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십 억 적자를 내는 방법

적극적으로, 알아서

by 히읗

그 이름은 박혁허세. 회사의 C레벨이자, 이 스타트업의 소문난 '마이너스의 손'이었다.


그가 하는 일은 단순했다. 회사 돈을 '폼 나게' 쓰는 것. 그에게 ROI 따위는 중요하지 않았다. 있어 보이는 것, 그럴싸한 타이틀이 달리는 것에만 집착하는 전형적인 '보여주기식 경영'의 화신이었다. 그 결과, 그가 진두지휘하던 사업부에서만 매년 수십억 원의 손실이 났다.


이 스타트업은 태생부터 끈끈한 학연과 지연으로 얽힌 곳이었다. 그래서인지 집착광 대표는 혁허세의 앞에서만큼은 꿀 먹은 벙어리 행세를 했다. 그놈의 사업 때문에 둘의 우정이 식었다는 건 누가 봐도 뻔했지만, 둘 사이에서는 경영을 위한 그 어떤 건설적인 논의도 오가지 않는 듯했다.


손쓸 수 없이 적자가 불어나서야 회사는 칼을 빼 들었다. 하지만 그 칼끝은 혁허세가 아닌 애먼 직원들을 향했다. 혁허세를 보좌하던 실무진 대부분이 하루아침에 책상을 뺐다. 물론 그가 아끼는 직원 몇 명은 여전히 남았다. 더 웃긴 건, 얼마 후 발표된 조직 개편안이었다. 나를 포함한 몇몇을 다시 혁허세의 밑으로 밀어 넣은 것이었다.


혁허세의 둥지로 가자마자 내가 목격한 건, '브랜딩'이라는 명목하에 벌어진 억 소리 나는 돈 잔치였다. 회사는 경영난이라며 허리띠를 졸라맸는데, 그는 단 한 번의 화제성을 위해 막대한 예산을 태웠다. 일정은 또 어찌나 촉박한지, 불과 2주 안에 모든 기획과 실행을 마치느라 타 부서 인원까지 강제 차출되어 갈려나갔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 마케팅을 실행한 대행사 대표마저 혁허세의 지인이었다. 기가 찼다. 회삿돈을 친구에게 쥐여주고, 회사의 '명예'를 세웠다고 자위하고 있었다. 그 많은 인력비를 줄였음에도, 결과적으로 부서의 순수익은 마이너스였다.


혁허세는 이 마이너스를 채우기 위해, 새로 맞이한 인원들을 굴릴 생각을 했다. 주 타깃은 나였다. 나는 이미 팀원으로 강등된 상태였는데, 내 위의 팀장 대신 나를 직접 불렀다. 팀장은 바쁘니, 내가 팀장의 업무 일부를 받아서 하라던가... 더 '적극적'으로 업무를 하라고 했다. 팀장과 실장, 그리고 자신은 매일 야근을 하며 고민한다고 생색을 냈다. 본인들은 뭐가 그렇게 적극적이라, 남들보다 한참은 늦게 출근해서 고작 한두 시간 더 하는 야근까지 해가면서 아이디어 하나를 내지 못했을까?


내가 무얼, 어떻게 하시길 바라는 거냐고 물었다. 그건 '알아서'하라고 했다. 선장도, 조타수도 아닌 일개 선원보고 키를 잡으라니.... 나에게서 모든 권한은 앗아간 주제에 골수만 빼먹으려 드는 것이 아닌가. 그는 이후 괜한 보고서를 만들라고 지시했다. 가져가니, 이렇게 잘하는데 왜 여태 안 했냐고 핀잔을 줬다. 그러면서도 구체적인 매출 목표나 실행 여부에 관해서는 여전히 회피했고, 앞으로 매주 이런 '회의를 위한' 기획안을 올리라고 지시할 뿐이었다.


물론 내가 가져간 보고서와 기획안들에 대해 그는 어떠한 코멘트도 없었다. 모르니까 없었다. 내가 방향성을 묻는 질문을 수십 번을 해도 답이 없었다. 그렇게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이 경영을 한답시고, 심지어 실무에까지 개입을 하고 나섰으니 매출은 점점 떨어질 수밖에 없었다.


혁허세는 나한테 '적극적이지 않다'거나 '무능력하다'는 프레임을 씌우기 위해 안달이 났다. 하지만 매번, 시킨 건 척척 해오고 논리적으로 답변하니 무논리로 대응하는 것밖에는 할 수가 없었다. 결국 그가 마지막으로 택한 카드가 '지방 발령'이었다. 뭐, 전편에 등장한 그 '망나니'의 입김도 한몫했을 거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keyword
이전 06화잡도리가 리더십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