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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지호 Jun 05. 2024

샌디에이고를 비치 보이스에 싸서 먹어보세요

미서부 여행 9일차

 “내가 숙제를 하나 내줄게.” G군과 함께 여행 일정을 짜고 있을 때 들었던 말이다. 미국 여행을 언제 갈 지 아직 확정되지도 않았던 그때, 미국 땅이 넓은지도 모르고 미국 서부에 해당하는 곳을 메모장에 실컷 옮겨 담았다. 지도에 하나씩 핀을 박고 이동 거리와 시간을 본 후 절반은 쳐냈다. 샌프란시스코는 금문교 외에 볼만한 건 없을거라고 믿으니 쉽게 빼낼 수 있었다. 대신 라스베이가스에서 샌프란시스코로 운전해 갈 동안 들를 데스밸리와 요세미티 국립공원도 같이 제외되었다. 나는 데스밸리만큼은 포기할 수 없었기에 여행 일정에 대한 대대적인 수정을 요구했다. 결국 운전을 포기하게 되면서 캐니언 일대와 데스밸리를 투어로 즐길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샌프란시스코를 대신할 서부의 새로운 도시가 추가되었다. 샌디에이고에 대해 아는 건 접두사로 ‘샌’이 붙어 있다는 당연한 사실밖에 없었다. 아직도 왜 샌디에이고를 여행지에 추가했는지 이해할 수 없다. 그러나 미국 여행 중 가장 중요한 일정이 무엇이냐 물으면 단연코 샌디에이고를 고를 수 있다.


 G는 샌디에이고에 아직도 가본 적이 없었다. 그의 어머니가 이전에 샌디에이고에서 가보지 못한 곳이 있어 꼭 가보고 싶다 했다. 소크 연구소가 바로 그것이다. 어제 예약했다 언급했던 바로 그곳이었다. G가 교환학생으로 미국에 있는 동안 그의 어머니가 답사 차원으로 미국에 올 일이 있었다. 그의 어머니는 디자인 교수로서 미국에 있는 미술관이나 건축물을 보고 가실 계획이었다. 해외에 있는 자식을 오랜만에 만나는 김 그의 기숙사에 들렀는데 방이 너무 더러워 치우느라 답사 일정을 포기하고 말았다고 한다. 그러느라 딱 한 곳을 가지 못했는데 그곳이 바로 생명과학 연구소이지만 건축과 디자인이라는 엉떵한 분야의 사람들로부터 관심을 받는 소크 연구소이다. 그 또한 이곳을 자세히 알고 있었는데, 유튜브에서 유현준 건축가의 영상을 본 덕분이었다. 그는 이 영상에 소크 연구소에 대한 자세한 설명이 있다며 나에게미국에 오기 전 꼭 보고 오라고 당부했다. 나는 그가 말하자마자 유튜브에 접속해 설치된 확장프로그램으로 4배속으로 올려 쭉 들러보았다. 건물에 대한 설명을 쭉 보니 미국에 얼마 없는 해변을 차지한 건물 중 가장 뛰어나다 할 수 있었다. 방금까지 아무 이유 없이 샌디에이고를 가보고 싶었지만 설명을 보고 지적인 해변 연구소에 꼭가보고 싶다는 마음이 싹텄다.


