획표를 보면 절반을 차지한 잠 시간 다음으로 긴 시간은 '놀기'시간이다.
자고 일어나 밥 먹고 놀고, 또 점심 먹고 놀고, 학원 갔다 와서 티비보고 놀고,
저녁 먹고 놀고 씻고 잔다는 그런 원대한 계획표를 꾸준히 그려오고 있다.
이런 놀기 범벅 계획표를 자랑스럽게 그려오는 모습도 귀엽고,
매일 그렇게나 계속 꾸준히 놀고 있으면서도 또 놀겠다는 모습이 어떤 면에선 감탄스럽다.
그리고 이런 방학 계획이 적어도 초등학교 때는 꾸준히 이어졌으면 좋겠다.
방학은 그냥 집에서 부담 없이 놀았던 시간으로.
나의 어릴 적 방학에서 선명하게 기억나는 시간은
겨울 방학 때 이불 속에 들어가 귤을 까먹으며 티비를 보던 시간이다.
물론 숙제를 이유 삼아 서울로 엄마랑 전시를 보러 간 날도 있었고,
여름에는 계곡에서 물놀이를 하러 간 날도 있었지만 어린 시절 대부분의 집들이 그렇듯
아빠는 평일에 부재했고, 엄마는 여행이나 어디 가는 것을 딱히 계획하진 않았다.
그래도 그냥 만화책을 몰아서 빌려보고, 책을 보고 티브이를 봤던 그 시간이 좋았다.
그리고 내 아이에게도 이런 기억을 남겨주고 싶다.
어른이 되어 돌이켜보는 방학이
'다른 애들 다 쉴 때도 나는 학교에서 해가 질 때까지 있어야 했지'라던가
'학원 특강으로 가득 차서 학교 갈 때보다 공부할 게 더 많았어'라면
정말 서글플 것 같다.
물론 이것은 초등학생 정도까지 해당되는 이야기고,
중학생 이후에 본인의 욕심과 의지로 '방학 때 바짝 무언가를 해보겠어!'라는
열정을 불태워 바쁘게 사는 것은 정말 기특한 모습이고 대 찬성이다.
어른이 되어보면 알겠지만,
어른의 방학은 쉽게 오지 않는다.
회사를 그만둘 때, 눈치와 타이밍을 보며 긴 휴가를 쓸 때,
혹은 정말 경제적 부를 달성하여 일에서 자유로워질 때, 와 같은 때 정도일까..?
대부분은 은퇴하여 쉬는 때가 아니면
아이들 때의 '방학'이라고 불릴만한 시간은 마련하기가 어렵다.
그나마도 '방학'이 존재하는 학교에 다니는 시간은 긴 일생의 여정으로 미루어볼 때
그리 긴 시간도 아니다.
나는 아이들에게도 쉴 시간이 확보되면 좋겠다.
일관적인 교육의 시간에서 잠시 벗어나 본인이 하고 싶던 일,
좋아하는 일을 실컷 해볼 시간이 있으면 좋겠다.
그런 시간도 있어야 어른이 될 아이가 자기에 대해 좀 더 알고,
어느 방향으로 나아갈 지도 스스로 정할 수 있게 된다고 생각한다.
어른들이 아이들의 방학을 너무 나쁘게만 보지 않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