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세운 계획대로 알람을 듣고 일어났고, 씻고, 짐을 챙겨 체크아웃을 하고, 우버를 타고서 서커스서커스 호텔 앞으로 갔다. 라스베이가스에서 투어를 위해 일찍 일어나는 일도 한 번 경험해보니 금세 익숙해졌다. G군도 오늘은 일찍 일어나 시간을 확인하고 여유롭게 씻었다. 오늘만 견디면 G군의 기숙사로 이동할 수 있었다. 여행 온 주제에 버틴다는 표현은 배부른 소리이긴 했다. 그래도 이 이상 투어를 다녔다가는 온몸이 쑤시고 집으로 돌아가는 비행기를 당장이라도 끊고 싶었을 것이다. 데스밸리로 향할 투어 차량은 약속시간인 7시 반이 되어도 나타나지 않았다. 이전 캐니언 투어의 시작이 다소 불안했기에 이번에도 불안이 가시질 않았다. G도 끊임없이 나에게 장소와 시간이 맞는지 물었다. 나에게 예약 정보가 있었기 때문이었는데, 나도 제대로 답을 못해주었다. 투어 설명에 7시 반이 만나는 시간이라고 적혀 있었지만 이보다 자세한 설명은 찾을 수 없었다. 다른 곳을 들렀다 오는 것인지 바로 오고 있는데 늦는 건지 알 방법이 없었다. 설상가상으로 적혀진 전화번호는 가이드가 아니라 투어 회사와 연결되는 것이었다. 회사에라도 연락을 할까 망설이던 그때 밴 한 대가 우리 앞에 멈춰섰다. 맥스에 비해 작지만 건실하게 생긴 백인 청년 한 명이 내렸다. 우리를 보더니 데스밸리 투어인지 물었다. 우리는 맞다고 하고 안심하고 차에 올라탔다. 트렁크에 짐을 싣고서 아무도 없는 차에 올라탔다. 많이 타야 10명 정도 탈 수 있어 이번 투어는 소규모로 진행되리라고 알아챘다. 우리를 태운 밴은 한 호텔에서 한 노부부와 민머리 남자 한 명을 태우고 바로 라스베이가스를 빠져나갔다.
이번 투어는 오로지 영어만 사용했고, 나머지 사람들도 영어를 어느정도 쓸 줄 알았다. 노부부는 이탈리아 사람인 것 같았는데, 부인이 이탈리아어로 무어라 말하면 할아버지가 가이드에게 영어로 질문했다. 일행 없는 다른 남자는 영어를 쓸 줄 아는 것 같았지만 거의 말이 없었다. 이 사람이 설명을 듣고 있는 줄 알아챈 건 오후가 되어서 가이드에게 영어로 질문을 하는 모습을 보게 되었을 때였다. 우리는 맨 뒤에 앉아서 가이드의 말을 듣는둥 마는둥하며 갔다. G는 오랜 투어 일정에 힘이 들어 이번에는 만반의 준비를 해왔다고 장담했다. 핸드폰에 인터넷이 필요없는 게임을 받아와 이만한 게임이 없다며 그것에 열중했다. 옆에서 하는 모습을 지켜보니 화면에서 룰렛이 끊임없이 돌아갔다. 무료로 즐길 수 있는 확률게임이구나 하고 지켜보았다. 그는 무척 즐기고 있었지만 나는 게임의 목적을 이해하지 못해서 그만 보았다. 옆에 보이는 풍경도 보고 가끔씩 가이드가 말하면 대충 들으면서 시간을 보냈다. 오랜만에 인스타그램을 보면서 시간을 버리고 있었는데 어느순간부터 인터넷이 되지 않았다. 이 뜻은 데스밸리 국립공원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뜻이었다. 이제 시간을 때울 거리도 없어 차 밖에 펼쳐진 광경을 구경했다. 어제와 또 다른 풍경이 보였다. 데스밸리는 해수면보다 고도가 낮기 때문에 조금씩 아래로 내려가고 있는 것이 보였다. 우리가 지나쳐간 지대는 미묘히 높았고 저 아래로 펼쳐진 길은 몸의 수평계로 미루어보았을 때 분명 내리막이었다. 실제로 내려갈수록 귀가 먹먹해졌다.
가이드는 [Death Vally National Park]라 써져 있는 간판 앞에서 잠시 밴을 멈췄다. 잠시 내려서 이곳에서 사진을 찍었다. 사인 앞에 서니 가이드가 사진을 찍어주겠다 하여 나, G 그리고 같이 서 있는 사진을 찍었다. 목적은 사진 찍는 것이었는지 다른 사람들을 찍어준 후 바로 출발했다. 좀 더 가더니 이번에는 화장실 앞에서 잠시 차를 멈췄다. 앞으로 화장실을 가기 힘들겠구나 생각하고 다들 내려서 화장실을 갔다 왔다. 화장실은 변기만 있을 뿐 재래식 구조였다. 빛이 새어 들어가는 것을 보고 보통 깊이가 아니구나 하여 안은 쳐다보지도 않았다. 근처를 둘러보니 오토바이를 타고 온 무리가 잠깐 정비를 하고는 금세 출발했다. 자유롭게 돌아다닐 그들이 부럽기도 했지만 한편으로 직접 운전을 하는 일이 상상이 되지 않아 존경스러워 졌다. 지금껏 다닌 길들을 직접 운전했다면 쉴 시간이 줄어드는 건 물론이고 그 시간에 운전하느라 피로가 더 누적되었을 상황을 생각하니 괜히 머리가 아파졌다. 다들 화장실을 한 번씩 들른 후에는 다시 이동했다. G는 아까 하던 룰렛 게임을 그만하더니 지오메트리 대쉬 - 2010년대 중반에 크게 유행했던 모바일 게임 - 을 켰다. 오랜만에 보는 비주얼에 이번에는 눈이 갔다. 그와 나는 한 번식 번갈아 하며 시간을 보냈다. 둘다 정신이 팔려 있는 사이 어느새 밴은 오르막을 타고 있었다. 기껏 내려가더니 왜 올라가나 싶었지만 곧이어 가이드가 가장 먼저갈 장소는 전망대라는 것이 떠올랐다.