 나는 일어나서 바로 씻었다. 몇 시에 나갈지 확정된 바는 없었지만 11시 반에 투어가 있으니 그 시간에 맞춰 G를 깨울 계획이었다. 확실히 내가 그보다 일찍 잠들어 그가 잠들어 있는 모습을 보지 못했다. 이러한 단서를 통해 그가 잠을 많이 못잤을 수 있다는 결론을 내리고 방 안의 불빛을 최소한으로 줄였다. 씻을 때를 제외하고 10시 반까지 등과 관련한 스위치는 건들지도 않았다. 그렇게 어두컴컴한 방이 밝아진 건 10시 반이 되고 그를 깨우기 위해 커튼을 걷었을 때였다. 전등을 킬 필요도 없이 이미 밖은 한 낮처럼 맑고 깨끗한 하늘을 뽐내고 있었다. 그는 밀려오는 햇빛을 피하기 위해 하얀 이불과 베개 속으로 파묻혔다. 나는 그를 달래 깨웠다. 그는 시간을 보고서 씻을 시간을 포기하면 더 잘 수 있다고 했다. 소크 연구소까지는 차로 20분만에 갈 수 있는 거리였다. 내가 깨어있다면 어찌젖찌 출발은 할 수 있을터이니 그를 더 자게 놔두었다. 그리고 그는 갈 시간이 되자 씻는 일을 제외한 모든 준비를 마쳤다. 그러고도 시간이 남자 간단하게 씻고 나왔다. 그마저도 재빨랐다. 밖으로 나와 우버를 불렀다. 만약 소크연구소 투어를 11시 반보다 늦은 시간으로 예약했다면 일어날 수 있을지 잘 몰랐다. 호출한 우버가 우리 앞으로 오자 탔다. 태평양이 동쪽의 대륙으로 드어온 만을 가로지르는 다리를 따라 넘어갔다. 우버 안에서 애시드 재즈가 흘러나왔다. 기사님에게 노래 이름을 물어보고 싶다는 충동이 들었지만 포기하고 희미하게 보이는 화면을 간단히 찍어놓았다. 다른 곡이 계속 흘러나오다가 하와이 풍 재즈가 시작될 쯤 목적지에 도착했다.


 철울타리로 가로막힌 문을 바라보면서 어디로 들어가야할지 헤메고 있었다. 우리 앞으로 관광객으로 보이는 차분한 외국인을 보고 따라 들어갔다. 안에 있는 데스크에서 투어를 신청했다고 말하니 투어객임을 증명하는 작은 명찰을 주었다. G군은 걸치고 있던 바람막이에, 나는 주머니가 주렁주렁 달린 카고팬츠에 고정했다. 로비에서 조금 기다리니 어느덧 예약 시간이 되었고 다른 예약자도 모두 도착했다. 뒤에 사소하게 지각한 가이드가 오자 출발할 수 있었다. 안으로 들어가자 듬성히 가로 한 줄로 가로수가 놓여있었다. 너머로 작은 오렌지 밭을 시작으로 양 옆에 해변을 향해 창을 내민 콘크리트 건물이 서있었다. 건물 사이는 자그마한 물이 흘러다닐 수 있는 길이 보였다. 연구소는 그 물길을 대칭으로 놓였다. 해가 떠오를 때도 정확히 물길 위를 지나간다. 며칠 전 들렀던 자이언 국립공원이 떠올랐다. 우리가 놓여진 공간이 나를 품어주고 있고 작게 난 틈으로 세상을 내다보는 느낌이 익숙했던 탓이었다. 자연은 의도하지 않았지만 강력한 우주의 법칙으로 만들어낸 곡선과 불규칙함이 매력이다. 반면 인공물은 단번에 보고 파악할 수 없을 정도로 꽁꽁 싸맨, 그러나 설명할 수 없어도 마음으로 느껴져 감동이 전해지는 치밀함이 무기였다. 자연과 인간이 다른 과정으로 수렴한 순간이었다.



 가이드의 설명을 들으며 연구소 안 까지 들어가보았다. 이곳은 이름이 연구소인 만큼 사용하는 사람들은 생명과학 연구에 기여하고 있었다. 특히 연구소를 지은 조너스 소크는 최초의 백신을 개발했던 뛰어난 과학자였다. 그는 이곳으로 뛰어난 연구자를 불러들이기 위해 건축가 루이스 칸과 협력하여 인재를 담아내기 위한 완벽한 요람을 설계했다. 이곳의 건물은 사소하지만 연구에 최적인 설계를 위해 디테일을 놓치지 않았다. 연구라는 업무 특성상 - 사실 모든 직장과 업무가 비슷하겠지만 - 동료나 구성원 간 의견 교류와 협력이 필수적이다. 그렇기에 세로로 길쭉하게 난 공간을 통으로 비워두고 그 안을 모듈형으로 자유롭게 분할할 수 있도록 놔두었다. 교수의 자리는 연구실에서 가운데 뻥 뚤린 공간쪽으로 나오는 길에 위치해 있다. 각 층마다 오갈 수 있는 게단 사이에 그들의 방이 있고 해가 공평하게 닿을 수 있도록 펼쳐진 각도로 해변을 바라봐 인간적인 의미로 충분한 광합성을 즐길 수 있다.



