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윤지호 May 29. 2024

헤어짐과 만남

미서부 여행 3일차


 오늘은 늦잠을 잤다. 어김없이 집에서 하던대로 6시 알람을 듣자마자 꺼버린 후 다시 잠들었다. 단순히 잠에 든 것이었다면 문제가 생겼겠지만, 일찍 일어나야한다는 강박에 제대로 잠을 자지 못했다. 고답로 7시에 눈이 떠졌다. 어젯밤에 씻었기 때문에 과감히 샤워는 포기했다. 다시 시도했다가 차가운 물이 나오면 너무나 억울할 것 같았다. 오늘은 호텔에서 묵으니 조금은 견딜 수 있다. 간단한 세안만 하고서 다시 침대로 돌아왔다. 오늘은 어디로 나갈지 이미 정해놓아서 고민하는 시간은 길지 않았다. 곧바로 바깥 온도를 체크하고 긴바지와 챙겨온 후리스를 챙겨입었다. 밖에 나간 김에 필름 카메라를 좀 사용해보려고 주머니에 지갑, 카메라, 핸드폰만 챙겼다. 그러고서 나가려고 하니 문득 하나가 빠졌음을 눈치챘다. 바로 공동현관 키. 나갈 때는 문제 없지만 들어올 때 다른 사람이 문 열고 들어갈 때 까지 기다려야 할 수도 있었다. 조용히 갔다오고 싶어 소파에서 자고 있던 형을 깨우진 않았다. 어제 키가 있던 책상 위는 깔끔했다. 


 키가 없어 나갈 수 없게 되자 그대로 침대로 들어갔다. 무기력하게 드러누워 그럼 그렇지 싶어 핸드폰을 만지작거렸다. 시각은 아침 8시 반, 한국은 밤 12시라 다른 사람들의 일과가 끝났을 무렵이었다. 인스타 스토리를 넘기고 유튜브를 하염없이 돌려보며 생각에 잠겼다. 키가 이 방 어딘가에 있을 거라고 생각하면 찾아내는건 해볼만한 일이었다. 어제 책생 위에 올려둔 건 나를 배려해서 올려둔 것이므로 원래 놔두던 위치가 있을 것이라 예상했다. 그래서 서랍과 컴퓨터와 책 사이를 구석구석 확인했다. 그러나 보기좋게 빗나가 허탕만 치고 말았다. 다시 고민하느라 시간이 지나갔다. 그러던 중 형의 옷이 의자에 걸려 있는 것을 보았다. 곧바로 주머니를 확인해보았는데 여기 없었다. 키는 찾을 수 없었지만 정답에 근접했음을 직감했다. 시간이 흐르자 형의 가방이 생각났다. 나와 밖에 나갈 때 메고 나가던 작은 숄더백이 생각났다. 책상 위에는 나갈 때 집어 넣었던 물품이 하나도 올려져 있지 않았다. 그렇다면 그 가방 안에 각종 중요한 물건들이 있을 것이었다. 자고 있을 때 가방을 뒤진다는 건 께름칙한 행위이긴 했지만 필요한 키만 챙길 것이라는 나는 떳떳하다 생각하여 확인해보았다. 역시 키가 있었고 그것만 챙겨서 곧바로 나갔다. 거실을 통해 나갈 때 형은 부스럭 거리는 소리에 살짝 깨긴 했지만 갔다오라고 잠결에 배웅해주었다.


 LA 국립묘지의 입구는 단 한 군데에 있었다. 어제는 입구로 가는 길이 도로 바로 옆에 있어서 차를 타고 가야만 할 줄 알았다. 그러나 자세히 보니 인도가 있어 길을 잘 찾아서 갈 수 있었다. 가는 길에 형에게 배운 미국의 신호등 사용법을 잘 실천했다. 신호등에 버튼이 달려 있어 누르고 기다려야 한다. 누르지 않았다면 아무리 기다려도 신호는 바뀌지 않는다. 가끔은 너무 오래 기다려 내가 누른 건지 안 누른건지 헷갈리는 경우도 빈번했다. 그럴 때는 속 시원할 때까지 연타한 후 다시 기다렸다. 가는 길에 신호등이 많지 않아서 사용할 일은 많지 않았다. 그래도 내가 직접 누른 후 바뀌니 속 시원하긴 했다. 