이름하여 Dante's View. 단테하면 <신곡>아닌가, 그러니 <신곡>의 무언가가 여기와 비슷해서 단테의 이름을 붙였다는 식으로 뭔가 연관이 있겠다 싶었다. 하지만 당장 알 수 있는 방법이 없었다. 가이드는 설명하지 않았고 - 심지어 질문을 할 생각도 못했다 - 인터넷도 안되므로 알 방법이 없었다. 그저 여기가 데스밸리 안에서 가장 고도가 높고, 가장 고도가 낮은 Badwater[배드워터]가 내려다 보이는 곳이라는 것만 알았다. 밴에서 내리니 건조하고 뜨거운 바람이 강렬한 햇볕과 함께 달려들어 덥지도 않고 춥지도 않게 느껴졌다. 곧바로 내려다보이는 배드워터를 보아하니 저 하얀게 모조리 소금인가 했다. 데스밸리는 과거 바다였다가 지각 변동으로 인해 분리되었다고 들었다. 배드워터는 그 과정에서 바다와 분리된 바닷물이 증발하여 만들어진 소금 호수였다. 말라버린 거대한 분지를 바라보고 있자니 꽤나 오래전에 분리되었겠구나 싶었다. 꽤 멀리보여 그 크기가 정확히 가늠이 안되었지만 일단 사진부터 찍었다. 가이드는 이번에도 사진을 찍어주겠다 했다. 어제 주었던 120달러가 떠오르며 이번에도 팁을 줘야한다는 사실이 문득 떠올랐다. 잠시 아래를 보고 있었는데 옆에서 쌍안경을 들고 있던 이탈리아 노인이 말을 걸었다. 저기 아래 있는 까만 점들이 사람이라고 하며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우리는 맨눈으로 보이지 않는 어딘지 찾았다. 열심히 찾아보던 중 노인이 G에게 쌍안경을 내밀었다. G는 쌍안경을 집어들고 그 아래를 바라보았다. 나는 핸드폰으로 카메라를 켜 확대해보았다. 그러자 하얀 소금이 만들어낸 삼각주가 위로 먼지같은 사람이 보였다. 정확히는 사람인지 구분할 수 없었지만 노인이 말으로 미루어 볼 때 저것들이 사람이라면 말이 되었다. 근처로 나있는 작은 실에서 차가 지나가는 모습이 보이자 회색 먼지로 보였던 것이 사람이라고 확신할 수 있었다. G는 쌍안경을 쓰고도 찾지 못했다. 결국 그는 대충 끄덕이고 쌍안경을 노인에게 돌려주었다.
방금 전, 가이드가 차에서 설명하던 와중에 이해되지 않았던 부분이 있었다. 나는 아무 생각이 없었는데 G가 나에게 물었을 때 대답하지 못했다. 결국 G는 궁금증을 참지 못했고 나를 통해 질문했다. G가 나보다 영어도 잘하면서 왜 내가 질문해야 했는지 알 수 없었다. 실은 표현 자체가 이해되지 않아 물어봣떤 것이었는데, 엉뚱하게도 여기에는 사람들이 더 이상 살지 않는다는 답변을 들을 수 있었다. 이건 설명 중 이해한 부분이라 궁금하지 않았다. 아쉽게도 무엇을 헷갈려 했는지 벌써 까먹어버려 다시 질문을 하지 못했다. 다시 차에 탈 때가 되니 주차장에 아까 보았던 오토바이가 주차되어 있었다. 아마 오토바이를 타고 갔던 사람들은 내려서 아래로 걸어 내려간 것 같았다. 우리는 가이드가 트렁크에서 꺼내준 물을 받아들고 물을 축였다. 다음 장소로 가는 동안 더위를 먹고서 기운이 쭉 빠진 탓에 잠들었다. 자는 동안에도 가이드의 설명이 어렴풋이 들렸다. 가고 있는 곳은 사막, 사막에서 볼 수 있는 건 캥거루쥐, 하지만 자주 볼 수 없음... 단편적인 정보를 조합하여 사막과 캥거루쥐를 조합한 이미지를 떠올렸다. 귀여운 코끼리쥐가 모래를 파고 나오는 <듄: 파트 2>의 한 장면이 떠오르며 다시 기절했다.
차가 멈추자 자연스레 눈이 떠졌다. 사구를 눈앞에 두니 금세 설레여 잠이 깼다. 가이드와 함께 가면서 꿈결에 보았던 코끼리쥐가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 자주 나타나는지 물었다. 가이드는 코끼리쥐는 자주 나타나지 않는다, 여기에서 생물 자체를 보는 것이 꽤 힘들 것이라 했다. 그러고서는 물어보지도 않은 이 곳에 대한 정보를 나열했다. 그런 것 치고 꽤 유용한 정보였다. 여기의 이름은 "Mesquite flat sand dunes"으로, 이곳에서 살던 식물인 mesquite tree[메스키트 나무]의 이름을 따왔다고 한다. 그런데 여기에 살아있는 메스큇 나무는 없다. 바싹 말라버린 나무 줄기들을 통해 흔적만 찾아볼 수 있다. 이러한 흔적이 남아있을 수 있는 이유는 굉장히 고운 모래들에 덮여 썩지 않고 보존되었기 때문이라 한다. 그럼 이 모래는 어디서 왔는가? 데스 밸리의 바람이 이곳으로 작은 알갱이를 끌고 와 여기에 모아둔다고 한다. 따라서 메스키트 사막은 데스밸리의 가장 작은 모래가 모여있는 곳이라는 것이다. 설명을 듣고 나니 이 곳의 모래가 흥미로워 보였다. 마침 다 먹고 빈 생수병에 모랠르 살짝 담았다. 이곳에 오래 머물 계획은 아니라 가장 높은 모래 언덕까지는 가볼 수 없었다. 대신 근처에 있는 작은 모래 언덕을 몇 번씩 오르락내리락했다.
