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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지호 Jun 01. 2024

여행이 반밖에 안 남았네?
여행이 반이나 남았네?

미서부 여행 6일차

  아침 일찍, 정확히는 알람이 울린 후 30분 뒤 조심스레 일어나 씻기 시작했다. G는 여전히 자고 있었다. 어쩌면 나보다 일찍 일어난 후 눈만 감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가 최대한 깨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가방을 열고 세면도구를 꺼냈다. 문 옆에 있는 세면대에서 간단히 세면을 한 후 빠르게 씻고 나왔다. 아직도 G는 누워 있었다. 만약 그가 잠이 깼더라면 누워서 핸드폰이라도 하고 있었을 것이다. 핸드폰 사용에 굉장히 익숙한 친구라 다양한 플랫폼을 통해 최신 소식을 접하는 모습을 흔히 볼 수 있다. 모닝 루팅에  갑자기 기상은 없는 편이다. 조금이라도 잠이 가셨다면 핸드폰을 집어들고 20분 정도는 누워 있는다. 그런 그가 아직 눈을 감고 있다는 건 시간이 여유 있었다고 해석해도 되었다. 짐정리를 대충 하고서 숙소 안 쓰레기를 정리했다. 어젯밤 먹고 남은 맥주캔이 두 침대 사이 테이블에 놓여 있었다. 어젯밤 마셨던 삿포로는 일본에서 먹던 것과 큰 차이가 없었다. 그래도 특유한 건조함이 매력적이라 끝까지 비웠다. G는 술을 좋아하는 편 치고 맥주 큰 캔을 다 못먹는다. 좋은 술은 양이 많지 않아 어색한 걸지도 모르겠다. 어느덧 G가 일어났다. 내가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며 부스럭 거리는 소리에 신경쓰여 일어나버렸다. 예상보다 일찍 일어나 씻을 시간이 있었다. 평소대로라면 씻는 건 최대한 고려하지 않은 시간대에 일어나 모이기 10분 전에나 일어났을 것이다. 그 덕에 G는 간단히 씻은 채 하루를 시작하는 줄... 알았으나 더 자겠다 하여 결국 떡진 머리로 숙소를 나서게 되었다.


 이번 숙소에는 조식이 따로 마련되어 있지 않아 아침을 먹지 못했다. 대신 어젯밤 먹고 남긴 레이즈 감자칩과 챙겨왔던 약간의 과자를 꺼내 먹었다. G는 배고팠을지라도 딱히 과자에 손대지 않았다. 든든한 음식을 먹고 싶단 이유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먹지 않겠다 말해놓고서 둘 사이에 놓인 과자 봉지에 가끔씩 손을 집어넣었다. 과자가 동난 후 이른 아침부터 일어난 탓에 둘 다 잠들었다. 기억나지 않는 덕분에 자이온 국립공원으로 가는 길이 그리 지루하지 않았다. 


 버스를 타고 목적지를 향해 달렸다. 숙소의 위치는 앤텔로프 캐니언 근처, 라스베이가스와 가장 멀리 떨어진 지점에 있었다. 따라서 오늘이 투어 마지막이므로 한참을 도로 위에서 보내야 함은 당연했다. 자이언은 라스베이가스로 돌아가는 길에 위치하고 있다고 생각한다면 국립공원이 수두룩한 지역을 한 바퀴 쭉 도는 일정이 얼마나 효율적인지 알 수 있다. 아무리 2박 3일로 주요 지점마다 1시간씩 보내는 야박한 일정이라도 말이다.  이제 남은건 자이언 국립공원뿐이었다. 자이언을 캐니언이라 할 수 있을지 의문이 드는 생김새일 수 있다. 왜냐면 캐니언이 아니기 때문이다. 지금껏 보아왔던 다른 자연환경에 비해 물이 바위를 깎아낸 명백한 흔적을 발견하기 어렵다. 쭉 협곡의 형태만 보아오다 보니 당연히 자이언이 캐니언이라고 생각했다. 아무리 봐도 협곡이 아닌데? 싶었는데 진짜 협곡이라는 표현이 따로 붙어 있지 않다는 걸 본 후에야 깨달았다. 이곳과 유사한 곳을 찾아보면 요세미티 국립공원이 거론된다. 실제로 본 후 어디서 많이 본 것 같아 생각해보니 요세미티 국립공원이 떠올랐다. 아니나 다를까 이후에 나무위키에 짧게 언급된 것으로 보아 나만 유사하다 느낀 걸 확인할 수 있었다.