  묘지라 해도 우리나라 현충원같은 느낌이다. 사실 현충원은 가본적 없다. 그래도 어떤 의미로 국립 묘지가 있는지 충분히 느꼈다. 들어섰을 때 나를 제외한 방문객은 아무도 없었다. 경비원 둘과 잔디를 깎는 직원 여럿만 드문드문 돌아다녔다. 묘지는 거대한 공원처럼 생겨 가보고 싶게 느껴졌다. 한국에서 묘지라 하면 으스스한 이미지이다. 적어도 공동묘지라면 미국에서도 동일하겠지만, 국립묘지는 의미를 가지고 설계되고 만들어졌다. 희생해준, 희생당한 사람을 위한 거대한 장소는 그 자체로 숙연할 수 있도록 돕는다. 벗겨진 땅 위에 늘어진 작은 묘비를 보면서 여기서 위로받은 수많은 영혼을 흘려보냈다. 각기 다른 이름과 다른 종교, 다른 시기, 고유한 한 마디를 남기고 떠나간 이들에게 잠시나마 추모하고 나왔다. 불규칙하게 놓여있는 거대한 나무들은 묘지가 아니라 공원이 아닌가 하는 착각마저 하도록 만든다. 묘비를 발판삼아 날아다니는 각종 새는 누구를 위해 노래하는지 모를 선율을 지저귄다. 백 중 하나는 작은 꽃 다발 받았다. 시간이 지나자 커다란 SUV가 지나가다가 스윽 멈춰섰다. 그 안에서 검은 천 옷을 입은 젊은 여자와 어린 여자아이가 내렸다. 어른과 아이는 무엇을 하는지 몰라도 귀찮은 내색 없이 할 일을 했다. 내가 충분히 둘러보고 나갈 동안 그 둘은 다시 차에 탄 후 입구를 빠져나갔다.



  묘지를 둘러보고 11시까지는 들어가야겠다 계획을 세워둔 터였다. D.K.와 형은 주로 늦게 자서 11시에 일어난다고 들었기 때문이었다. 묘지부터 숙소까지 걸어서 20분 정도 되었는데, 마침 10시 30분에 형으로부터 연락이 왔다. “어디야?” 나는 묘지로 산책왔고 11시 쯤 들어간다고 보냈다. 연락이 온 김에 돌아갈 타이밍이 잡힌 것 같아 수곳로 돌아갔다. 혹시 늦을까 조금씩 뜀박질을 섞어 아슬아슬하게 11시가 되기 전 숙소에 도착했다. 오늘은 딱히 무엇을 할지 정해둔 건 아니라서 형과 함께 일정을 상의해야 했다. 시간이 11시라서 슬슬 점심을 타이밍이었다. 아침을 안먹으니 이른 아침도 괜찮았다. 무엇을 먹을까 고민하던 중 D.K.의 제안으로 라멘을 먹기로 했다. 미국에서 일식, 한식, 중식은 상당히 인기가 있다고 한다. 미국에서 먹는 외국의 음식은 어떨지 궁금해 먹으러 가자는 제안을 받아들였다. 차로 10분이면 되는 거리에 일식과 한식 집이 쭉 늘어져 있었다. 그 중 아무 라멘집을 골라 들어갔다. 나중에 들었는데 대부분의 라멘집이 같은 사장님의 가게라고 한다. 