짧게 둘러보고 난 후 곧바로 점심을 먹기 위해 건물이 모여있는 곳으로 갔다. 식당에 가기 전 잠시 기념품점을 들렀는데, 이곳에 작은 스티커를 사왔다. 이곳에 사는 동물을 본따만든 인형도 있어 눈길이 갔지만 직접 볼 수 없었기 때문에 나에게 큰 의미가 없는 것 같아 사지 않았다. 밖으로 나와 화씨 100도를 달성한 온도계가 보였다. 화씨를 몰라도 100도라는 충격적인 숫자는 여기가 덥다는 걸 알려주기에 충분했다. 곧이어 기념품점 옆에 있는 뷔페식 식당으로 자리를 옮겼다. 점심에도 딱히 배가 고프지 않아 비싼 값을 낸 것에 비해 샐러드와 음료수로만 배를 채웠다. 앉아서 채소를 질겅거리고 있는 와중 일하는 직원이 눈에 들어왔다. 꽤 젊은 나이로 보이는데 여기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여기서 일을 하려면 어디서 살아야 가능한건지, 여기서 자고 일하는 건지, 이들은 왜 여기서 일하는지 등 궁금해졌다. 이어서 접시에 음식을 담고 있던 단체 중년 관광객이 눈에 띄었다. 우리나라 산에 중장년이 가득한 것처럼 미국의 국립공원에도 나이든 분들이 꽤 오셨다. 그런데 이렇게 더운 날씨에 무리가 되지 않을까 하여 괜시리 걱정되었다. 밥을 다 먹고 가이드가 근처에 괜찮은 아이스크림을 팔고 있다고 소개했던 것이 떠올랐다. 밖으로 나가 아이스크림을 팔만한 곳을 찾아보았지만 너무 더운 나머지 열심히 찾아보지 않고 그만두었다. 다른 일행과 가이드가 밥을 다 먹고 나오자 밴을 열어주었다. 햇빛을 그대로 받아 달궈진 차 안에 불쾌하게 몸을 집어 넣었다. 해가 가장 강렬하게 비출 시간에 오후 일정이 시작되었다.
단테스 뷰에서 멀리서 바라보았던 배드워터로 가고 있었다. 점차 고도가 낮아지고 더워지는 것이 느껴졌다. 오른쪽 창으로는 축축한 땅이 보이더니 더 나아가자 물에 잠겨버렸다. 배드워터로 가니 말그대로 나빴다. 문을 여니 더운 공기가 확 빨려들어왔다. 그 순간 직감했다. 이건 나쁘다. 단테스 뷰와 상황을 동일했다. 햇볕이 내리쬐고 있었고 더운 바람이 불었다. 다만 햇볕은 아침 10시에서 오후 2시만큼 강해졌고, 더운 바람은 습기와 소금기로 무장한채 들이받았다. 바람에서 거대한 질감이 느껴졌다. 배드워터! 가까이 가지 않아도 여기가 어떤 곳인지 알 수 있었다. 차가 주차된 곳에서 계단을 따라 내려오면 소금 바닥을 따라 걷는다. 땅이 하얀 관계로 강력한 빛줄기가 땅에 흡수되지 못하고 몸으로 반사돼 들어왔다. 천연 소금 사우나였다. 바람은 호수 중앙을 향해 불었다. 우리는 물에 다가가기 위해 바람이 등을 떠미는 힘을 동력삼아 나아갔다. 물이 가까워지자 점차 더위가 가셨다. 아까의 열기는 소금 때문이었나보다. G는 바닥에 깔린 소금을 한 꼬집 집어들더니 이것이 과연 진짜 소금인지 물었다. 당연히 소금이지! 라고 대답하자 의구심이 들었다. 그래서 혹시 모르니 먹어보라 했다. G는 가루를 혀로 가져가더니 곧 얼굴이 일그러졌다. 완벽한 소금이었다. 나는 그를 믿을 수 없었다. 나도 깨끗한 부분을 골라 손으로 집어 입에 조심스레 가져갔다. 소금이 맞았다. 아무래도 소금을 먹어보고 싶었던 것 같다.
