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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지호 Jun 13. 2024

철새는 둥지를 향해 돌아가고

미서부 여행 12일차

  G군이 나오지 말라고 사양하는 나를 재차 사양하고 밖으로 마중나왔다. 그는 혹여나 버스를 놓치진 않을까 밤잠을 설쳐 무척이나 피곤했다. 그럼에도 첫 신호등이 있는 사거리까지 같이 걸어주었다. 화장실이 급한 나머지 그 이상으로는 따라오지 못했다. 나는 그에게 괜찮다고 말하고 어두운 새벽 속에서 정류장으로 향했다. 며칠 동안 자주 지나가보았던 길이므로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었다. 익숙한 종탑을 지나쳐 캠퍼스를 통과했다. 지도와 이전의 기억을 더듬어가니 샌디에이고로 떠날 때 버스를 탑승했던 장소를 무사히 찾을 수 있었다. 버스는 늦을까 걱정했던 나를 무시하듯 30분을 늦었다. 이 사실을 모른채 잘못된 위치에서 기다리고 있는 것은 아닐지 주위를 살폈다. 시간을 잘못 알고 있는지 확인해보아도 이미 시간은 지나간지 오래였다. 나와 같이 기다리는 사람들을 보고 맞겠지 하고 대충 넘겨집는 것 외에는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G에게 연락을 해보니 그가 예매한 어플리케이션에서 연착 정보가 나와 있었다. 버스가 약속을 지키지 않는 것에 분해하기에는 아예 증발해버렸다는 G군의 사례에 비해서 사소했다. 해가 리버사이드를 비추기 시작할 때가 되자 버스가 도착했다.



 기사님은 친절한 집근처 이웃과 같았다. 지금껏 만났던 버스기사와 달리 자신이 제공해야할 서비스 외로 최선을 다했다. 버스가 멈추는 곳마다 어디인지 말해주었고, 한 명씩 어디로 가는지 물어 못 내리는 사람이 없도록 관리했다. 출발하기 전 항상 다음 지점과 걸릴 시간을 고지했다. 불친절이나 권위보다 임산부를 보며 자신이 불룩 나온 배를 쓰다듬는 유연한 조크를 겸비한 인물이었다. 이런 세심함으로 버스가 늦었다면 충분히 용서할 수 있다. 그 덕인지 버스는 이전처럼 빌런도 없었고 불편함도 없었다. 버스는 빠르게 달려 유니온 스테이션으로 향했다. 출발은 늦었지만 도착은 예상보다 빨랐다. 완벽한 버스 운행이라 감히 말해본다. 7시에 도착한 버스는 혹시 못탈까 걱정했던 7시 30분 공항버스를 여유있게 탈 수 있었다. 역 안으로 직접 들어가 표를 끊었다. 어머니께 미리 부탁해 받은 카드 비밀번호를 입력하는 일이 제일 관건이었다. 혹여나 비밀번호가 틀렸다면 결제가 안될 수 도 있는 상황이었다. 아쉽게도 그런 비극은 일어나지 않았다. 무난히 표를 구입하고 차분히 공항버스를 기다렸다. LA 국제공항으로 향하는 버스가 도착하자 캐리어를 끌고 나온 사람들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기사는 사람들의 캐리어를 받아들고 어느 터미널로 갈 것인지 표시를 한 후 짐칸에 실었다. 버스는 정각에 정확히 출발하여 공항의 터미널을 돌며 한 명씩 원하는 터미널마다 내려주었다. 나는 내가 내릴 터미널을 재차 확인하고 정확히 내렸다.