 형은 국물이 자작한 것으로 나는 일반적인 라멘을 하나 시켰다. 맵기는 1-10 중에서 고를 수 있었다. 형은 신라면을 매워서 못먹는데 2는 적당하고 3은 맵다는 말을 듣고서 맵기 3을 선택했다. 음식이 나올동안 형과 대화를 나눴다. 한국 왔을 때 무슨 음식을 먹었냐 물으니 간장게장과 산낙지, 각종 수산물을 먹었다고 한다. 그걸 듣고 광장시장에서 파는 육회탕탕이가 생각났다. 비록 가격과 양이 양심이 없더라 할지라도 맛 하나만은 있었으니까 권해주고 싶었다. 그러나 형은 날 것 두 종류가 한 접시에 놓인다는 사실이 적잖이 충격이었던 모양이다. 반응을 보니 꼭 먹여주고 싶었다. 나중에 한국 오면 내가 먹여주겠다고 답했다. 음식이 나오고 먹어보니 한국과 간은 별 차이가 없었다. 사실 한국이나 일본이나 미국이나 라멘 맛은 비슷하다고 생각된다. 형은 맵기 2에 만족하면서 먹고 있었지만 나는 맵기 3을 시킨 걸 후회하고 있었다. 예상보다 훨씬 덜매워서 맵기 4나 5는 어땠을까 생각했다. 


 식사를 마치고 숙소로 돌아왔다. 이제 UCLA를 둘러볼 차례였다. 형이 다니는 대학교인 UCLA(University of California, Los Angeles는 꽤나 명문대학이라고 한다. 미국에 있는 대학 중 어느 대학이 좋은지 내가 관심이 있어야 말이지 그래도 대학 자체는 통일단 건축 양식과 색감으로 이쁘게 지어졌다. 한국에서는 한양대와 비슷한 느낌이 들었지만 채도가 그보다 낮고 황토빛이 돌아 훨씬 차분했다. 점심시간이라 사람이 물밀듯 쏙다지고 있었다. 학교로 들어가는 무리와 학교를 나오는 무리가 엇갈려 길거리가 가득찼다. 의대, 공대, 자연대, 음대, 경영대 등 입구부터 동아리 소개를 하는 부스를 지나치며 쭉 걸었다. 서울대와 비교해보자면 앉아있을만한 공간도 훨씬 많았고 그곳에 사람이 앉아 있어 여유로운 분위기가 풍겼다. 대학 안으로 차가 다니지 않는다는 점 또한 부럽게 느껴졌다. 서울대는 학교가 크고 다니기 어렵다는 이유로 버스와 차가 다니니 단과대별로 나뉜 것처럼 느껴진다. 다른 대학에서는 딱히 나타나지 않는 단점인듯 하다. 



 한 바퀴를 쭉 돌아 커다란 미식축구 경기장을 지나니 어느덧 한 바퀴를 돌았다. 형은 UCLA가 대학 중 상당히 작은 편이라고 계속해서 언급했다. 곧 가게 될 UCR(University of California, Riverside) - G군이 교환학생을 가있으며 첫째 사촌형이 다니는 대학 - 은 훨씬 크니 거기가 더 낫다고 했다. G군은 이 발언을 듣고 그리 달가워하지 않았다. UCLA랑 UCR을 비교하면 UCLA가 좋다는 걸 세상 사람들이 다 아는데 뻔히 그런 말을 했다고. 어쨌든 한 바퀴를 돌 때 쯤 주차장으로 들어가고 있던 D.K.를 형이 발견해서 인사했다. 그는 졸업사진에 필요한 여러 물품을 대여해서 숙소로 가져가고 있던 중이었다. 형에게 사람이 이렇게 많은데 그를 어떻게 알아봤냐고 하니 "대충 옷 잘 입고 비율 좋고 저렇게 걷는 사람은 D.K."라고 답해주었다. 학교 안에서 볼 수 있는 패션은 다양하지 않았다. 날씨가 더워서 그럴 수도 있지만 그걸 감안해도 츄리닝 바지나 반바지, 레깅스에 대부분 반팔이나 탱크탑을 걸쳤다. 꽤 쌀쌀하다고 느꼈으나 미국인에게는 버틸만한 것 같았다. 그 와중에 D.K.는 힙한 한국인 패션으로 다니니 눈에 띌 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 걸음걸이는 나도 자주 생각하는 바였다. 특별하지 않아도 걸음거리는 사람마다 미묘한 차이를 준다. 심하면 걸음걸이만 보고도 누구인지 알아볼 수 있겠지만, 대부분은 누구누구이지 않을까 하는 심증으로 보다보면 걸음걸이에서 확신을 얻곤 했다. 


