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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지호 May 30. 2024

여길 직접 운전했으면 죽었겠지

미서부 여행 4일차

 알람을 듣고 일찍 일어났다. G와 내 알람이 번걸아 울렸으나 서로의 대처는 달랐다. G는 알람을 듣고 곧바로 잠이 깨버린다. 그 상태로 계속 누워있는다. 이전에 곤히 자고 있던 상태와는 다르게 미세한 자극에도 쉽게 반응하게 된다. 따라서 알람을 30분 간격으로 맞춰놓은 후 더이상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으면 안되는 상황까지 왔을 때 일어나 재빠르게 준비를 마친다. 나는 시간을 적절히 맞춰 알람을 단 한개만 맞춰 놓는다. 중요한 일이 있으면 애초에 잠을 깊게 자질 않고 알람이 들리면 곧바로 깬다. 그 상태로 일어나 부스럭 거리면서 준비를 시작한다. 가끔 정말 피곤하면 알람을 못 듣는 경우도 있다. 두 사람의 상이한 대처는 시간 약속을 아슬아슬하게 지킬 수 있게 해주는 원리이다. 이번에도 본인의 알람을 듣고 먼저 일어난 G가 곧바로 알람을 껐다. 나는 소리를 들었지만 내 알람이 아니라 다시 잠들었다. 곧이어 내 알람이 울리자 벌떡 일어나 충전기에 연결된 핸드폰을 잡았다. 알람이 5시에 울리면 5시 1분에 무작위 노래가 재생되도록 설정해놓아서 1분간은 핸드폰을 지켜보아야 했다. 그렇게 1분 뒤 무작위 노래가 켜지자 마자 일시정지 시켰다.


 아직 G가 자고 있어 불은 키지 못한 채로 짐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펼쳐진 캐리어에서 오늘 입을 옷과 속옷가지를 대충 정리하고 곧바로 씻었다. 어제 하루종일 씻지 못한 탓에 상당히 찝찝했다. 일찍 일어날 수 있었던 원동력은 이번에는 꼭 씻어야 한다는 다짐을 했기 때문이었다. 화장실에 어메니티가 잘 제공되어 있어서 양치도구만 딸랑 들고 들어갔다. 샤워기를 보니 구조는 사촌형의 숙소와 다를바 없었다. 레버를 돌리면 차가운 물 혹은 따듯한 물이 나오는 구조이다. 무르이 세기 조절 따위는 없었다. 이제는 익숙해진 샤워기를 능숙하게 다뤄 열탕을 뽑아냈다. 머리에 달라붙었던 온갖 먼지와 때가 증기에 쪄져 씻겨 나왔다. 최소한 그런 느낌을 받을 수 있었다. 피부가 거의 익을 정도로 뜨거운 물을 끼얹고 나서야 만족할 수 있었다.


 샤워를 하고 나오니 G가 핸드폰을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금방까지 자고 있었는데 내가 짐정리 한다고 부스럭 거리는 소리에 완전히 깨고 말았다. 다만 아직 침대에서 나오진 않았다. G에게 시간을 물었더니 벌써 5시 40분이었다. 투어 집합 장소는 묵고 있던 호텔에서 차로 10분이 넘는 거리였기 때문에 6시에는 나갈 계획이었다. 애초에 투어 집합 시간보다 15분 일찍 나와달라는 공지가 있어서 15분까지는 가야했다. 이런저런 준비를 하고 체크아웃까지 하려면 시간이 좀 걸릴 예정이었다. 그래도 아직 여유는 있어서 G는 씻고 나오겠다고 했다. 친구가 들어간 동안 짐정리를 하고 날씨에 맞는 옷을 대충 꺼내 입었다. G는 재빠르게 씻고 나왔다. 그는 챙겨온 물품도 별로 없어서 정리할 짐이랄게 거의 없었다. 그는 나보다 늦게 일어나 일찍 준비를 마쳤다. 나는 여기저기에 놓인 소지품을 챙기고 혹시 놓고가는 물건이 없는지 확인한 후 호텔을 나왔다. 하지만 나오는 과정 중 호텔키 하나를 두고 나왔다. 엘레베이터에 탄 후 알았다. 항상 엘레베이터에 타서 여유가 생기면 머리가 차분해져 무엇을 챙겨야 했는지 리스트업이 되곤 한다. 이번에도 어김없이 돌이킬 수 없는 상황이 된 후 알아차렸다. 호텔키 정도야 없어도 그만이니까 무시하고 체크아웃을 했다.