 무척 여유있게 도착한 덕분에 체크인이 아직 열리지 않았을 상황도 고려해야 했다. 에어프레미아 부스를 찾아가니 직원 앞은 휑하니 비어 있고 이삼 미터 떨어진 곳에 관광객이 안내선을 따라 바글바글 서있었다. 스무 명은 족히 넘는 이들을 보고 혹시 무인 체크인 기기가 없는지 확인하고 왔다. 그러나 그런 기기는 없고 이 앞에 사람들이 줄을 선 것으로 보건데 대면 체크인만 가능했다. 나는 줄 뒤에 서서 혹시나 잘못안 건 아닐지 걱정에 가득찬 채로 기다렸다. 정보를 얻기 위해 주위 사람들의 대화를 유심히 듣고 있자니 문득 위화감이 들었다. 체크인 창구가 아직도 열리지 않았을리가 없었다. 지금 줄을 서고 있는 사람들은 나보다 한참 늦는 비행기를 탈 예정이었다. 그들과 같이 줄을 선다는 건 말이 되지 않았다. 나는 맨 앞에 있는 한 가정의 가장에게 물었다. "혹시 10시 50분 비행기 체크인 줄인가요?" 라 하니 "아뇨? 그건 바로 하셔도 되는데요." 줄을 앞질러도 된다는 확답을 듣고 안내줄을 건너 재빨리 체크인을 마쳤다. 이번 여행 동안 비행기는 총 세 번을 탔지만 짐 수속은 모두 달랐다. 미국으로 가는 비행기는 가방 한 개에 캐리어 두 개를 가지고 갔기에 기내반입 수화물 8kg 이내로 두 개를, 위탁수화물 20kg이내로 한 개를 꽉꽉 채웠다. 다음으로 LA에서 라스베가스로 갈 적에 캐리어가 하나 비었다. 사촌형에게 전달한 20kg이 아쉽게 못미치는 짐이 없어 모든 짐을 기내에 들고 탔다. 당시 이용한 알래스카 항공 국내선은 위탁수화물의 기본값이 없음이고 추가할 때마다 비용을 받았다. 나는 조금이라도 돈을 아끼기 위해 캐리어를 기내에 또다시 들고 탔다. 그러니 짐검사 과정에서 캐리어와 가방을 둘 다 검사해야하는 바람에 꽤 귀찮음이 컸다. 마지막으로 귀국 항공편은 위탁수화물을 기본으로 제공하여 캐리어를 편히 맡겼다. 이번에는 가방만 검사하면 되기에 마음이 편했다. 내 캐리어는 이번 여행에서 처음으로 짐칸에 실려 날아가는 경험을 하게 되었다.



 체크인을 마치고 귀국 전 체크리스트를 간단히 해결했다. 지인에게 책 선물을 하기로 했다는 내용 - 1일차 파머스 마켓 서점에서 언급 - 을 기억한다면 아직 이 복선이 해소되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아챘을 것이다. 공항에 딸린 작은 상점을 구경하며 괜찮은 책을 골랐다. 영어는 부족해도 겉표지와 몇 단어를 통해 내용을 예상해보았다. 그분과 선호하는 책에 대해 이야기한 적이 있었다. 그녀는 내가 주최한 독서모임에서 항상 후보에 오르는 문학이 본인의 취향과 맞지 않는다 밝힌 적이 있다. 나는 오히려 책을 골고루 골랐다 생각하여 당황스러웠다. 그래서 물어보니 내가 고른 책은 주로 소수의 등장인물이 펼치는 깊은 고뇌와 사유가 담겼다고 이야기했다. 듣고보니 내가 지금것 선정한 책이 그러했다. 반면 지인의 취향은 다양한 관계가 얽히고설키는 스토리를 선호했다.나는 그 말을 기억해두고 책을 고를 때 알차게 사용했다. 결국 깊은 고심끝에 뒷 면에 '베스트셀러'라는 셀링 포인트가 당당히 적힌 책 두 권이 손에 남았다. 최종 선택은 가볍고 젊은 청춘의 이야기가 담겼을 법한 분홍빛 표지였다. 이외에도 LA나 캘리포니아와 관련한 기념품이 있길래 잠깐 둘러보았다. 개인적으로 호들갑이 심한 물건을 좋아하지 않아 끌리는 것이 없었다. 대신 트럼프 카드 중 하나가 눈에 띄었다. '에비에이터'는 단순한 패턴의 카드 뒷면을 가졌으며, 무엇보다 어릴 적 2500원이라는 가장 저렴한 가격의 종이 카드였다. 서양에서 가장 흔히 사용되는 바이시클 덱은 당시 삼천원이었다. 한번도 사본 적은 없었지만 돈이 많다면 언젠가 사보겠다고 다짐했다. 왜냐면 이 카드는 다른 카드에 비해 구매 후순위로 밀려나 계속 구입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항상 마술샵 사이트에 접속해 사고 싶은 도구나 카드를 장바구니에 가득 담았다. 이 과정을 세뱃돈 받는 날까지 이어나간 후 최종 예산에 맞춰 몇 개만 추려내었다. 그러니 당연히 값싼 카드는 나중에 사면 된다는 무한 미룸에 의해 내 손에 들어온 적이 없었다. 이번 기회로 구입해보기로 했다. 8달러라는 말도 안되는 인플레이션이 일어나버렸다. 현재도 한국에서 사천원을 주고 구입해야 한다. 이렇게 세월이 흘러감을 새삼 느끼고 말았다.


