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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지호 Jun 09. 2024

식물원은 내 전공이니 맡겨두라고!

미서부 여행 10일차

 이틀 전 버스를 탔던 곳으로 우버를 타고 이동했다. 우리와 같은 버스를 탈 것처럼 버이는 이들이 이미 서있었다. 이른 아침부터 노숙자는 이리저리 자리를 옮기느라 바빠보였다. 휠체어를 끌고 우리 옆에 와서 무어라 말을 걸었지만 발음이 어눌해 알아들을 수 없었을 뿐더러 괜히 대답하지 않는 편이 좋기에 시선을 피했다. 그들은 우리 옆에 있는 다른 승객에게도 같은 말을 했지만 누구도 대답해주지 않았다. 버스는 항상 그렇다듯 제시간에 오지 않았다.



 아침에 버스를 타는 일은 한국에서도 자주 겪었다. 오전 9시 수업을 가려면 집에서 늦어도 7시에 일어나야 했다. 서울로 통학, 통근하는 모든 사람들은 대부분 늦어도 7시 반에는 버스에 타야 늦지 않기 때문이다. 버스를 그때까지 타기 위해선 그보다 일찍 일어나서 기다려야 한다. 버스정류장이 가까운 편이라면 오는 시간을 맞춰서 나가도 되지만, 한 정류장이라도 앞에서 타야 좋은 자리를 선점할 수 있었다. 최소한 앉지는 못하더라도 서있기 편한 곳 말이다. 오늘도 아침에 버스를 타야했다. 만약 좌석버스를 탄다면 천 원을 더 지불하는 대신 편하게 앉아서 갈 수 있었다. 항상 버스에 앉으면 잠이 왔다. 출근길 고속도로에 껴서 느릿느릿 움직이는 버스는 요람처럼 안락했다. 눈을 감고 뜨면 내려야할 사당역 혹은 전역인 남태령역 정류장이었다. 차에만 타면 잠이 오는 버릇이 버스에서만큼은 고쳐지지 않았다. 오늘의 버스는 출발지가 샌디에이고, 도착지가 리버사이드라는 미국의 정거장을 오갈 뿐 차이는 없었다. 버스를 타고 익숙하듯 잠든 덕분에 돌아오는 길은 무척 짧았다. 그리고 익숙하듯 1시간이 지나 잠이 깼다. 핸드폰을 꺼내보니 롤러코스터의 '내가 배워둔 세상'이 재생되고 있었다. 그 노래가 수록된 앨범을 찾아 처음부터 틀고 다시 잠들었다. 리버사이드에 돌아오자 어느덧 10시였다. 우리는 학교로 향하는 학생들 사이로 걸었다. 우리는 그들처럼 가방을 메고 있었지만 안에 내용물은 달랐다. 학교에서 밥이라도 먹을까 생각했지만 곧바로 숙소로 들어갔다. 부족한 잠을 채우기 위해 걸어서 20분이 넘는 거리를 묵묵히 걸었다. 집에 도착하자 밥이라도 샜던 것처럼 침대에 누웠다. 둘다 눕고서 밀린 잠을 잤다. 사실 이미 잠은 충분히 잤기 때문에 잘 필요는 없었다. 하지만 우리 둘은 침대를 너무 좋아했다.



 G는 침대에 눕자마자 눈이 감겼다. 나는 침대의 탄성과 애착이불의 보드라운 털을 한껏 즐기며 핸드폰을 바라봤다. 내일 G군과 함께 LA를 갔다오기로 했는데, 그가 이미 코스를 짜놓았다고 해서 동선을 미리 알아보고 있었다. 이번 년도에만 그는 무려 세 번이나 한국 손님을 맞이했다. 그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미국 여행을 온 사람을 대접할 코스를 구상하게 되었다고 한다. 코스는 LA 다운타운 안에서 끝난다. 멀리서 보면 LA에서 유일하게 건물이 삐죽삐죽 솟아있는 곳이 있는데, 바로 그곳이 다운타운이다. 주요한 지점이 많아 동선이 크지 않아도 알차게 볼 수 있다고 한다. 나는 그가 말해주었던 장소들을 인터넷에 하나씩 검색해보았다. 시간이 남으면 들러볼만한 곳도 있는지 다른 사람들의 여행 후기를 살펴보기도 했다. 시간이 된다면 카메라 샵을 들러보고 싶었다. 미국은 자국 기업인 코닥 필름이 저렴하다는 소문을 들었다. 여기도 최근들어 필름값이 무척 올랐다는 소문도 같이 듣긴 했다. 그래도 오래 있을 것도 아니고 잠간 가격만 확인해볼 생각이라 지도에서 우리가 들를 곳과 가까운 지점을 저장해두었다.


