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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지호 Jun 11. 2024

수미상관,
LA에서 시작해서 LA에서 끝나다

미서부 여행 11일차

 기차를 타기 전 우버 기사님과 나눈 이야기가 인상깊었다. 내 전공을 물어보고는 왜 선택했냐고 물었다. 원예를 전공한 건 다름아닌 성적탓이었다. 내 성적에 맞춰 갈 수 있는 곳 중에서 생명과학을 다룰 수 있는 전공을 택했다. 나는 그렇게 순수한 생명과학이 아닌 실학자의 혼이 담긴 농학을 같이 공부해야 했다. 기사님께 솔직하게 대답했다. 그는 원래 인생은 원하는 것만 선택할 수 없다 했다. 그 또한 우버 기사를 우연히 하고 있었다. 그가 무슨 사정인지 몰라도 대인기피증을 앓았고 이를 극복하기 위한 활동의 일환으로 우버를 운행하게 되었다고 했다. 한국에서 원예를 전공한다 말하면 항상 똑같은 말만 들을 뿐이었다. 원예가 속한 분야인 농업은 유망한 분야라는 말만이 한국 어른이 해주는 유일한 답변이었다. 그러나 전혀다른 대답을 들으니 전공을 사랑할 수 밖에 없는 운명을 받아들일 수 있었다. 각자는 각자의 사정으로 인생의 여러부분 위에서 흘러가듯 살아간다. 누군가는 해야하는 일이라 할 때 우연히 이 분야에 발을 들인 건 나쁜 일이 아닐지도 모른다. 그렇게 다소 자아성찰의 면모를 띈 드라이빙으로 기차역에 도착했다.


 우리는 LA로 가기 위해 기차를 탔다. 아침 일찍 리버사이드에서 LA로 가는 이들을 위한 기차가 있었다. 이미 아침에 훨씬 이른 기차는 떠나보냈기 때문에 꼭 타야만 했다. 다름이 아니라 더 자고 싶어서, 뒤에 기차가 하나 더 오는데 피곤에 쩔은 채로 기차에 타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결국 스스로 친 배수진 덕분에 우버를 성공적으로 부르고 자아성찰을 이룬 후 기차역에 도착했다. 기차를 타기 위해선 티켓이 필요했다. 표는 딱 한 장만 필요했다. G군은 리버사이드 학생이라 해당 노선을 무료로 이용할 수 있었다. 그는 실물 학생증을 나에게 주고, 전자 학생증을 본인이 가지고 있으면 둘 다 학생이라 생각할 수 있다며 묘수를 냈다. 그러나 혹여나 발각된다면 미국 승무원을 농락한 죗값을 톡톡히 치룰 예정이었다. 그러므로 무모한 시도는 하지 않기로 하고 정당한 대가를 지불하기로 했다. 표를 사기 위해 ATM에 목적지를 입력하고 카드를 집어넣었다. 문제가 발생했다. 카드 비밀번호가 필요했던 것이다. 여태 카드 결제에 비밀번호를 사용한 적이 없었다. 유일하게 기차표를 사는 이 순간에만 맞닥트린 난관이었다. 다행히 G군이 대신 결제해주어 티켓도 구입하고 기차도 제시간에 맞춰 탑승할 수 있었다. 당장 내일 귀국을 위해 공항으로 가는 과정에도 한 번 더 같은 과정을 거쳐야 했지만 어머니에게 바로 카드 비밀번호를 여쭤보는 것으로 예방할 수 있었다. 


 기차를 타고 밖으로 지나가는 주택을 바라보았다. 일본에서 기차와 같은 눈높이로 마주치던 집과 사뭇 달랐다. 마당도 넓고 집도 단단한 콘크리트로 만들어졌다. 그리고 우리는 집과 도로보다 확실히 위를 지나는 다리에 오른 채 지나갔다. 도로 위의 차들 또한 우리와 같은 방향으로 달려가고 있었다. 기차의 속도가 훨씬 빠른지 자가용은 계속 뒤쳐졌다. 우리는 그것을 배경 삼아 얌전히 앉아 있었다. 우리의 티켓을 검사할 것에 대비하여 바짝 긴장했다. 결국 검사는 이루어지지 않았다. 승무원 복장을 한 사람이 여러 번 나타났는데 우리의 티켓에 전혀 관심이 없었다. 이럴줄 알았으면 티켓을 사지 않아도 될 뻔했다고 G가 말했다. 하지만 머피의 법칙을 간과해선 안된다. 나는 그랬으면 무조건 검사당했으리라 믿었다. 가는 길은 심심하지 않게 유튜브를 보았다. 서로의 심리를 정확히 꿰뚫은 강의가 유튜브에 올라온 참이었다. 지금은 논란의 불판 위에서 뜨겁게 달아오르는 피식대학의 '찐따학개론'이었다. 우리는 이를 보고 심히 공감했던 바 있었다. G는 찐따의 필수요건에 자격지심을 넣어둔 것을 보고 엄청난 통찰이라 평가했다. 하지만 그는 여러 이유를 대며 이에 대한 후속편을 보지 않겠다 하고 있었다. 너무나 뼈아픈 이야기이면서도 누군가에게 슬픈 내용이 희화화되는 것을 받아들이지 못했다. 내가 먼저 보고 괜찮았다는 후기를 남기자 그는 반신반의하고 영상을 보았다. 약 40분 간 소심한 이들이 어떻게 사랑을 겪어나가는지 열변이 쏟아져 나왔다. 우리는 멘트 하나하나마다 박장대소했다. 영상이 끝나니 LA 유니온 역에 도착했다.