 생명과학은 내가 좋아하는 분야이자 내가 발을 담구리라고 선언한 분야이다. 그렇기에 이곳은 낙원처럼 보였다. 이곳에서 일하는 연구원은 이 뛰어난 연구소로 관광온 사람들이 이제는 익숙하다는 듯 지나쳤다. 해가 들어찰 중앙의 공간을 자유롭게 가로지르고 건물 끝자락에서 담소를 나누기도 했다. 반지하 테라스에서 절묘하게 비치는 해를 맞으며 샌드위치를 먹고 있기도 했다. 다른 구석에는 서핑 보드와 바베큐 장비가 사용감이 가시지 않은 채로 정리되어 있었다. 안의 생활은 어차피 똑같은 연구소 생활이지도 모르지만 말이다. 그들의 연구실을 지나치는 과정에 문 앞 게시판을 보게되었다. 퍼블리싱된 논문과 연구실 멤버들과 함께 찍은 사진, 소크 연구소를 배경으로 놓인 사람들이 사우스파크 풍으로 그려낸 인물들이 포즈를 취하고 있었다. 그보다 내 눈을 사로잡는 건 따로 있었는데 네 컷으로 그려진 아래의 만화였다. 웃고 있는 누군가를 향해 ‘데이터’님이 속삭인 “NO” 한 마디에 금세 울상이 되버렸다. 어디선가 봤던 모습이었다. 인간적인 면모를 발견한 것 같아 이곳에 더욱 친밀감을 느꼈다. 나도 언젠가 세기의 건축물을 깔고 앉은채 연구하는 소소한 일상을 말이다.



 투어가 끝나고 바로 시간을 보니 1시간이 훌쩍 지나있었다. 어느덧 점심을 먹을 시간이 되어 연구소 바로 옆에 있는 UCSD(University of Calfiornia, San Diego)를 같이 둘러보기로 했다. 대학교에 식당이 없을리 없으니까. G군은 미국에서 대학교 생활을 하고 있던지라 자신의 학교인 UCR과 비교하여 꼼꼼히 둘러보았다. 그는 여기에 오지 못한 것이 정말 아쉽다며 안타까워 했다. 그가 교환학생 신청을 할 당시 여기 또한 후보지였기 때문이었다. 1순위는 그의 지인이 살고 있던 어바인이라 했던 것 같았다. 그 외에도 다양한 희망 대학이 있었는데 생각에도 없던 UCR로 지정되었다. 내가 보기에도 이곳의 건물과 다양한 층위의 건물이 훨씬 흥미로워 그의 말에 공감해주었다. 그러면서 왜 여기 안왔냐면서 놀렸는데, 그는 발끈했다. 내가 안오고 싶어서 안 온 줄 아냐고. 지금이야 학교에 적응하니 괜찮아졌지만 신청 당시 결과를 받아들고 굉장한 불만을 토로했다. 그때의 감정이 다시 솓구쳤던 것이다. 나는 혹여나 더 기분이 상할까봐 그를 재빨리 위로했다. G군도 금세 감정을 가라앉혔다.



 그는 여기의 도서관이 유명하다고 지도로 위치를 확인했다. 나는 들어본 적이 없어 그의 안내를 따라 걸었다. 어제처럼 이곳도 점심 시간의 대학 모습이었다. 이곳의 사람이 더 많아 보였는데, 아마 건물이 다닥다닥 붙어 있고 좁아 - 적어도 UCR에 비해 - 그런 것으로 보였다. 주위로 지나가는 학생들이 영어를 흘리며 지나가다 한국어도 가끔 들려왔다. 이곳으로 교환학생을 온 건지 입학해서 오랫동안 지내고 있는 건지 상상했다. 나는 지도를 보지 않고 있었지만 그의 적절한 안내와 대충 사람이 많이 다니는 길로 걸었다.  도중에 G가 도서관을 가르키지 않았다면 바닥만 보고 걷느라 지나칠 뻔 했다. 도서관은 SF에 나올 것 같은 거대버섯같은 외형이었다. 지하부터 뿌리를 내리고 얇은 줄기를 따라 올라가면 머리가 더큰 가분수 형의 건물은 확실히 이곳을 상징한다 말할만 했다. 우리는 도서관 안으로 들어가 잠간 분위기를 살폈다. 공부하느라 바쁜 이들도 있었지만 친구들과 잠시 쉴 공간을 찾아 들어온 무리도 있었다. 우리가 샌디에이고 일정을 계획할 동안 이곳에서 밤을 새는 플랜도 있었다. 하지만 이곳이 밤 10시에 닫아버린다고 하여 곧바로 포기하기는 했다. 만약 가능했다면 어젯밤을 여기서 보낼 수도 있었다.