 자이언 근처에 갈수록 바위가 맨들맨들하고 깔끔히 깎여져 있었다. 회백색 돌이 마치 인간이 직접 만든 것처럼 정교한 원뿔 형태가 가로로 쭉 늘여진 채 도로 양 옆에 솟아 있었다. 꼭짓점은 풍화에 예민해 둥글고 편평히 깎여나가 푸른 식물이 위치하기 안성맞춤이었다. 아래로 치마주름처럼 펼쳐진 경사면으로 시선을 내리다보면 일정한 지층무늬와 갈라짐을 보며 이 산이 무지막지하게 큰 하나의 돌덩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원불 사이사이로 S자로 나있는 도로를 따라가다보면 자연을 보기 위해 이러한 오지까지 사람이 다닐 수 있도록 도로를 뚫을 수 있는 현대 문명 수준에, 그 길을 길쭉한 버스로 능숙히 운전하는 기사님의 실력에 두 번째로 감탄했다. 길을 따라 가다가 더이상 갈 수 있는 길이 없어보일 때가 되자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터널을 마주했다. 터널은 어두컴컴한 와중 오른쪽으로 작은 구멍을 뚫어놓아 지나가면서 밖의 풍경을 미리 맛볼 수 있었다. 1분이 넘게 터널을 지나고 나 얼마 안가 버스가 멈춰섰다. 자이언에 들어온 기념으로 잠시 내려 사진을 찍기 위해서였다. G와 나는 옷을 가볍게 입고 왔다가 생각보다 추워 깜짝 놀랐다. 이른 시간대이면서 산골짜기를 매섭게 통과하는 바람때문이었다. 꺼낼 일 없을 줄 알았던 겉 옷을 걸치고 밖으로 나와 풍경을 감상했다. 들어오면서 봤던 지형과 사뭇 다른 암석 절벽이 나타났다. 오히려 이전 풍경이 마음에 들었던지라 아쉬움이 남았다. G도 동의했던 의견인데, 내부로 들어오니 한국에서 볼 만한 지형이면서 중국에 온 듯 한 느낌도 들었다. 중국을 가본적도 없고, 한국에서도 산을 자주 다녀보진 않았지만 여태 보았던 미국의 이국적인 자연환경에 비해 가장 친숙하게 느껴졌던 건 확실했다. 


 다시 버스에 탑승해 자이언 비지터 센터에서 내렸다. 이제 여기부터가 진짜 국립공원이다. 국립공원이 거대하기 때문에 걷거나 자전거를 타기도 하며, 대부분은 셔틀버스를 타고 깊숙히 들어간 후 관광을 시작한다. 가이드 맥스가 자신은 셔틀 버스를 타고 안으로 들어가 걷고 오겠다며 안내했다. 가이드의 안내를 굳이 따를 필요는 없지만 열에 열이 가이드를 따라갔다. 어차피 가이드와 따로 갈 정도로 이 곳을 잘 아는 것도 아니고, 특별히 따로 보고 싶은 곳도 없을 뿐더러 가이드를 놓쳤다가 낙오되는 최악의 상황도 생길 수 있으니 말이다. 그러니 우리는 얌전히 맥스가 설명한대로 셔틀 버스에 탔다. G는 아직도 잠이 깨지 않아 비몽사몽했다. 버스에 있을 때 보다 훨신 피곤해보였다. 숙소에서 씻고 나오지 못해 눌리고 뭉친 머리는 그를 더욱 초췌해 보이도록 만들었다. 예전부터 하루만 머리를 감지 않아도 금세 떡져버리는 거의 기질은 특유의 느릿하고 비위생적이라는 이미지에 기여했던 바가 있었다. 여행 도중 이런 모습을 다시 보게 될 줄 상상도 못했지만 고등학교 내내 그런 모습을 봤으니 딱히 어색하진 않았다. 그의 행실 덕에 불쌍해 보인다는 효과도 있어 셔틀 버스에 겨우 난 자리를 차지할 수 있었다. 그는 얼마 안 되는 거리를 가는 동안 잠시나마 졸면서 에너지를 충전했다.