 집합 장소는 룩소르 호텔이었다. 이집트 테마의 호텔이라 피라미드 모양의 건축물과 이집트 풍의 기둥이 세워져 있었다. 우버를 타고 아슬아슬하게 25분에 도착했다. 그러나 6시 반에 출발할 투어 무리가 보이지 않았다. 입구에서 방황하다 옆쪽으로 난 길을 따라 버스주차장으로 갔다. 거기서도 투어 합류를 기다리는 몇 사람을 볼 수 있었다. 서로 눈치를 보며 꼼짝없이 기다리다가 굉장히 숙련된 보이는 사람이 나타나자 모두가 그에게 달려가 이런저런 투어를 여기서 기다리는게 맞냐고 물었다. 그는 말 그대로 어느 누구와도 다르게 짐도 없었고 긴장하는 모습도 없었다. 딱 봐도 투어와 관련된 누군가였다. 우리도 그에게 캐니언 2박 3일 투어를 여기서 기다리는게 맞는지 물었다. 그는 맞다고 하고 여러 번 질문에 답해주다가 시야에서 사라졌다. 우리는 최소한 저 사람이 맞다고 했으니까 어떻게든 될 것이다 하면서 그냥 기다렸다. 그러던 도중 선글라스를 낀 채 굉장히 늠름하게 걸어오던 백인 한 명이 두리번 거리더니 우리를 보고 말을 걸었다. 영어로 뭐라뭐라 했는데 내용은 대충 이랬다. "너희들 캐니언 2박 3일 맞아? 너가 Yoon이니?" 다행히 투어 가이드가 우리를 발견했던 것이다. 나는 맞다고 대답하고 잘부탁한다는 의미로 그와 악수했다. 가이드는 거의 2미터는 되는 키에 전형적인 건장한 백인 남자였다. 마치 과거 골드러시 당시 서부로 몰려왔던 이들 중 하나가 아닐까 할 정도로 가이드로서 신뢰가 있는 생김새였다.


 그의 안내를 받아 투어 버스에 올라타니 우리를 제외한 일행이 모두 탑승해있었다. 30인승 정도 되는 버스가 거의 꽉 찰 정도였고 맨 뒤 두 줄만 남아 하는 수 없이 뒤에 가 앉았다. 뒤 공간을 모조리 차지하게 된 일은 우연찮게 얻은 특권이었다. 여덟 석 모두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어 원하는 자리 아무데나 옮겨 앉을 수 있었다. 왼쪽이 마음에 들면 왼쪽에 앉고, 반대쪽이 마음에 들면 다시 옮겨 앉았다. G와 내가 서로 떨어져 앉고 싶을 때는 같은 행이든 열이든 자리를 옮기는 일도 불편하지 않았다. 심지어 뒷자리에는 아무도 없으니 좌석은 끝까지 눕혀도 누구의 눈치를 볼 필요도 없었다. 주로 뒷 좌석에 짐을 던져놓고 앞 좌석에 G와 나란히 앉아 갔다. 시덥잖은 이야기를 나누다가 가이드가 뭐라고 말할 때 잠간 집중하고 다시 대화를 나눴다. 방금 만난 남자 가이드 맥스 외에도 여자 가이드 카밀라가 있었다. 각자 영어와 스페인어,영어와 이탈리아어를 할 수 있어 총 3개의 언어로 가이드가 진행되었다. 주로 맥스가 먼저 입을 열었다. 영어로 시작하기도 하고 스페인어로 시작하기도 했다. 맥스와 가갑게 앉은 사람이 히스패닉인지라 그들과 소통하는 경우 스페인어가 먼저 나왔다. 그렇지 않고 조용하다가 급작스러운 공지를 할 때 영어를 사용했다. 맥스가 자신이 쓸 수 있는 언어를 다 쓴 후에는 카밀라까 이어받아 이탈리아어로 내용을 전했다. 카밀라는 앞에 '알로라~'로 뜸을 들이며 말문을 열었다. G와 나는 '알로라'가 도대체 뭔 뜻일까 고민해보았다. '음' 이나 '어'처럼 단순히 추임새라면 굳이 세음절이나 사용할 필요가 있냐는 것이었다. 그렇다고 접속사라고 하기엔 시작할 때마다 "그래서~"는 어색하게 느껴졌다. 더욱 알 수 없었던 게 "알로라~,"라고 말할 땐 가볍게 내뱉은 후, 갑자기 문장을 쉴새없이 뱉어댔다. 도지히 알 수 없어 G가 검색해보니 "그러면"이라는 뜻이었다. 그냥 말버릇이었던 것.