 학교를 다 둘러보고 나서는 기념품샵에서 살만한 옷이 있는지 둘러보았다. 산타모니카에서 옷을 사지 못했던 이유 중 하나는 미국의 옷 기장감과 핏감이 취향과 많이 멀었던 탓이다. 상의는 밑단이 허벅지 중간까지 오며 바지는 딱 달라붙어 부담스럼게 느껴진다. 차라리 잠옷으로 챙겨간 바지가 훨씬 나아보일 정도였으니 말 다했다. 옷은 포기하고 다른 기념품을 둘러보다가 UCLA 이름이 크게 써진 열쇠고리를 하나 구입했다. 계산을 하러 가니 점원 한명이 혼자서 상품을 계산하고 있었다. 형은 이 상황을 보며 점원이 한 명 쉬러 갔다는 사실을 눈치챘다. 예전에 기념품샵에서 아르바이트를 한 적이 있어 원래 두 명이 있고 주기적으로 한 명씩 쉬러간다는 걸 알고 있었다. 앞 사람이 옷을 무더기째로 들고 온 탓에 꽤 기다려서 내 차례가 올 수 있었다. 다시 숙소로 돌아가면서 미국의 아르바이트는 어떤지 물어보았다. 우리나라처럼 다양한 법적 권리가 있어서 몇 시간을 통째로 일할 수없고  하는 등의 원칙을 지키며 일했다고 한다. 나의 경우 법적 고용주가 따로 없이 항상 과외만 해서 한국과 정확한 차이를 인지할 순 없었다. 형은 학벌이 좋은 편인데 왜 과외를 안하는지 물었다. 자기는 가르치는 건 적성에 안맞는 것 같다고 밝혔다. 열심히 해도 실력이 잘 안늘면 힘들고, 애초에 열심히 안하고 엄마가 시키니까 하는 애들 가르치는 것도 힌들어서 하기 싫다고 한다. 그건 나도 같은 입장인데 서비스직 아르바이트가 더 힘들지 않은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형은 몸이 힘든 쪽을 선호했다.


 숙소로 돌아와서 공항으로 떠날 채비를 했다. 고모에게 부탁을 받아 형에게 건네주었던 캐리어는 더이상 챙길 필요가 없었다. 짐이 절반으로 줄은 셈이었다. 한 가지 문제가 있었는데 부모님이 혹시 몰라 챙겨주셨던 얇은 이불 하나가 캐리어에 간신히 들어갔던 것이다. 엄마는 그냥 숙소에 두고와도 되니까 챙기지 말라고 했다. 그러나 이 아깝고 따듯한 이불을 어떻게 놓고 갈 수 있겠는가! 그래서 캐리어에 쑤셔서 챙겼다. 그 덕에 널널하던 가방에도 다른 옷가지를 잔뜩 넣어야 했다. 엉성하지만 빠진 물건 없이 짐을 다 싸고서 대기했다. 잠시였지만 같이 지내준 이들에게 무척이나 감사했다. 아쉽게 이들에게 감사 인사를 전할 타이밍과 방법이 딱히 없었다. 그저 형을 통해 잠깐이지만 잘 지냈다고 전해달라 말할 뿐이었다. 형은 룸메의 지인이 숙소에 머물다 가는 일은 무척이나 흔한 일이니 너무 신경쓰지 말라 했다. 나보다 훨씬 시끄럽고 외향적인 친구들이 한가득 달려와서 놀고 가기도 한댄다.