 가는 길에 정류장이 여럿 있었지만 대부분 같은 정류장에서 내렸다. 투어 일행은 가이드의 안내를 받아 무사히 내릴 수 있었고 가이드의 안내를 기다렸다. 그런데 맥스는 갑자기 화장실을 가더니 돌아오지 않았다. 혹여나 우리를 버리고 간 것이 아닐까 의심했지만 주위 일행들 모두 어떻게 해야 할지 당황해하는 표정을 보며 모두 같은 상황임을 인지하니 안심이 되었다. 몇 사람이 가는 방향을 유심히 보니 코스라 할 만한 건 하나밖에 없었다. G와 그쪽으로 갈지 말지 잠깐 의논하던 도중 일행이 그쪽으로 가는 모습을 보았다. 가이드 카밀라도 같이 있는 모습을 보아하니 저 방향이 맞구나 싶어 따라 갔다. 아직 아침 9-10시밖에 안되어 산을 오르기 직전 굉장히 추웠다. 맥스도 옷을 단단히 입는 것이 좋다고 조언한 바 있었다. 길을 따라 올라가다 보면 가파른 암벽 사이로 무성히 자라난 나무와 강이 보였다. U자로 형성된 지형의 바닥에서만 푸른 생명이 자라나고 있었고 양 옆으로 거대한 바위가 회색으로 이들을 가두고 있었다. 물살은 꽤 빨라 푸르고 맑은 사파이어 빛의 물임에도 불구하고 좁은 길목 중턱마다 허옇게 일었다. 길 오른편으로 선인장이나 작은 관목이 빼곡히 자라있었다. 왼편은 뻥 뚫려 자이언을 감상할 수 있었는데 길이 오묘히 굴곡져 있던 덕에 바라보는 각도가 서서히 틀어져 계속해서 다른 모습이 보였다. 



 길은 점차 산 안쪽으로 휘어져 들어가 바위가 널브러진 곳으로 들어갔다. 바위로 만들어진 천연 계단을 따라 내려가니 어느 산에서나 전형적으로 볼 수 있는 작은 폭포와 연못이 보였다. 물줄기는 머리 위에 놓인 바위를 타고 커튼처럼 넓게 흘러내리고 있었다. 우리는 그 아래로 내려가 잠시 물을 맞으며 지나갔다. 마침 해도 떠오르고 계속 걷다보니 더운 참이었다. 공기는 덥게 몸을 달구는 동시에 위에서 물방울이 조각나고 바위에 부딪혀 튕겨날 때마다 시원한 감촉이 점점이 박혔다. 잠시동안 그곳에 있다가 다시 돌아갈 시간이 되었다. 우리 뒤로 다른 일행이 보이지 않는 다는 건 다들 시간을 확인하고 다시 되돌아가고 있었다는 뜻이었다. 다시 왔던 길로 돌아가 방금전 보았던 경치을 반대로 바라보며 감상했다. 