소금 호수에는 신발을 벗고 깊숙히 들어가 있는 사람들도 있었다. 우리는 아무런 대비를 하지 않아 물에 들어가진 못했다. 어디까지 갈 수 있을까 하고 축축한 소금을 위태롭게 밟으며 한 발씩 내딛었다. 소금은 지지력이 전혀 없어 밟는 즉시 푹 꺼졌고 딱 신발에 물이 차기 직전까지 잠겨버렸다. 결국 더 가는 건 무리라 판단하여 다시 돌아갔다. 등을 밀어주었던 바람은 이제 헤쳐나가야 할 장애물이 되었다. 그새 해가 더 강해진건지 얼굴이 화끈거려 선크림을 뚫고 살갗을 자극했다. 옆으로는 한국인 중년이 여럿이 빠르게 호수 근처로 다가가고 있었다. 미국에서 오랜만에 본 한국인이라 굉장히 반가웠다. G와 이야기하던 주제가 자칫 예민했더라면 민망했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들자 갑자기 말문이 막혔다. G도 마찬가지였다. 서로 간단한 심상을 영어로 주고 받으며 차로 나아갔다. 가이드는 일행 없이 혼자 온 남자와 대화를 주고 받으며 밴으로 가고 있었다. 차에 타기 전 가이드는 도로 건너 바위산을 바라보며 말했다. "저기 보면 해수면이 어딘지 알려주는 표지판이 있단다" 물론 영어로 말해주었다. 나는 찾지 못해서 사진으로 찍어놓고 나중에 찾아보겠다 생각하고 있었다. 카메라를 딱 켜는 순간 화면 너머로 'sea level'이라 써진 표지판을 발견했다. 아파트 6층 정도 되는 높이에 해수면이 있다는 것을 보았다. "해수면 밑에 있는 것도 일이구나"라고 속으로 생각했다.
밴 앞에 가니 주차장 한 가운데 한국어로 '해바라기 관광' 이라 적힌 새까만 관광버스 한 대가 서있었다. 이런 곳에 검은색 차를 타고 오면 무척이나 고생하겠다는 이야기를 하던 도중 발견했던지라 왠지 모르게 웃음이 터졌다. G도 같이 피식거리며 버스를 사진으로 남겨두었다. 그러나 웃을 상황이 아니었다. 우리 차량은 흰 밴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찜통이 되어 있었다. 안에 두고 갔던 생수병도 덩덜아 뜨거워져 갈증을 해소하는데 큰 도움이 되지 않았다. 더위는 사람을 쉽게 휘두를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우리는 갑자기 투어가 끝나길 바라고 있던 것이다. 아쉽게도 아직 들러야할 지점이 많이 남았다. 특별히 가이드 본인이 '가장 좋아하는' 지점 몇 군데 말이다.
우리는 차 안에서 개처럼 헥헥거렸다. 차 안에서 에어컨이 돌아가면서 공기를 내뱉는 소리가 들렸지만 히터라고 착각할 정도였다. 그러던 중 밴이 왔던 길이 아닌 바위 언덕으로 방향을 틀었다. 우리는 아직 투어가 끝나지 않았다는 사실에 절망했다. 차 두 대만 지나갈 수 있도록 골짜기를 최소한으로 깎여진 도로를 가다보니 밴이 양 옆으로 흔들렸다. 차가 덥고 흔들리는 짜증이 머리꼭대기까지 차올랐지만 내가 선택한 코스라 화를 낼 수 없었다. 이건 단순히 감각이 불러일으킨 생리현상이자 유도된 감정이라고 자신을 설득하여 참아냈다. 다음 목적지는 'Artist's Palettes'[예술가의 팔레트]로, 이름에서 유추할 수 있듯 팔레트처럼 다양한 색상의 암석을 볼 수 있다. 말 많던 우리의 가이드의 말에 따르면, 데스밸리에 있는 대부분의 지형은 이곳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한다. 지층이 기울어진 채로 물과 바람에 깍여 나가 생겨나는 구조인데, 이곳은 특별히 지층마다 다양한 색의 암석이 나타나 알록달록하다. 사진만 보면 색에 시선이 가 크기를 가늠하기 어렵다. 팔레트 위로 걸어가는 사람을 발견하면 그제서야 이 예술가가 얼마나 거대한지 알게 된다.
가이드는 여기서 10분만 머무르다 가겠다 했다. 그러자 옆에 있던 민머리의 일행이 걸어갔다 와도 되는지 물었다. 가이드는 시계를 잠시 보더니 시간을 5분 늘려준 후 허락했다. 우리는 그 말을 듣고 민머리 남자를 뒤따라 갔다. 형형색색의 봉우리 위로 올라가보니 너무나 인위적으로 보였다. 자연적이라 느껴지지 않았다. 지구에 색을 칠하기 위해 가루 염료를 잠시 풀어다 놓은 것이 아닐가 할 정도로 언덕마다 각자의 신비로운 색을 풍기고 있었다. 혹은 공사장 흙더미라고 하면 설득력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미국의 거대한 자본력으로 조성한 인공 흙무더기라는 음모론도 떠올려보았다. 뒤따라 갔던 남성이 저 멀리 우리를 보더니 사진을 찍어달라 부탁했다. 핸드폰이 샤오미인 것을 보아하니 중국에서 오지 않았을까 하고 생각했다. 그에게 사진을 찍어준 후에는 답례로 그가 우리를 찍어주었다. 그렇게 훈훈한 장면이 오가고 가이드가 말한 시간에 맞추기 위해 올라온 언덕을 뛰어내려 갔다. 곳곳이 꽤 가파르고 디딜 곳 없이 미끄러워 무작정 빠르게 내려갈 수 없었다. G와 누가 더 빨리 가나 경쟁이 붙은 덕분에 제 시간에 돌아올 수 있었다. 뛰느라 다시 몸이 뜨거워진 채로 차에 올라탔다. 차는 여전히 더웠고 우리는 실수했다는 것을 바로 알아차렸다.
