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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지호 Jun 03. 2024

두 유 노우 하성 킴?

미서부 여행 8일차

 아침, 아침, 아침. 어느덧 여덟 번째 아침이었다. 평소대로면 알람이 울려 일어나야 했지만 그렇지 못했다. 성공적으로 늦잠을 잤냐 물으면 그것 또한 아니었다. 알람을 듣고 아침에 일어나는 패턴이 몸에 배어 저절로 6시에 눈이 뜨였다. 깜짝 놀라 핸드폰을 들고 시간을 확인했다. 아직 6시도 안된 5시 57분이었다. 아직 잘 시간이 꽤 남아 다시 이불을 덮었다. 하지만 잠이 오지 않았다. 정신과 몸은 잘 준비를 마쳤다. 그런데 무의식이 자면 안된다고 외쳤다. 나는 왜냐고 물었는데, 곧바로 핸드폰이 번쩍이더니 유튜브 뮤직이 실행되었다. 어젯밤 알람을 끈 것까지는 괜찮았지만 6시 1분에 켜지는 노래는 꺼두지 않았다. 무작위 음악이 켜지도록 설정되어 있었는데, 전날 버스를 타고 올 때 들었던 빈지노 <Always Awake>가 울렸다. 상황에 맞는 음악이 흘러나오니 어디선가 감시당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두리번거렸다. 일시정지를 해도 되었지만 일일이 볼륨키를 연타하여 음량을 줄였다. 소리가 들리지 않는지 핸드폰을 귀로 가져가 보았다. 확인한 후 옆에 던져놓은 후 다시 눈을 감았다.


 다시 정신이 돌아왔을 때는 얼마 지나지 않은 1시간 뒤였다. G는 여전히 잘 자고 있었다. 둘이 누워있던 방에는 창문도 없었고 방문도 닫혀있어 깜깜했다. 아마 지금쯤이라면 해가 떠있어 밝았겠지만 확인할 수 없었다. 몸을 살짝 돌려 옆으로 누웠다. 시간을 확인하느라 핸드폰이 얼굴 앞에 놓여 있었다. 습관적으로 전원을 켜고 인스타그램을 찾았다. 미국의 아침은 한국의 자정, 스토리를 넘기고 다시 나왔다. 유튜브에 들어가니 LA공항에서 보다 말았던 진화생물학을 주제로 한 영상을 발견할 수 있었다. 라스베이가스로 가기 위해 보딩 게이트 앞에서 보고 있었는데 조느라 그만 내용이 기억나지 않았다. 거북이의 등껍질이 어떤 진화과정을 거쳐 만들어진 형질인지 설명하는 영상이었다. 분명 등딱지가 먼저인가 아니면 배딱지가 먼저인가 하며 흥미로운 의문을 던져주었던건 확실히 기억났다. 그러나 어떻게 결론지어졌는지는 확인하지 못했다. 나는 해당 영상이 떠있는 화면을 눌러 영상을 재생했다. G군이 그러던 것 처럼 잠이 깼지만 일어나지 않은 채 핸드폰을 보았다. 이어지는 다른 주제의 영상도 몇 편 본 후 침대에서 일어났다. 어느덧 G가 일어나도 괜찮은 시간이 되었을 때까지 기다렸다. 아무에게도 밝히지 않는 사소한 배려라 할 수 있다.


 거실로 가서 소파 옆에 놓여진 짐을 확인했다. 밤에 덮고 자려고 애착이불을 꺼내놓았던지라 캐리어는 열려있었다. 중학교부터 사용했던 대용량 백팩은 아직 손대지 않은 상태였다. 가방을 먼저 열어 부피가 큰 담요와 옷가지를 덜어냈다. 캐리어에 담기는 편이 나아보이는 물품을 옮긴 후 라스베이가스에서 잃어버렸다고 생각한 카드가 혹시 있는지 마저 찾아보았다. 아쉽게도 카드는 여전히 나타나지 않았다. 마지막으로 숄더백에 담긴 물품을 모두 꺼내어 확인했지만 신분증이 담긴 지갑만 있었다. 그 외에 필름카메라가 있는 것을 보고 찍을 수 있는 필름이 몇 장이나 남았는지 살펴보았다. 벌써 한 통하고도 스무 장을 넘게 찍은 상태였다. 한국에서 필름은 흑백 두 롤과 컬러 한 롤, 총 세 롤이었다. 무슨 필름을 살지 출국 전날 급하게 알아보느라 정보가 별로 없었다. 문득 과 선배 중 사진 동아리에 소속되어있는 사람이 떠올라 연락하여 추천을 받았다. 요즘은 돈이 없어 포마팬 200을 직접 감아 - 기다란 영화용 필름을 구매한 후 직접 잘라 필름 한 롤을 만드는 수작업 -  쓰지만 만약 생각이 있다면 로모그래프 110을 추천한다 했다. 얼마나 비싸겠나 하고 보니 한 롤에 삼 만원이 넘는 가격이었다. 나중에 찾아보니 전용 카메라도 구입해야 해서 포기했었다. 결국 선배가 쓰고 있다던 포마팬 400, 이름이 익숙한 코닥 200과 일포드 델타 400을 골랐다. 원래대로라면 사흘에 한 롤씩 사용할 계획이라 네 종류를 구입했는데 그 중 하나가 중형 필름이라 사용할 수 없어 나흘에 한 롤로 바꿔야 했다.