 G는 여행 계획을 짜던 중 자이언이 가장 기억에 남지 않았다고 평가했다. 그 이야기를 듣고서 나는 자이언에 큰 기대를 하지 않았다. 온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도 딱히 좋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어디서 많이 본 것 같다며 박한 평가를 했던 이유가 G가 내렸던 말을 듣고 생겨버린 선입견때문일지도 모른다. 평가가 바뀌는 데는 채 한 시간도 걸리지 않았다. G에게 정말 이곳이 전혀 기억나지 않았는지 물었다. 아무리 다른 지형이 훨신 색다른 모습이더라도 결코 기억에서 지워질만큼 평범하지 않았다. 우리는 짧은 길만 갔다 왔지만 여기가 얼마나 큰지 충분히 체감할 수 있었다. G군도 자기가 왜 이곳을 기억하지 못하는지 알 수 없었다. 그는 연신 가는 길을 멈춰가며 핸드폰을 꺼내들었다. 이미 왔던 길이라 이미 찍었던 풍경임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이번만큼은 이 곳 자이언의 어원을 이해할 수 있었다. 고대 히브리어로 '안식처', 이곳에 편히 안겨 있다면 어느 누구도 이곳에 도달하지 못할 것이라는 믿음이 생길 수 밖에 없었다. 


 셔틀버스를 타고 다시 비지터 센터로 돌아갔다. 그곳에서 화장실을 들렀다가 나와 보니 일행을 놓치고 말았다. 분명 아까만 해도 아는 얼굴이 몇 있었는데 나와보니 다들 어디론가 가버렸다. G와 나는 근처 어디에서 기다리는지 보다가 모일 시간이 지난 것을 확인하고는 버스를 찾아 헤맸다. 다행히 근처 주차장으로 가는 길에 버스가 어디 세워져 있는지 기억나 길을 더듬거려 버스를 찾았다. 버스 앞에서 맥스가 기다리고 있는 모습을 보고 재빨리 뛰어가 미안하다 하고 올라탔다. 우리 때문에 아직 출발하지 못한 것이 아니었을까 생각하던 찰나에 창 밖으로 싱가포르 커플이 뛰어오는 모습이 보였다. 우리는 그들을 보고 다행히 꼴찌는 아니었다며 내심 뿌듯해 했다. 이제 점심을 먹고 라스베이가스로 돌아가면 됐다. 투어가 끝나가고 있었다.


 마지막으로 들른 곳은 뷔페식 식당이었다. 가격은 어느 곳과도 다르지 않았지만 음식의 종류와 질만큼은 지금껏 보았던 어느 곳보다 만족스러웠다. 접시에 음식을 종류별로 가득 담아 마지막 식사를 즐겼다. G는 한 명당 한 번씩만 제공되는 스테이크를 받아와 오랜만에 맛난 고기를 만났다며 신이나 있었다. 나도 받을가 했지만 섣불리 많이 받아온 탓에 배가 불러 그가 받아온 고기 몇 점을 뺏어먹었다. 다시 버스에 타고 2시간 넘게 달렸다. 가는 길과 오는 길이 다르면 보이는 풍경도 다르다. 거대한 협곡 지형을 한 바퀴 빙 둘러왔기에 가능했다. 새롭게 보이는 지형에 대해 맥스가 설명해주면서 창밖을 바라보았다. 



 G와 나는 도착할 동안 개인적인 이야기를 했다. G는 이번 여행을 떠나기 전 여자친구가 생겼다고 고백한 바가 있었다. 그와 카톡을 하던 도중 연애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자 갑작스레 전화를 하더니 말해주었다. 당황하긴 했지만 생각보다 연애 경험이 풍부했던 그였기에 당황스럽지는 않았다. 미국에 오면 자세히 말해주겠다고 하고 딱 그정도 소식만 전해들었다. 이제야 본격적인 상황을 들어볼 수 있었다. 어떻게 만난 인연이고 어떤 과정을 거쳐 연애까지 이르게 되었는지 물었다. 갑자기 알게 된 사람은 아니었다. 미국에 간지 얼마 안된 후 계속 시간을 보냈던 사람이었다. 같이 쇼핑을 하거나, 연극을 보거나 공부도 하고 산책도 하는 등의 에피소드는 그에게 이미 들은 바가 있었다. 그런데 그 대상이 모두 같은 사람일 줄 몰랐다. 더욱 놀랐던 건 내가 그들 사이에 약간 영향을 주기도 했었다.