 형이 불러준 마지막 우버를 타고 공항으로 갔다. 형은 부른 우버가 맞는지 확인하고서는 내가 영어에 능숙하지 않다는 걸 우버기사에게 알렸다. 간단한 대화는 가능하지만 그리 잘하지는 않는다고. 내심 걱정했는데 말해줘서 다행이었다. 가는 길에 몇 마디 대화를 나누었는데, 어디서 왔는지나 자신도 서울에 갔다온 적이 있다거나 영어도 하다보면 늘게 된다는 말 정도였다. 적절히 조용한 상태를 유지하면서 무사히 도착했다. 공항에서 직원에게 국내선을 타려면 어디로 가야하는지 대충 물은 후 짐검사를 하는 방향을 안내받았다. 이 상황에서 한 가지 걱정되는 점이 있었는데, 바로 가방에 챙겨둔 팩소주였다. G군의 부탁을 받고 챙겨왔는데 수화물 검사에서 걸리진 않을까 걱정되었다. 국내선을 탈 때는 캐리어를 수화물로 부쳐 무사히 넘어갔는데, 이번에는 비용을 아끼기 위해 캐리어를 들고 타기로 했다. 그러니 만약 문제가 된다면 뺏기게 될 수밖에 없었다. 역시나는 역시나였다. 팩소주는 액체 반입 기준에 부합하지 않는다 하여 버려졌다. 숙소에서 혹시나 해서 알아봤을 때는 국내선에 유한 기준이 적용된다고 보았는데 기내수화물 기준이 아니었다. 기내는 국제나 국내나 200mL라고 한다. 다행히 팩소주 5팩 중 3팩은 거기에 숙소에 선물하고 와서 모조리 뺏기진 않았다.


 짐검사를 마치고 비행기를 기다렸다. 유튜블르 보면서 기다렸는데 당시 흥미있던 분야는 진화생물학이었다. 생물학을 먹여살릴 최고의 주제가 바로 진화 아닐까 싶었다. 진화라는 키워드가 너무 만능이라 어딜 가져다 붙여도 상관 없을 정도다. 그래도 근본 진화는 화석과 함께 가계보를 그려보는 생물학이다. 흥미로운 유튜브를 보면서 이륙 시각이 언제인지 게이트 근처 모니터를 보았다. 그러니 내가 알고 있던 시간과 차이가 있어 깜짝 놀랐다. 알고보니 40분이 지연되었던 것이다. 그리고 알래스카 항공은 따로 표를 뽑지 않고 탑승한다. 게이트 앞에 있는 직원이 탑승 1시간 전 쯤부터 예약자 이름을 부르고 그제서야 티켓을 나눠준다. 좌석을 미리 지정하는 것은 추가 요금이 발생한다고 알고 있다. 그렇게 익숙하지 않은 영어로 내 이름이 불릴 때까지 긴장을 놓을 수 없었다. 그러나 나는 어디서나 잠에 잘 드는 성격이라 곧바로 잠에 들고 말았다. 왼손에는 혹시 도난당할까봐 캐리어를 꼭 쥐고 있었고, 오른손에는 보고 있던 진화생물학이 틀어진 채로 말이다. 그렇게 1시간 정도 지난 후 무어라 시끄럽게 안내 방송이 울리는 것에 깼다. 곧 이름을 호출할테니 잘 들어라는 안내였다. 10분 정도 기다리니 첫 번째 호출 그룹에 내 이름이 섞여 불렸다. 여권을 들고가 보여주니 내 이름을 화면에서 한참을 찾더니 확인하고서 티켓을 출력해주었다. 



 지연된 출발시각은 다시 앞당겨져 예상보다 일찍, 사실 제시간에 출발하게 되었다. 내 옆에는 살집이 있는 백인 남자가 앉았는데 덩치가 상당히 커 혹시 불편하지 않을지 걱정되었다. 다행히 그런 걱정 싹 날아갈 수 있는 '잠들기'에 대한 재능이 발현되어 2시간 동안 편히 잠들었다. 혹시나 할게 없을까봐 하스스톤 영상을 받아갔지만 끝까지 보지도 못했다. 그렇게 라스베가스 근처에 오자 사막과 실타래같던 도로만 보였다. 캐니언에 가면 곧 볼 수 있을 커다란 바위 언덕이 미니어쳐마냥 놓인 모습은 비행기에서만 볼 수 있는 광경이었다. 이 모습이 30분 째 펼쳐지던 중 어느새 사막 한 가운데 빼곡한 건물이 들어서기 시작했다. 어느덧 해가 지고 있어 건물에서는 햇빛을 반사해 눈에 집어넣었다. 비행기는 도시를 가로지른 후 크게 돌더니 점차 고도를 낮춰 공항에 착륙했다. 다시 한번 극악의 비행기 사고가 일어나지 않았음에 감사하며 라스베이게스에 도착할 수 있었다.