다행히 마지막 스팟만을 남겨둔 상태였다. 이 사실을 모를 때 차가 구불구불한 길로 나가더니 분명 식당이 있던 위치보다 밖으로 나가는 것을 보고 이제 끝났나 싶었다. 나가는 길에 마지막을 장식할 장소가 남아 있었다. 언덕 아래에 차를 세운 후 내려 길을 따라 올라갔다. 도중에 내려오는 한 사람이 '최강한화'라 적히고 구석구석 싸인이 그려진 옷을 입고 내려오고 있었다. 다시 외지에서 한국인을 만나 속으로 반가워했다. G는 야구에 관심이 있어 싸인을 보고는 누구의 것인지 알아보았다. 나는 야구에는 별 간심이 없어 그저 이런 곳에도 야구 유니폼을 입고 오기도 하는구나 하고 바라보았다. 아직 다 올라가지 않았지만 옆으로 보이는 대지를 보고 곧 어떤 풍경을 만나게 될지 살짝 힌트를 얻었다. 자브리스키 포인트는 융털 주름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심하게 주름진 땅으로 뒤덮여 있다. 특유의 질감 덕분에 일출이나 일몰처럼 빛이 땅을 기울여 비추는 모습에서 특히 신비롭게 반짝인다. 우리는 해가 지기 전 라스베이가스에 도착하는 일정이라 아쉽게도 붉은 음영이 칠해진 자브리스키 포인트를 확인하진 못했다. 그럼에도 물을 바싹 말리는 빛 아래에 놓여진 풍경을 보면 척박한 외계행성이라면 이렇게 생기지 않았을까 하고 넋놓고 바라보게 된다. 하늘은 구름 한 점 없다. 땅은 찡그린 이마처럼 쭈글쭈글하다. 보고만 있어도 저 안으로 뛰어들고 싶다는 속삭임이 들렸다. 데스밸리의 마지막 지점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나니 발걸음이 더욱 떨어지지 않았다. 사람의 시야로도 다 담기지 않는 풍경을 사진 속에 담아보려 애썼지만 허탕이었다. 가이드가 찍어주는 마지만 인증 사진으로 만족했다. 내려가는 길에 도로를 보니 데스 밸리의 중앙으로 기울어져 있었다. G에게 말하니 곧바로 눈치채지 못했지만 이리저리 고개를 돌려보더니 바로 알아챘다. 우리는 해수면보다 낮은 지점을 향해 기울어지던 도로를 거슬러 도시로 돌아갔다.
밴 내부에 가득찼던 데스 밸리의 열기는 어느새 빠져나가고 없었다. 가이드는 가는 길에 모래 섞인 용오름을 보고 가끔씩 공기의 흐름이 불안정할 때 나타나는 현상이라며 설명해주고 있었다. 오는 길에 보았던 들꽃을 바라보았다. 들판에는 얕지만 두껍게 깔린 노란 빛깔 혹은 보라 군집이 번갈아 지나갔다. 데스 밸리라는 이름은 인간이 붙였다. 금을 찾으러 왔던 사람들이 이곳에 들어왔다 죽다 살아나간 경험을 바탕으로 이곳에 '죽음'이라는 최악의 칭호를 붙였다. 하지만 꽃이 당당히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들판은 사람에게 위험했다 행패를 부리기에 너무나 평화로웠다. 소란스러운 인간을 조용히 침묵하게 하여 이곳에 동화시키려면 '죽음'은 당연한 일이다.
돌아가는 길에 G군이 게임을 하지 않았다. 질려버렸다는 이유에서였다. 그러더니 갤러리로 들어가 수천 개가 쌓인 스크린샷을 들여다 보기 시작했다. 핸드폰으로 서핑할 때 두고 보고 싶은 글을 보면 항상 찍어둔다고 한다. 평소 습관이 인터넷이 되지 않는 오지에서 빛을 발했다. 나는 그의 핸드폰을 같이 들여다보며 어떤 취향인지 맞춰보았다. 때때로 온전한 내용이 보이지 않아 알 수 없는 사진도 있었다. 이를 보고서 원본이 무엇이었을지 이런 저런 토론을 하다보니 시간이 금세 흘렀다. 어느덧 땅 위에서 우리가 묵었던 스트래토스피어 호텔의 전망대가 삐죽 튀어나왔다. 그대로 쭉 달려 전날 캐니언 투어를 마치고 내렸던 동일한 위치에서 우리를 내려주었다. 우리는 어제 고민했던 팁 문제를 다시 마주했다. 이번에는 비용을 조금 줄여 여행 비용의 10%가 안되지만 우리 입장에서 거금이었던 40달러를 건넸다. 그는 다른 일행이 내린 후 더러워진 밴을 정리하다 우리가 내민 팁을 지폐를 발견했다. 예상하지 못했다는 듯 눈썹이 올라갔다. 미소를 지으며 우리에게 감사의 악수를 청했다. 악수에 응하여 힘찬 인사로 데스 밸리 투어를 마쳤다.
G군은 라스베이가스로 올 때 리버사이드에서 버스를 예약해 왔다. 우리가 라스베이가스에서 리버사이드로 가는 방법도 동일했다. G가 미리 예약해둔 버스를 타고 가야 했다. 늦은 저녁에 타야해 아직 시간이 남았다. 우리는 버스를 탈 위치를 확인하고 근처에서 저녁을 먹기로 했다. 중동식 버거를 파는 식당이 있다 하여 그곳으로 목적지를 선택하고 우버를 불렀다. 식당에 도착한 후 큰 일이 났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메뉴를 주문한 후 지갑을 꺼냈는데 지퍼가 열려있었다. 불안한 마음에 지갑을 살펴보니 사용하던 카드가 사라져 있었다. 분명 점심을 결제할 때까지만 해도 있었는데 어디서 떨어뜨린 것인지 알 수 없었다. 갑작스레 계산을 못하게 되자 G가 대신 결제하고 자리에 앉았다. 나는 혹시 다른 주머니에 있지 않을까 하고 옷을 샅샅이 찾았다. 가방까지 뒤져보았지만 카지노에서 얻은 0.01달러 바우처만 여러 장 나올 뿐이었다. 카드를 잃어버린 후 따로 결제된 건 없는지 핸드폰으로 결제 내역을 확인해보자 고액의 결제 알림이 최근 건에서 발견되었다. 급격히 흥분하려던 와중에 G가 어제 결제한 식당일지도 모른다면서 식당 이름을 찾아보니 그의 말이 맞았다. 미국의 결제는 일시적인 결제 이후 팁을 포함한 최종 결제가 되는 방식이라 한 템포 늦게 돈이 빠져나가 생긴 오해였다. 잃어버린 카드는 토스 카드로 어플에서 빠르게 정지시킬 수 있었다. 이후로 어머니가 미래를 내다보고서 비상물품에 챙겨주었던 카드로 결제를 대신 했다. 해외 결제 수수료가 아까웠지만 내가 칠칠지못한 값을 치룬 것이었다.