 지난 2월, 나는 생일임에도 불구하고 기분이 좋지 않았다. 예정되어 있던 일정이 당일 예정된 시각에 취소되었기 때문이었다. 이미 택시를 타고 도착한 상태였지만 상대가 오지 않았다. 외진 곳이라 택시를 타거나 30분을 기다려야 오는 버스를 타고 돌아가야 했다. 홧김에 택시를 부른 후 기다리는 동안 G에게 연락했다. 당시 G는 미국에 있었으니 자정이었다. 달이 이쁘다면서 외로워 죽겠다고 투덜대던 차였다. 그러면 여자한테 연락하라고 말했다. 그가 말성이자 생일선물 대신이라 생각하고 시키는 대로 해달라 말했다. 그는 한 분에게 산책이나 하자는 연락을 했고, 그날 밤 초콜릿도 챙겨 그녀와 잠시 걸었다고 한다. 당시 그에게 후기를 물으니 "서로 좋아하지도 않는데 데이트나 하고 있네" 라는 말을 들었다면서 좌절했다. 알고 보니 그 이후로 쌍방으로 마음이 생기게 되었다고 한다. 사실 이외에도 만날 일은 많았기 때문에 결정적이라고 할 순 없다. 그래도 나랑 관련이 있다고 생각하니 괜히 억울했다. 남 연애하는 모습을 보면 역시 배아픈 건 어쩔 수 없었다. 그의 이런저런 연애 발전사를 듣다보니 나에게 그런 일이 없었는지 돌아보았지만 탈탈 털어도 없는 것 같아 괜히 의기소침해졌다.


 거의 다 와갈 때쯤 가이드에게 줄 팁에 대해 논했다. 보통 이용한 서비스의 10%만큼 준다고 G가 말했다. 하지만 투어의 가격은 둘이 합쳐 100불이 넘었다. 학생 핑계를 써서 팁을 주지 말가도 고민했지만 이번 투어 동안 보았던 맥스의 환한 미소가 떠올랐다. 그가 여행 내내 웃음을 잃지 않아서인지 우리도 그를 볼 때마다 "역시 맥스야!" 하며 감탄하곤 했다. 이전에 맥스가 대신 냈던 영화푯값 20달러를 얹어 120달러를 그에게 주었다. 버스는 라스베이가스에 멈췄다. 내리면서 다른 일행들과 격하게 악수를 하고 걸어가는 그를 보면서 투어를 마무리했다.


 이제 큰 꼭지가 마무리되었으니 쉴 차례였다. 예약해둔 호텔은 중심거리에서 먼 곳에 있어 우버를 불렀다. 10분 정도 걸려 Stratosphere hotel로 갔다. 라스베이가스에서 가장 높은 건물을 가졌고, 세상에서 가장 아찔한 놀이기구가 있는 것으로 유명하다. 예약했을 때 이러한 정보는 전혀 모른 채 예약했다. 그저 아고다에서 가장 싼 호텔을 찾아 나온 곳이 거기였다. 호텔 근처에 온 후 전망대가 있는지 알게 되었다. 덕분에 저녁에 할 일정이 생겼다며 속으로 은근히 뿌듯해 했다. 호텔 안으로 들어가 정신없이 펼쳐진 카지노 속에서 무인 체크인 기기를 찾았다. 우리는 체크인을 한 후 룰렛을 몇 번 돌렸다. G는 나와 다르게 타율이 좋은 편이었다. 20달러를 30달러로 불리고 난 후 곧바로 손을 뗐다. 룰렛에서 나온 바우처를 돈으로 교환한 후 숙소를 찾아 들어갔다. 방에 들어가자 마자 둘다 침대에 드러누웠다. 그러고서 저녁을 먹기 전까지만 자기로 했다. 