 짐검사를 하기 위해 위층으로 올라갔다. 양 옆으로 한국인이 가득찼다. 대부분 커플단위로 와서 혼자 서있는 상황이 뻘쭘했다. 세상에 홀로 남겨진 나만 대화할 벗이 없었다. 사촌형과 G군이 없었더라면 여행 내내 외루움에 사무쳤을 것이 눈에 선했다. 혼자서 여행하는 이들에게 괜스레 존경을 표했다. 노트북은 가방에서 꺼냈고, 신발도 벗어 바구니에 잘 담았다. 같이 담은 겉옷이 엑스레이 장치에서 걸려 떨어졌는지 레일 위에 철푸덕 펼쳐진 채 흘러나왔다. 짐을 다시 챙겨넣은 후 탑승할 게이트 앞까지 자리를 옮겼다. 미국에서 마지막 시간을 보내는 것 치고 평탄히 시간이 흘러갔다. 간단히 유튜브를 보면서 시간을 보내다가 할 일이 떠올랐다. 귀국 후 진행할 독서모임을 계획하여 미리 사람이 모인 톡방에 메세지를 보냈다. 벵하민 라바투트 <우리가 세상을 이해하길 멈출 때>를 읽고 모임을 가질 예정이었다. 이전 모임이 참여 인원 중 과반수가 당일 혹은 전날 불참 의사를 밝혀 최소 인원인 4명이 충족되지 않았다. 결국 모임이 취소되고 기약없이 다음으로 미뤄야 했다. 5월 중에 다시 가능한 시간대를 받아 진행할 계획이었다. 이제 막 중간고사를 끝냈을 사람들을 향해 독서모임에 대한 참여 의사를 묻는 글을 남겼다. 넉넉히 시간을 두고 공항에 도착해서 시간이 잘 가지 않았다. 이참에 미국에서만 쓸 수 있는 데이터가 아까워 데이터를 킨 채 고화질 영상을 재생했다. 어느덧 시간이 지나 변화무쌍한 식물의 생존전략에 대한 다큐가 재생되고 있을 때 쯤이 되자 탑승 안내가 이루어졌다. 탑승이 끝나고 출발할 때가 되자 각국의 발효 음식이 유사한 점이 너무나 많다는 설명이 나오는 장면에서 데이터를 끄고 비행기 모드로 바꿨다.



 비행기에서 할 일은 이미 정해두었다. <마담 보바리>를 다 읽고, 여행 초반에 작성하던 소설을 완성하는 것이었다. 피곤해서 잠깐 잠들 수 있으니 시간 배분만 잘 한다면 두 가지 일 정도는 손쉽게 가능하다. 아무런 변수가 없고 환경만 완벽하다만 말이다. 비행기에서 변수는 셀 수 없이 많다. 내 양 옆에 앉은 사람들의 성향은 책을 읽을 때 전등을 키는데 망설이도록 만들었다. 비행기 내부가 어두워지자 곧바로 담요를 덮은 채 잠드려는 사람 옆에서 허연 종이가 전등을 난반사해대는 건 민폐가 아닌지 고민했다. 눈치를 보다 덩달아 눈을 감고 마리스 얀손스 지휘의 브루크너 교향곡 9번을 감상했다. 이것이 첫 번째 관문이자 다음 일에 비하면 울산바위 앞 조약돌이나 다름없었다.