 한참을 달려 9시가 되자 휴게소에서 잠깐 멈춰섰다. 나와 G는 아침은 커녕 먹을 것도 챙겨오지 않았다. 휴게소에서 서브웨이를 주문했다. 서브웨이는 한국과 별 다른 차이가 없었다. 점원이 젊은 알바생이 아니라 다양한 연령대 사람이 있었다는 정도가 달랐다. 그리고 조금 더 잘 웃어준다. 아마 팁의 영향이 있지 않을까 지레짐작해보았다. 최근 팁 관련 논란이 많은데, 특히 카드 포스기에서 입력한 팁은 점원에게 직접 돌아가지 않는다. 그러니 그냥 이들이 행복하게 일한다 믿었다. 휴게소 주위로는 아무것도 없었다. 그 흔한 농가도 없고 기차나 비행기는 코빼기도 안보였다. 우리가 지나왔던 도로에서 차 몇 대가 휴게소를 지나쳐 열심히 달려갔다. G와 나는 휴게소 안에 있는 마트에서 더 살게 있을지 둘러보았다. 호텔에서 나올 때 생수는 몇 병 사두었고 간식이 필요했다. 건조식품 몇 개와 G가 좋아하는 포켓몬 카드(?)를 구입했다. G는 굉장한 포켓몬 덕후로 어릴적부터 포켓몬에 흠뻑 빠져 살았다. 지금도 G와 나는 물리적 거리를 뛰어넘어 포켓몬을 원격으로 즐기고 있다. 이  글을 쓰고 있던 방금까지도! 그가 계산대 앞에서 포켓만 카드를 보더니 살지 말지 꽤나 고민했다. 그럴만 했던게 한 팩에 무려 5달러나 지불해야 했다. 한국에서 한 팩에 대충 2500원이면 사니까 무척 차이나는 가격이었다. 그가 꽤나 고민하고 있길래 내가 사주기로 했다. 두 팩을 고르고 머쓱하게 계산하고 나왔다. 카드팩을 개봉하고 나니 특별한 카드는 나오지 않았다. 특별한 카드가 나올 수도 있어 잔뜩 기대하고 핸드폰으로 촬영까지 하고 있었는데 짜게 식어버렸다.


 버스는 휴게소를 떠나 계속 달렸다. 맥스와 카밀라는 버스가 달리고 있는 66번 국도에 대한 설명을 하면서 어떤 역사적 의의가 있는지 설명했다. 이 부분이 오로지 영어로 설명되어 정확히 기억나는 부분이 없다. 한 인물이 이 근처를 잘 개발하여 지역 경제를 활성화했다는 이야기가 있었다. 그 사람이 66번 국도와 어떤 관계가 있는지 파악하기 어려웠다. 아마 66번 국도가 주목을 받지 못하던 시절에 경유지의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여러 서비스를 제공한 것이 아니었을까 싶다. 나와 G는 여전히 잡담을 나누느라 여념이 없었다. 가이드의 설명을 이해하지 못해 G에게 요약해달라 부탁해보았다. G는 나보다 영어를 잘 하는 편이다. 과거에 미국에서 살다온 경험도 있고, 최근까지 미국에서 교환학생으로 지냈다. 그럼에도 자신의 영어 리스닝이 익숙치 않다 하여 결국 적절한 이해는 포기했다. 무엇보다 G는 가이드의 말에 큰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어차피 그는 이전에 와봤기 때문에 비슷한 설명을 들었다. 결국 영어를 이해하는건 내가 대부분 담당했다. 단순한 설명 외에도 지금 어디까지 왔는지나 일정에 대한 브리핑이 있었으니 둘 중 하나는 들어야 했다. 말이 그런거지 우리는 잡담이 더 즐거웠다.