 나는 자지 않아 금세 피곤해졌고 G는 잘 자고 일어났다. 12시에는 점심을 먹는 것이 어떨까 했지만 둘다 귀찮다면서 출발하지 못했다. 왜냐면 점심은 리버사이드의 다운타운 - LA의 다운타운과 다른 곳 - 에서 텍사스 바베큐를 먹기로 했는데, 그 전에 대학 뒤에 붙어 있는 식물원을 가야 했다. 영어 명칭은 'Botanic Garden'[보태닉 가든]이라서 우리끼리는 보태닉이라 불렀다. 보태닉은 그의 어머니가 나에게 추천해주신 곳이었다. G군과 내 사이가 가까워 나에 대해 알고 있는 것이 많으셨고, 그 중 전공이 원예라는 사실도 익히 들어 알고 계셨다. 일전에 보태닉을 온 후 기억해두고 나를 데리고 가라고 G에게 말을 해둔 모양이었다. 보태닉이 대학 뒷 편 산자락에 있다는 사실만 제외하면 나쁠 건 없었다. 거기가지 언제 걸어가나 싶었지만 결국 안 갈 수 없었다. 나는 씻지않아 눌린 머리를 모자로 아예 감춰버렸고 G는 내가 선물한 헤어밴드를 착용했다. 그 모습을 보고 나는 진심으로 그렇게 하고 나갈 것인지 물었다. 그는 괜찮지 않냐며 대답했지만 내 다답은 '아니'였다. 그는 보태닉을 누군가와 같이 가는 일이 있다면 해보고 싶은 것이 있었다며 거실 한 편에 거치되어 있던 일렉기타를 집었다. 그의 숙소에는 기타 소리를 내줄 앰프도 없었지만 일렉기타 생활에 만족하고 있었다. 통기타는 소리가 커서 밤에 연주하지 못하지만 일렉기타는 애초에 소리가 거의 안나는 덕분에 소음 걱정없이 언제나 연주할 수 있다고 한다. 그가 일렉 사운드를 자유자재로 편집하는 재미를 아직 몰라서 다행이라 느낄 뿐이었다. 그는 보태닉 뒷 편의 산에 기타를 들고 올라가고 싶은 곳이 있다며 기타를 들춰 맸다. 우리는 하모니카와 일렉기타라는 정말 말도 안되는 조합의 듀오를 결성하고 밖으로 나왔다.


 그는 밖으로 나와 핸드폰으로 자신의 얼굴을 확인했다. 내가 헤어밴드를 정말 벗지 않을 건지 재차 물었기 때문이었다. 그는 검은 화면에 비춘 모습을 보더니 훌러덩 벗었다. 갑자기 씻지도 않고 수염 정리도 안된 모습과 같이 보니 별로라는 이유였다. 나는 잘 생각했다. 말했다. 곧이어 그는 자신이 메고 있던 일렉기타를 나에게 넘겼다. 사실 기타가 살짝 무게가 있던 탓에 넘기지 않았을까 하는 합리적인 의심도 해볼 수 있었다. 그는 지나다니면서 아는 사람과 마주칠까 걱정하고 있었다. 여기에 악기하는 사람이 없냐며 부끄러워할 일이 아니라 했지만, 그는 내가 기타를 들고 있는 편이 더 잘 어울린다며 건넸다. 그는 나의 긴 머리와 일렉기타는 락스타같다며 치켜세웠다. 나도 그런 모습이 싫지 않아 계속 들고 갔다. 학교 주변을 따라 오르막을 오르다보니 초록 철창 앞에 한 여학생이 앉아 있었다. 그녀는 책상 아래에서 전자책을 읽고 있던 도중 우리를 발견하고 인사를 건넸다. 우리는 인사에 응하고 그녀 옆에 열린 문으로 들어갔다. 나는 그녀가 여기서 계속 있는 것이 힘들지 않을까 걱정했다. G는 오히려 가만히 자기 할 일 하면 되니 무척 편하고 효율이 좋다 했다.