 귀중품을 탁자 위에 전부 올려놓고 잠깐 바라보았다. 이렇게 물건이 많은데 카드가 사라졌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 그래도 카드만 잃어버린 건 다행이었다. 성격이 워낙 칠칠맞아 어딜 가던지 항상 하나씩 놓고오는 경우가 많았다. 카페에 갔다가 충전기를 놔두고 오기도 하고 엠티에서 밤을 새고 안경을 쓰지 않아 까막눈으로 다니기도 했다. 이번에도 예외는 아니었다. 그나마 핸드폰이나 카메라, 여권이 분실물이었다면 지금처럼 심란하기만 하는 건 사치였을지도 몰랐다. 부정적인 생각을 떨쳐내기 위해 씻기로 했다. G가 자고 있는 방으로 들어가 바로 오른편으로 꺾어 화장실로 들어갔다. 아직 그가 조용했기 때문에 최대한 조심해서 씻었다. 나와서 캐리어에서 오늘 입을만한 옷을 골랐다. 리버사이드 뿐만 아니라 LA가 예상외로 온도가 높아 챙겨온 반바지 대다수는 후보에서 제외되었다. 결국 벌써 3일째 입는 회색 와이드 청바지를 펼쳐들어 팡 소리가 나도록 털었다. 혹시 얼룩이나 헤진 곳이 있는지 살펴보고서는 멀쩡한 상태라 바로 입었다. 윗옷도 골라 입은 후 소파에 누워서 다시 핸드폰을 보았다. 그 사이 G가 문을 열고 나왔다. 내가 안에서 자지 않고 왜 소파에 누워있는 건지 의아한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내가 안에서 자지 않았다고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왜 편한 침대를 놔두고 소파를 쓰냐는 느낌이었다. 나는 그가 피곤해 보여 지금 시간이 11시이니 더 자고 1시에 점심을 먹으러 나가자고 말했다. G는 잠이 깼다며 식탁 위에 놓인 노트북을 펼쳤다. 내일 샌디에이고 일정을 위해 준비해야할 일들이 몇 가지 남아있었다. 그는 우리가 다닐 장소를 확인한 후 중간 지점을 택해 이틀만큼 예약했다. 또한 내일 아침 가야할 소크 연구소(Salk Institute for Biological Studies) 투어를 찾아보았다. 이전에 확인했을 때 이른 아침 시간대가 남아있었지만 미리 구입하지 않은 탓에 점심에 가까운 시간대만 선택가능했다. 그래도 딱 2자리가 남아 천운이었다.