 G는 지루한 버스 안에서 시간을 보낼 훌륭한 방법이 있다며 코딩 문제 하나를 소개해주었다. 코딩을 하면서 배우는 '정렬'이라는 알고리즘이 있다. 무작위로 주어지는 숫자를 크기 순서대로 배열하는 방법을 말한다. 우리가 직접 해보면 그렇게 어려운 건 아니지만 컴퓨터는 시키는대로 해야해서 정확한 지시를 해주어야 한다. 컴퓨터에 어떤 지시를 하느냐에 따라서 빠르고 효율적으로 일을 수행할 수 있는지 결정된다. G가 받아온 문제는 무작위 숫자 배열이 주어졌을 때 그 중 몇 번째로 작은(혹은 큰) 숫자는 무엇인지 물었을 때 답할 수 있는 알고리즘을 만드는 것이었다. 여기에 추가 조건으로 수학적으로 빠르게 - 구체적으로는 '복잡도가 n이다' 라는 조건 - 구현해야 했다. 기존의 유치하고 단순한 방법으로는 쉽게 되지 않았다. G군은 문제를 풀어볼지 말지 고민하고 있었다. 이 문제를 알려준 사람이 이전에 답이 없는 문제를 답이 있다는 거짓말을 해서 시간을 버렸기 때문이었다. 이번만큼은 답이 있으니 걱정말라고 했지만 G는 한 번 속았으니 믿을 수 없었다. 버스에서 할 일도 없으니 한 번 풀어보기로 했다. 서로 이런저런 의견을 내면서 알고리즘이 가능할지 생각해보았다. 몇 번은 될 것 같았지만 반례가 몇 번 나오자 의지가 꺾이고 말았다. 결국 포기하고 그냥 창밖을 보다가 시간이 흘러갔다.


 중간에 66번 국도 기념품점을 잠시 들렀다. 별건 없었다. 관광객이 흔적을 남길 수 있는 청록 봉고차 한 대가 가게 밖에 놓여져 있었다. 이틀 전 길거리에서 주운 펜으로 낙서를 남겼다. 이 친구 둘이서 왔었다는 흔적을 무어라 남겨야 재밌을지 키득댔다. 외국에서 흔적을 찾을 때 가장  먼저 찾는건 다름 아닌 동포, 한국인 아니겠는가. 찾아보니 불과 일주일 전에 왔다간 따끈따끈한 기록을 찾아볼 수 있었다. 그 와중에 '독도는 한국 땅'이라는 스티커도 있어서 상당히 놀랐다. 분명 목소리를 내는 건 좋은 일이지만 어느 순간에는 과하다고 느낄 때가 있었다. 이번에 바로 그런 때였던 것 같다. 나 대신 과업을 행하시는 애국자분에게 존경심을 품은 채 다음 스팟으로 이동했다. 점심 시간이 되자 그랜드캐니언 근처 내셔널지오그래픽 비지터 센터에서 내렸다. 그랜드 캐니언과 관련된 아이맥스 영상을 관람할 수 있었다. 티켓을 사면 점심과 영화를 같이 누릴 수 있다. 12시 반 영화를 앞두고 점심을 급하게 해결했다. 우리는 어리둥절한 채 안내를 받지 않다가 시간이 꽤 지나버렸다. 이후로 가이드의 말과 안내는 무조건 따르게 되었다. G가 은근 그쪽으로 철저한 편이 아님을 알게 되었다. 영화는 IMAX 상여오간에서 그랜드 캐니언의 형성과 미국인에 의한 발견을 다뤘다. 거대한 스크린으로 캐니언 안쪽을 들여다볼 수 있는 건 꽤 괜찮은 경험이었다. 어차피 이번 투어 중에는 협곡 안으로 들어가볼 기회가 없었으니 말이다. 영어로 뭐라 하는 걸 못알아들어도 충분히 볼만했다.