저녁을 먹고 시간이 거의 다 되자 천천히 버스 근처로 이동했다. G는 걷던 도중 주위를 보더니 얼마 전 일이 생각났다. 그는 지인과 함께 라스베이가스를 왔는데, 그때도 버스를 예약하여 돌아가야 했다. 그런데 버스가 급작스럽게 취소되었다. 버스가 늦는 것도 아니고 아예 오지 않아 결국 다음 날까지 기다려 타야 했다. 그 과정에서 숙소 없이 노숙을 해야 했는데, 아무 호텔이나 들어가 겨우 노숙을 하고 나왔다고 한다. 이번 버스도 그럴 가능성이 있다며 치를 떠는 G군이었지만 근처에 노숙했던 장소가 있으니 잠시 들렀다 가자 했다. 나는 G와 달리 무거운 배낭과 캐리어를 들고 있어 이동이 불편했다. 카드까지 잃어버려 마음이 심란한 상태라 미리 도착해 쉬고 싶었지만 그가 끈질지게 설득하여 결국 따라갔다. 그는 미안한 마음에 내 캐리어를 대신 끌었다. 그는 거의 헤메지 않고 호텔을 찾아 들어갔다. 호텔 로비에 위치한 카지노까지는 확실했지만, 구체적인 장소를 차기 어려워 직원에게 위치를 물어보고서 갈피를 잡았다. 결국 그는 밤새 앉아 있엇던 의자를 발견했다. 거기에 앉아 바로 앞 기둥에 붙여진 한 여성의 그림을 바라보며 이분과 밤새 같이 있었다고 하소연했다. 오는데 불편했지만 그가 기뻐하는 모습을 보니 오길 잘한 것 같았다. 한편으로는 오늘도 비슷한 일이 일어날까 괜히 무서워졌다.
이름모를 호텔에서 나오자 내 관심을 끄는 것이 있었다. 라스베이가스에 있는 많은 호텔 중 'Wynn Hotel'은 내 눈에 특별히 꽂혔다. 어린 시절 가장 동경했던 브랜드 중 하나였다. 호텔은 좋아하던 건 아니었다. 마술에 흥미가 있었고 마술 도구에서 빼놓을 수 없는 트럼프 카드에도 관심을 가졌다. 트럼프 카드는 다양한 디자인과 의미를 가지고 출시하는데, 그 중 카지노에서 사용하는 카드도 있었다. 특히 윈 호텔에서 사용했던 카드는 특유의 깔끔한 디자인으로 인기였다. 하지만 당시에 카드 생산공장과 디자인이 바뀌었던지라 높은 가격으로 거래되었고, 그 카드는 어린이였던 나에게 턱없이 비쌌다. 결국 Wynn 호텔의 로고인 '모자'가 그려진 카드를 갖지 못한 채로 마술과 카드에 대한 관심은 사그라졌다. 한참이 지나 어른이 되고 완전히 까먹은 줄 알았던 세계가 떠올랐다. 내가 한 때 열정을 가졌던 분야이자 한계를 일찍이 깨닫고 포기해야만 했던 세계였다. 작고 둔한 손으로 연습은 한계에 도달했다. 이후 복잡한 수학적 원리를 통해 진행하는 마술을 익혀 탈피해보고자 했다. 그러나 영재고에 진학하게 되어 마술을 보면 원리를 알아내기 위해 열중하는 친구를 보고 절망했다. 앞으로 마술에 손 댈일은 없겠지 하며 서랍장 가득히 채워둔 카드는 들여다보지 않았다. 커튼 뒤에 숨겨져 있던 과거를 모처럼 발견하자 심장이 뛰었다. 그때의 흥분이 현재로 슬쩍 흘러들어왔다. 마술에 대한 감정이 여행에 대한 감정으로 변모했다. 방금 전 있었던 불행은 사소해지고 새로운 의지가 타올랐다.