  역은 크지 않지만 온갖 열차가 다 다니고 있었다. 역내 피아노는 누군가 점유한 채 흥겨운 블루스가 흘러나왔다. 밖으로 나와 보니 건물이 흰 바탕에 교회처럼 뾰족히 솟은 첨탐으로 하늘을 카리키고 있었다. 적어도 여기가 중요한 건물이라는 건 확실히 드러낼 수 있었다. 우리는 식사 - 아침이라 하기에 늦고 점심이라 하기에 일러 아점이라 일컫는 - 를 위해 첫 번째 목적지로 걸었다. 길거리에는 여태 보았던 어느 곳보다 많은 노숙자가 있었다. 노숙자와 시민의 비율이 비슷한 것이 아닐까 싶을 정도였다. 이상한 시위대도 마주쳤다. 길을 가로막고 있어 어떻게 지나가나 고심하고 있었는데, 길을 비켜달라 할 필요 없이 차도로 내려가 넘어갔다. 이십 분 가량을 걷자 그랜드 센트럴 마켓이 나타났다. 건물 1층을 관통한 시장은  가게는 멕시칸, 일식, 중식, 미국식 등 다양한 가게가 아침 장사를 위해 점차 문을 열고 있었다. 분명 앞에서는 아침이라 하기에 늦은 시간이라 했는데 아직도 열지 않은 가게 있다는 것이 이해가 안될 수도 있다. 나도 이해할 수 없었다. 이곳에서 점심 이전에 장사를 하지 않는 지점이 많아 선택이 오히려 어려웠다. 지금껏 멕시칸 음식은 여러번 먹었으니 제외했다. 일식도 딱히 궁금하지 않아 제외했다. 그러자 남는 가게가 거의 없었다. 우리는 시장을 여러 번 돌다가 입구에 있던 독일식 음식을 먹기로 했다. 가격은 시장이라는 이름에 맞지 않게 꽤 비쌌다. 나는 가볍게 비트 샐러드를, G는 소세지를 시켰다. 같이 먹을 용도로 양념감자도 같이 주문했다. 맛은 그닥 그랬다. 우리나라에도 비슷한 일이 있지 않은가. 청년이나 자영업자에게 기회를 주겠다면서 실력은 그저 그렇더라도 좋은 혜택을 주는 일이 떠올랐다. 이는 분명 발전을 위한 지원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내가 희생에 동참하는 - 그 가게의 음식이 가격에 비해 훌륭하지 못할 때 - 순간만은 피하고 싶었다. 그런 경우를 겪어본 적이 많이 없지만, 그랜드 센트럴 마켓도 그정도는 아니었다. 내가 미각이 뛰어나지 않으니 확신할 순 없었다.


 그래도 오랜만에 미국과 멕시코를 제외한 다른 문화의 음식을 먹어 만족스러웠다. 식사를 마치고 바로 옆에 있던 '엔젤스 플라이트'를 타기로 했다. 언덕을 걸어서 올라갈 수도 있지만, 미국 사람들은 짧은 거리라도 기계가 데려다줄 수 있는 미래를 상상했던 것 같다. 가장 짧은 케이블카라고 하지만 실상은 소소한 관광자원이었다. 안에는 근처 유치원 아이들이 가족의 모습을 그린 그림이 여럿 붙어 있었다. 우리는 그것을 보면서 케이블카가 출발하기를 기다렸다. 거의 45도는 되어보이는 언덕이 덜덜거리며 올라가기 시작했다. 천장이 시야를 가려 앞뒤로 올라가고 있다는 확인만 할 수 있었다. 결국 돈을 내고 편히 올라온다는 경험 외에는 특별한 건 아니었다. <라라랜드>에서 이놈을 타고 올라왔다는 사실이 이들의 관광수입만 늘려주는 것 같아 괘씸했다. 하지만 돈을 안내고는 빠져나갈 수 없었다. 현금이 없더라도 금방 카드 리더기를 꺼내와서 용케 돈을 받아냈다. 정없는 도시가 나의 1달러를 뺏어가자 괜히 분했다. 


 MOCA라 하는 미술관을 갈 차례였다. G의 코스 중 하이라이트가 시작되었다. MOCA는 Museum Of Contemporary Art를 줄인 것이다. 편하게 [모카]라 부른다. 미국의 미술관은 상당한 퀄리티를 자랑한다. 상설전시라는 것을 감안하더라도 흥미롭거나 인지도가 높은 작품이 상당수 있다. 이는 1일차에 이미 LACMA를 방문하면서 느꼈던 점이다. 이 외에도 LA에 갈만한 박물관과 미술관이 널려 있으니 굳이 더 설명하지 않아도 될 듯 하다. 


 우리는 미술관 앞에 앉아 매표소가 열리기만을 기다렸다. 11시 정시에 열리는 매표소는 우리를 기다리게 만들었다. 의아한 점은 표 자체가 무료인데 예매를 하지 않으면 들어갈 수 없다고 한다. 누군가에게 돈을 받고 누군가에게 돈을 받지 않기 위함인지 몰라도 그 때문에 내가 뜨거운 햇볕을 피해 기둥 뒤 그림자로 피할 수 밖에 없었던 것만은 사실이었다. 시간이 되자 직원이 터벅터벅 걸어와 매표소 창구를 열었다. 우리 외에는 아무도 없어 편히 가서 표를 받았다. 이 과정은 지금의 코스를 계획한 G군이 수행했다. 지하로 연결된 노상 계단을 통해 지하로 들어갔다. <오징어게임>의 심볼처럼 모카의 로고도 기하학 도형으로 간결하게 표현되어 있었다. 안의 직원은 관람 방향을 친절히 알려주었다. 