 도서관에서 식당까지 자잘한 부스가 길게 펼쳐져 있었다. 분명 무슨 행사가 있는 것이 틀림없었다. 기숙사에 붙일만한 거대한 영화 포스터와 판떼기, 팔찌, 옷거리를 저렴하게 팔고 있었다. 밥을 먹고 지나쳐보기로하고 마저 걸었다. 식당은 넓은 공터를 둘러싼 형태로 둘러싼 건물 중 하나였다. 가운데에 놓인 탁자는 점심을 먹느라 바쁜 학생들로 가득 차 있었다. 그곳으로 걸어내려가는 길에 작은 해막이 보였다. 우리는 점시 누웠다 가고 싶었지만 빈 자리가 없었다.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 와중에 곧바로 혼자 앉아 있떤 남학생이 벌떡 일어나 자리르 떴다. 그곳을 표적으로 삼는 다른 사람들이 없는지 눈치를 슬슬 보다가 해먹을 곧장 뛰어들었다. 미국의 해가 가장 따뜻할 시간대에 모자로 눈을 가리고 해먹 위에 나란히 누웠다. 얼굴을 제외한 모든 부분이 빛을 흡수해 점점 달아올랐고 견디기 힘들 때쯤 되어 다시 몸을 일으켰다.


 점심은 어제와 마찬가지로 판다 익스프레스를 택했다. 나는 메뉴가 다양해 하나씩 시도해보고 싶었다는 이유였고, G군은 다른 대학교의 판다가 궁금했다는 이유였다. 별 다른 차이가 없었지만 어제와 다르게 음료수를 쏟았다는 차이점이 있었다. 평소대로 제로 음료를 담았다면 좋아겠지만, 환타를 담아와 쏟아진 자리가 끈적거렸다. 덕분에 밥 먹는 도중 화장실에서 휴지를 챙겨와 박박 닦아내야 했다. 무사히 식사를 마치고 같은 위치에 있는 기념품점으로 갔다. G는 미국의 대학교를 방문할 때마다 그곳에서 판매하는 술잔을 구매한다고 한다. 그는 몇 디자인을 보고 마음에 들지 않다가 아기자기하게 이곳의 상징을 잠뜩 그려넣은  잔을 보고 그의 연인의 것까지 총 두 잔을 구매했다. 나는 간 김에 살 기념품이 있나 둘러보았지만 마땅한 것을 찾지 못했다. 입구 근처에 놓여있던 책표지를 종이로 포장해두고 간단한 설명만 써놓아 블라인드 구매가 가능한 책이 보였다. 책을 사가기로 했던 분이 생각났는데, 만약 랜덤으로 구매했다가 그분의 취향에 맞지 않을 걱정이 되어 구매하지 않았다. 아이패드에 붙힐만한 스티커와 즉석에서 관심이 갔떤 검은색 하모니카만 구입했다. 계산대에서 전형적인 하이틴 드라마의 남자 주인공처럼 생긴 점원이 결제를 해주고 밖으로 나왔다.


 우리는 다음 지점은 라 호야 해변으로 가기로 했다. 버스를 타면 한번에 갈 수 있었다. 버스 정류장으로 가는 길은 점심을 먹기 위해 지났던 길과 이어져 있었다. 버스 시간을 보아하니 기다릴 시간이 충분하여 부스를 둘러보기로 했다. G군은 둘러보던 중 포켓몬 부스에에서 시선이 멈췄다. 충분히 귀여운 포켓몬을  더 귀엽게 그려진 스티커가 앞에 종류별로 놓여 있었다.나는 포켓몬 중 ‘누오’라는 습지에서 사는 설정의 맹한 표정의 포켓몬이 있었다면 사려고 했지만 없어서 딱히 관심이 없었다. 그 뒤로 할로윈 기념으로 출시된 포켓몬 카드가 슬쩍 비쳐 보였다. 그는 다섯 팩을 구매하고는 버스정류장에 가는 길 도중에 참지 못하고 개봉했다. 한 팩을 놔두고 모두 개봉했는데 미개봉 카드팩의 소장가치가 높아지는 현상을 자주 보았기 때문이었다. 그는 버스 시간이 남은 것을 확인하고 다시 달려가서 추가로 다섯 팩을 더 사왔다. 우리는 기다리는 길에 아까 샀던 하모니카도 불어보고 카드 팩을 개봉하면서 기다렸다.