 다시 버스로 들어가면서 가이드 맥스와 마주쳤다. 맥스는 스포츠 선글라스를 끼고 환한 미소를 띈 전형적인 백인이다. 환한 미소라 하면 부처의 은은한 미소가 아니다. 가식을 넘어서 이빨을 훤히 드러내는 미소를 뜻한다. 보면서 G군과 나는 저 미소를 배워야 한다면서 억지 웃음을 연습했다. 생각보다 환한 웃음을 하려면 입을 크게 벌려야 했다. 버스에서 서로가 '환한 미소'를 연습하는 꼴을 보다가 다시 진실된 환한 미소를 보니 한결 편안해보였다. 그가 "영화는 어땠어?"라고 물어 어색한 영어로 "정말 웅장했다. 지금 당장 가서 보고 싶다."라고 답했다. 그러자 지금 거기로 갈 거라며 우리에게 환한 미소를 보였다. 버스로 다시 한 시간 가량 타고 가니 창 옆으로 [그랜드 캐니언 국립공원] 표지가 지나갔다. 주위 풍경에 보이는 식생이 차이는 모습을 보면서 거의 다 왔다는 걸 점차 느낄 수 있었다. 그동안 오면서 볼 수 있었던 나무라 하면 작은 주니퍼 트리(노간주 나무)만 보였다. 이제는 침엽수와 굵은 줄기를 가진 식물이 좁은 간격으로 놓였다.



 표지판을 지나쳐 조금 지나 그랜드캐니언에 도착했다. 정확히는 '사우스림'이다. 도착 지점 근처에 여러 뷰 포인트가 몰려 있었다. 가이드는 우리에게 이 근처를 이용하면서 지켜야할 몇 가지 주의사항을 알려주고선 자유롭게 돌아다니도록 냅뒀다.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은 약 1시간 반이었다. 그동안 근처를 돌아다니 후 하차 지점으로 돌아와야 했다. 시작은 마더 포인트(Mather Point), 유명 스팟이라 사람이 무척 많았지만 우리는 굳이 그곳에서 시간을 보내진 않았다. 잠깐 둘러보고는 더 좋은 지점을 찾아 떠났다. 뷰 포인트 근처 울타리가 없이 튀어나온 바위에 몇 사람이 올라가 있었다. 시도해볼만한 경사라 내려가서 사진이나 찍기로 했다. 막상 절벽으로 내려가려 하니 잘못 헛디디면 바로 죽을 수 있다는 생각에 몸에서 식은 땀이 났다. 함부로 뛰었다가 반동으로 그대로 아래를 향해 낙하하는 수가 있었다. 천천히 바위를 디디면서 사람이 있는 방향으로 나아갔다. 다행히 심리적 거리감에 비해 그리 멀지 않아 금세 갈 수 있었다. 나는 고소공포증이 있는 편이라 G에게 빨리 사진 찍고 가자고 하니 왜이리 겁이 많냐며 꾸중을 들었다. 덕분에 사진 찍을 때 위로 시선을 고정한 채로 미묘하게 굳어버렸다. 사진을 후딱 찍고서 편안히 풍경을 볼 수 있는 산책로로 올라갔다. 다시 올라가는 일은 내려가는 것보다 두렵지 않았다. 이렇게 헌한 곳을 내려왔었다니 하는 생각을 지우고 금세 올라왔다. 산책로를 따라 걷다보니 풍경에 대해 슬슬 지치기 시작했다.놀라운 것도 맞지만 너무 거대해 도저히 실감나지 않았다. 사진으로 봐도 실감나지 않지만 실제로 보아도 딱히 실감나지 않는다. 오히려 너무 커서 놀라는 것 외에는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이 표현이 풍경에 대한 극찬으로 보일지 몰라도 칭찬이 아닐 수도 있다. 멀리서 바라만 보아야 하는 그림의 떡이니까. 그림의 떡을 한국에서 모니터로 보나 눈앞에서 보나 거기서 거기 아닐까. 그래도 직접 보는 편이 백배천배 웅장하다.