 미술관 자체의 현대예술에 대해 논하자면 끝도 없을 것이다. 들어간 즉시 마음을 사로잡은 건 다름아닌 층고였다. 높은 천장은 왜 지하에 지었는지 설득력 있게 다가왔다. 건물을 높게 짓지 않아도 바닥을 지하로 끌어당겨 관람객과 작품이 점유하는 세로 공간을 최대로 끌어올렸다. 거대한 작품의 위용이 공간의 제약을 받지 않는 훌륭한 설계였다. 현대예술은 단순한 회화나 조소가 아니다. 그렇기에 작품과 관련된 모든 요소가 작품을 향해야 한다. 작품이라는 틀 밖의 모든 요소도 마찬가지이다. 작품을 만든 작가의 배경, 설명, 작품 배치, 미술관 구조, 미술관의 지리적 위치, 미술사적 가치, 작품의 큐레이션, 관람객, 그리고 직원과 미술관의 서비스 정신까지도 모든 요소가 평가에 영향을 미친다. 예술이 대중에게 가장 가까이 다가오면서 큰 물음을 던져 난해한 만큼 사소한 모든 부분은 사람과 상호작용한다. MOCA가 그런 의미에서 가장 뜻깊은 전시를 보여주었지 않나 싶었다.



 흥미로운 작품 하나를 소개하겠다. Liliana Porter <Untitled (circle mural) I>은 벽에 그려진 원 하나가 전부이다. 그 위에 원의 일부를 담은 사진이 하나 붙어있다. 사진 안의 원 일부는 다시 사진 안의 손가락에 의해 절단되고, 손가락 위에 그려진 원의 일부가 다시 호를 메운다. 이것은 원인가? 현실이 얼마나 모호한지 이 작품 하나로 쉽게 확인할 수 있다. 구분에 대한 결벽이 과연 효과적인지 논해보기에 괜찮지 않나 싶다. 아니면 존 케이지의 작품도 있다. 우리에게 <4분 33초>로 잘 알려진 현대음악 작곡가이지만 음악 외의 작품도 몇 남긴 듯 했다. <River Rocks and Smoke>라는 꽤 난해해 <4분 33초>가 이해하기 쉬운 편이 아니었는지 생각해보게 된다. 이것은 음악과 회화 - 현대적 의미 - 가 가지는 차이이다. 음악은 지나가는 흐름이지만 회화는 정지된 무엇이다. 회화는 우리와 함께 최소 2차원에서 3차원 안에 있지만 음악은 시간이라는 단차원 위에 위태롭게 매달려 있다. 존 케이지는 두 영역에서 같은 의미를 전달하고자 시도했다. 


 전시는 크지 않아 금세 볼 수 있었다. 마지막 영상 형식의 작품이 유튜브에 업로드되어 있다는 캡션을 보고 G군은 검색해보고 있었다. 그는 다른 사람들과 여러 차례 와봤기에 내가 둘러볼 동안 잠시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미술관 중간마다 위치한 의자는 그의 안락한 거처가 되어주었다. 내가 거의 끝까지 본 후 바스키아의 작품이 다음에 갈 박물관에 있다는 말을 해주며 슬슬 마지막을 향해 가고 있던 와중이었다. 그가 끝 작품에 달린 이 텍스트에 관심을 가진 건 이번이 처음인 듯 했다. 그와 나는 유튜브에 실제로 업로드 되어 있는지 확인하니 진짜 있었다. 유튜브는 MOCA에 전시된 작품을 전시했다. 아니면 반대일지도 모른다. 의문은 박물관 밖에 있는 가게에서 레모네이드를 먹으며 해소되었다. 그런건 중요하지 않았다. 단지 미술관을 둘러보는 건 꽤 힘든 일이고 레모네이드를 먹으면 피로가 풀릴 뿐이었다. 우리는 다음 관람을 위해 잠깐 휴식을 가졌다. 바로 다음 블럭 건너편에 방대한 컬렉션을 가진 '더 브로드'에 갈 차례였다. 역시 G군은 이미 봤던 곳이라 잘 알고 있었기에 몇 가지 주의사항을 알려주었다. 그 중 하나가 쿠사마 야요이의 작품은 줄을 서서 봐야 하는데, 자신의 지인이 이전에 다 봤으니 가자 했지만 그 작품을 보지 않은 것을 알고는 보고 오라며 돌려보냈다는 이야기를 해주었다. 쿠사마 야요이의 작품이 어떤 느낌인지는 이미 알고 있고, 담긴 의미가 나에게 와닿지 않는 것 같아 딱히 내키진 않았다. 무엇보다 줄을 10분이나 서야 한다면 굳이 그럴 필요 없이 나가도 될 것이라 생각했다.


 도로를 사이로 트럼페터 중절모 흑인과 수염과 머리가 잔뜩 길러진 노년의 기타리스트 백인이 버스킹을 하고 있었다. 그 광경을 지나쳐 직육면엧에 사선으로 원통 구멍이 송송난 건물로 들어갔다. G군이 예약을 한 것을 보여주자 손쉽게 들어갈 수 있었다. 우리는 3층으로 쭉 이어진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올라갔다. 전시실은 건물 한 층을 뻥 뚫어놓은 거대한 공간이었다. 건너편이 적당히 보이지 않을 정도로 설치된 가벽에 작품이 빼곡히 걸려 있었다. 벽의 높이는 커다란 작품이 걸릴 정도는 되어 한 벽면을 하나의 작품이 차지하고 있기도 했다. 난이도가 쉬운 미로처럼 생긴 구조에 혼란스러웠지만 앤디 워홀과 로이 리히텐슈타인의 작품을 시작으로 큰 팔자 모양으로 걸어갔다. 전에 보았던 익숙한 작가의 비슷한 작품이 보이자 그들의 일관성도 눈에 담겼다. 현대 미술에 한해서 최고의 미술관으로 꼽힐 수 있는 박물관임은 부정할 수 없었다. 영어로 된 설명을 올바르게 소화해내지 못하는 역량이 안타깝기만 했다. 그러나 눈으로 보는 만큼 즐거운 건 없었다.