고모에게 여행 계획을 얘기했을 때 가장 걱정하던 부분이 버스를 포함한 대중교통이었다. 버스나 지하철은 많은 사람이 모여들어 위험했기 때문이었다. G군 또한 동의하지만 그리 위험하지 않다고 안심시켜주었다. 대신 그의 경험 상으로 제시간에 오는 일은 기대할 수 없었다. 이런 저런 악명을 떨치는 버스를 무사히 탈 수 있을지 걱정했지만, 버스는 안내된 위치에서 대기하고 있었다. 문 앞에서 기사님이 표를 검사한 후 짐을 넣고 탑승하면 되었다. 버스 내부는 평범했다. 표에 적혀진 좌석을 찾아 들어갔는데 누군가 앉아 있었다. 그것도 두 자리를 한 명이 차지하고 있었다. 나는 당황스러운 눈빛으로 G를 바라보았는데 원래 그렇다면서 정해진 자리에 앉지 않는 경우가 대다수라고 설명했다. 우리는 빈 두 좌석을 찾아 앉았다. 앞좌석보다 뒷좌석에 이른바 빌런이라 할 만한 이들이 많이 분포했다. 우리가 앉은 자리는 뒤쪽과 가까워 온 방향에서 고통받아야 했다. 대부분 이어폰을 사용하지 않았다. 버스 소음을 견뎌낼 수 있도록 볼륨은 거의 최대로 키워놓았고 그 상태로 드라마나 영화를 보았다. 그게 아니라면 큰 소리로 통화를 했는데 이 역시 스피커폰으로 소리를 크게 들으며 진행되었기에 소음이 두 배로 컸다. 뒤에서 스페인어로 쫑알대는 여자가, 앞에서 후드식 영어로 쓰잘데기없는 말이나 해대는 남자. 옆에는 총소리가 끊이질 않는 영상을 킨 채로 잠든 노인 둘, 그들 앞뒤에서도 비슷한 수준의 영화를 보고 있었다.
에어팟은 미리 충전해도지 않아 배터리가 다하고 말았다. 귀를 막고 가도 시원찮을 판에 고막은 그대로 밖에 노출됐다. 지금 이 순간을 무사히 넘길 수 있을지 장담하기 어려웠다. 누구나 한 번쯤 눈 앞에서 일어나는 만행을 보고 몸이 움찔거리는 충동을 느껴본 적 있을 것이다. 결국 참아내더라도 그 순간만큼은 감정에 휩싸여 행동할지도 몰라 괜시리 힘을 꽉 준다. 혹시라도 덤볐다가 뒤없는 괴인에게 쳐맞을 수도 있으니 말이다. 지하철 1호선 빌런을 마주치면 어떤 감정일지 몰랐는데 이번 기회에 알게 되었다. 그러던 도중 최근에 보았던 영상의 발상을 적용해보면 어떨지 G에게 물었다. 유튜브 '스낵타운'의 영상 중 1호선에 타자 빌런들의 행동에 감화되어 본성이 튀어나왔다는 내용이 있다. 해당 영상에서 코미디언 이제규는 자신도 모르게 재즈 스캣을 흥얼거렸다고 한다. 그런 마음가짐, 나도 본능에 몸을 맡기고 그들처럼 행동하는 편도 고려해볼만 했다. 그들이 하는 일은 나도 해도 될지도 몰랐다. 나는 배터리가 다 되어 비실거리던 에어팟을 과감히 충전기에 연결했다. 그러고서는 보고 있던 유튜브 영상의 볼륨을 점차 올려갔다. 버스가 도로를 달리며 바닥을 긁는 소리, 주위에서 나를 압도하던 잡음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소리를 최대로 키우자 나는 그들과 동등해졌다. 이어폰 없이도 내 귀에 소리가 꽂혔다. 뒤로 살짝 의자를 기울인 후 편안한 자세로 영상을 시청했다. 이제는 통제못할까 두려운 충동따위는 느끼지 않았다. 시끄러운 배경음 속에서 핸드폰이 나에게 전해주는 정보는 아무 문제 없이 나에게 도달했다. 마음이 편안해졌다.
그렇게 1시간을 하니 볼 거리도 떨어졌고, 에어팟도 다시 충전되었다. G도 지루했는지 나를 바라보았다. 다시 대화하기 시작했다. 버스에 있던 빌런을 차례로 흉보기 시작했다. 외국에서 한국어를 사용해봤자 알아듣을 수 있는 사람들이 거의 없었기에 가능했다. 만약 가들이 한국어를 이해했다면 우리가 얌전히 말하고 있을리가 없었다. 한두 마디만 말해도 곧장 자신을 욕하는구나 하고서 매타작을 선사했을 것이다.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는 것을 보고는 편히 말할 수 있었다. 10시 반쯤 되자 대화가 슬슬 마무리되고 에어팟을 다시 귀에 끼웠다. 버스는 새벽 12시 반이 넘어서 LA에 도착할 예정이었다. 라스베이가스에서 리버사이드로 곧장 가는 편이 더 빠르지만 아쉽게도 버스 푯값은 LA에서 환승한 후 다시 리버사이드로 가는 편이 훨씬 저렴했다고 한다. 따라서 쓸데없는 동선 낭비가 예정되어 있었고 G군의 기숙사 도착은 2시 반이었다.