 오른쪽으로 해변을 끼고 남쪽을 버스는 남쪽으로 달려갔다. 우리는 점심을 먹은 직후라 피곤한 상태였다. 혹시라도 졸다가 잘못내릴 수 있으니 핸드폰을 하면서 제정신을 유지했다. 30분을 달려 도착한 곳은 한산한 해변가 근처 주택가였다. 바다를 향해 난 길로 걸어가자 점차 동물 체취가 강하게 풍겨왔다. 냄시를 통해 목적지라는 강한 확신을 가지고 계속 걸어갔다. 우리를 지나쳐 걸어가는 맨발의 사람도 마주쳤다. 처음 도착한 곳은 갈매기와 가마우지가 가득한 바위였다. 분명 물개가 많다고 했는데 없어서 당황했다. 당연히 아직 물개가 많은 곳까지 가지 않았던 것 뿐이다. 우리는 그곳을 잠깐 둘러보았다. 새가 앉을 수 있는 곳이 있다면 전부 새둥지가 놓여져 있었다. 대부분 짙은 회색의 가마우지와 펠리컨이었다. 바다에서 갑자기 몇 마리가 날라오더니 자기 자리를 찾아 새들 틈 사이에 착륙했다. 아기새는 둥지에서 나오지 않고 어미 새 아래 깔려 포근한 유년 생활을 보냈다. 이들을 위해 부모새는 망설임없이 바다로 뛰어들곤 했다. 바위 아래로 작게 난 동굴에는 곧 보일 무더기로 모여 있을 물개 무리에서 동떨어진 녀석들을 볼 수 있었다.



 라 호야 해변에 가까워질수록 냄새는 심해졌다. 물개를 발견하자 냄새는 기억에서 완전히 사라졌다. ‘개’라는 이름이 개처럼 귀여워서 붙은 것이 아닐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대부분 점심 바위 위로 올라와 몸을 맞대고 낮잠을 자고 있었다. 물개의 지느러미와 통통한 몸이 바위 위의 새우튀김처럼 잘 올려져 있는 모습을 보고 곧장 깨물어주고 싶어졌다. 우리는 해변 왼편에 난 바위 틈을 통과하여 물개가 자고 있는 곳으로 다가갔다. 안전을 위해 이들과 적정 거리를 유지했다. 젖은 이끼가 낀 바위 위에 서있느라 다리는 고생하고 있었지만, 귀여운 생명체를 바라보는 눈만큼은 행복한 시간을 보냈다. 위험을 감수하고 숄더백에서 필름카메라를 꺼내들었다. 남은 필름은 어느덧 흑백만 남아있었지만 바다사자의 귀엽다는 말이 형상화된 질감을 담아내는데 부족하지 않을 것 같았다. 바로 결과를 확인할 수 없었지만 이번 여행 중 베스트 컷이 담기지 않았을까 기대하고는 해변을 빠져나와 올라왔다.



 G군은 방금 바다사자를 보는 일에 눈이 멀어 발 밑의 투명한 바닷물에 발을 적셨다. 축축한 발을 이끌고 다음 장소로 이동하기로 했다. 보통이었다면 굉장히 투덜댔을 것이지만 다음 갈 곳은 G가 라 호야 해변에 와서 알게 된 정보 덕분에 열의가 불탔다. 샌디에이고의 다운타운, 그리고 근처의 발보아 공원을 가기로 했다. 다운타운에는 사촌형과 지낼 동안 만났던 D.K.에게 추천받은 타코 가게가 있어 거기서 저녁을 먹기로 했다. 근처에 도보로 30분 정도 되는 거리로 발보아 공원이 있는데, G군이 기대하는 곳이 바로 발보아 공원 안에 있는 샌디에이고 동물원이었다. 샌디에이고 동물원은 유튜브의 첫 영상인 ’Me at the zoo’가 촬영된 장소이면서 미국 밴드 ‘비치 보이스’의 명반 <Pet Sounds>의 앨범 커버가 촬영된 장소이기도 했다. 나는 이 사실을 모른 채 발보아 파크를 일정에 포함시켜두었다. G는 라 호야 해변에서 다음 장소에 대한 정보를 검색하던 중 이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가 가장 좋아하는 것 중 해당하는 인터넷 문화와 비틀즈 시대의 밴드 음악을 동시에 즐길 수 있는 샌디에이고 동물원을 단순히 바닷물에 한쪽 발이 젖은 상태라도 포기할 수는 없었다.