 아이는 들어가지 못하도록 통제된 성인 작품관에서 그림자로 나타낸 잔혹 동화 같은 작품과 무라카미 다카시의 작품 앞에서 인스타용 사진을 찍으려 온갖 컨셉을 잡으며 가까이 다가갔다가 제지당한 한국인 커플, MOCA에서 보았던 바스키아의 작품보다 유명한 작품이 여럿 걸린 코너를 지나치며 관람을 계속했다.



 미술관이라는 거대한 공간은 그 자체로 위압감을 준다. 미술사를 정확히 알지 못해 각 작품이 가지는 위엄을 제외한 가치를 잘 알지 못함에 대해 탄식만 나왔다. 대신 이곳에 전시된 작품은 검증되었다 믿은 후 즐기는 수밖에 없었다. 나를 난쟁이로 만드는 책상 및 의자와 제프 쿤스의 토끼와 강아지를 지나쳐 어느덧 대부분의 작품을 다 보았다. 그러나 G가 보라 했던 야요이의 작품이 보이지 않아 한 바퀴를 더 돌았다. 한쪽 구석에 몇 명이 전시차단봉을 따라서 줄을 서있는 것을 발견했다. 가까이 가서 보니 은색 기둥 사이로 잠만경처럼 장식된 내부를 들여다보는 쿠사마 야요이의 작품이었다. 줄이 길지 않아 보기로 생각을 바꿨다. 한 명당 1분의 제한 시간이 있다. 그 안에 볼 시간은 충분했다. 앞의 부부는 같이 관람하여 두 명이서 1분을 같이 사용했다. 마침 내가 줄을 서고 있는 모습을 G군이 발견했다. 차단봉 건너편에서 나를 발견하고 동물원에 갇힌 아프리카의 이국적인 동물을 보듯 나를 카메라로 찍었다. 나도 질 수 없어 같이 찍었다. 들어갈 차례가 되어 작품을 자세히 들여보았다. 머리도 들어갈 수 있는 구멍 안에 머리도 넣어보고 손도 넣어보고 둘을 같이 넣어보았다. 그냥 그녀의 작품이었다. 점이 무수히 많은, 환각 증세가 일어난 것 같았다. 역시 역시였다.


 관을 나와 기념품관을 통해 나왔다. 살만 할 기념품은 없었으나 전시와 관련 없는 이상한 책들이 눈에 띄었다. 일본에서 책을 볼 때와 다르게 쉬운 책은 간단한 영어로 되어 있어 읽어볼 수 있었다. 언어의 장벽이 잠깐 허물어졌지만 책을 구입할 정도로 나를 이해시키는데는 실패했다. 밖으로 나가 버스킹을 하던 기타리스트에게 갔다. G군은 그에게 큰 호감을 느끼고 있었다. 항상 같은 자리에서 연주를 하는데, 이전에는 비틀즈의 어떤 곡을 연주했다고 한다. 그는 이미 팁을 준 적도 있었다. 이번에도 팁을 줄 생각이었다. 그는 5달러 지폐를 그의 깡통에 넣으며 비틀즈의 아무 곡이나 연주해달라 청했다. 그는 알았다 하고서 어떤 곡을 연주했다. 유명한 곡이었지만 도무지 기억나지 않는다. 이번엔 내가 팁을 주었다. 줄 생각은 없었는데 G군이 자신의 지갑에서 지폐를 꺼내주면서 주라고 제안했다. 그는 정수리를 미세히 빗겨나가는 직사광선을 피해 야자수 밑 그늘에서 흐뭇하게 연주를 바라보았다. 


 더 브로드 바로 옆에는 월트 디즈니 콘서트홀이 있었다. 화려한 곡선 모양과 번쩍거리는 건물 표면이 오목거울 역할을 하여 주변을 뜨겁게 달궜다는 이야기가 있다. 결국 표면을 거칠게 갈아내어 빛을 모으지 못하게 처리해야 했다. 건물은 프랭크 게리가 설계한 비정형 구조의 곡선이 항해하는 범선을 표현하고 있었다. 그의 작품인 빌바오 구겐하임 미술관과 자칫 구분하기 어려울 수 있으나 훨씬 음악적 구조를 표현한 큼직한 세포를 가진 쪽이 콘서트  홀이다. 나의 최대 관심사 중 하나인 클래식이 연주되는 장소라 흥분되었다. 아쉽게도 이곳에서 연주는 들을 수 없었다. 오늘 저녁에 있는 공연을 보기에는 다음날 출국 일정에 영향이 있을까 하여 안정적으로 리버사이드에서 저녁을 먹고 아침 일찍 일어나기로 했다. 그리고 클래식 음악에 관심이 없다면 비싼 푯값이 제값을 하지 못할지도 모른다. 또한 곡을 미리 듣고 오지 않는다면 공연에 집중하지 못할지도 모른다. 여러 요건이 맞지 않는다 생각하여 간단히 기념품만 사고 나오기로 했다. 나는 간 김에 음악과 관련된 여러 기념품을 살 기회라고 여겼다. 이곳을 주 무대로 하는 LA 필하모닉 관현악단은 아주 열성적인 지휘자가 음악감독을 맡고 있다. 구스타보 두다멜은 곱슬머리에 혼자서 기타솔로를 하는 듯한 지휘를 펼친다. 그가 만약 오늘 공연 지휘를 맡았다면 오늘 밤을 여기서 보냈을지도 모른다. 아쉽게도 다른 지휘자인 덕분에 공연을 보지 않을 수 있었다.