노래를 듣다가 잠들었는데 G가 갑자기 나를 불렀다. 에어팟의 노이즈캔슬링과 재생되는 노래가 G군의 말을 흐렸다. 귀에서 기기를 뺀 후 그의 말을 들어보니 중간에 내리자는 것이었다. 영문을 알 수 없었지만 곧 정차하기 때문에 빠르게 결정을 내려야 했다. 지금 내리면 집에 더 빨리 갈 수 있다는 말을 듣고서는 더 생각하지 않고 그대로 내렸다. 버스에서 내린 사람은 우리를 포함해 단 넷이었다. 깜깜한 길바닥에 덩그러니 놓인 채 그의 설명을 들었다. 지금 내린 곳은 LA와 리버사이드 사이 어딘가 - G는 여기가 어딘자 정확히 알고 있었지만 나는 기억나지 않는다 - 이고, 여기서 우버를 타고 집에 가면 값을 꽤 지불해야하는 대신 12시 전에 집에 도착할 수 있었다. 잠시 생각해보니 어차피 여행 왔으니 돈보다 시간을 아끼는 편이 현명했다. 좋은 선택을 했다 생각하는 동안 G는 우버를 불렀다. 기다리는 동안 G가 화장실을 참지 못하겠어 하다가 결국은 이성의 끈을 잡아 우버에 탑승했다. 우리는 숙소에 가서 뭘 할지 생각해보았다. 그는 일단 화장실부터 간 다음 생각하겠다 했다. 근데 나도 만만치 않게 참고 있었다. G군을 보니 나보다 급해 보여 화장실은 양보하기로 했다. 어쩌다가 버스가 거기서 내렸는지 의문 투성이라는 이야기를 하다보니 그가 알아볼 수 있는 길까지 다다랐다. 우버에서 내려 기숙사 건물을 둘러싼 철울타리 앞에 섰다. G는 능숙하게 가방을 뒤적거려 열쇠를 꺼냈다. 조심스레 철문을 당겨 들어가고 뒤이어 나는 익숙치 않은 무게의 문과 손을 맞댔다. 문 옆 바로 오른쪽으로 뚫린 건물 안 복도를 거침없이 걸어가 자신의 방 앞에서 멈췄다. 다시 열쇠를 구멍에 넣어 이리저리 돌리더니 방문이 열렸다. 긴 하루가 끝날 조짐이 보이고 있었다.
G는 곧바로 화장실로 달려갔다. 나도 조금만 참으면 되기에 그를 먼저 보내고 짐을 거실 구석에 던졌다. 그의 숙소는 1인실임에도 문 앞에 바로 놓인 주방과 거실, 안으로 거실만한 방과 개인 화장실이 있었다. 도대체 월세가 얼마일까 하는 생각이 먼저 드는 것을 보고는 나도 이제 대학생이 다 되었구나 했다. G가 일을 해결하고 나오고 내가 들어갔다. 나는 간단한 세안까지 같이 하고 나왔다. 그는 벌써 환복한 채 방을 돌아다녔다. 바지는 침대 앞에 허물처럼 다리 구멍을 남긴채 놓여져 있었다. 내가 옷을 갈아 입는 사이 G는 요리를 해주겠다며 주방으로 갔다. 두 가지 선택지로 라면과 소세지 볶음이 있었다. 나는 라면을 골랐지만 어째서인지 그는 소세지 볶음을 해주기로 했다. 냉장고를 열어서 필요한 재료를 꺼내더니 익숙한듯 칼을 들었다. 도마 위에서 소세지와 양파, 양패추를 차례로 리드미컬하게 토막냈다. 나는 가만히 있기에는 몸이 근질거려 설거지를 했다. 여느 학생의 방이 그렇듯 작은 싱크대 위에 후라이팬과 그릇이 담겨있었다. 닦은 그릇은 어디에 놓냐는 말에 내 발 근처를 가리키며 식기세척기에 넣어두라고 했다. 미국의 기숙사는 정말 어메이징했다. 심지어 음식물 쓰레기는 디스포저라는 기기로 싱크대에 밀어넣으면 갈아서 처리할 수 있었다. 우리나라는 이는 불법이다.
나는 설거지를 마치고 거실에 놓인 의자에 앉았다. G는 후라이팬 위에 재료를 넣고 케찹을 넣어 버무리고 있었다. 마무리되자 어지러진 책상을 간단히 정리하고는 상을 차렸다. 소세지 볶음이 올려진 접시를 한 가운데 놓고 소파와 의자가 마주보고 앉아 있었다. 그 앞에는 각자 사용할 포크가 한 개씩, 추가로 곁들이기 위해 냉장고에서 갓 꺼낸 작은 삿포로 맥주 한 캔 씩이 놓여졌다. G는 미국에서 술을 살 수 없는 나이였지만 그의 여자친구를 통해 술을 공수받아왔다. 아마 연애에 술 구입을 위해 만난 비중이 꽤 클 것이라 밝힌 적이 있었다. 그가 걸리적거리는 머리카락을 불평하자 한국에서 챙겨온 머리띠를 건네주었다. 그는 예상치못하게 소소하고 기능적인 선물에 꽤나 만족했다. 숨을 고른 후 맥주 캔을 따고 요리를 맛보았다. 지금껏 돈주고 먹었던 어느 요리보다 편안했다. 따듯한 열기로 덮혀진 케찹더미 속 소세지는 육감적이었고, 익숙한 인스턴트 향기로부터 고급진 음식에서 찾아볼 수 없는 진한 피가 흘렀다. 입에서 감당할 수 없는 열이 뿜어질 때 시원한 맥주가 투입되면 어떤 의미로든 입 안이 중화되었다. 하루를 마무리하는 음식으로는 최적이었다.
G와 내일의 일정을 확인한 후 침대에 누웠다. 오후 3시에 샌디에이고로 가는 버스를 타야했는데, 그 전에 점심을 먹는 것 외에는 달리 할 일 이없었다. 그 말인 즉슨, 드디어 늦잠이 가능했다! 아침이 두렵지 않았기 때문에 실컷 잠을 설쳤다. 캐리어에서 지금껏 힘겹게 들고 왔던 이불을 꺼냈다. 방에는 일반적인 침대 하나와 공기 매트처럼 생긴 거대한 침대라 할 수 있는 것이 하나 있었다. G가 침대에, 나는 공기 침대 위에 누웠다. 우리는 마음껏 어두운 방에서 핸드폰을 했다. 서로 딱히 말을 하지 않았다. 4년 전에도 우리는 한 방에서 같은 위치의 침대에서 잤었다. 장면이 과거와 겹쳐지면서 점차 잠에 들었다. 참, 늦잠을 위해 알람은 빼놓지 않고 꺼 두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