 보태닉 가든, 다시말해 식물원은 식물원이 위치한 환경에 영향을 크게 받는다. 각 환경에 맞는 식물을 우선으로 배치하지 않으면 모조리 죽어버릴 것이다. 그렇기에 각 나라의 식물원이나 정원은 기후를 예상할 수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이곳 보태닉은 한국에서 온실 안에서 보았던 식물들이 밖으로 나와 있었다. 정확히는 한국으로 억지로 데려와 온실 밖으로 꺼낼 수 없었던 이들이 고향에서는 자유롭게 바깥 생활을 즐겼다. 나는 이참에 G군에게 식물에 대한 가이드를 간단히 해주었다. 사실 선인장연구소에 견학갔던 때 들었던 내용이 전부였다. 가이드를 얘기를 먼저 꺼낸 건 사실 G였다. 처음에는 해줄 떠오르지 않아 거절했다. 그러나 오동통한 다육식물을 마주치자 들었던 이후로 전혀 기억나지 않던 사실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열대식물의 다양한 적응 방식, 진화 과정을 확인할 수 있는 중간형 형질, 로젯트 형으로 자란 식물이 얻는 이점 등을 열심히 설명했다. 설명 와중에 식물보다 도마뱀이 더욱 눈에 띄었다. 곤충보다 도마뱀이 흔하게 뛰어다녔고, 크기가 각양각색이었다. 마치 바닷가에서 바위 근처를 얼쩡거렸다가 사사삭 하고 흩어지는 갯강구와 다름이 없었다. 그러나 전에 파충류를 키워 도마뱀은 징그럽다 생각하지 않았다. 얼마 전 떠나보냈던 녀석들의 먼 친척을 보는 듯 했다.


 우리의 최종 목적지는 뒷산이었다. 보태닉 입구에서 챙겨온 지도를 통해 현재 위치를 가늠해보았다. G군은 가는 길에 거북을 볼 수 있는 연못이 있다며 그곳을 경유해 가자 했다. 나무 뿌리를 담장으로 한 웅덩이에 작은 붉은귀거북 두세 마리가 참방거리고 있었다. 가끔은 물 밖으로 나와 통나무 위에서 일광욕을 즐기는 모습을 볼 수 있다고 했다. 연못을 등지고 두세 번 겹쳐진 오르막을 오르니 화훼 정원이 나타났다. 바로 작년 들었던 화훼학 수업이 있어 말할 거리가 쏟아졌다. 바로 앞에서 마주친 장미는 다양한 품종을 가졌고, 그것을 개발하기 위해 많은 자본이 투입되며 한 번 좋은 품종을 개발하면 평생 받을 연금이 나온다고 말해주었다. 뒤로도 화훼 산업에 대한 전반적인 설명이 이어졌다. 작은 정원을 통과하여 악마의 항아리인가 싶은 괴상하게 줄기가 부풀어오른 나무까지 지나치자 본격적인 언덕길이 시작되었다. 우리는 다시 지도를 펼쳤다. 지도는 엉성하게 그려진 지형도에 갈림길마다 번호를 붙여놓았다. 번호와 길의 모양을 토대로 앞으로 가야할 방향을 정하고 대충 걷기 시작했다. 가는 길은 사소한 부분을 제외하고 지극히 평범한 산책길이었다. 고향에 살지 않는 들꽃과 들벌레를 보는 묘미가 자연을 자세히 관찰한 이들에게 주는 특혜였다. 어느덧 사람보다 큰 나무가 전혀 없는 들판에 올라왔다. 히끄무레한 갈색빛으로 타버린 들풀 사이로 푸른 관목이 무리지어 샛노란 꽃을 자랑했다. 우리는 위를 걸으며 자유로움을 느꼈다. G의 제안으로 게임 배경음악을 들으며 걷기로 했다. 전원이 거의 나가 밝기가 낮아져 화면이 보이질 않았다. 하지만 핸드폰의 어플 위치를 외우고 있어 문제없이 음악을 찾아 틀 수 있었다. 한 달 전만 해도 나는 한국에, G군은 미국에 있었다. 같이 포켓몬스터를 하기 위해 16시간이나 되는 시차를 극복하고 같은 화면을 바라보았다. 게임에서 주인공은 어린 나이부터 풀숲과 나무가 가로막는 길을 따라 모험을 떠났다. 다시 현재, 우리는 풀숲 사이로 난 길을 따라 모험을 떠나고 있었다.