 기념품샵은 크지 않지만 LA필하모닉과 콘서트홀이 새겨진 여러 상품을 팔고 있었다. 미국의 비싼 물가를 체감하면서 물건을 둘러보았다. 그 중 음반과 서적 중에 지인에게 줄 만한 선물을 찾아보았다. 클래식 동아리를 하고 있으니 더욱이나 사갈 수 있을 확률이 높았다. 그러나 역시 책이 영어라 망설였다. 영어책을 과연 읽을 수 있는지 - 당연히 영어 실력이 출중한 분들이 많으니 수월할 것은 알지만 내가 읽지 못하기에 영어책을 편히 읽는다는 상황 자체를 상상할 수 없었다 - 장담할 수 없어 섣불리 책을 집기는 어려웠다. 두다멜의 이야기가 담긴 책을 집어 들었다가 영어라는 장벽에 다시 내려놓았다. 대신 언어의 장벽을 뛰어넘는 음악이 담긴 음원을 골랐다. 구스타보 두다멜이 지휘한 구스타브 말러의 교향곡 5번 앨범을 골랐다. 한 지인의 글에서 둘이 흩어져 나온 것을 기억해낸 후 우연히 고른 선물이었다. 나중에 전달하니 두다멜과 말러 5번이 다른 맥락이었다 지적해주었다. 그렇지만 선물에 만족한듯 했다. 나는 만들어두지 않았던 친필싸인까지 직접 지도하여 만들어낸 후 받아내었다. 기념품과 친필싸인 제작을 맞교환 했던 셈이었다.


 앨범 외에도 가족 구성원에 맞는 악기 모형을 구입했다. 아버지께서는 왼손을 사고로 인해 사용하실 수 없어 밸브나 손가락을 바쁘게 움직이는 악기보다 입과 팔만으로 연주할 수 있는 악기 중에서 골라 트럼본으로, 어머니께는 외가 식구 중 가장 유순한 성격과 목소리를 가져 항상 나에게 감사하라고 말씀하시며 나도 동의하기에 악기 중 가장 으뜸의 음색을 가졌다는 오보에를 골랐으며, 형은 진지한 목소리로 잔뜩 잡다한 상식을 쏟아내는 모습에 어울리도록 묵직한 음색으로 생상스가 코끼리에 비유했으면서 산만한 덩치를 가진 바순을 골라주었다. 나는 최근 클라리넷과 색소폰을 연주하여 그것을 구입할까 했다. 그러나 작은 모형 주제에 하나 당 무려 15달러나 하여 집에 고이 방치된 실물 악기로 대체하기로 했다. 고르고 보니 전부 관악기였다.


 그 외에 G군과 내가 우연찮게 같이 알고 있는 지인을 위한 철학 단어 사전 - 이 책이 대체 왜 월트 디즈니 콘서트 홀의 기념품점에 있는지 모르겠지만 - 을 구입했다. 클래식 동아리인 소리지기 부원들을 위해 LA 필하모닉이 새겨진 지휘봉을 집었다. 멋들어지게 포장된 나무 지휘봉을 고를까 고민했지만 이 역시 하나에 35달러라는 거금이라 대신 15달러의 가벼운 지휘봉으로 만족하기로 했다. 역시 선물은 마음이 중요하다. G는 한쪽에 있던 하모니카를 보고서 나에게 선물로 사달라 했다. 나는 이왕이면 좋은 것으로 구매해주고 싶었다. 그곳에 있던 간단한 악기는 모두 아이를 위해 만들어져 성인이고 큰 덩치를 가진 그에게 맞지 않았다. 그러나 선물은 마음이 중요한 것이므로 그냥 사주기로 했다. 마지막으로 나를 위한 선물로 'LA Philharmonic 이라 적힌 스티커를 하나 사 아이패드에 붙이기로 했다. G군은 그녀의 여자친구와 본인을 위한 비틀즈 노래가 담긴 소형 오르간 - 이 역시 왜 이곳에 있는지 모르겠지만 - 을 하나씩 구입했다. 많은 기념품을 산 탓에 계산하던 차분한 인상의 여점원이 나에게 질문하도록 만들었다. 내가 소속된 클래식 동아리에게 줄 선물이며 아쉽게도 오늘 공연을 보고가지 않는다하니 계산대 앞에 있던 공연일정이 담긴 팜플렛을 포장에 함께 담아주었다. 언제든 공연을 보러 오길 바란다고 하며 나를 배웅했다. 그러나 그녀는 내가 이 지역, 이 고국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지 못한 모양이었다. 역시 미국은 모든 인종을 포용해버리는 바람에 나 또한 그곳에서 이웃이고 국민으로 대해졌던 것이었다. 


