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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지호 May 28. 2024

계획은 고치라고 있는거겠죠

미서부 여행 2일차


 아침에 눈을 뜨니 6시였다. 아침 6시 알람을 맞춰놓았던 탓에 일찍 일어나고 말았다. 미국은 해가 일찍 뜨는 편이라 새벽 기상이 나쁘지 않았다. 한국이었다면 곧바로 알람을 끄고 기억도 못한채로 다시 잠들었을 예정이었다. 허나 여행을 왔으니 아침 산책이라도 해보고 싶었다. 간단히 아침 샤워를 위해 화장실로 짐을 싸들고 들어갔다. 전날 화장실을 사용해도 괜찮은지 허락은 구해놓았지만 너무 이른 시간일 소리가 남들을 깨우는 건 아닐지 걱정할 수 밖에 없었다. 조심히 물을 틀고 세안을 했다. 학생이 사용하는 시설이라 수압은 빈약했고 덕분에 소리도 크지 않았다. 다음은 샤워였는데 역시 물줄기가 약했다. 그런데 문제는 수온이 조절이 안되어 차가운 물을 1분동안이나 맞으니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분명 수도곡지가 돌아가긴 하는데. 'HOT'라 써 있는 방향으로 돌렸는데 왜 차가운 물만 나오는 건가 하고서 차가운 물만 계속 맞았다. 결국 포기하고 냉수 마찰을 하게 되었다. 나중에 호텔 가면 따듯한 물로 씻을 수 있게 되리라 믿었다. 하필 긴머리일 때라 찝찝한 기운이 가시질 않았다.



 훌륭한 미라클 모닝 루틴 중 하나를 수행하고 온 후에는 머리가 마를 동안 근처에 무엇이 있나 찾아보는 김 핸드폰을 집어 들었다. 근처로 올 때 묘지를 하나 봤는데 상당히 고요하고 널찍한 것 같아서 들러보고 싶었다. 다행히 멀리 떨어져 있지 않았기 때문에 곧바로 나가보기로 했다. 숙소를 드나들 때 필요한 대문 키 - 어젯밤에 사촌형이 아침에 나갔다 올거면 가지고 가라고 책상에 올려두었던 - 를 챙겼다. 나가는 길에 스티브(이름이 잘 기억나질 않는 룸메이트)를 만났다. 그 숙소에서 드물게 아침 수업이 있어 일찍 나간다고 한다. 대부분 나보다 나이가 많아 이름 뒤에 항상 '형'이라고 덧붙이고 존대를 했다. 미국인 분들은 그걸 딱히 달가워 하지 않는 것 같았다. 그냥 편하게 하라고 했다. "여긴 미국이야" 라는 말을 들을 줄이야. 그것도 한국말로. 계급장 떼고 친해질 수 있다는 건 생각보다 좋아보였다. 


 건물을 나와 반대 방향으로 헤어진 후에는 묘지 방향으로 걸어갔다. 작은 골목을 지나 나가니 곧바로 묘지가 보였다. 다만 3미터는 족히 되는 울타리로 막혀 있어 어디로 들어가야 할지 도저히 감을 잡을 수 없었다. 할 수 없이 주변을 따라 가볍게 걸어보았다. 아직 아침이라 사람이 많지 않았다. 가끔씩 백팩을 매고 딱봐도 학교가는 얼굴을 하는 대학생이나 가볍게 뛰는 청년들을 마주칠 수 있었다. 그러나 어디가 입구인지도 모른 채 무작정 걷다보니 피로감이 느껴졌다. 아무리 봐도 입구라 할만한 시설은 저 멀리 있는 시설 밖에 없었다. 그 외에 쪽문은 모조리 닫혀 있을 것이 뻔했다. 그래서 조금만 가보고 문이 없다면 내일 다시 오기로 생각하고서 발을 돌렸다. 