 우리가 발걸음을 마친 곳에는 승용차만한 바위가 언덕 아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음악을 줄이고 여태 어깨에 메고 있던 기타를 내려놓았다. G군은 그것을 꺼내 가볍게 연주했다. 그는 웬만한 대중음악이 머니코드라는 공식을 띄고 있다는 사실을 바탕으로 다양한 곡을 연주할 수 있었다. 어려운 코드로 바꿔 노래마다 특유의 분위기가 드러나지 않는 것 외에는 연주에 흠잡을 곳 없었다. 나는 바위에 올라갈 수 있는지 근처를 탐색하고 있었다. 울퉁불퉁하고 크기도 적당한 것이 그리 어렵지 않게 올라갈 수 있을 듯 했다. 그가 연주에 정신이 팔린 사이에 바위 위로 냉큼 올라섰다. 위에서 그를 부르니 그는 곧장 연주를 그만두고 이쪽으로 올라오겠다. 했다. 그의 기타를 바위 위로 건네받고 내가 올라왔던 경로를 알려주었다. 그는 나보다 덩치가 둔했지만 큰 어려움없이 내 옆으로 올라왔다. 나는 하모니카를 꺼내 능숙하지 않더라도 계속 불어댔다. 대충 불어도 화음이 나오는 악기 덕분에 단순한 긴장과 해결을 반복하면서 노닥거릴 수 있었다. 그는 하모니카로 부를 수 있는 곡을 몇 개 떠올려보고 나에게 시켜보았지만 어제 처음으로 하모니카를 불어 본 나에게 적합한 난이도는 아니었다. 하모니카와 듀엣은 포기하고 이곳에서 기타로 연주하기에 어울리는 곡을 골라달라 했다. 몇 번의 시행착오 끝에 델리스파이스 '고백'을 골라주었다. 검색으로 악보를 찾은 후 곧바로 연주했다. 나는 옆에서 가사를 몰라도 음은 알기에 대충 흥얼거렸다. 그는 가사를 보더니 갑자기 경악하면서 연주를 멈췄다. "가사가 왜이래? 지금 연애하면서 첫사랑 생각한다는 말이잖아!" 그는 경악했다. 평소 연애와 관련해서 굉장히 보수적이다 못해 외면하는 유형이었다. 그런 그가 본인의 연애는 잘만 하면서 남의 연애 사정을 듣지 못하는 건 상당히 기형적이었다. 그럼에도 이 가사는 논란의 여지가 있었다. 연인의 손을 잡으며 다른 첫사랑에게 고백하는 노래라니. 나는 화자가 본인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어떻겠냐고 제안했다. 그는 이전 연애에서 마음이 맞지 않는 상대를 만나 고생했다. 현재 연애가 바람직하지 않다면 옛날 그녀가 그리워지는건 허용해줄 수 있지 않을까 했다. 그는 잠시 생각해보더니 그건 가능할 것 같다 했다. 자신이 당하는 입장에서 생각하니 너무 분했다고 한 것이었다. 그는 고백을 다시연주하고 뒤이어 다른 곡을 몇 차례 더 연주했다. 그가 흥얼거리는 선율과 기타 반주는 일렉기타라도 주위의 고요함 덕분에 충분히 공간을 채워나갔다.


 보태닉에서 집으로 돌아오니 오후 2시가 되었다. 돌아오는 길에 입구에 앉아 있던 학생에게 재차 인사를 하고 나오고, 귀여운 토끼를 마주치기도 했다. 물론 대학 근처에 오자 기타는 내 담당이었다. 아직도 점심을 먹지 않았다는 사실에 놀라웠지만 전원이 나가버린 핸드폰을 위해 숙소에 잠깐 쉬었다 가야 했다. 길게 지체할 수 없어 30분만 간단히 충전했다. 5분 거리에 있는 버스를 타고 다운타운으로 향했다.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G군이 말했던 텍사스 바베큐 가게가 있었다. 더 이상 시간을 점심이라 할 수 없었지만 명목상 점심이었다. 점원에게 원하는 고기를 여럿 주문하고 맥앤치즈를 꼭 먹어봐야 한다면서 그것까지 추가했다. 그의 말대로 바베큐는 맛있는 음식이지만 많이 주문하는 건 불안했다. 2년 전 가족끼리 바베큐가 모둠으로 나오는 메뉴를 시켰다가 다 먹지 못하고 포장해와서 일주일동안 먹었기 때문이었다. 한 마디로, 나는 먹는 양이 작으며 바베큐를 많이 먹지 못하는 식성이다. 하지만 그는 걱정하지 말라 했다. 말그대로 내 걱정을 포함해서 고기를 모두 먹어치웠다. 나도 만족스럽게 먹었다. 완벽한 공생관계였다.