가는 길은 하와이에서 오셨다는 우버 기사님이 태워다주셨다. 그는 우리를 태우기 전, 손님을 내려주고 우리 앞을 지나가버렸다. 한 바퀴를 더 돌고 나서야 우리 위치로 되돌아왔다. 우리가 어디서 왔는지 듣고 이전에 베트남에 가는 길에서 서울에 머물렀다고 말해주었다. 그러면서 지금은 차가 많이 막힐 때라 동물원으로 바로 가는 길이 아닌 다운타운을 통해 가는 길로 데려다 주겠다 했다. 우리는 그 말을 듣고 불안했다. 사실 지금 가려는 동물원의 입장료가 인당 오 만원 정도로 꽤 비쌌고, 폐장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아 가기도 애매한 상황이었다. 우리는 기사님에게 서투른 동물원에 가는 것이 괜찮은 생각일지 물었다. 기사님은 딱히 추천하진 않았다. 씨월드나 동물원 같은 곳이 샌디에이고에서 유명하긴 하지만 입장료가 비싸 자신이라면 가지 않을 것 같다고 했다. 끝으로 선택은 너희 몫이라면서 강요하지 않았다. 그러나 우리는 기사님의 의견에 설득되었다. 결국 우리는 다운타운에서 내려달라고 정정했다. 또한 우리가 갈 타코 가게가 괜찮은 곳인지도 물어보았다. 기사님은 그 가게를 알고 있었고 좋은 곳에 간다며 엄지를 들어주었다.


 계획대로라면 발보아 공원에 있다가 여기로 와야 했으므로 일정이 바뀌었다. 사소한 문제였지만 저녁을 먹기에는 아직 시간이 일렀다. 그래서 주변을 걷고 오기로 했다. 가볼만한 곳이 있나 살펴보니 식당이 있는 곳은 저녁에 가스등이 켜지는 ‘가스램프 쿼터’였고, 더 남쪽으로 내려가면 야구장이 있었다. 야구팀 샌디에이고 파드레스의 홈구장이었다. G군은 방금 놓친 동물원을 대신해 이곳을 가는 것이 좋겠다고 했다. 가는 길에 사촌형이 추천해 준 가게의 위치를 확인했다. 야구장 입구로 간단히 아이들이 사용할 수 있는 공간이 마련되어 있었다. 모니터 앞에서 피클볼을 할 수 있는 코트가 여덟 개에 사람들이 땀을 흘리고 있었다. 안으로 더 들어가 보니 야구장 바로 앞 거대한 모니터 앞에서 피클볼을 할 수 있는 코트 여덟 개 위에서 사람들이 땀흘리고 있었다. 화면에서는 방금 시작된 것 같은 야구 경기가 나오고 있었다. 알고보니 샌디에이고 파드레스가 원정 경기를 간 원정경기의  실시간 송출이었다. 우리는 이곳에서 저녁을 사와 먹기로 즉석에서 결정했다.



 야구장 옆에 있는 명예의 전당에서 G군이 아는 선수가 몇 보였다. 나는 아는 선수가 없어 즐길 수 없었지만 그가 설명해주는 내용을 통해 샌디에이고라는 구단의 역사를 간단히 알 수 있었다. 그리고 야구장 앞 공원에 전설적인 선수들의 동상이 셋 흩어져 있었는데, 그 중 트레버 호프먼의 동상 앞에서 똑같은 자세를 취해보였다. 나는 그에게 자세 코칭을 해주며 동상과 같은 모습으로 보이도록 사진을 찍어주었다. 그는 불가능할 것 같았던 각도로 다리를 찢은 투구 폼을 재현했다는 사실에 들떠보였다. 야구장에 있을 야구팀 기념품점을 찾아보았지만 이미 문은 닫아 들어갈 수 없었다.