 방금 막 G군이 마련한 코스가 끝났다. 나는 이틀 전 확인해둔 지점을 골라 잠시 들러보자고 제안했다. 우리가 리버사이드로 돌아가기 위해 타야할 기차는 4시였다. 그 전까지 1시간 반이라는 애매한 시간이 남자 고민될 수 밖에 없었다. 결국 빠르게 이동하면 가능하다는 결론이 나왔다. 엔젤스 플라이트를 타고 올라왔던 언덕 뒷편으로 내려가 코비 브라이언트 벽화를 지나쳐 내가 봐두었던 곳, '더 라스트 북스토어'에 도착했다. 고서가 가득하고 다양한 컨셉의 조형이 설치된 서점이었다. 여행 첫 날 들렀던 깨끗한 서점과는 다르게 굉장히 부산스럽고 삭은 종이의 퀴퀴한 냄새가 풍겼다. 우리는 앞서 철학 단어 책을 사준 지인으로부터 받은 퀘스트를 하나 수행하기로 했다. 그녀는 본인에게 사줄 책을 서점에 들어가 눈을 감고 백 걸음을 걷고 눈 앞에 나타난 녀석으로 골라 달라 부탁했다. 우리는 앞서 구입한 책은 보험으로 구입해 놓은 상태였다. 눈을 감고 들어가기에는 책장이 규칙적이지 않아 눈을 뜬 채 무작위로 걸었다. 백 걸음 끝에 도착한 곳은 시와 사상이 담긴 책 코너였다. 기대보다 괜찮은 곳에 온 것 같아 발 앞에 놓인 책장에서 책을 한 권 꺼냈다. 무엇보다 눈에 띈 건 책의 가격이 무려 20달러가 넘었다는 것이었다. 내용이 괜찮았냐 물으면 그건 또 아니었다. 책 제목이 하나같이 섬뜩한 주제 - 악마나 비인륜적 비유가 담긴 - 를 담고 있어 얼굴을 찡그렸다. 내 옆 뒤에서 같이 책을 펼쳐보던 G군 또한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고개를 저으며 책을 도로 꽂아 넣고 있었다. 우리가 적절한 지점에 오지 못했다는 것을 깨닫고 실패를 인정했다. 다행히 방금 전 사두었던 책을 전달하기로 하였고, 실제로 퀘스트 수행에 대해 말하며 기념품을 전해주었다. 기념품을 받은 당사자는 기념품에 감동하고 부탁을 들어주었다는 사실에 감동했다. 역시 선물은 마음이 중요하다. 



 방금까지 1층을 잠깐 둘러보니 오래된 책을 비싸게 팔고 있다는 결론이 나왔다. 우리나라의 알라딘처럼 중고책을 정가 이하로 판매하는 곳은 전혀 아니었다. 기대를 접고 2층으로 올라가기로 했다. 위 층은 오히려 책이 거치된 곳곳이 다양한 모습으로 꾸며져 구경에 초점을 맞출 수 있었다. 위에 우연히 발견한 카메라샵에서 필름 가격을 확인해보았다. 미국의 필름은 과연 한국보다 저렴할지 기대했지만 환율까지 고려하면 자국과 다를바 없었다. 대신 전시된 오래된 골동품 카메라를 구경하고 나왔다. 안에서 1달러에 파는 책이 책장 한 줄에 놓여 있었다. 뒤적거려보았지만 떨이로 나온 이유를 알 수 있는 책만 있었다. 싼게 비지떡이라는 옛말이 틀리지 않았다. 시간이 예상보다 많이 쓰여버려 빠르게 빠져나갔다. 가는 길에 자세히 보지 못했지만 잠깐 재미로 즐길만한 구조물이 많았다. 원형 창틀 모양의 책 구조물, 색깔 순서대로 배열된 책들, 음모론이나 미스터리 책만 진열된 구석진 책방, 다시 만난 LP 코너 등 오히려 여기를 더 들여다 볼 걸 하는 곳이 많았다. 여행은 선택과 집중과 후회로 점철된다. 아까운 순간이 많지만 각오하고 여행을 떠났기에 오히려 이 여정의 참맛이라 할 수 있었다. 


 이제는 유니온 역으로 돌아가야 했다. 가는 길에 마지막으로 한 곳만 더 들리기로 했다. 미국의 필름 가격을 확인하기 위해 찍어두었던 필름 카메라 가게였다. 방금 필름 가격을 확인했던 참이었지만, 서점에 딸린 카메라 샵은 컨셉이라 값을 올려 붙이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에 길거리에 있는 가게에서 확인해보는 편이 적합했다. 가게에서 가격을 확인하니 방금 전과 다를 바 없었다. 그리고 혹여나 로모그래피 110 - 어차피 전용 카메라도 없지만 - 이 있는지 물었지만 다 나갔다는 말만 들을 수 있었다. 그렇게 빠르게 일을 처리하고 나왔다. 역으로 가는 길과 카메라 가게 그리고 리틀 도쿄까지 쭉 이어져 있어 필름 가격만 확인하고 나오면 기차 시간을 맞추는데 문제는 없었다. 다만 가게 근처에서 예상외로 스산한 분위기가 펼쳐졌다. 사람들의 허리는 굽어있고 눈의 실핏줄이 힘빠진 눈커풀 사이로 삐져보였다. 거리에는 인분이 눌러 붙어 있었다. 길거리에서 돈과 정체모를 물건을 주고 받는 무리가 지나가는 우리를 흘긋 쳐다보았다. 나는 이 광경을 보며 점차 불안함을 느꼈다. G가 같은 생각이었는지 신호가 바뀌려는 건널목을 발견하고선 나에게 "뛰어!"라 말하며 갑자기 속도를 내었다. 나는 오히려 이들의 주의를 끌까 하여 뛰지 않으려 했지만 그가 워낙 뒤도 보지 않고 달려가 따라가지 않을 수 없었다. 우리는 그렇게 달려서 횡단보도를 건너고, 다시 속도를 줄일 때쯤 다시 신호가 끝나가는 횡단보도를 뛰어 건너고를 반복하여 그 거리를 빠져나왔다. 몇 블록만 빠져나오니 공기가 곧바로 달라졌다. 거리는 깨끗하고 다시 관광객 몇 무리만 걸어다녔다. 우리는 안심하고 다시 역을 향해 걸었다. 가는 길에 밤이 아름답다는 리틀 도쿄에 진입했다. 최근에 일본을 갔다온지라 가짜 일본에 큰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 가짜 일본이라 할지라도 리틀 도쿄라는 명성에 맞게 일본과 관련한 것을 다양하게 만나볼 수 있다고 한다. 나중에 인연이 닿는다면 들르게 되리라 하고 지나갔다.