 식사를 마치고 다운타운을 둘러보기로 했다. 바로 앞에 있던 공원은 고즈넉한 분위기에 오싹한 노숙자가 누워있어 곧바로 빠져나왔다. 공원의 북쪽으로 놓인 가게들 사이에 넓은 공터가 있었다. 그곳은 전혀 예상치 못한 '도산 안창호 기념 동상'이 세워져 있었다. 그가 독립운동을 준비하기 위해 오렌지 농장에서 일했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이후에 단체를 만들고 자금을 마련한 지점이 바로 리버사이드 카운티였다. 덕분에 리버사이드와 강남구는 자매결연도시로 묶여있을 정도라고 한다. 정말 뜻밖에 외국에서 한국의 흔적을 느낄 수 있었다. 안창호 선생 외에 마하트마 간디의 동상도 있었다. 근처를 둘러보며 이제는 피할 수 없는 기념품 구입을 사기 위해 골동품점을 들어갔다. 안에는 수작업을 만든 듯 한 그릇과 인형, 엽서를 팔고 있었다.  마음에 쏙 들지 않고 견적에 맞지 않는 가격을 보고 빈 손으로 빠져나왔다.


 근처를 둘러보며 더 갈 곳이 있는지 고민하던 중, 그가 LP매장이 있다며 데려갔다. 안에는 유명 밴드와 재즈 음반이 벽에 걸려 있었다. 가게에 주인이 보이지 않아 들어가길 망설이고 있었는데, 계산대가 아닌 소파에서 영화를 보고 있었다. 주인은 그의 뒤로 들어오는 우리에게 편히 둘러보라면서 여전히 소파에 앉아 휴식을 취했다. G군은 비틀즈나 동시대의 밴드 앨범이 있나 찾아보았다. 나는 클래식 음악이 취향이라 찾아보았지만 LP 분류 이름표에는 클래식 혹은 고전 음악을 찾을 수 없었다. 주인에게 물어보니 여기는 클래식은 딱히 들여오지 않느나고 했다. 혹시 몰라 싸게 판매하는 LP더미를 뒤적거려 보니 몇 앨범을 찾을 수 있었다. 그 중 브루노 발터의 인터뷰와 필라델피아 관현악단의 연주를 모아둔 앨범을 골랐다. G군이 청음도 가능하다 하여 플레이어에 넣고 재생시켜 보았다. 브루노 발터의 인터부는 이해하기 힘든 영어가 나왔지만 소리가 나오는 것만 확인하고 종료했다. 다음으로 필라델피아 관현악단의 연주 중 '볼레로'가 담긴 트랙을 재생했다. 나는 소리가 나오는 것을 확인하고 G에게 헤드셋을 넘겨주었다. 클래식을 잘 몰라도 굉장히 유명한 선율을 가진 음악이라 그가 아는지 확인하고 싶었다. 역시 들어본 적이 있다 하자, 음악의 뒷부분으로 건너뛰어 다시 들려주었다. 그러고서 이 음악은 같은 선율을 점진적으로 커지는 구성으로 연주하는 매력이 있다는 것을 설명했다. 청음을 마치고 더 살 것이 있나 둘러보았지만 주로 밴드 굿즈라서 내가 살만한 것은 없었다. LP는 하나당 삼 달러라서 총 육 달러였다.G는 현금을 거스르기 위해 그의 지감에 있던 십 불짜리 지페를 내밀었는데, 주인이 인심좋게 깎아주어 오 불짜리 지폐로 돌려받았다. 사실 1달러 지폐가 필요해 현금을 내민 것이었는데 5달러를 돌려 받아 계획대로되지 않았다.  나는 그 못브을 보고 키득거렸고, 주인은 내가 왜 웃는지 아는지 모르는지 같이 웃었다.