 돌아가는 길에 어제 들른 상가 길을 잠시 들렀다. 치폴레를 먹었던 근처인데 아직 시간이 일러 가게는 열지 않았다. 이른 시간이라 문을 열었다 할만한 곳이 편의점 밖에 없어 음식을 사보기로 한다. 노파심에 구글에 '미국 편의점 후기'라 검색하여 조심해야 할 점이 있는지 찾아보았다. 그 중 눈에 띈 글 중 하나가 미국에 이민온지 2달 만에 편의점을 갔다는 이야기였다. 영어로 이야기하는게 두렵긴 하겠지만 그렇게 무서워할 일인가 싶었다. 무엇보다 그런 사람이 편의점에 갔다온 후기가 생각보다 별거 없다고 하니 나도 못할 거 없다 하고 가보기로 했다. 미국의 편의점이라고 특별한 점은 없었다. 캐셔 한 명 서있고 물품 쭉 놓여져 있고 딱 그정도였다. 내 기억으로는 담배를 대놓고 진열해놓진 않았다는 차이점 정도였다. 과자 중에서 익숙한 치토스를 발견하고 여러가지 맛 중 'hot flavor'를 집었다. 이에 어울리는 음료수로 마인틴듀를 골랐다. 아직도 놀라운 것이 이 둘의 가격이 무려 $5.7, 당시 환율이 1390\/$였다는 점을 생각하면 8000원이나 되는 가격이었다. 아무리 우리나라가 물가가 파탄났다고 해도 이정도는 아니었다. 학생에게 적절한 가격이라는 가게가 우리나라로 치면 만원이 넘는 가격이라 이해가 되지 않았는데 그때 이해할 수 있었다. 과자와 음료수 하나 가격보다 살짝 비싼 한 끼는 굉장히 합리적이니까 말이다.


 숙소로 돌아와서 과자 봉지를 뜯어보았다. 그런데 과자가 형광을 머금은 빨간색이라 경악했다. 어떻게 사람이 먹는 음식에 이런 색을 넣을 수 있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래도 맛은 괜찮겠지 하고 입에 넣었지만 음식의 색이 맛에 상당히 출중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형광색은 신 맛과 대응될 수 있다는 사실 말이다. 그렇다고 맛있진 않았다. 탄수화물 덩어리에 식초와 캡사이신 살짝 뿌려놓은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다행히 마운틴듀는 멀쩡했다. 간식을 펼쳐놓고 유튜브를 보면서 형이 일어날 때까지 기다렸다. 그 와중에 D.K.가 일어나서 컴퓨터로 일을 하기 시작했다. 현재 벤츠에서 인턴으로 일하고 있고  반 재택근무라고 한다. 나중에 들은 얘기로 테슬라에 지원하여 합격하면 형과 함께 새로 방을구해 지낼 예정이라고 한다.


 형은 10시쯤 되자 일어났다. 내가 손님으로 왔다는 이유로 형은 거실에 있는 소파에서 잤다. 여러명이 이용하는 시설이기 때문에 거실을 여러명이 이용했었던 모양인지 계속 깨어있었다고 한다. 원래도 늦게 자는 편이라면서 나를안심시켰지만 미안한건 어쩔 수 없었다. 형이 깨자 어제 세워두었던 계획을 브리핑했다. 약간의 수정을 거쳐 지금 산타모니카를 갔다오고서 오후에 그리피스 천문대를 가기로 했다. 생각보다 다른 곳들을 둘러 보는데 꽤 시간이 걸리거라는 이유에서였다.


 산타모니카까지 버스를 이용했다. 미국의 버스는 시흥과 비슷했다. 자주 오지 않고, 밀려오기도 하고, 시간이 잘못되는 건 부지기수라 한다. 새삼 서울의 대중교통이 얼마나 편리한지 체감할 수 있었다. LA면 미국에서 알아주는 좋은 지역일텐데 이정도일줄 몰랐다. 버스를 타면서 한국과 차이점을 몇 가지 확인할 수 있었다. 먼저 버스 요금은 현금으로 할 때 잔돈을 거슬러 주지 않는다. 이 부분은 우리나라가 특별히 거스름돈을 주는 것 같긴 하다. 비용은 2달러로 꽤 비쌌다. 그리고 하차벨이 창 주위로 걸린 줄을 당겨야 호출된다. 단순히 누르는 전자식이 아닌 이런 줄을 사용하는 이유가 뭘지 생각해보았지만 도무지 예상할 수 없었다. 추측컨데 옛날에는 전자 버튼이고 이런 게 없었으니가 줄을 당겨서 물리적으로 종이 울리는 매커니즘이 있었던게 아닐까 하는게 최대였다. 그 외로 버스 앞 범퍼에 자전거 두세 대를 실을 수 있도록 거치대가 있었다. 가장 놀랐던 건 버스가 휠체어를 실을 수 있도록 되어 있었다는 것이다. 우리나라에 없는 건 아니지만 대부분의 버스가 휠체어가 이용하기 힘들게 되어 있는 반면,미국은 앞서 말한 구조가 대부분 동일했고, 휠체어가 탑승할 수 있도록 발판이 나오고 차체가 기울어지며(이 부분은 내 착각일 수 있다) 기사가 내려서 직접 밀어주고 좌석에 고정시키는 것까지 도와주었다. 이 과정이 전혀 어색하지 않았고 일상적으로 일어난다는 것에서 미국의 복지 수준을 실감할 수 있었다.