 결국 시간에 맞춰 역에 도착했다. 여전히 피아노는 같은 사람이 점유하고 있었다. 하루종일 앉아 있었던걸지도 모른다. 화장실을 들렀다가 다시 표를 사서 기차에 올랐다. 우리는 기차 이층석에 앉았다. G군이 앞서가 자리를 골라 먼저 앉았는데 그 자리가 나는 마음에 들지 않았다. 왜냐면 내 자리는 이층으로 올라오는 계단 아래 좌석과 눈이 마주치는 동시에 바로 앞에 있는 청년과 아주머니와도 마주보고 있어야 했다. 내가 앉은 자리는 두 석 짜리 좌석에서 통로 방향이었다. 내 앞에 앉은 그들은 객차 맨 끝의 한 석 짜리 좌석에 앉아있었기에 내 앞을 가로막는 의자가 없어 그들로부터 몸을 숨길 수도 없었고 아늑하지도 않았다. 마치 버스 맨 뒷자리에 안전벨트 없이 앉아서 다른 승객들과 눈을 마주치고 가는 느낌이었다. 그러나 G는 안쪽에 앉아 이 모든 단점과 관련이 없었다. 나는 그냥 참고 가기로 했다. 이런 불편함을 그에게 빠르게 말했다면 자리를 옮겼을지도 모르지만 너무 사소하다 생각해 그만두었다. 하지만 가는 길에 내 앞에 앉아 있던 청년이 나에게 돈을 좀 꾸어달라고 부탁해서 거절해야 하는 상황이 벌어졌다. 기차를 탄지 한참이 되었는데 이제와서 기차를 탈 돈이 없다는 것이었다. 나는 학생이라 돈이 없다 하니 그는 옆의 아주머니에게 동일한 말을 했다. 나는 이 상황 자체가 불쾌했다. 여기 앉지 않았더라면 이런 걱정을 할 필요가 없었을 텐데 말이다.


 나는 기분을 달래기 위해 G와 대화하면서 남은 길을 보냈다. 잠깐 정차할 때 큰 덩치의 개가 지나가자 G군이 겁을 먹었다. 개의 주인이 하필 연약해 보였기에 더욱 걱정이 컸다. 그는 저 개가 만약 달려든다면 저 주인이 개를 막지 못할 것이라며 자신의 두려움을 설명했다. 나는 이에 동감했지만, 달려드는 일은 흔하지 않을 정도로 개가 온순하다는 의견이었다. 이어서 방금 돈을 꾸어 달라던 소년에 대해 관찰하기 시작했다. 내 앞의 청년은 왜소한 체격에 큼지막한 이목구비를 가지고 있었다. 동시에 그의 옆에는 서브컬쳐 굿즈가 담긴 봉투가 놓여져 있었다. G군은 그도 여친이 있다는 사실을 알아냈다며 나에게 알려주었다. 내가 저 아이가 연애한다는 사실에 - 물론 첫인상에 기초했지만 - 놀라워하자, 미국 사람들은 연애하는 사람의 비중이 높다못해 안하는 사람을 이상하게 본다고 말해주었다. 이를 시작으로 온갖 이야기가 쏟아졌다. 미국과 한국의 차이는 무엇인지, 무엇이 이들을 다르게 만들었는지, 제도 혹은 다른 환경 때문인지 논쟁이 오갔다. 결국 방금 일은 완전히 잊은 채 지나갈 수 있었다. 역에서 내린 후 금요일이라 무료인 버스를 타고 집으로 돌아갔다. G가 이 사실을 몰랐다면 우버를 부르느라 엄한 돈을 쓸 뻔했다. 버스가 출발하기 기다리는 동안 옆에 있던 거대한 배낭을 맨 백팩커에게 질문을 받았다. 우리의 관계에 대해 묻고 지금 무엇을 하러 미국에 왔는지 물었다. 우리가 여행 중이라 하니 젊을 때 단짝 친구와 여행하는 일만큼 좋은 일이 없다며 일러주었다. 