 틈틈이 시간을 확인하며 걸었다. 중간마다 보이는 야생동물은 꽤 흥미를 불러일으켰다. 우리나라에서 볼 수 있는 청설모와 미묘히 다르게 생긴 설치류가 있다. 사막 보호색을 띈 바위다람쥐가 사람이 지나다니는 길을 가로질러 편한대로 돌아다녔다. 사람이 너무 자주 다녀 이제는 익숙해진 걸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여기 동물들은 사람을 얼마나 경계할지 궁금증이 들어 근처에 있는 녀석에게 먹고 있던 생수통을 들어댔다. 그러자 통 안에 담긴 액체가 물이라는 사실을 용케 알아내고서 주둥이를 입구에 들이댔다. 나와 G는 열심히 물을 먹는 놈을 보면서 이제 이 물은 못먹겠다면서 바라보고 있었다. 그 광경을 지나가던 우리의 가이드 맥스가 봐버렸다. 사람들이 슬슬 모여들자 부담스러워져 뚜껑을 닫고 다람쥐를 쫓아냈다. 그러자 맥스가 "그 물 마시진 않을거지?"라 물었고 뚜껑이 닫힌 생수병을 입에 가져다대며 "당연하지"라고 농으로 받았다. 의미가 제대로 전달된건지 의아했지만 맥스는 웃으며 돌아갔다. 우리도 슬슬 시간이 얼마 없는 것을 확인하고서 버스로 향했다. 아까 주던 물은 근처 쓰레기통에 버려두고 나왔다.


 버스를 타고 다음 지점인 데저트 뷰 포인트로 이동했다. 거리가 꽤 있어 다시 한 시간을 더 갔다. 슬슬 해가 질 시간이 아닌가 생각했지만 캐니언에서 5시는 해가 쨍쨍한 시간대였다. 이전에 쓰던 벽돌 건물이 남아있는 포인트인데 무슨 용도로 사용했는지 확인할 수 없었다. 지금은 안에서 밖을 볼 수 있는 용도로 적당히 꾸며놓았다. 풍경은 아까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쉽게 실증을 느끼는 편이라 비슷한 풍경에 슬슬 적응되고 있던 참이었다. 간단히 사진을 찍고 근처 매점에 가서 물 한 통을 사서 나왔다. 글을 쓰다보면 풍경에 대한 감상을 어떻게 해야할지 고민이 되곤 한다.지금도 그런 상황이라 그랜드 캐니언에 대한 묘사가 상당히 부족하다. 그런 추상적인 표현을 그리 즐기지 않아 사진으로 보고 거기도 대충 이렇게 생겼다 말하고 싶다. 그런 의미로 사진을 찍을 때 내가 사진에 들어가는 걸 그다지 선호하지 않는다. 사진은 직접 보았다는 의미에서 찍는 걸 좋아하는 편이다. 그래서 작위적인 사진은 본인이 느꼈던 감정을 담아내질 못하니 눈살이 찌뿌려진다. 근데 작위적인거랑 신난다고 포즈 취하고 찍는거랑 구분하기 힘든걸 보면 내가 괜히 찡찡대는 것 같기도 하다.


 버스를 타고 다음 지점인 데저트 뷰 포인트로 이동했다. 거리가 꽤 있어 다시 한 시간을 더 갔다. 슬슬 해가 질 시간이 아닌가 생각했지만 캐니언에서 5시는 해가 쨍쨍한 시간대였다. 이전에 쓰던 벽돌 건물이 남아있는 포인트인데 무슨 용도로 사용했는지 확인할 수 없었다. 지금은 안에서 밖을 볼 수 있는 용도로 적당히 꾸며놓았다. 풍경은 아까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쉽게 실증을 느끼는 편이라 비슷한 풍경에 슬슬 적응되고 있던 참이었다. 간단히 사진을 찍고 근처 매점에 가서 물 한 통을 사서 나왔다. 글을 쓰다보면 풍경에 대한 감상을 어떻게 해야할지 고민이 되곤 한다.지금도 그런 상황이라 그랜드 캐니언에 대한 묘사가 상당히 부족하다. 그런 추상적인 표현을 그리 즐기지 않아 사진으로 보고 거기도 대충 이렇게 생겼다 말하고 싶다. 그런 의미로 사진을 찍을 때 내가 사진에 들어가는 걸 그다지 선호하지 않는다. 사진은 직접 보았다는 의미에서 찍는 걸 좋아하는 편이다. 그래서 작위적인 사진은 본인이 느꼈던 감정을 담아내질 못하니 눈살이 찌뿌려진다. 근데 작위적인거랑 신난다고 포즈 취하고 찍는거랑 구분하기 힘든걸 보면 내가 괜히 찡찡대는 것 같기도 하다.