 다시 가스램프쿼터로 돌아가 사촌형이 추천해준 타코 가게에 들어갔다. 우리 말고도 사람이 많아 어떻게 주문해야 할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문 앞을 지키는 경비원에게 어떻게 주문해야하는지 물어보니 대충 줄을 서면 된다 했다. 정확히 알아듣지 못했어도 기다리면 어떻게 된 될 것이라는 생각에 계단까지 걸쳐진 줄 뒤에 섰다. 조금 기다리니 우리 차례가 왔다. 우리가 선 줄은 타코를 주문하는 줄이어서 다른메뉴는 주문하지 못했다. 결국 각자 네 개씩 총 여덟 개의 타코만 주문했다. 점원은 쉴새없이 타코를 만드느라 정신이 없었다. 자세히 보니 설 수 있는 줄이 총 네 개였고, 우리가 선 줄은 그 중 가장 긴 줄이었다. 타코를 받아들고 계산대에서 음료수는 하나만 추가하고 나왔다. 돌아가는 길에 맥주를 사고 싶었지만 파는 가게를 찾지 못했다. 야구장 앞에 도착하니 화면을 보며 앉을 수 있는 계단 구조가 보였다. 위에는 커다란 개가 산책하다 말고 앉아서 쉬고 있었고 옆의 주인들은 개를 마구 쓰다듬으며 이뻐하고 있었다. 우리는 그보다 세 계단 아래에 앉아 타코를 펼쳤다. 야구장에서 저녁을 먹겠다 결정했을 때 1회말이었는데 어느덧 6회초가 끝나가고 있었다. 타코를 주문하고 받아오느라 한참이 걸렸던 탓이었다. 가져온 비닐봉지를 바닥에 펼쳐 음식이 담긴 포장을 벗겨냈다. 종이 호일 안에 감싸져 있던 타코를 맨손으로 잡고 소스를 흘려대며 먹었다. 벗겨진 포장지가 바람에 날려 먹던 중에 재빨리 달려가 주워 오는 일이 빈번했다. 하지만 고생해서 먹을 정도의 맛은 있었다. 달지 않았고, 무엇보다 짜지 않았다. 지배적인 맛이 신 맛인 동시에 밸런스를 갖춰 이것이 멕시코 타코의 대표적인 맛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저녁을 먹고 김하성이 타석에 들어서는 모습까지 지켜본 후 자리에서 떴다. 이대로숙소로돌아가기에는 아까워 발보아 공원을 걸어가보기로했다. 곧있으면 해가 질텐데 괜찮을지 미지수였다. G군은 가는길 원래대로라면 들러야했던 샌디에이고동물원과 관련있는 밴드 이야기를 했다. 그는 비틀즈의 광팬이라 그와 대등했거나 서로 영향을 주고 받았던 밴드에 대한 정보는 머릿속에 꿰고 있었다. 먼저 비치 보이스라는 밴드가 어떤 음악을 하는그룹인지부터, 비틀즈와 어떤관계인지말이다. 동물원에서 찍은 커버의 그 앨범은 비틀즈를 보고 '이런 음악을 만들어 보자' 해서 만들어졌다고 한다. 비틀즈를 동경해서 만든 이 앨범은 다시 비틀즈에게 영향을 주었고 , 그 후 나온 앨범이 바로 비틀즈의 최고의 명반으로 불리는 <Sgt. Pepper's Lonely Hearts Club Band>이었다. 결국 비치보이스는 이 음악을 듣고 열등감을 느껴 음악을 거의 포기하다시피 해버렸다는 안타까운 역사가 있었다. 이런 이야기를 하다보니 어느덧 30분을 걸어 발보아 공원 근처까지 올 수 있었다. 그러나 이미 해는건물 뒤에 숨었고, 차는 헤드라이트를 키고 무단횡단할뻔한 우리에게 경적을 울리며 지나갔다. 우리는 더이상 밖에 있는 건 위험하고 지치는일이라 판단해 숙소로 돌아가기로 했다.