 여기에 대해 형에게 질문을 해보니 법적으로 장애인의 권리, 차별이 엄격히 금지되어 있기 때문이라는 답변을 들었다. 여기에 갑작스레 궁금증이 들어 최근 논란이 되었던 주호민 특수교사 관련 건에 대해 물어보았다. 미국에서는 어떤 입장일 것 같은지에 대해 들어보고 싶었다. 그런 일이 애초에 일어나지 않을 것 같다고 말했는데, 직접 학창시절에 특수아와 같이 지내본 경험으로 볼 때 특수아의 학부모가 꽤나 노력하여 아이들과 잘 지낼 수 있었다고 한다. 성인이 되면 급격히 무관심해지는 경향도 있지만 어느 한 쪽이 그런 일을 했다는 상황 자체가 받아들여지지 않는 것 같았다. 사실 그렇게 치면 한국도 비슷하긴 하다는 입장이라서 닥히 속시원한 답이 되진 않았다.



 이런 저런 대화를 나누다보니 어느덧 산타모니카 근처라고 알아챌 수 있었다. 무엇보다 급격히 날씨가 안좋아졌기 때문이었다. 우리나라 동해에 구름낀 날씨를 미국와서 그대로 볼 줄이야. 그런 탓에 결국 산타모니카에 도착해서도 상황이 좋지 않아 자전거를 타지 못했다. 바람도 많이 불고 운도도 너무 낮아 도저히 반팔 반바지 차림으로 자전거를 탈리가 만무했다. 그냥 주위를 걸었다. 걷는 중에 산타모니카 기념품점을 들러 살만한 옷이 있나 보았지만 아쉽게도 합격점이 없어 그냥 나왔다. 근처에 열린 시장을 지나쳐 해변으로 향했다. 자신의 힙합 앨범을 강매하는 건장한 흑인을 만나보기도 했다. 형은 그냥 쳐다보지 말고 지나치라고 했는데 혼자 왔으면 친절한 마음에 무심코 받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에 아찔해졌다. 산타모니카 해변에는 작은 해변 놀이공원이 있다. 말그대로 '작아서' 작은 대관람차 하나, 작은 롤러코스터 하나, 회전목마 하나가 전부였다. 여러 기념품점이 있었지만 일전에 봤던 물품들과 차이가 없어 그냥 지나쳤다. 그 양옆에 깔린 해변에도 가보았지만 날시가 좋지 않아 참으로 삭막하고 초라해보였다. 위안이 되는 점은 GTA5가 LA를 배경으로 만들어졌는지라 익숙한 풍경을 현실에서 볼 수 있다는 즐거움이 컸다. 이후로 GTA 5의 지형과 유사한 부분을 유심히 보게 되자 여행의 즐거움이 늘었다.



 아쉬운 해변을 뒤로하고 형이 추천하는 피자가게에서 점심을 해결했다. 한 판의 크기가 상당히 커 조각난 피자를 낱개로 팔고 있었다. 거기서 각자 3조각씩 시키고 음료수도 하나 사서 자리에서 해결했다. 식사 후에는 다시 버스를 타고 숙소로 돌아갔다. 돌아가는 길에도 또 이런 저런 이야기를 했던 것 같지만 출발할 때에 비해 그닥 흥미로운 이야기는 자주 나오지 않았다. 그래서 기억도 잘 없다. 숙소에 돌아와서 잠시 쉬다가 그리피스 천문대를 가기로 했다. 앞 일정이 일찍 끝난 탓도 있지만 뒤의 일정이 구체화되자 스케일이 커진 탓도 있었다. 그리피스 천문대와 할리우드 사인까지 걸어볼 수 있는 트래킹 코스가 있는데 견적을 내보니 1시간 반 정도 시간이 걸린다고 나왔다. 형은 운동을 딱히 좋아하는 편이 아니라 내켜하진 않았지만 외국에서 손님이 왔으니 어쩔 수 없이 따라가기로 했다.


