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근하자마자, 점심 먹자마자, 퇴근하자마자!
하루에도 수차례 성과를 보고해야만 했다. 이유는 단순했다. "알고 싶으니까." 그에 대한 어떠한 피드백도 없으면서, 조금만 늦어지면 전화통에 불이 나게 닦달했다. 실시간으로 체크가 가능한 대시보드를 만들었음에도 대표는 직원들이 '손수' 써서 올리는 텍스트만을 고집했다.
매출을 내는 부서는 당연히 매일 아침 전날의 성과를 체크해야 했다. 이 스타트업은 '테크 기업'을 표방하면서 데이터를 자동으로 정리해 주는 시스템조차 없었다. (투자 없이 가내 수공업으로라도 만들었으나, 오차가 있고 불편하다는 이유로 경영진들이 안 봤다.) 그래서 직원들은 일일이 흩어진 매출과 광고비를 모으고, ROAS, CTR 등등... 부서마다 필요한 성과지표를 공유 시트에 수기로 입력했다. 이 업무를 맡은 팀원들은 오전 내내 여기에 시간을 할애해야 했다.
대개 신입들이 로우 데이터 입력을 담당했는데, 숫자 하나라도 틀리면 불호령이 떨어질까 봐 더 많은 시간을 들여야 했다. 그러면 또 대표나 상사가 닦달을 하고, 무서워서 또 틀리는 악순환이 반복됐다.
문제는 오후에도 틈만 나면 그 짓을 해야 했다는 거다. 오전 분량의 3분의 1 수준이더라도, 아무렴 쓸데없는 반복 작업이었다. 특별한 이벤트가 있지 않는 한 갑자기 매출이 토끼처럼 튀어 오를 일은 없었다. 그렇게 억지로 짜낸 데이터는 바로 보고되지도 않았다. 장급들의 손을 거쳐 보기 좋게 포장되는 2차 가공을 끝내고서야 대표에게 전달됐다. 그러나 그것은 그 어떤 분석에도 쓰이지 않았다. 그저 대표의 '지적 호기심'을 충족시키기 위한 제물로 바쳐지고 사라질 뿐이었다.
나중에 이 보고들은, 논술대회의 장이 돼버렸다. '왜 매출이 떨어지고 올랐는지 분석하시오.'라는 어명에 따라, 장들은 '이 마케팅은 이랬고, 시장 상황이 이랬고... 다음부터는 좀 더 철저히 분석하고 시행하겠습니다!'라는 반성문이나 자화자찬을 늘어놓았다. 으악! 나는 이토록 끔찍한 논술을 본 일이 없었다. 초등학교 백일장 수준도 안 됐다. 하지만 대표는 의미가 없더라도 성의만 가득한 긴 글을 좋아했다. 챗GPT로 요약하면 3줄로 끝날 내용을 수십 줄로 늘려 쓰는 우유부단함을 사랑했다.
보고의 의무는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출근 직후 '오늘의 할 일'을, 퇴근 시에는 '오늘의 한 일'을 보고하는 건 전 직원의 기본 소양이었다. 특히 그는 퇴근 시 보고를 6시 땡 하고 보내는 것조차 용납하지 않았다. 어떻게든 업무 시간을 늘리려고 발악하는 덕분에, 우리는 퇴근 시간마저 보고서에 저당 잡혀야 했다.
집착광은 회의까지 애정했다. 조직도를 싹 한번 갈아엎고 나면, 매일 출근하면서 '기강 잡기'를 시전했다. 이때는 끔찍한 '회의 지옥'에 빠져 살아야 했다. 오전 팀장급 이상 회의, 오후 부서별 회의, 퇴근 전 실장급 회의. 릴레이로 이어지는 회의는 한 번 들어가면 최소 1시간 이상이었다. 농담이 아니다. 이것은 실화였다.
팀별 회의야 장급의 재량에 따라 생략되기도 했다. 나도 장이었을 때는 정말 필요할 때, 짧게 끝내서 30분을 넘지 않도록 했다. 그러나 이것조차 야근처럼 '보여주기식의 능력'으로 사용하는 장들에게는 얄짤없었다. 필요 없는 논의와 수다로 흘러가는 시간이 나에게는 고역이었다. 대체 일은 언제 하라고. 나는 또 회의에서 "빨리 안건 끝내고 업무 하러 가면 안 될까요?"라며 산통을 깨는 악역을 자처해야 했다.
집착광은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어느 날은 모 대기업을 흉내 내겠다며, 특정 부서 인원을 왕창 늘리기도 했다. 사람이 늘어났으면 관리 시스템을 갖춰야 하는데, 그 많은 인원을 앉혀놓고 똑같은 팀만 늘려서 '수기 보고'와 '릴레이 회의'를 시켰다. 생산량이 0인 일에 몇 배를 곱한다 한들 의미가 있을까?
1년 후에야 그가 말했다. "(특정 부서) 사람이 너무 많은 것 같단 말이야. 업무량에 비해서." 이 딜레마 속에서 그의 해결은 기이했다. 바로 보고와 회의의 강도를 높인 것이었다. 그리고 묘하게도 그것에 만족했다. 직원들이 그놈의 어명을 받드느라 정작 수라상은 차려내지 못한다는 사실조차 모른 채. 그 탓에 회사의 곳간이 텅 비어 가고 있다는 것도 모른 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