  돌아가는 길은 힙하고 친근한 흑인 기사님이 맡았다. 우리가 샌디에이고로 여행왔다는 것을 알아채고 여기는 어떤지 후기를 물었다. 나는 굉장히 깔끔하고 좋은 도시이면서  이상한 사람들을 봤기에 무서운 건 어쩔 수 없는 것 같다고 답했다. 그는 웃으면서 잘 봤다며 지금처럼 어두울 때 밖에 나가면 정말 큰일날지도 모른다 말해주었다. 우리는 들어가기 전에 먹을 거리를 사가기 위해 숙소 건너편 도보에 내려달라 부탁했다. 든든한 기사님은 우리를 숙소 근처에서 무사히 내려주었다. 어제 들렀던 리퀴어스토어에 다시 들렀다. 처음 먹어보고 마음에 들었던 쿠어스를 한 캔 집었다.그리고 어제와 동일하게 미지근한 삿포로 두 캔을 더 들고 계산대로 갔다.어제와 다르게 애꾸눈 아저씨가 아니었다. 그는 계산을 하던 도중 삿포로가 미지근하니 시원한것을 찾아주겠다 했다.처음에는 알아듣지 못해 몇 번되물어야했는데 그는 직접 진열대로 가서 냉장보관된 삿포로를 찾아주었다. 우리는 감사인사를 하고시원한삿포로를 구입해 나왔다.


 숙소로 돌아가 곧바로 맥주를 마셨다. 우리는 어제와 다르게 들어오자마자 술을 즐길 수 있는 것에 감사했다. 물론 나는 어제도 곧바로 마시긴 했다. 당장 먹지 않을 쿠어스만 냉장고에 넣어놓았다. 우리는 어제와 똑같이 티비를 켰다. 티비에서 여자 레슬러들이 우스꽝스러운 말투로 대화하는 프로그램을 발견했다. 분명 규모가 크지 않고 퀄리티가 떨어지는 것으로 미루어보아 어른들을 타겟으로 한 프로그램이 아닌 것 같았다. 관객석은 작은 스탠드업 코미디 가게와 비슷했다. 자리에는 어린 아이들이 비겁하게 이기고 의기양양해하는 선생님과 학생를 향해 순수한 비난을 보내고 있었다. 우리는 확당하지만 중독적인 프로그램을 보면서 키득댔다. 술기운에 그런건지 실제로 재밌었는지 알기 어렵다. 레슬링 프로가 끝나고 채널을 돌려보다 한 영화를 보게 되었다. 첫장면부터 황당해 리모컨을 내려놓고 바라볼 수 밖에 없었다. 화면 속의 두 흑인 남녀가 섹스를 하려는 눈빛을 주고 받았다. 그런데 돈이 없어 하드한 플레이를 정석적인 방법으로 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여자는 필요한 도구를 부엌에 있는 여러 식재료를 통해 창의적으로로 대체했다. 둘은 한껏 부실한 도구와 상반된 표정으로 몰입했지만 동시에 없는 살림을 거덜대는 모습은 그야말로 압권이었다. 그 장면을 보면서 너무 어이가 없어 미국온 이후로 가장 크게 웃었다. 찾아보니<Don’t Be a Menace to South Central While Drinking Your Juice in the Hood>라는 영화였다. 아무생각없이 보다가 시원하게 웃으니 몸이 개운해졌다. 복잡한 마음이 깨끗하게 씻겨나간 덕분이었다.


 내일 아침 일찍 리버사이드로 돌아가는 버스를 타야했다. 그러므로 오늘도 이른 취침이 예정되어 있었다. 영화를 다 본 후 티비를 틀어놓고 침대에 누웠다. 내일 일찍 일어날 수 있을지 걱정되긴했다. 그래도 여태 잘 해왔는걸 이번에 못할리 없었다. 맥주 한 캔으로 금세 몽롱해지고서는 눈이 감겼다. 아마 오늘 하루가 길고 알차서 그랬는지도 모른다. 이제 여행이 반하고도 그 반이 끝났다. 어느덧돌아가기 전 사갈 기념품에 대해 고민해야할 시점까지 와버렸다. 그건 마지막날 쯤에 사면 되겠지 하고 생각했다. 걱정이 사그라들자 금세 잠들 수 있었다.



 미국여행 9/12 진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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