 우리는 숙소로 돌아왔다. 저녁을 먹기 전 간단하게 아무 일이나 하며 시간을 보냈다. 나는 G가 외로울 때 깔았다는 틴더를 체험해보았다. 그는 이곳 주변에서는 이상한 사람이 많이 나왔던 것에 반해, 다른 지역으로 가니 금세 멀쩡해졌다 토로했다. 나는 그가 눈이 높은 것이 아닐지 확인해보고자 직접 설치하여 몇 번 돌려보았다. 검증 결과, 그의 말이 맞았다. 그가 말한대로 처음에는 다양한 사람들이 나왔지만 뒤로 갈수록 만인의 취향과는 벗어난 사람이 자주 등장하였다. G군은 그 사이 하스스톤을 켰다. 투기장이라는 모드로 한 판만 하고 저녁을 먹기로 했다. 나는 틴더를 지우고 그가 게임하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그는 마지막 순간 확실하지만 밋밋한 승리를 버리고 불투명하더라도 크게 이길 수 있는 선택을 내렸다. 그 결과, 그의 결정이 맞았다. 그가 내린 선택이 상대를 이길 생각조차 할 수 없게 밀어붙이자 상대가 몇 번 시도하다가 포기했다. G군은 방금 전까지 상대의 적절한 대처와 G의 준필살기이 손쉽게 대처되는 모습을 보면서 분을 삭히지 못하고 있었다. 결국 시원하게 상대에게 한 방 먹여주자 시원하게 일어났다. 우리는 이 즐거운 기분을 그대로 가지고 간 채로 저녁을 먹기로 했다.


 앞으로 남은 건 저녁을 먹는 일뿐이었다. G군은 이 순간만을 기다렸다. 그는 미국에서 먹은 음식 중 가장 맛있다는 식당으로 나를 데려갔다. 길은 어제 갔던 쌀국수집으로 향하는 방향과 같았다. 가는 길에 나는 사람이 지나가던 말던 하모니카를 불었다. G는 혹여나 아는 사람을 마주칠까 나를 말렸다. 그러나 그는 하모니카 소리를 들으며 계속 웃음이 나자 결국 포기하고 그도 즐겼다. 그는 대신 신호등을 마구 누르면 발생하는 이스터에그를 다시 발동시켜보기 위해 버튼을 마구 눌렀다. 서로 길거리에서 존재감을 마구 뽐내며 가게로 향했다. G군의 대망의 마지막 만찬으로 정해둔 식당은 '크랩 하우스'이다. 며칠 전부터 그가 꼭 가야 한다며 오늘 저녁을 꼭 리버사이드에서 마무리하도록 일정을 최대한 조율했다. 오늘 밤을 월트 디즈니 콘서트 홀이 아닌 리버사이드에서 보내는 결정적인 이유 중 하나였다.


 이곳은 해산물과 채소를 특제 소스에 버무려 내어준다. 그는 메뉴판을 보면서 능숙하게 자신이 먹던 대로 골랐다. 마침 우리 옆에는 생일 파티를 위해 단체손님이 일렬로 앉아 있어 평소보다 북적거렸다. 우리는 음식이 나올 동안 옆 단체 손님 건너 벽걸이 TV에 나오는 미식축구를 흘긋 쳐다보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음식이 투명한 비닐봉지에 담겨 나왔다. 직원이 네모나고 큰 철제 접시를 테이블 한 가운데 놔두더니 봉지 안의 내용물을 그 위에 쏟아냈다. 카레처럼 걸쭉한 적갈색 소스에 푹 익히진 식재료가 모습을 드러났다. 해산물로써 조개와 손가락 두 개만한 새우가, 희미하게 형태만 보이는 감자와 소세지가 사이를 메웠다. 음식의 취향이 한국인에게 꼭 맞으며 미국 향기가 물씬 풍겼다. G군이 '크랩하우스'를 이토록 노래불렀던 이유가 있었음을 인정할 수 밖에 없었다. 다만 맵기 조절은 실패했다. 새우 한 마리에 밥 한 숟갈, 그리고 물 한 모금. 소세지 한 조각에 밥 반 숟갈, 그리고 물 한 모금. 감자 한 입 베어물고 밥 반 숟갈, 그리고 물 두 모금. 물 세 모금. 물 벌컥벌컥. 결국 물배가 차서 음식을 꽤 남겼다. G 또한 매워하기는 마찬가지였다. 맵기를 조절하지 못한 것을 후회했지만 그럼에도 최선을 다해 몸 안에 새우를 욱여넣은 후 자리에서 일어났다. 숙소로 돌아가는 모습은 식당으로 오는 모습과 똑 닮았다. 나는 하모니카를, G는 신호등을 연신 눌러대며 돌아왔다. 어느덧 이 길을 숙소로 돌아가는 방향으로 걷는 건 마지막이었다.


 우리는 다음 날 일찍 일어나기 위해 '마지막'이라는 수사적 기념 행위을 거부했다. 술이나 게임을 하고자 하는 욕구를 집어 넣고 간단하게 씻고 자리에 누웠다. 나는 내일 일어나자마자 출발할 수 있도록 짐을 정리했다. 거실에 풀어놓았던 옷가지와 기념품을 캐리어와 가방에 잘 분배해 넣었다.  내일 아침까지 덮고 잘 애착이불을 위한 공간만을 남겨둔 후 캐리어 정리를 끝냈다. 가방은 기념품에 의해 늘어난 짐을 감당하지 못해 거의 정육면체에 가깝도록 부풀어올랐다. 내일 아침 입을 옷도 미리 소파 위에 걸쳐놓았다. 나는 마지막으로 입을 잠옷을 꺼내 갈아입었다. 그 후 자리에 누웠다. 우리는 마지막 작별인사는 하지 않았다. 한다면 내일 아침 해도 된다. 그리고 G군이 다시 한국으로 올 것을 알기에 미련없이 떠날 수 있었다. 나는 그의 여행에 들렀다가는 철새일 뿐이었다. 철새는 때가 되면 고향으로 돌아간다. 그리고 여행을 떠난 철새도 둥지로 돌아오기 마련이다. 그렇게 여행의 마지막 밤을 아무 일 없이 차분히 지나보냈다.



 미국여행 11/12 진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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