 공항을 나와 G군과 연락했다. G군은 리버사이드에서 버스를 타고 나보다 일찍 도착한 상태였다. 버스 하차 지점과 내가 위치한 공항의 터미널은 꽤 차이가 나 G군이 와주기로 했다. 건물의 층수가 유럽식인지 미국식인지 헷갈려 어디가 1층이고 3층인지 헷갈려 화가 날 때 쯤이 되어서 드디어 만나게 되었다. G는 작년 9월에 교환학생으로 떠나게 되었으니 직접 얼굴 본지 벌써 8개월째였다. 오랜만에 만나니 출국 당시 멀끔했던 모습과 달리 후덕해진 모습에 두 눈을 의심했다. 반대로 G군은 나를 보고서 길어진 머리와 까매진 얼굴에 많이 상했다 느꼈다. 그렇게 서로 만나자마자 알고 있던 모습과 크게 달라져 놀라고 말았다. 나는 오랜만에 만난 친구에게 농담을 건넸지만 G는 예전 같지 않은 것 같다며 솔직하게 털어놓았다. 내 생각에 그렇다고 느꼈는데 바로 말하는 건 예전 같은 것과 다를 바 없다고 말했다. G는 반신반의했지만 우선 호텔로 가는 일을 서두르기로 했다. 호테롤 가는 버스가 한 대 있었는데 아까와 같이 버스 정류장이 도대체 몇 층에 있는건지 찾을 수 없어 결국 놓치고 말았다. 이제 버스는 30분 뒤에야 오게 생겼다. 하는 수 없이 우버를 타기로 했다가 공항 앞에 늘어진 택시를 보고 이것으로 하자는 제안이 나왔다. 우버와 택시는 엄연히 다르다. 택시는 개인 사업자 같은거라 우리나라의 옛날 야생 택시라고 생각하면 된다. 우리는 택시는 탔다가 순식간에 장기 다 털리고 가죽만 남을 수도 있는 가능성을 떠올렸다. 그래도 설마 그런 일이 흔하겠나 하고 택시를 타기로 했다. 택시 안에서 뻔히 담배를 피우는 몇 대를 지나쳐 택시 탑승장에서 안내를 받았다. 목적지인 '플라밍고 호텔'을 말하니 알겠다 하고 근처에 있는 택시로 안내했다. 짐을 실은 후 플라밍고 호텔로 간다 기사에게 전달하니 30달러를 받겠다 했다. 일단 알겠다하고 출발한 후 G가 우버 가격을 확인해보았다. 우버는 25달러로 무려 5달러나 저렴했다. 낙장불입일 뿐이다. 분한 마음에 G는 내릴 때 팁은 주지 않고 내렸다. 뒷좌석에 달린 모니터를 통해 팁을 직접 입력할 수 있는데 'Custom'탭에서 0%를 입력했다. 여기에 나는 무언으로 동의했다.


호텔에 내리자 대마 냄새가 코를 찔렀다. 입구에서부터 좋지 않은 냄새가 나 걱정되었다. 괜히 여기로 잡은 게 아닐지 걱정되었다. 숙소 예약은 내 담당이라서 안 좋은 곳으로 예약한 건 아닐지 계속 걱정하고 있었다. 안쪽으로 쭉 들어가니 체크인하는 카운터가 있었다. 줄을 서고 기다리면서 상당히 애를 방치하고 키우는 백인 부부를 보고 화를 참아야 했다. 내가 제일 싫어하는게 말썽피우는 자식 내버려두는 부모이다. 아이는 잘못없다는 입장이지만, 부모는 최소한 아이를 제압하던가 타일러야 할텐데 부모의 책임을 다하지 않는 이들이 밉다. 쨋든 카운터에서 여권을 보여주고 체크인을 마친 후 숙소로 갔다. 숙소는 2인 침대에 소파 하나와 구식 TV가 놓여져 있었다. 천장에 형광등이 없고 구석에 있는 전등 몇 개가 밝기를 대신하고 있었다. 짐을 다 푼 후 G와 앞으로 무엇을 할지 논했다. 저녁을 먹기에 늦은 시간이지만 지금이 아니면 방 밖으로 나갈 수 없을 것 같았다. 우리 둘은 고등학교 시절 룸메이트를 했었기 때문에 둘이 같은 방에 있으면 어떤 일이 있을지 뻔히 알았다. 서로를 재촉해서 나가는 일은 쉽지 않다. 기회가 왔을 때 밥먹으로 나가는 것이 적절했다. 그렇게 라스베이가스의 밤을 맞이하러 밖으로 나갔다.