 우리는 12시쯤 되자 점심을 먹기로 했다. 나가기 귀찮아 숙소에 먹을 것이 없냐 했지만 온김에 미국 대학의 학식을 먹어보자는 의견에 설득되었다. 미국의 학식은 특정 가게가 들어와 장사하는 방식이라 급식과는 다른 모습이다. 가장 대표적인 식당이 바로 ‘판다 익스프레스’라는 중식당이었다. 흔히 판다라 말하는데 G의 어머니가 미국에서 유학생활을 하는 동안에도 애용했다고 할 정도로 미국의 대표 가성비 좋은 식당이었다. 점심을 먹기 위해선 일단 대학교로 가야 했다. 묵었던 숙소는 학생이 사용하는 기숙사가 모여있는 건물 단지였다. 학교로 가는 길에는 작은 풀밭이 있는 공원과 비슷한 학생용 숙소가 이어졌다. 계속 직진해서 가다보니 미식축구장과 소프트볼 경기장이 학교의 맨 앞으로 마중 나와있었다. 점심 시간이라 아무도 없었는데 아침에 오면 학생들이 연습하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고 한다. 운동하는 학생 대신 주위에서 학교로 걸어가는 수가 많았다. 우리처럼 아무런 가방도 걸치지 않고 가는 사람은 없었다. 몇몇은 도로와 인도를 넘나들며 킥보드나 스케이트보드를 타고 우리를 앞질러 가기도 했다. 미국도 한국의 여느 대학처럼 학생이 풍기는 젊은 에너지가 넘쳤고, 곧 수업을 들어야 한다는 생각에 잠겨 멍한 표정을 짓고 있는 것까지 동일했다.



 학교로 들어가 기둥에 붙은 학생회장 투표 포스터를 지나쳐 식당이 있는 건물로 향했다. G는 앞 사람이 잡아준 문에 영어로 감사인사를 건네고 내가 들어갈 수 있도록 문을 잡아주었다. 나도 자연스럽게 땡큐를 건넸다. 안에는 학생으로 가득차 있었다. 판다에서 주문할 때 기본으로 시킬 탄수화물 베이스 - 면과 밥 몇 종류 중 고를 수 있었다 - 위에 메인 반찬을 두 개 골라 말하면 되었다. 처음 해보는 주문이었지만 첫 날 치폴레를 주문하는 방식과 크게 다르지 않아 시도하는 건 그리 어렵지 않았다. 메뉴판에 써 있는 영어 중 먹어보고 싶은 것으로 골라 동양인의 어눌한 발음으로 점원에게 전달했다. 점원은 점차 왼쪽으로 걸어가면서 내가 말한 음식을 차례로 담아주었다. 두 손바닥만한 종이 상자에 담겨진 음식을 들고 계산대에서 결제까지 마쳤다. 카드를 잃어버린 후 어머니의 카드로 하는 첫 결제였다. G가 음료수를 시킬지 고민했지만, 둘이서 하나를 시켜 먹기로 했다. 왜냐면 한 번 음료수를 사면 무한정 리필이 가능했기 때문이었다.


 우리는 밖으로 나와 남아 있는 자리에 앉았다. 계산을 마치고 건네준 포춘쿠키를 열어보았는데 지극히 평범한 이야기가 나와 마음에 담아두지는 않았다. 주위로는 활발히 대화를 나누는 다양한 인종의 학생들이 눈에 띄었다. 방금 전 점원에게 건넸던 어눌한 영어가 그다지 신경쓸만한 일이 아니라고 생각되었다.  야외 좌석들 사이로 분주히 움직이는 흐름이 끊임없이 계속되었다. 멀리서 밴드 음악으로 추정되는 공연 소리가 들려왔다. 건너편 두 테이블 옆은 인상이 좋아보이는 남녀가 앉아 있는 학생에게 아는 체를 하고 말을 걸고 있었다. G는 그들이 종교 포교 활동일 것이라 말했다. 마침 1시를 알리는 종이 울렸다. 정각마다 울리는 종은 매 시마다 다른 패턴으로 울린다고 그가 설명해주었다. 본격적으로 포크를 들고 음식을 먹어보았다. 내가 시킨 것은 갈색 밥에 버섯요리와 양념치킨 반찬이었다. 중국음식 특유의 튀김과 향신료가 심하지 않게 느껴졌다. 미국은 중국을 그렇게 싫다고 하면서 사소한 부분에서는 점령당한 것 같았다. 주위로는 G와 나는 밥을 먹고 무엇을 할지 이야기했다. 3시까지 버스를 타러 다시 학교 방향으로 와야했다. 걸어서 넉넉히 20분은 걸리니 2시 반에는 나오기로 했다. 다 먹고 남은 쓰레기는 분리수거없이 쓰레기통에 던져넣었다. 그가 가기 전에 음료수를 리필하겠다고 말했다. 그 모습을 보고 혹시 컵을 며칠동안 계속 사용하는 일도 가능하냐고 물었다. 나라면 충분히 그랬을 것 같았다. 그러나 그런 경우는 본 적 없다고 답했다. 그는 집에 가는 길에 레몬에이드를 가득 채워 돌아가는 것으로 만족했다.