 3악장이 끝나가자 음악을 뚫고 괴성이 들려왔다. 비행기가 이륙하기 전 아이의 울음소리를 들었던 기억이 떠올랐다. 저음역대의 비행기 잔진동이 제거된 노이즈캔슬링 기능에서 초고음역대이자 에너지가 폭발하는 찡얼거림은 속수무책이었다. 음악의 음량을 최대로 키워도 마치 협주곡처럼 괴성이 관현악단의 노래 위를 떠다녔다. 더는 참지 못하고 귀에서 에어팟을 빼냈다. 내 옆 사람도 괴성이 클라이막스에 달할 때마다 어디서 나는 소리인지 기웃거렸다. 바로 두 좌석 앞에서 아비가 아이가 있는  좌석을 바라보고 있었다. 어미는 아이를 최대한 달랬지만 여자아이는 무엇이 그리 서러운지 비행기를 추락시키려는 기세로 울어댔다. 세상에 나온지 겨우 삼 사년이 채 되지 않아 보였던 아이는 하늘을 나는 쇳덩이에 탄 것이 그리도 억울했나 보다. 아비가 어미로부터 아기를 건네받는 과정에서 바닥에 떨어뜨리는 사고가 발생했다. 상황을 모르고 소리만 들었을 때 물건을 집어던졌겠거니 했다. 그러나 충격파가 터져나온 곳을 바라보는 승무원은 이제껏 본적 없는 생생한 경악의 표정을 보였다. 곧바로 아비가 바닥에서 아이를 들어올렸다. 아기를 처음으로 보자마자 내가 듣고 있던 소리가 정녕 사람의 소리가 맞는지 하는 의심을 풀 수 있었다. 결국 아비가 아이를 들쳐업고 기체 뒷편에 위치한 화장실로 데려가더니 강력히 호통쳤다. 아비와 아기는 밖에서 들리 정도로 큰 이중창을 펼쳤다. 아비는 화장실이 떠나가라 우는 아기를 두고 화장실 밖으로 나와 어미와 상의했다. 그 상의는 효과적이지 않았다. 비행 내내 아이의 울음소리를 들어야만 했다. 나는 혹시 아이 전문가가 비행기에 타고 있지 않을까 기대했다. 어림잡아 300명을 태운 비행기에 단 한 명도 아이가 우는 짓거리 - 아이가 우는 건 잘못되지 않았지만 폐쇄된 공간에서 소음 공해는 중단되는 편이 바람직하다 - 를 바로잡아 줄 위인이 없다는 사실은 차라리 내가 나서는 편이 낫지 않을지 고민하게 만들었다. 오은영 박사님의 솔루션을 귀담아둘 걸 하는 괜한 후회가 이따를 뿐이었다. 이것이 두 번째 문제이자 첫 번째 문제와는 비교할 수 없는 - 마치 내가 지구에 서있는 것에 어찌할 수 없듯이 - 불가항적 재앙이었다.


 웹툰작가 김풍이 자신의 아기 지도 과정을 퇴마 혹은 엑소시즘에 비했던 바가 있다. 아기의 몸에 달린 모든 구멍에서 체액이 쏟아져 나오고 입이라는 가장 큰 구멍은 음파 또한 배출한다. 의식의 마무리는 아기의 에너지가 다하는 순간이라 한다. 아기가 왜 우는지 아무도 모른다. 그저 울고 싶기에 운다. 따라서 울 수 없는 상태가 오려면 울 수 있는 에너지, 이전 끼니에서 얻은 영양소가 다 쓰이기만을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 비행기에서 다른 창구가 없기에 우리는 다같이 아이의 울음이 멈추기만을 기다렸다. 각자의 머리속을 들여다볼 수 없겠지만 나와 비슷한 생각으로 꾹 참았을 것이다. 한 아이를 키우기 위해서 한 마을이 필요하다는 격언이 있다. 비행기는 작은 마을이고 우리는 저 아이를 위해 인내의 미덕을 발휘하기로 결정했다. 책은 커녕 잠들기도 힘들었다. 내 옆에서 잠을 청하던 이들에게 더이상 책을 비추는 등불은 큰 문제가 아니었다. 나는 다시 보바리 부인의 이야기에 최대한 몰입했다. 아이의 외침과 보바리 부인의 비참한 몸부림이 썩 어울렸다.


