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의 가장 큰 실수는 대기업 출신의 '망나니'를 들인 것이었다. 실제로 망나니가 휘두른 칼 때문에 목이 잘린 인원들을 합하면, 양손에 양발까지 더해도 모자랐다. 밝혀진 바는 없지만, 나도 어쩌면 그들 중 한 명일지도 모른다.
처음 망나니가 출근했을 때, 경영진들은 사내에 현수막이라도 내걸 기세였다. 이름만 대면 알 만한 대기업에 있던, 능력 있는, 정말로 "대단한 사람"이 왔다고 몇 날며칠을 떠들어 댔다. 망나니는 이 스타트업의 비전과 대표의 능력을 존경해서 직접 지원했노라 말했다. 그러면서 뒤에서는 "이 회사, 1년 후에 망할걸."이라는 말을 지껄였었다. (아직 회사는 안 망했지만.)
아무튼 망나니는 그런 위대한 능력에 걸맞은 높은 직책을 바로 달았다. 그리고는 부서원들을 꾸려 '뭔가'를 해나가기 시작했다. 그런데, 3개월 만에 장급을 포함한 부서 인원 3명이 동시에 관뒀다. 사유는 '야근 및 주말 근무 강요'. 그 뒤로는 이유도 알려지지 않은 직원들이 몇 달 상관으로 한 명씩 퇴사했다. 끊임이 없었다. 그래서 이 부서의 채용 공고가 내려가는 일은 거의 없었다.
타 부서 직원들 대부분은 망나니의 부서가 무슨 일을 하는지조차 알지 못했다. 그러나 망나니의 수족들은 계속해서 늘어만 갔다. 직원들은 그 부서가 발표할 때마다 별로 달라진 것이 없는 100장이 넘는 PT를 흥미 없이 바라볼 뿐이었다. 그런데도 대표는 말했다. "그렇게 열심히 바쁘게 일하는 부서는 없어. 인원을 더 뽑아줘야 하는데 잘 안 뽑히네."
그들이 왜 그렇게 바쁜지, 이유를 알게 된 것은 우리 부서가 망나니의 아래에 흡수 통합되면서부터였다.
기본적으로 망나니는 부정확하고 불필요한 업무 지시만 했다. 업무와 관련한 내용을 무려 '인터넷 블로그'에서 ctrl + c, ctrl + v 해서는 부서원들에게 공유했다. 그리곤 이걸 정리하라고 하든가 이걸 발전시켜서 가져오라고 한다. 무엇에 필요한지는 안 알려준다. 가져가면? 내용이 부족하니 더 찾아오라고 한다. 더. 더. 더욱, 더. 이러니 업무만 많고 결과물은 없을 수밖에. 목적이 없는 자료수집은 그저 쓰레기에 불과했다.
뭐, 블로그 글이라도 긁어오면 다행이긴 했다. 자신조차 뭘 원하는지 모르면서 지껄이는 업무 지시는 늘 1000자를 넘어가기 일쑤였다. 나는 이런 비상식적이고 비효율적인 업무 지시를 받들 만큼 착하지 못했다. 망나니가 헛소리를 지껄일 때면 곧장 논리적으로 되물었다. 망나니는 답을 못 하거나, 재량껏 하라는 말밖에는 하지 못했다. 나는 그래서 망나니의 미움을 사게 된 것이 분명했다.
망나니는 심지어 대표보다 더 출근을 안 했다. 9시 정각에 출근하는 걸 단 한 번도 본 일이 없었다. 오후에라도 나오면 다행이었다. 일주일에 겨우 한 두 번쯤 퇴근 시간에 가깝거나, 그 이후에 와서는 야근을 한답시고 앉아있었다. 미팅을 많이 한다는데, 매일, 하루 종일 한다고? 그렇다면 이미 기네스북에 이름을 올렸어야 한다.
망나니는 답지 않게 마카롱을 좋아했다. 회사에 1~2주에 꼭 한 번씩은 사들고 와서 나눠줬다. 그러나 부서원들은 그것을 끔찍이도 싫어했다. 왜냐? 그것은 당근이었고, 곧 채찍이 시작될 것임을 알리는 신호였기 때문이었다. 항상 하는 말은 같았다. "이것밖에 못 했어? 너무 일 대충 하는 거 아냐? 너무 일 적게 하는 거 아냐?"
이 회사의 사내 정치도 망나니가 처음 만들어냈다. 시작은 자신의 부서원들이었다. 자신의 말에 복종하는 멍청한 직원들과 머리가 있어 효율적으로 일하려는 직원을 나누어 차별했다. 자신의 마음에 들지 않으면 경영진들에게 험담을 했다. 일을 끊임없이 던져주며, 화장실을 가고 담배를 피우러 가는 시간까지 감시했다. 당사자들은 살려면 제 발로 나가야 했다. 아니면 가스라이팅 당한 채로 버티든가.
이런 칼춤은 망나니의 입지와 함께 다른 부서까지도 확장되었다. 모함이 난무했다. 비리를 저질렀다는 소문이 있던 직원들, 실상은 망나니의 눈밖에 나서 씌게 된 억울한 누명이었다. 망나니의 의견에 반기를 들 거나, 망나니보다 똑똑하면 잘린다! 이런 사태가 벌어진 것은 망나니의 '잡도리'를 리더십으로 착각한 경영진들 덕분이었다. 간신을 충신으로 착각한 덕분이었다.
그렇게 "리더십이 뛰어나니까."라면서 우리 부서를 망나니의 밑에 넣어버렸다. 천인공노할 짓이었다. 예를 들어, 망나니가 원래 재무 부서를 총괄한다고 해보자. 그런데 거기에 생뚱맞은 디자인 부서를 붙여놓은 격이었다. 망나니는 디자인에 대해 손톱의 때만큼도 알지 못하는 것이 당연한데, 디자인이 안 이쁘다는 식의 태클을 걸 수 있는 공식적인 자격이 주어진 것이었다. 실무진들은 망나니의 전문성 없는 지시를 따르지 않기 위한 고난도의 커뮤니케이션 능력을 터득해야만 했다.
최근에 망나니가 다녔던 대기업의 한 직원을 만나게 됐다. 세상 참 좁다. 그는 망나니가 "대단한 사람"이 맞다고 했다. 능력이 없고 어떤 심각한 비리까지 저질렀기 때문에 가차 없이 목이 잘렸었다고 했다. 아아. 불쌍한 대표는 이 사실을 꿈에도 모를 것이다. 댕강 잘려진 죄인의 목을 신으로 숭배하고 있는 줄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