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애 첫 육아는 어렵지 않았다

by 황하루



조리원은 돈으로 사는 편리한 시간이었다,


병원에서 퇴원한 후, 아이와 함께 조리원으로 들어갔다.

그냥 아이를 낳은 내 몸에게 그 정도 사치는 누리게 해주고 싶었다.

내 몸이지만 내 몸이 아니라 아이 집 같아서 혼란스러웠던 임신 기간,

그리고 급작스러웠던 수술로 찢어지고 꿰맨 몸(물론 처음엔 자연분만을 생각했으니

그건 다른 의미로 뼈가 벌어지고 찢어진 몸일 거라 생각했다)

또 아무런 연습 없이 덜컥 실전으로 맞닥뜨리게 될 육아까지 온전히 혼자 짊어지기보다

그냥 잘하는 곳의 도움을 받기로 했다.

게다가 집안일을 할 필요도 없고, 맛있는 밥이 나오는 것까지

나에겐 돈이 아깝지 않은 시간이었다.

짧은 기간 동안 호텔 숙식만큼 비싼 조리원비를 내며

갓 태어난 아이를 남의 손에 아이를 맡기는 것이 맞느냐에 대해서는

남녀 여러 사람의 의견이 분분하긴 하지만, 개인적으론 그냥 선택의 차이 같다.

난 편안함을 돈으로 바꿨고 그 선택은 아무리 돌아봐도 좋은 선택이었다.

나는 임신 사실을 알고 출산에 들어갈 기초 용품비와 같이 병원비, 조리원비를

당연하게 예산으로 책정했기에 열 달 동안 준비하면 되는 금액이어서 크게 부담되진 않았다.

또 몸이 편한 것보다 비용이 부담이 되거나 아이가 둘째라서 첫째를 두고

조리원에서 마음이 편할 수 없거나 하면 다른 차선택을 선택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조리원에서 있었던 시간은 호르몬의 영향으로 할 일이 없던 낮에 울적해지는 것을 제외하곤,

내가 살아온 시간 중에 손에 꼽을 만큼 정말 편한 시간이었다.

조리원을 계약한 2주 중 1주는 제왕절개 수술 후 배가 아파서 펴기 힘든 허리를 구부리고 다녔다.

병원에 있을 때 제대로 감지 못한 머리도 조리원에서는

미용실처럼 앉아있으면 쑥 머리를 뒤로 빼주는 의자 덕에 남편이 감겨줘서 쾌적함을 유지할 수 있었다.

그런 편리함부터 아이는 수유콜이 오거나 모자동실 시간 외에는

전문가의 손으로 돌봄을 받을 수 있어서, 육아에 대한 부담도 덜 수 있었다.

매일 광고와 결합되거나 혹은 자체적인 여러 교육을 받으며 아이와 천천히 친해지는 시간이 있어서

정말 기초적인 부분, 기저귀를 갈아주거나 속싸개를 감싸주거나, 아이를 목욕시킬 때의 유의점 등을

조금씩 알아가며 이 조그마하고 연약한 생명체를 다루는 법을 배웠다.

그럼에도 아이를 안는 것으로도 겁이 나고, 젖을 물지 않으면 뭐가 잘못된 건가 걱정되긴 하였다.

그래도 그런 작은 걱정에 대한 조언을 바로 얻을 수 있는 전문가가 옆에 있어서,

나의 불안을 낮추고 육아에 대한 걱정을 줄여나갈 수 있었다.



아이와 남겨진 시간,


아이와 조리원을 퇴소한 후엔 정말 감사하게도 친정엄마가 일을 쉬고 있던 터라,

2주 더 아이와 나를 돌봐주었다.

조리원에서 나오자마자 육아와 집안일을 바로 시작했다면 쉽게 지쳤을 수도 있는데,

그 시간을 좀 더 늦춰주는 시간이었다.

그럼에도 굳이 비교하자면 친정엄마에게만 온전히 맡겨놓고

나는 방 안에서 편히 쉬기만 하는 건 할 수 없어서(이미 조리원에서 푹 쉬고 온 덕도 있다.)

아이를 맡기는 것 외에는 마음이 편하진 않았다.