 숙소로 돌아가 소파에 털썩 앉았다. 남은 시간이 1시간 남짓 되었다. 그동안 각자 조용한 휴식시간을 보냈다. 배가 부르자 곧장 졸음이 몰려왔다. 만약 잠들었다가 버스를 놓칠 수도 있으니 마음놓고 잠들지 못했다. 그러나 생리현상인지라 어쩔 수 없이 눈이 감겼다. G군이 나를 깨웠을 때는 이미 2시 30분이 넘어있었다. 그는 넉넉잡아 30분 출발로 잡았으니 괜찮다며 나를 안심시켰다. 재빨리 일어나 1박 2일 분량의 짐을 챙겼다. 총 일정은 2박이지만 아침 일찍 돌아오는 일정이므로 꽉 채운 이틀이라해도 무방했다. 놓고가는 물건이 없는지 꼼꼼히 확인했다. 여권, 카드, 카메라를 숄더백에 넣은 후 옷과 노트북이 담긴 가방을 들춰맸다. G군은 라스베이가스에서 만났을 때와 동일한 모습으로 준비를 마쳤다. 우리는 약간 여유를 두고 나갈 걸 하면서 숙소를 나섰다. 그가 빠르게 걸으면 훨씬 여유있게 도착할 수 있다고 귀띰해주었다. 나는 경보 선수의 모습을 우스꽝스럽게 따라하면서 그를 뒤에 두고 앞서나갔다. 그는 이런 동작을 본 적이 없었는지 황당해하며 나를 뒤따라 왔다. 예상보다 빠르게 도착해서 약속된 시간보다 10분 일찍 도착했다. 하지만 버스는 제시간이 되어도 나타나지 않았다. G가 예고했던 밥먹듯 지각하는 버스가 드디어 모습을 드러냈던 것이다. 오리는 15분을 더 기다려 버스에 탔다. 이번에도 정해진 자리에 앉지 못했다. 같이 앉을 수 있는 좌석을 발견하고는 그냥 자리에 앉았다.


 버스가 출발하기 전, 어디선가 말소리가 들렸다. 왼쪽에 앉아있던 짧은 곱슬머리에 안경을 하고 있던 여자가 보였다. 그녀의 방향에서 분명 소리가 들렸는데 딱히 통화를 하고 있는 것 같지 않았다. 알고보니 이어폰을 끼고 있었지만 머리카락으로 감추고 있었다. 만약 대화가 조용했다면 그냥 넘겼을 것 같은데, 아무도 말하지 않고 조용한 와중에 혼자 평소 목소리 크기로 말하고 있으니 모두가 거슬려하고 있었다. ‘모두’에는 버스기사도 포함되어 있었다. 기사가 시끄럽게 하는 놈을 잡아내기 위해 엄중한 목소리로 “시끄러운 소음이나 통화는 금지되어 있어!”라고 하며 좌석 끝에서 끝까지 쭉 걸었다. 그녀는 방금까지도 거슬리던 목소리가 쏙 들어가버린 채 숨죽였다. 버스기사가 다시 운전석으로 돌아가자마자 그녀는 방금까지 무고한 피해자라는 듯 지었던 표정을 싹 지우고는 입을 열었다. 나는 기사님이 이 녀석을 잡으러 다시 와주리라 기대했지만 이미 차가 출발해버리고 말았다. 우리는 두 시간 동안 망할 에스파뇰 억양이 섞인 통화가 들리는 채로 샌디에이고로 갔다.


 나는 창가에 앉아 있어 옆으로 지나가는 차를 구경했다. 미국에는 한구에서 볼 수 없는 차가 많았는데, 올드카나 각진 SUV에 특히 관심이 갔다. 넉놓고 있던 도중에 금발의 여학생이 낡고 색이 칙칙하지만 몸체가 탄탄한 픽업트럭을 타고 코너를 돌고 있는 모습을 발견했다. 트럭은 우리가 타고 있던 버스의 오르쪽 차선으로 와 한참을 나란히 달렸다. 그 모습에는 많은 의미가 담겨 있었다. 학생이 운전한다는 것은 차가 필수적일 정도로 넓은 나라임을, 차가 트럭인 이유는 많은 짐을 담아야 할 물건이 많다는 미국 시민의 일상적인 사정이, 투박한 색과 낡은 상태에서는 아이가 태어나기도 전에 차를 구입해서 아이를 키우는 동안 사용하고도 남아서 운전할 나이가 되자 차를 물려준 가족의 역사가 비쳐 보였다. 나는 곧장 그 차의 사진을 찍어 놓았다. 나중에 차량 기종을 찾아보기 위함이었다. 찍은 사진을 자세히 살펴보니 차량 모델 이름이 보였다. 구글에 익숙하지 않은 알파벳을 입력해보니 토요타 랜드크루저 J60 차량이 나왔다. 우리나라에서 출시되지 않았기에 그렇게 생소했던 것이다. 하지만 이 말은 한국에서 이 차를 타고 싶어도 탈 수 없다는 뜻이기도 하여 좌절했다. 잠깐 미국으로 이민을 갈지 고민도 했지만, 내가 차를 살 시기가 되면 출시해주리라 믿고 마음을 접었다.



