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잉킴 Apr 27. 2024

어머님 저 왔어요.

재결합 수습 시댁 친정 방문기. 

4년 만에 두 번째 양가 방문을 했다.

뼈 아픈 재결합 이후 4년 전 보다 더 무거운 마음으로 기차를 타고 비행기를 타고 다시 천천히 절차를 밞아 보고자 했다.

네 마음이 편하려면 가서 사과도 하고 걱정 끼쳐 죄송하다고 하는 게 맞다고, 다들 겪어본 결혼이라 이해할 거라는 엄마의 조언이 있었다.

갈팡질팡하고 불만이 쌓여갈 때 늘 이렇게 친정엄마는 용기와 걸맞은 처사를 조언해 준다.

일주일 미리 남편은 프랑스로 건너갔다. 라마단 끝물에 가족들과 함께 있고 싶기도 했을 거고 나도 혼자 있고 싶기도 했다. 일주일 동안 조용한 마을에 혼자 있기가 생각보다 지루했다. 오랜만에 온전히 혼자 있으니 뭐라도 생산적으로 하고 싶었지만 게으름은 게으름을 부르고 바쁨은 능률을 올린다더니 그저 비슷한 시간을 보내고 말았다. 적어도 연락의 빈도로 시비를 걸거나 싸우지는 말자고 다짐 또 다짐.


올해부터 키우기 시작한 식물들 물을 잔뜩 주는 데만 한 시간이 걸렸고, 내 계획과는 다르게 부랴부랴 집을 나왔다. 막상 파리에 도착해서 남편얼굴을 보니 또 왜 이렇게 반가운 걸까.

고작 일주일 동안 못한 말들을 털어내고 캐리어를 들고 다니며 시댁에 가지고 들어갈 선물 꾸러미들을 샀다.

확실히 파리는 예쁘구나.


남편말로는 지난 5개월 동안 시댁 식구들이 내가 불편할까 봐 전화도 편하게 하지 못했다고 했다.

뭐 그건 우리 식구도 마찬가지긴 한데 모든 사람의 입장까지 살피기엔 내 멘털이 충분히 안정되진 않았었다. 전화를 워낙에 많이 하는 식구라 그 시간이 오히려 편하기도 했지만 그 차가운 공기를 언젠가는 깨트려야 했고 그 시간이 왔다.


남편의 동생이 방을 깔끔히 청소해 놓고 맞이해 줬다.

그냥 겪은 시간은 아니었는지 그래도 말도 더 많이 걸어보고 아주 조금 더 편하긴 했다.

어머님은 퇴근시간이 늦어 아홉 시가 넘어오셨다. 어떻게 언제 죄송하단 말을 적절히 건넬지 타이밍만 보다가 그렇게 첫날밤이 저물어버리고 말았다.


어머님은 웃음으로 사람 마음을 녹이는 기운이 있으시다. 

다음날에도 혼자 잔뜩 긴장하고 타이밍을 보는데 문득 분위기가 내가 나서서 무슨 말을 하는 게 더 불편하시진 않을지 괜히 분위기 무겁게 만드는 게 아닌가 싶었다. 어쩌지.

남편도 진작에 '우린 쿨해. 그냥 평소처럼 맞이해 줄걸? ㅋㅋ'라고 사과해 볼 테면 해봐라는 식으로 말하긴 했었는데 셋째 날부터는 그냥 나도 그 무드에 잘 묻어가기로 했다.

금요일 오전엔 파리에 사는 오래된 친구도 만났다. 친척, 친구들 만나서 유창하지 않은 불어 잘하는 척하고 잘 알아듣는 척하느라 기가 상당히 빨려있었는데 오랜만에 한국 친구 만나서 자유롭게 다니니 이 친구마저 새로 보이기까지 하고 한줄기 소중한 인맥임을 다시 한번 깨달았다.


그리고 남편과의 데이트도 했다. 늘 파리의 다양한 행사들을 보여주고 싶어 하고 활기찬 도시를 보여주고 싶어 했지만 여전히 가던 식당을 가고 가던 거리를 걸었다. 근데 나는 그런 데이트가 제일 좋긴 하다.


시댁식구들을 볼때마다 참 사람들이 유쾌하고 순수하다고 느낀다.

흑인 특유의 쾌활함, 당당함, 유머러스, 부끄럼 없음, 밝은 에너지가 사람사는 냄새 물씬 풍겼다.

한참 어렸을적에나 느꼈던 북적북적한 그 집과 그 가족 냄새. 지금은 비록 서로 예의도 심하게 차리고 은근 경쟁심도 있어 많이 사라진 그런 분위기.

딱히 누가 불편하게 하는 사람은 없지만 왜 이렇게 힘들고 기가 빨리는지 어서 한국으로 가고 싶기만 했다.

일요일 아침 짐을 챙기고 거실에 앉아있는데 나도 모르게 잠이 들었다. 어머님이 웃으시며 쉽지 않지?라고 연민이 섞인 웃음과 걱정을 해주셨고 어서 나가고 싶어서 아침도 안 먹고 나왔다.


내 경험도 그랬는데 남편도 이 말을 한 적이 있었다. 모두 외가는 편하고 즐거운데 친가는 날 서있고 불편하다고. 어느 나라나 어느 문화나 엄마, 와이프가 편해야 하는 거구나. 어머님도 어머님 형제자매, 할머니와 둘러싸여 도란도란 지내고, 시누이들도 어머님과 아이들 보면서 꽁냥꽁냥 잘 지내고 그 주변에 남편들은 핸드폰 보며 본인만의 에너지를 충전하는 그림이 어느 집이나 마찬가지구나 싶었다. 그리고 또 한 가지, 딸 가진 마음과 아들 가진 마음이 다른 것 같다. 딸이 시집가면 부족할까 봐 뭐라도 더 해주고 싶어 하고 아들이 장가를 가면 빠르게 변하는 시대에 독립해야 하는 부모님들은 상대적으로 아들에게 의존을 많이 하긴 하는 것 같다. 성차별적인 생각 일 수도 있지만 그렇게 상황이 흘러갔다.


체크인을 하고 드디어 비행기에 탑승했다. 드디어 나도 남편과 함께 우리 언니 동생, 우리 부모님에게 둘러싸여볼 수 있겠구나. 뭔가 씁쓸한 마음이 더 컸다.



작가의 이전글 네가 이해 안 되지만 부럽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