그리고 내가 아이를 돌볼 때마다 서툰 모습을 고쳐주거나 대신해 주는 모습에, 스스로 위축되기도 했다.

조리원과 친정집 중에 택하라면 나는 무조건 조리원이라고 추천하고 싶다...


드디어 그 모든 시간이 지나고 우리 집으로 돌아왔다.

남편은 당연히 일을 나가니 낮에 없었고 정말 아이와 나, 둘이 집에 남겨진 것이다.

참고로 아이가 2살여까지의 내 육아를 돌이켜보면 정말 행복했다.

특히 아이를 출산하고, 다시 복직하기 전까지의 6개월의 육아휴직 기간이

제일 행복했던 때인데 '육아휴직'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나는 아이를 키우는 것에만 집중했다.

다행히 건강하게 잘 태어나준 아이였고, 평소 작은 동물과 인형을 좋아하는 나에게

아이 키우기는 살아있는 인형 키우기마냥 귀엽고 즐거운 일이었다.


당연히 신생아는 자주 먹여줘야 했고, 기저귀도 자주 갈아주고,

또 아이 젖병도 소독하고 빨래도 삶는 등 손이 가는 일이 많았지만

누워만 있는 아이와 달리 할 일도 없었던 터라 먹이고 치우고,

아이가 잘 때면 그냥 누워서 같이 휴식하거나 잤다.

울음으로 말을 하는 나이라 배가 고프거나 졸리거나, 뭔가 마음에 안들 때 수시로 칭얼거렸고

원더윅스 등의 시기를 지날 때는 우렁차게 울기도 했지만 다시 돌아봐도 하찮은 울음이었다.

큰 아이처럼 정말 귀가 울리게 우는 것이 아니라, (그 울음도 각오하긴 했지만)

정확한 비유를 찾긴 어렵지만, 발정 난 고양이 정도의 울음으로 느껴졌다.

아이마다 울음의 빈도와 소리가 다르다고 하는데,

우리 아이는 특정 시기 외엔 크게 자주 울지도 않았고 소리도 크지 않아서

그냥 우는 모습마저 예뻐서 가끔은 '우엥'하고 우는 걸 찍어두기도 했다.

매일 사진을 찍고 동영상을 남겨도 아이는 하루가 다르게 컸고,

그 지나가는 시간들이 매일매일 아쉬웠다.

그렇게 행복한 시간들이 빠르게 지나갔다.


나 역시 아이를 육아한다는 것은 처음이라 이유를 알기 어려운 울음이나,

아이가 처음 열이 났을 때 같은 가슴 철렁한 순간도 있었다.


그때 내가 해줄 수 있는 건 울음이 그칠 때까지,

성장통이 좀 덜하길 바라며 안고 어르고 달래주는 것과

해열제도 먹을 수 없는 시기에 열이 났을 때 열패치를 붙여놓고

미지근한 물로 적힌 수건으로 아이를 닦아주는 것뿐.

그 순간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 해주는 것밖에는 더 없었다.

물론 아이의 평상시 컨디션과 상태를 파악해야 하고,

거기서 크게 벗어나거나 어떤 증상이 그 시기 아이의 정상 범주가 아닌 때에는

당연히 병원 등 기관의 도움을 적극적으로 받아야겠지만 정말 다행히 그런 일은 없었다.

작게 태어난 아이는 뱃골이 작아서 태어나서도 먹는 양이 많지 않았지만

본인이 먹은 만큼, 조금씩은 자라고 있었다.

나는 아이가 아프지 않고 잘 자라나는 것으로도 감사하며 매일을 보냈다.



복직, 그리고 다시 휴직,


원래 나는 아이를 기관에 맡기고 내내 회사생활을 더 할 생각이었다.

애초의 가진 것이 없는 우리 부부에게 그것은 당연한 일이라 생각했고,

세 사람이 잘살기 위한 기반을 다지기 위해 맞벌이를 하는 것이 맞다고 생각했다.


아이의 육아를 걱정했던 친정엄마가 너무 이른 시기에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내는 것을 걱정하였고

내가 복직하는 때, 아이의 6개월 무렵부터 친정집에서 아이를 돌봐주었다.