 2시간을 달려가다보니 해변가에 줄지어 지어진 단독 주택이 눈에 띄었다. 위로 펼쳐진 날씨가 꾸물꾸물해다. 샌디에이고에 도착한 것이었다. 버스는 UCSD를 잠시 들렀다가 우리가 지정한 하차 지점으로 이동했다. 샌디에이고는 멕시코 바로 위에 있어 이와 관련한 역사가 깊고 문화적 연광성이 높다. 우리가 내린 곳은 멕시코 문화가 짙게 남아있는 올드 타운 근처였다. 버스에서 짐을 챙겨 예약한 숙소의 위치를 확인했다. 우리가 내린 곳에서 30분을 걸어가면 갈 수 있었다. 가는 길에 패스트푸드점이 보이면 들어가서 저녁까지 먹고가기로 했다. 걱정되는 점은 치안이었는데, 내리자마자 기대에 부흥하는 일이 일어났다. 횡단보도 앞에서 신호를 기다리는 동안 필름 카메라를 꺼내 사진을 찍으려 했다. 그러자 오른쪽에서 바지를 내려입어 팬티끈이 다 보이는 흑인 둘이 지나가면서 나를 가리키며 뭐라 했다. 아마 조심하라는 뜻인 것 같았다. 그들은 아직 빨간불인 시호등은 쳐다도 보지 않고 길을 가로질렀다. 나는 괜히 시비가 걸릴까 그들이 시야에서 사라지기 전까지 카메라를 꺼내지 않았다. 횡단보도를 건거가자 마자 굴다리가 나타났고 혹시나 있을 노숙자를 의식하여 빠르게 통과했다. 건너편 도보에서 무엇에 취해있는 듯 휘청거리며 걸어가는 무리가 보였다. 주위 상가는 을씨년스러운 날씨때문인지 괜히 칙칙하게 보였다. 가는 길에 ‘인앤아웃버거‘가 보여 거기서 끼니를 해결하기로 했다. 가게로 가는 중에도 횡단보도 한가운데서 ’돈이 이쓰면 베풀어 주세요‘하는 팻말을 들고 서 있는 노숙자 노인을 마주쳤다. 그는 이어진 횡단보도를 건너는 노숙자와 크게 한두 마디를 나누고 있었다. 우리는 신호가 바뀌자마자 앞만 보고 인앤아웃버거로 걸어갔다.