 숙소에 돌아갈가 하여 버스정류장으로 가니 기다릴 시간이 꽤 남았다. 밖은 춥고 무서운 사람이 많아 잠시 카페에 들어가 기다리기로 했다. G는 그의 연인과 아직 연인이 되기 전 공부하기 위해 갔던 카페가 있다고 했다. 그곳으로 안내를 해주려나 싶었는데 결국 찾지 못했다. 그래서 보기에 괜찮던 카페 중 무작위로 골라 들어갔다. 높은 층고에 나무장에 책과 골동품을 잔뜩 쌓아두었다. 나는 한 눈에 보기에 여기가 마음에 들었는데, 책을 실물로 가져다 놓았기 때문이었다. 한국에서 인테리어랍시고 텅 빈 공갈 책을 가져다놓은 모습을 보면 짜게 식었다. 반면 여기는 오래되고 꿉꿉하게 느껴질만한 것들로 가득채웠다. 최소한 인테리어라도 진심에 가까워야 진정성이 느껴진다. 나는 아메리카노, G군은 메뉴판에 없는 아이스 초코를 시켰다. 그는 어딜가나 이 메뉴를 시킨다. 이를 이용해 그와 친한지 확인하는 용도로 "그거 시켜줘"라고 말하고 알아듣는지 확인하곤 한다. 이전에 알아듣지 못해 우정을 의심받았지만 이번에는 익숙하게 받아들였다. 커피를 받아들고 2층으로 올라가려고 카페 뒷 편으로 나갔다. 그런데 올라갈 수 있는 계단이 막혀 있는 것을 보고 다시 되돌아와야 했다. 카페로 다시 들어오는 중에 밖에 앉아 있던 한 무리가 우리에게 말을 걸었다. 덩치에 맞지 않게 귀여운 멜빵청바지와 핑크색 모자를 쓴 흑인이 우리에게 옷이 이쁘다며 말을 걸었다. 나는 고맙다며 인사했는데, 그들과 조금 멀어지자 G가 당황스럽다는 듯 나에게  말했다. "저거 인종차별이야." 그가 미국에 오래 살았다고 해도 이런 게 인종 차별이라면 나는 꼼짝없이 당해야 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것이 인종차별이라 하기엔 이상했다. 옷차림새가 수상하기도 했고, 그의 여성적인 말투, 같이 앉아 있던 사람들의 표정이 약간 당황하면서 흑인을 쳐다보았던 상황, 같이 앉아 있던 사람들의 복장 또한 예사롭지 않았던 것 까지 종합해보았다. 그냥 성소수자의 플러팅을 받은 것 같았다. 그는 성소수자의 플러팅이나 인종차별이나 둘 다 흔한 경험은 아니니 더이상 생각하지 않고 그냥 넘어가기로 했다.


 우리는 안에 자리를 잡고 시간을 보냈다. 그는 한창 핸드폰으로 '사과게임'- 이차원으로 나열된 사과에 숫자가 적혀 있고, 이웃한 사과에 적힌 숫자 합이 10이 되도록 골라 점수를 얻는 게임 - 에 열중하고 있었다. 그는 더 이상 재미가 없다며 투덜거리면서 그 게임을 계속했다. 점수가 변동이 없자 그는 게임을 종료했다. 나는 그에게 부탁해 게임을 대신 받아들었다. 그에 한참 못미치는 점수를 내다가 우연히 멀티 플레이를 하게 되었다. 게임 규칙은 동일했지만 상대와 경쟁하는 방식이라 혼자할 때보다 긴장되었다. G는 내가 멀티 플레이를 즐기는 모습을 보고 덕분에 사과게임을 그만두지 않을 수 있다며 기뻐했다. 나는 그에게 핸드폰을 돌려주고 방금 구입한 LP의 정보를 찾아보았다. 요즘은 대부분의 음원은 인터넷에서 찾을 수 있었다. 발터 브루노의 인터뷰는 유튜브에 올라와 있었는 것을 확인하고, 필라델피아 관현악단에 대한 정보도 찾아보았다. 오케스트라의 상임 지휘자로 있었던 유진 오먼디는 익숙한 이름이었다. 그를 비롯하여 다른 지휘자에 대한 정보를 검색하면서 커피를 홀짝거렸다. 어느새 버스는 두 대나 지나간 후 였다. 우리는 잔을 다 비우고는 다음 버스가 올 시간에 맞춰 정류장으로 나갔다. 돌아가는 길에도 둘은 카페에 있을 때와 똑같이 행동했다. 나는 계속 검색했고, G는 열심히 게임을 즐겼다.  