 첫 기내식이 제공되자 아이의 울음이 멈췄다. 잠시 휴전 상태에 돌입했다. 나는 책을 덮고 다음 할 일을 정했다. 식사 후에 영화 <지금 만나러 갑니다>를 시청했다. 앞좌석에 달린 모니터를 두드려 볼 수 있는 영화 중 가장 최선의 영상이었다. 미국으로 가는 길에 이미 <거미집>을 보았기도 하고, 아는 영화가 단 두 편 밖에 없었던 탓도 있다. 손예진과 소지섭이라는 미남미녀의 등장만으로 이미 충분한 감동이었다. 노이즈캔슬링이라는 최첨단 기술이 탑재되지 않은 비행기 제공의 이어폰은 밖의 소음을 영화 일부로 포함시켰다. 아이는 에너지를 보충하여 다시 울기 시작했고, 그 아이와 다른 파형도 감지되었다. 두 아이는 최소한 서로의 최대의 퍼포먼스를 동시에 발휘하는 기적은 일으키지 않았다. 덕분에 영화에 적절히 몰입하며 남은 시간을 보냈다. 중간에 화장실을 가기 위해 자리에서 일어났다. 뒤쪽 화장실이 더 가까웠지만 울었던 아기가 어떻게 앉아있는지 확인하기 위해 굳이 가운데 화장실로 걸어갔다. 가는 길에 다음과 같은 장면을 목격했다. 세 좌석 중 복도에 어미가 앉아 있고 남은 두 좌석에 첫째 여자아이가 엎드려 동화책을 읽고 있었다. 방금까지 비행기를 지배했던 둘째 여아는 그 바닥에 엎드려 동화책과 장난감을 만지작거렸다. 이 아이가


 앞에서 다짐했던 일 중 절반도 달성하지 못했다. 영화를 다 보고 나니 어느덧 비행시간이 2시간이 채 남지 않았다. 무슨 일이 있었다고 이렇게 시간이 훌쩍 지나가버린건지 이해할 수 없었다. 참으면 낙이 온다 했지만 아직 2시간은 참아야할 시간이라 낙은 멀고도 멀었다. 다시 보바리 부인의 기행을 아이의 통곡에 버무려 펼쳐보았다. 비행기가 인천공항에 착륙하기 위해 몸을 숙이자 아이는 다시 울었다. 그러나 그보다 더 중요한 <마담 보바리> 완독을 위해 논리적으로 울음을 이해한 후 머릿속 휴지통에서 처리했다. 결국 500쪽이 넘는 책의 후반에 도착하여 보바리 부인의 사망 시작점에 이르어서 비행이 마무리되었다. 소설을 써보겠다는 생각은 단 한번도 할 수 없었다. 계획한 일의 순서는 완독 후 집필이었다. 그러나 완독이 완료되지 못했으니 계획한 두 일 중 하나도 해내지 못했다고 말할 수 있었다.


  내린 후 익숙하게 보이는 한글은 내가 한국에 있음을 상기시켜주었다. 내국인은 바로 통과할 수 있는 창구는 고국에 잘 돌아왔다는 환영인사로 비쳤다. 짐을 찾는 곳 앞에 서서 캐리어가 컨베이어 벨트 위를 빠져나오기를 기다렸다. 짐만 꺼내면 이제 집으로 돌아갈 수 있다. 내 것을 발견하고 잽싸게 빼낸 후 짐을 찾는 승객과 주인을 찾지 못한 캐리어를 등 뒤로 하고 출구로 나갔다. 부모님이 나를 기다리고 계셨다. 내가 까맣게 탄 것을 보고서 선크림을 바르지 않았냐 타박했다. 나는 열흘이 넘는 기간동안 부모님과 만나지 않았다는 실이 실감나지 않았다. 여행은 순식간에 지나갔다. 집으로 가는 길에 아버지의 차에 월트 디즈니 콘서트 홀에서 사온 트럼본을 꺼내 유리창에 붙였다. 거기서 사온 기념품에 대한 이야기와 비행기에서 시끄러워 힘들었다는 토로, 그리고 나도 어릴 때 시끄러웠나 하는 우려를 표했다. 집으로 돌아와 저녁을 먹고 곧바로 잠들었다. 하지만 자정이 되자 곧바로 눈이 뜨였다. 미국은 현재 아침 8시, 알람이 울리고 피곤에 쩔어 일어나야 할 시간이었다.





 미국 여행 12/12 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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