 이번 여행 동안 가장 기대한 음식은 다름아닌 인앤아웃이었다. 첫 날 사촌형 숙소를 돌아보면서 가장 눈에 띄었던 건 인앤아웃이었다. 어디서 들었는지 모르지만 인앤아웃은 미국에섬나 먹을 수 있다 했기 때문이었다. 특히 미국 서부에만 있다고 하니 미국 여행 중 서부에 온 사람만 먹어볼 수 있었다. 화려한 뉴욕을 간 사람은 그 대가로 인앤아웃을 먹어보지 못한다는 리스크를 진다 생각하니 꼭 먹어보고 싶었다. 아쉽게 형과 지낼 때는 기회가 나지 않아 먹지 못했기 때문에 이번이야말로 시도해볼만 했다. G는 인앤아웃으로 들어가면서 이만한 가격에 이만한 퀄리티가 없으니 꼭 먹어봐야 했다. 나는 비교대상으로 버거킹이나 맥도날드같은 흔히 먹었던 패스트푸드점을 떠올렸다. 메뉴를 보고 비건 버거도 있다는 것을 발견했지만 둘 다 궁금해도 돈주고 사먹을 일은 없다면서 고기 버거 세트를 하나씩 주문했다. 음료수 컵을 건네받고 G는 레모네이드를, 나는 닥터페퍼를 담은 후 가장 구석진 자리에 앉았다. 일부러 그런 건 아니었고 4인용 좌석에 앉았다가 아이가 셋 있는 아버지의 부탁을 받아 자리를 양보해주느라 그랬다. 바꿔 앉은지 얼마 안되고 사람이 우르르 빠져나가 자리가 많이 났지만 딱히 자리를 옮길 생각은 없었다. 주문했던 버거를 받아와 버거를 찬찬히 살폈다. 패스트푸드라는 생각이 가실정도로 뛰어난 퀄리티는 아니었다. 그러나 패스트푸드 내에서 놓고 보자면 할 수 있는 최대이지 않을까 싶었다. 이번 여행 중 먹었던 버거 중에서 5일차 텍사스에서 먹었던 버거가 가장 압도적이었다. 여기에 비할 순 없더라도 인기를 유지하면서 많은 지점을 내는 동시에 낼 수 있는 최선의 퍼포먼스였다. 적당한 크기와 잘 들어찬 재료에서 딱히 트집잡을 부분은 없었다.


 버거를 먹고 오히려 메인뒤시라 할 수 있는 감자튀김까지 먹고 접시를 비웠다. 이제 석양 빛이 물들은 서쪽을 향해 다시 나아갔다. 우리는 늦기 전에 숙소에 들러 짐을 풀고 다시 나와서 둘러보기로 했다. 가는 길에는 연고지로 가진 야구팀 <샌디에이고 파드리스>가 여기저기 보였다. G가 야구팀을 알아보고는 여기에 소속된 한국 선수가 걸린 광고를 찾았다. 그가 말하는 선수인 김하성 선수는 팀을 대표하는 일곱 중 한가운데 선수의 옆에서 자랑스럽게 팔짱을 끼고 있었다. G군은 김하성이 팀에서 최소 세 번째로 중요하고 인기가 있다며 방방 뛰었다. 내가 아는 한국인 메이저리거는 박찬호, 추신수, 류현진, 이정후밖에 없어서 같이 들떠주진 못하고 맞장구만 쳤다. 이참에 야구에 대한 이야기가 이어져 가는 길이 지루하지 않았다.


 숙소 앞에 도착하자 G군이 갑자기 긴장했다. 여러 번 겪은 호텔 트라우마 때문이었다. 다행히 그가 두려워 하는 관상의 직원이 아닌 다른 청년이 체크인을 도와주었다. 그는 체크인을 마치고 방으로 향하면서 내게 말했다. “옆에 있는 직원 봤어? 저 사람이 체크인했으면 무조건 귀찮아졌을거야.” 안타깝게도 그는 너무 많은 불편함을 겪어 선입견이 생겨버리고 말았다. 그의 말대로라면 여직원 중 초고도비만 체형에 머리를 염색한 직원만 만나면 문제가 있었다고 한다. 어떤 명제의 역은 성립하진 않는다며 논란이 될뻔한 발언을 정리했다. 우리가 예약한 숙소는 2층짜리 건물에 주차장이 낀 형태였다. 말만 들으면 미국에서 조심해야할 도로 한가운데의 모텔이 아닌가 싶지만, 그보다는 깔끔한 리조트 형태였다. 우리는 주차장 바로 앞의 1층 방에 배정되었다. 들어가는 문 옆에 박에서 안이 다 보이는 창문이 나있어 상당히 께름칙했다. 들어가자마자 이중으로 된 커튼을 모두 내렸다. 우리는 숙소 상태를 보고 굉장히 만족했다. 지금까지 같이 묵었던 숙소 중 가장 TV가 최신식이었다. 아쉽게도 주어진 채널 외에는 볼 수 없었지만 이틀이나 묵는 숙소가 거대한 화면을 가진 TV를 가지고 있다는 건 긍정적이었다.