 오늘 남은 일정은 공식적으로 종료되었다. 할 일이 남지 않은 것이다. 점심도 늦게 먹은 탓에 저녁 먹을 타이밍을 잡지 못했다. 밤이 되도록 계속 나갈까 말까, 배가 부르다, 밥을 많이 못 먹을 것 같다 등 저녁을 먹기에는 이르다는 말만 할 뿐이었다. 그동안 G군은 노트북 앞으로 자리를 옮겨 하스스톤 투기장을 즐겼다. 나는 낮에 하모니카를 잘 불지 못한 것이 억울해 연주법을 찾아보고 있었다. 구입한 하모니카는 다이아토닉 하모니카라는 여러 종류 중 하나였다. 낼 수 있는 구멍이 적지만 '벤딩'이라는 기술을 통해 적절히 음을 높이거나 낮출 수 있다고 하는 내용을 발견했다. 곧바로 벤딩에 대한 정보를 찾아 연습했지만 가장 기초인 깔끔한 단음을 내는 것만으로도 큰 장벽이었다. G는 그만해달라 부탁했지만 그의 인내심이 다시 충전될 때마다 하모니카를 불어 틈틈이 벤딩을 시도했다. 결국 9시까지 저녁을 먹지 못하자 새벽에 배가 고플까 걱정했다. 하는 수 없이 저녁을 먹기로 했다. 10시 넘어 영업하는 식당이 없다고 하니 마지노선이었다. 길 중간에 신호등 버튼을 보고 G에게 이스터에그가 있다고 알려주었다. 여행 이튿날 산타모니카에서 사촌형에게 배운 것이었다. 신호등 버튼을 누르면 "Wait"라는 소리가 나오는데 여러 번 누르면 음성이 바뀌며 다른 소리가 나왔다. G군이 그 말을 듣고 시도해보았지만 새로운 음성이 들리지 않았다. 신호가 바뀔 때 나오는 소리를 듣고 이스터에그라고 오해할 뻔 했던 일 외에는 다른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나는 거짓말을 했다는 누명이 씌워졌지만 돌아가는 길에 다시 시도해보기로 했다.


 가는 데 30분, 9시 반에 식당까지 걸어갔다. 식당을 고르던 중 사촌형이 해주었던 '미국의 쌀국수는 베트남 본토에서 온 분들이 만들어 한국과 맛이 다르다'는 말이 떠올랐다. 10시에 닫는 식당 안에서 빠르게 메뉴를 주문하고 음식을 먹어치웠다. 하지만 아직도 배가 꺼지지 않았던 탓인지 평소 국물까지 다 비웠을 것과 다르게 건더기만 건져 먹고도 충분했다. 맛은 한국보다 훨씬 짙고 깊었다. 맛의 진수인 국물을 다 먹지 못해 아쉬운 건 어쩔 수 없었다. 우리는 식당 밖으로 나와 저녁을 먹지 않아도 되겠다며 후회하면서 돌아갔다. 가는 길에 신호등을 다시 연타했는데 이번에는 성공적으로 이스터에그가 나왔다. 이곳에서는 총소리가 났다. 우리는 깜짝 놀라서 신호가 바뀌자마자 도망갔다. 방으로 돌아와서 한창 화제였던 민희진 기자회견에 대해 이야기했다. 나는 민희진과 하이브 둘 중 누가 옳은지는 몰라도 뉴진스는 사라지지 않았으면 좋겠다 말했다. 작년 가을 힘든 와중에 대학 축제에 와준 뉴진스에게 진심으로 감사하고 있었다. 깊게 파고드는 팬은 아닐지라도 뉴진스라는 그룹이 나에게 준 긍정적인 영향을 떠올리면 이대로 사라지는 것은 아닐지 걱정되었다. 민희진이 세기에 남을 기자회견을 남긴 것과 별개로 법적 공방은 내가 미리 알래야 알 수 없는 문제였다. 그저 내일은 또 무슨 뉴스가 나올지 기대하면서 기다릴 뿐이었다. 내일 LA를 실컷 둘러보면 여행은 대충 마무리 될 예정이었다. 별 문제 없기를 바라면서 자리에 누웠다. 아참, 내일도 아침 기차를 타야하니 일찍 일어나는 편이 좋겠다. 알람이 켜져 있는지 확인하자 마음이 놓였다. 다시 눈을 감고 잠자기 전 음계를 외웠다. 부족한 머리로 감당되지 않는 12음계를 차례로 읊다보니 저절로 전원이 꺼졌다.



 미국여행 10/12 진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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