 눈을 떠보니 벌써 8시였다. 아마 6시에 일어나겠다 생각을 하고 눈을 감았는데 이미 까매진 밖으로 보고 화들짝 놀란 채 G를 찾았다. G도 방금 일어나 핸드폰을 보고 있었다. 둘은 밥은 먹어야 한다며 겨우 침대에서 빠져나왔다. 멀리 갈 것도 없이 호텔 안에 있는 아시아 식당에서 비싼 값을 주고 끼니를 해결했다. 밥을 먹고는 전망대를 들러보기로 했다. 투숙객은 입장 가격을 절반으로 할인해주어 기분좋게 들어갔다. 고층 건물의 상징인 귀가 먹먹해지는 엘레베이터를 타고 올라갔다. 맨 위층에 내려 밖을 바라보았다. 완전히 어두워져 호텔이 내는 불빛으로 도시가 빛났다. 익숙한 전 미 대통령 도날드 트럼프 옹의 호텔, 라스베이가스의 새로운 상징이 된 구형 공연장 '스피어', 그 위를 날아가는 밤중에도 열일하는 비행기와 헬기 여러 대를 지켜보았다. 야경을 충분히 감상하고 크지 않은 전망대를 한바퀴 걸었다. 낮에는 전망대에서 아찔한 놀이기구를 운영하는데 어두워지니 운영하고 있지 않았다. 놀이기구를 전혀 좋아하지 않는 나는 평생 탈 일 없는 놀이기구를 보면서 괜히 안심했다. 다시 건물 안으로 들어와 별 것 없는 내부를 보고 다시 내려왔다. 사실 다시 올라갈 수 있는 줄 알고 내려왔는데 다시 올라가는 길이 막혀 있어 그냥 방으로 돌아갔다. 더 볼만한 것이라 해도 야경밖에 없는데 충분히 봤기 때문에 그리 아쉽지 않았다.


 투어를 마친 기념으로 간단히 씻고 자리에 누웠다. 내일도 투어가 있어 일찍 나가야 했다. 나흘 내내 일찍 일어나야 했던 G군은 내일을 생각하며 벌서부터 고통스러워 하고 있었다. 내일만 넘기면 이제 일찍 일어날 필요가 없으니 하루만 참으면 된다고 위로했다. 방금까지 충분히 잤음에도 우리는 여전히 피곤했다. 침대에 누워서 내일 일정을 정리하다보니 어느덧 잘 시간이 되었다. 이 나라의 착한 어린이 도는 다음날 아침 일찍 일정이 있는 여느 어른이 잠들 시간말이다. 내일 아침 제 시간에 맞춰 투어 픽업 장소로 가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얼마나 걸리는지, 몇 시에 나가야 하는지, 그러려면 몇 시에 일어나야 하는지 등을 확인했다. 캐니언 투어 시작이 조금 불안했던 탓에 이번은 비교적 철저히 확인했다. 그렇게 시간을 계산하고 알람을 6시에 맞춘 후 누웠다. TV도 켜지 않고 간식도 꺼내두지 않은 채 조용히 잠들었다. 내일이 지나면 라스베이가스를 떠난다. 내일은 내가 가장 기대하던 데스밸리에 간다. 캐니언보다 더 기대하던 곳이 데스밸리였다. 과연 기대를 충족시켜줄 수 있을지 긴장하다가 스르륵 눈이 감겼다. 이제 여행이 절반 지나갔다. 벌써 6일이 지났고, 6일이 남았다. 



 미국여행 6/12 진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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