나는 평일의 반은 우리 집에서, 반은 아이를 보러 친정집에서 지내며 두 집 살림을 했고

아이는 주말엔 우리 집으로 돌아와 아빠를 만나 셋이서 지내다

다시 일요일 저녁이면 친정집으로 갔다.

당연히 기관에 바로 맡기는 것보다는 안심이 되었고,

아이는 친정에 가서도 곧잘 외할머니, 외할아버지, 이모, 고양이, 강아지와 함께

잘 어울리며 쑥쑥 자랐다.

문제는 친정집이 멀지는 않지만 그리 가깝지도 않아서,

아이가 주말에만 아빠를 볼 수 있다는 것에서 오는 내 걱정과

아이가 없는 우리 집에는 돌아가고 싶지 않아 나 역시 남편과 마음이 멀어지는 것,

또 아이 짐을 챙겨 보내는 매 일요일 밤마다 복받치는 슬픔에 힘들었다.


육아휴직을 하며 아이를 보는 시간이 너무 행복했던 나는

일을 하고 돈을 버는 보람과는 별개로 아이와 남편, 내가

각각 분리되어 지내는 것이 계속 마음이 불편했다.

그래서 나는 돌이 지나 보내려던 어린이집을 조금 당겨 10개월 무렵 보내게 되었다.

마침 아이의 10개월 무렵이 어린이집에서 새 시작을 한다는 3월이었고

다른 아이들과 함께 적응시킨다는 생각으로 아이는 어린이집에 입소하여,

적응 기간을 거친 후 점심 먹고 낮잠 자고 일어난 2시에 하원하여

나의 이모가 오후 시간을 돌봐주기로 하였다.


내가 출근하면서 맡기고 이모가 하원시키기까지 하루 6시간의 일정,

걱정도 했지만 다행히 아이는 어린이집에서도 금방 적응하여 씩씩한 모습으로 등원하게 되었다.

이제 한숨 놨다고 안심했을 때,

입소한 지 보름쯤 된 어느 무렵 선생님한테서 전화가 왔다.

아이가 놀고먹고 하는 것은 문제가 없는데 기저귀를 갈 때마다 도망을 다녀 곤혹스럽다는 전화였다.

아이는 기기 시작할 때부터 팬티형 기저귀를 사용해 왔고, 집에서도 도망은 다니지만

어차피 기어 다니던 때라 멀리는 못 가니 잡아서 갈아입혀달라고 부탁드렸다.


그리고 그날 저녁, 이모한테서 아이 다리에 이상한 멍이 있다는 이야기를 전해 들었다.

아이를 하원시키고 목욕까지 시켜주는 이모가 씻기다 보니 허벅지에 이상한 멍이 있다는 것이다.

태어나서 그날까지 아이 몸에 예방접종을 맞은 때 외에는 멍이 든 것을 보지 못해서,

'애기들은 멍도 잘 안 생기나 봐'라고 말했던 우리 부부는 조금 당황했다.

어디 부딪혀서 생기기에도 이상한 허벅지 중앙의 위치였고, 더 이상한 것은 아이의 상태였다.

그날 저녁부터 그다음 날인 주말 내내 아이는 정말 전에 없이 계속 울어댔다.

배가 고픈 것도, 기저귀 때문도 아니었고 열도 나지 않았다.

특별히 성장통의 시기가 겹친 것도 아닌데 정말 계속 울어서

우리는 어찌할 바 모르고 아이를 챙겨 안고 밖으로 나와 계속 토닥이며 달래주었다.


짐작 가는 바는 상상 속에서 여러 가지 있었으나,

그냥 안심인 것은 아이가 기관에 다니지 얼마 되지 않았다는 사실이었다.

나는 회사엔 사정을 말하고 이제 복직 여부를 장담할 수 없게 되었지만, 남은 육아휴직을 쓴다고 하였고

아이의 어린이집엔 전후 사정 얘기 없이 그냥 퇴소 결정을 알렸다.

아이의 짐을 챙겨 나오는데, 어떠한 아쉬운이나 분노보다는 그냥 홀가분함이 들었다.

사실은 그냥 내 아이를 내가 안심할 수 있는 때까지는 보고 싶었다.

아이를 집에서 돌보기로 결심하며, 나는 내가 다시 아이를 돌볼 시간이 생긴 것에 감사했다.









일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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