 우리는 곧바로 나가려다가 생각을 바꿨다. 숙소에 도착한 김에 부모님께 안부를 전하기로 했다. 내가 어머니께 전화를 걸자, G에게도 그의 어머니로부터 연락이 왔다. 내가 전화를 받는 동안 G는 방 밖으로 나가 전화를 했다. 나는 샌디에이고에 방금 도착해 숙소에서 연락했다고 전했다. 뒤이어 어머니께 카드를 잃어버린 일을 말씀드렸다. 어머니는 크게 놀라지 않고 오히려 비상용 카드를 챙겨준 사실에 뿌듯해하셨다. 샌디에이고에서 보낼 일정을 설명드리고 나는 잘 지낸다는 안부를 전했다. 어머니는 매일 밤 내가 보낸 사진을 받아보고 어디에 갔는지 확인하고 계셨다. 어머니는 아빠한테도 연락하고 했다. 사진을 어머니께 보내고 아버지한테 보내지 않은 탓에 간접적으로만 소식을 전해들은 아버지가 어머니가 토로한 것이었다. 나는 알겠다 하고 어머니의 연락이 끝나자 마자 아버지께 연락드렸다. 아버지는 간단한 안부와 돈이 부족하진 않은지 외에 별다른 말을 덧붙이지 않으셨다. 어머니께 보내드린 사진 외에 다른 사진으로 골라 보내드리겠다고 말씀드린 후 전화를 끊었다. 마지막으로 고모께 연락드렸다. 고모는 여행 초반 신세를 지느라 사촌형과 지낼 때도 한 번 안부를 전한 적이 있었다. 전화가 아니더라도 거의 매일 카톡을 보내 잘 지내고 있는지 걱정해주시기도 했다. 아무래도 내가 미국으로 여행을 간 결정적인 계기가 고모부의 제안이기 때문에 신경써주는 편이 마음이 편하다 하셨다.


 지난 설에 고모부를 뵜을 때 나는 이미 휴학을 결정한 상태였다. 고무부께 이번 학기의 계획을 설명하던  도중 해외여행 이야기가 나왔는데, 이 말을 듣고는 미국에 사촌이 있는 건 좋은 기회이니 한 번 가보는 것이 어떻냐고 말씀하셨다. 당시에도 G군이 교환학생을 가있던 상태였으니 여러 모로 상황이 맞아 진지하게 생각해보기로 했다. 결국 원래 가려던 발트 3국 여행을 뒤로 미루고 미국 여행을 먼저 갔다오기로 했다. 다른아닌 비행기 푯값 때문이었다. 4월 전에 가면 왕복을 100만 원 내로 끊을 수 있었던 것에 반해 5월 이후에는 백 오십은 줘야 했다. 이러한 계획은 최종적으로 전달받고 계획도 같이 세워주신 건 다름 아닌 고모였다.


  무사히 샌디에이고로 갔다는 소식을 전해드렸다. 어떻게 갔는지 궁금해하셔서 버스 좌석을 구매했다고 하니 무척 놀라셨다. 종말 용기도 많다면서 다 큰 남자 둘이 갔으니 그래도 별 문제 없을거라 하셨다. 고모께도 부모님께 말씀드린 일정을 동일하게 전달하고서 통화를 마쳤다. 밖에 나간 G도 비슷한 시점에 통화를 마쳐 방으로 들어왔다. 연락을 하느라 벌써 오후 8시였고, 미국도 충분히 어두운 시각이었다. 아직 완전히 깜깜하지 않으니 괜찮을 것 같아 밖으로 나갔다. 지도로 미리 찾아본 호수까지 걸어갔는데 가는 길에 열 걸음마다 노숙자의 흔적이 나타났다. 오줌 자국이나 다 헤진 이불, 쓰레기가 가득 찬 쇼핑 카트, 그리고 떡하니 누워있는 노숙자도 심심찮게 있었다. 이런 고난을 헤쳐 호수까지 도착했지만 가로등도 없이 풀숲이 무성했다. 여기를 걸었다가는 어둠 속에서 튀어나온 괴한에게 습격당해도 할 말이 없었다. 위험한 곳을 제발로 들어온 셈이니까.