 해가 지는 사막 속을 달려 숙소로 갔다. 중간에 인디언 테마 기념품점에 들렀는데 괜히 사고 싶지 않아 금세 나왔다. 숙소는 네바다 주에 있는데, 덕분에 시간이 한 시간 늦춰졌다. 가이드가 이제 네바다 주에 온 것을 환영한다면서 "시계를 보면 여러분의 한 시간이 사라졌답니다 짜잔" 하고 웃었다. 그러고서 다음 날 기상 시각을 알려주는데 무려 6시 15분이었다. 라스베가스 시각 기준 새벽 5시에 출발하는 셈이라 수면시간이 부족할까봐 괜히 걱정되었다. 설명을 들은 후에도 한참을 달렸다. 창밖에 보이는 붉고 거대한 암석 절벽을 보다가 그만 잠들었다. 시간이 지나 숙소 근처에서 가이드의 말소리를 듣고 깼다. 맥스는 숙소 근처에 어떤 식당이 있는지 알려주었다. 대부분 프랜차이즈라서 딱히 고민할 건 없었다. 우리는 짐을 두고 저녁을 어디서 먹을지 고민해보았다. 그 전에 방으로 들어가는 과정에서 호텔키가 먹히지 않아 가벼운 감정적 타격을 입은 상태였다. G는 과거에 호텔 종업원의 불친절한 - 그 과정에서 호텔 종업원의 관상에 대한 확신이 생겼다 - 태도에 진절머리가 나있었다. 이번은 평범하게 대응해주어 큰 소란이 있지 않았다. 그는 미안하다는 한 마디를 못하는지 의아해하며 다소 투덜거렸다. 그가 그동안 겪었던 사건을 떠올려보면 왜이리 예민하게 반응하는지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약간 지친 상태에서 저녁을 먹지 않는다는 선택지도 있었다. 그러나 높은 확률로 내일 아침을 굶을 것이므로 밖으로 나갔다.


 걸어가면서 어디로 갈지 고르다가 프랜차이즈 중 한국에서 갈 수 없는 'Jack In the Box'로 정해졌다. 햄버거 세트 두 개를 시킨 후 음료수를 받으러 갔는데 전자자판기가 있었다. 미국에서 했던 가장 신기한 경험이라 이것저것 선택하면서 진짜 음료수가 한 기계에서 나오는지 확인했다. 잭인더박스의 햄버거는 다른 곳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리고 기대보다 크기가 작고 부실해 실망했다. 딱 롯데리아와 버거킹 사이였다. G군은 배고팠는지 감자튀김 단품을 추가로 시켜서 먹었다.


 숙소로 돌아가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눴다. 그러다 할 말이 없어 TV를 켰다. 미국의 호텔에서 TV는 딱히 기대하면 안된다. 그냥 이런저런 채널이 나오고 한국처럼 OTT가 제공되거나 하물며 크기도 굉장이 조마하다. 채널을 막 돌려보다가 음악 방송을 조금 지켜봤다. 얼마 안있어 연주가 끝나자 다시 할 일이 없어졌다. 각자 침대에 누워 핸드폰을 하면서 시간을 보냈다. 어느덧 12시쯤 되자 금세 잠들었다. 이때 잠든건지 확실치 않다. 사실 확인이 안될 정도로 기억이 나지 않는건 그냥 잤다고 해도 무방하다. 이제는 너무 편해져 할 말도 없어진 나와 G였다.



 미국여행 4/12 진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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