 키를 챙기고 1층으로 나오니 대마 냄새의 근원을 찾은 것 같았다. 호텔 안으로 조성된 작은 공원에서 대마 향이 어느때보다 세게 풍겼다. 그곳을 무시하고 바르게 지나쳤다. 식당을 찾던 중 아무데나 열린 곳으로 갈까 하다가 G가 지도에서 음식점을 하나 찾았다. 그곳으로 가서 간단하게 고기 하나와 튀김 하나를 시켰다. 위스키 베이스 칵테일 하나와 레모네이드 하나를 마실 것으로 시켰다. 먹으면서 이런 저런 근황 이야기를 나눴다. 마침 G군의 동생에게 과외를 해주고 미국으로 왔었는데, 그 당시에 시험 결과가 나왔다. 당일 과외이긴 했지만 선생으로서 자격을 시험받는다고 생각하니 긴장되었다. 결과는 적절했다. 너무 못하지도 않았지만 생색낼 정도로 잘 한것도 아니었다. 그래도 결과가 잘 나오지 않아 아쉬웠을 뿐이다. 그 외에도 다양한 근황이야기나 개인적인 이야기를 나눴다. G와는 사이가 가장 가까운 편이라 나눈 대화의 상당수를 밝힐 수 없다. 그래도 쓰자면 썼겠지만 아쉽게도 기억나질 않는다. G와 나는 소심하면서도 기분이 훽훽 바뀌어버리는 성격파탄자라는 공통점이 있다. 자격지심 덩어리라던가 하는 등의 서로의 성격이 맞물려 당시 하는 대화는 오로지 당시의 기분에 매몰되어 있었다. 그러니 지금와서 기억하래야 할 수 없는게 당연하다. 그러니 아쉽게도 그 외 평범한 주제만 생각날 수 밖에 없다. 


 계속 이야기 하다보니 서로 보면 웃음이 터질 정도까지 피곤해졌다. 이때쯤에 G에게 물어봤다. "아직도 내가 어색해?"하니 "아니 전혀, 내가 단단히 착각했다."며 정정했다. 곧바로 식당 입구에서 버스킹하던 가수가 <Hotle California>를 부르기 시작했다. 이 곡은 재작년 대학에 입학하고서 처음 들은 교양수업에서 배웠던 곡이다. 이를 배우자마자 G에게 보고했더니 무척 유명한 곡이라면서 흥얼거렸던 기억이 있다. 이번에도 서로 눈이 마주치고 노래를 흥얼거렸다. 늦은 식사를 마치고 호텔로 돌아갔다. 호텔 안에 있던 카지노에서 G군이 빌려준 20달러를 그대로 날려버렸다. 돌아와서는 낡아빠진 TV를 돌려보면서 어디 볼만한 거 없나 뒤적거렸다. 그러면서 고등학교 시절이 생각난다며 추억을 되새겼다. 이런 쓰잘데기 없는 이야기를 하면서 시간을 보내다 어느덧 새벽이 되었다. 내일 아침은 투어에 합류해야 해서 아침 일찍 일어나야 했다. 이만 아쉬움을 뒤로하고 같은 침대에서 잠에 들었다. 누운 채로도 한참을 대화하다 잠들었다. 역시나 대화는 기억나질 않는다. 완전히 잠들기 전, 간신히 몸을 일으켜 새벽에 혹시 못일어날까봐 기존의 아침 6시 알람을 조금 앞 시간대로 옮겼다. 핸드폰은 충전기에 꽂아둔 후 안심하고 곧바로 잠들었다. G와의 재회는 멀어진 친구가 하루만에 예전처럼 돌아갈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미국여행 3/12 진행.




이전 04화 계획은 고치라고 있는거겠죠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