 우리는 다시 돌아기로 했다. 어느덧 완전히 밤이 되었다. 호수로 오는 길에 봤던 리퀴어 스토어(Liquor Store)에서 먹을 것을 사가기로 했다. G는 일본 맥주가 그렇게 맛있다면서 삿포로 맥주를 찾았다. 시원하게 보관된 삿포로가 없어 점원에게 물어보았지만 알려준 곳에서도 찾지 못해 하는 수 없이 미지근한 캔 두 개를 집었다. 나는 그의 추천을 받아 미국에서만 판매되는 맥주라는쿠어스(Coors)를 추가로 골랐다. 삿포로와 달리 냉장 보관되어 시원했다. 거기에 더해 투명하고 작은 플라스틱 병에 담긴 스미노프 보드카를 두 개 집었다. G군이 보드카를 먹어본 적이 없다하여 맛만 볼 수 있게 하기 위함이었다. 맥주와 곁들일 감자칩까지 들고 계산대로 갔다. 히스패닉 계열로 보이는 얼굴에 키가 크고 마른 남자가 계산대에 서있었다. 그의 오른쪽 눈은 허옇게 떠서 초점이 나가 있었다. 영화에서나 본 애꾸눈이었다. 그가 술을 구입하려면 아이디가 필요하다 했다. 나는 가방에서 여권을 꺼내 보여주었다. 그는 내 여권을 들여더보니 “코리아?“하고 물었다. 그렇다 하니 “북 아니면 남?”이라 했다. 나는 당연히 남 아니겠냐고 웃으며 대답했고 그도 웃으면서 여권을 돌려주었다. 웃으면서 반응했지만 그의 마피아 간부 같은 외모에 압도되어 있던지라 혹시 밑에서 총이라도 꺼내는 건 아닐지 긴장하고 있었다. 계산을 마치고 나오자 G가 방금같은 질문에 북쪽에서 왔다고 말할 수 있어야 인싸라고 했다. 하지만 장난을 할 정도로 나는 여유롭진 않았다.


 돌아가는 길에 G가 맥주를 주머니에 넣고 가야 하는 이유를 알려주었다. 나는 그가 손이 부족하지도 않은데 주머니가 맥주캔으로 부풀어 있는 모습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다. 미국은 길거리에서 술을 들고다니면 잡혀간다고 한다. 나는 그 말을 듣고 당황해서 재빨리 주머니에 맥주를 숨겼다. 사실 대놓고 경찰 있을 때나 눈치보면 된다고 했다. 그래도 경찰이 어디서 튀어나올 줄 알고 대놓고 들고 갈 용기는 없었다. 심지어 그는 캔을 미리 숨겨놓고 있었으니 그를 따라하는 편이 훨씬 마음이 놓였다. 도로에 차가 잘 다니지 않는데 신호등이 바뀌질 않았다. 기다리다 못참고 횡단보도를 건너는 거구의 흑인 남자를 따라 건넌 후 지도를 보지 않고 익숙한 건물이 나올 때까지 걸어 숙소로 돌아왔다. 우리는 미지근한 맥주는 냉장고에 넣고 잠시 TV를 보면서 기다리기로 했다. 그동안 나는 이미 차가운 쿠어스를 먼저 마셨다. 모니터에서 청각장애를 겪으면서도 음악에 맞춰 춤을 연습하는 사람들을 다룬 지역 다큐가 방영되고 있었다. 우리는 장애를 가졌음에도 불리한 활동에 열중하는 이들에게 존경을 표했다. G군은 다큐를 유사한 사례가 떠올랐다며 시각장애를 가진 바둑기사에 대해 이야기했다. 바둑을 보이지 않는 상태에서 한다는 것은 복잡하게 놓여진 돌의 위치를 머릿속으로 그려야 하기에 눈으로 보고 한번에 파악할 수 있는 비장애인에 비해 명백히 불리하다. 그는 선천적으로 시각장애를 앓는다면 바둑알이 놓여지는 이차원 공간을 어떻게 상상할 수 있는지 경탄했다.


 그러는 동안 삿포로가 시원해져 G가 한 캔씩 들고와 마셨다. 감자칩 한 조각을 입에 넣고 맥주 한 모금씩 들이키니 실실 웃음이 샜다. 침대에 누워 휴식을 취하다 보니 몸이 축 늘어졌다. 샌디에이고 일정이 끝나면 여행이 단 이틀밖에 남지 않는다는 것을 떠올리며 지나가는 시간이 아깝게 느껴졌다. 감기는 눈을 억지로 붙잡으며 조금이라도 즐길 시간을 늘려보려 했지만 실패하고 말았다. 여행은 이미 절반이 지나갔다. 그리고 남은 일정의 절반이 곧 끝나갈 예정이었다. 반의 반이 지나가면 반의 반의 반이 지나갈 것이고, 또 그러고 남은 반이 지나가고... 남은 시간이 빠른 속도로 줄어드는 과정 속에서 잠들었다.



 미국여행 8/12 진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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