 휴식을 마치고 우버를 타고 그리피스 천문대로 향했다. 이때 만난 우버 기사님이 상당히 수다스러웠는데 형이 맞장구를 잘 친 덕이었다. 미국 사람 간 대화가 상당히 활발할 것 같았지만 한쪽이라도 피곤하던가 하는 이유가 있어 대화를 거부하면 딱히 아무일도 일어나지 않는다고 한다. 이번처럼 기사님이 말을 걸었는데 형이 화답해주면 그때부터는 별 이야기를 다 했다. 우리나라 택시기사와 차이점이 있다면 미국의 우버기사는 연령대가 다양해서 젊은 기사도 많고, 어차피 나이를 잘 따지지 않기 때문에 꼰대스럽거나 일방적인 잔소리가 없었다. 서로 무슨 일을 하는지, 요즘은 힘들지 않은지, 어쩌다가 그 일을 좋아하게 된건지 하게된건지 등의 대화가 오갔다. 나는 미국인의 대화 속도를 따라갈 수 없어 그냥 듣고만 있었고 중간중간 이해되지 않는 부분도 그냥 넘겼다. 대화 도중 흥미로운 표현이 나온 에피소드가 있었다. 기사님이 자기가 지름길을 안다면서 갑자기 언덕을 올라갔다. 한 공원을 통과해서 지나가면 막히는 구간을 지나칠 수 있다고 했다. 그러나 공원 - 아마 개인 소유이거나 공원 관리자가 있었을 것이다 - 문이 닫혀 다시 돌아가야 했다. 그걸 보고서는 'What! One Star..."이라면서 돌아갔다. 아마 지도에 평점을 주는 시스템을 이용한 표현이었다. 이후에도 나한테 좋아하는 가수가 있냐면서 물어봤는데 의도가 있었다. 그리피스 천문대로 가는 길이 베벌리 힐즈 바로 밑으로 지나가고 있었던지라 그 근처에 셀럽이 있다고 알려주고 싶어했다. 또는 최근에 재미있는 릴스(외국에서는 릴스라고 하지 않고 'Reel'[륄]이라 하더라)를 봤다고 하면서 'Be a man meme'을 소개해주었다. 그러면서 한국에는 재미있는 밈이 없냐면서 나한테 알려달라 했다. 나는 그 즈음에 릴스와 쇼츠를 완전히 끊고 트렌드에 뒤쳐진 사람이라 알려줄 수 있는게 떠오르질 않았다. 기껏해야 알고 있는 것도 사실 외국에서 온 밈이거나 수위가 있어서 말할 수 없었다. 결국 도착하기 전까지 생각해보겠다 했는데 끝까지 말해주지 못했다. 그렇게 유쾌한 기사님과 함께 그리피스를 향해 시간가는 줄 모르고 달렸다.


 그리피스 천문대는 벌써부터 사람이 많았다. 이전에 라라랜드에 나와서 화제가 되었다고 한다. 영화에 나온 장면을 기대하고 갔던 사람들은 조금 실망할 수 있다는데 내부를 보지 못해서 알 길은 없다. 아마 내부는 여느 천문관처럼 관측 장비나 천문학에 대한 설명만 접할 수 있을 것이라 예상된다. 우리는 그 주위를 잠시 둘러보고 곧바로 트래킹 코스로 향했다. 육안으로 할리우드 사인이 멀쩡히 보이는데 가는 길이 대놓고 빙 둘러가야 한다고 알려주고 있었다. 형은 나에게 진짜 갈거냐고 물어서 "와이 낫?"으로 받아쳤다. 그렇게 예상 1시간 반의 트래킹을 시작했다. 



 생각보다 오래걸렸다. 가는데 약 2시간, 내려오는데 1시간 조금 덜 걸렸다. 가는 길을 구글 지도 기반으로 보고 갔는데 한번은 다른 길로 가서 시간이 더 걸렸다. 그렇게 구불구불한 산길을 탔다. 길은 넓직하니 차가 다니기에도 무리 없을 정도였고 산에 나무라 할만한 것도 없이 관목만만 드문드문 있어 도시가 그대로 내려다보였다. 그러던 도중 난관은 목적지를 얼마 남겨두지 않고 나타났다. 분명히 지도에 길이라 되어 있는 경로로 가고 있었는데 막다른 길이 나왔다. 우리 뒤에 자전거를 끌고 따라오던 아저씨도 있었기 때문에 여기가 맞을 거라고 생각했다. 막다른 길이라 보였던 부분을 자세히 보니 아슬아슬하게 한 명만 지나갈 수 있는 샛길이 있었다. 가는 길이 난이도가 있어보여 갈까 말까 고민하다가 어차피 되돌아갈 수 없을 정도로 많이 와버렸기 때문에 그냥 가기로 했다. 우리 뒤로 오시던 아저씨는 어느새 우리를 앞질러 지나갔고 우리는 그 아저씨가 다시 되돌아오지 않는 한 이 길은 맞는 길이라 생각하고 나아갔다. 그 결과 느릿느릿하지만 조심스럽게 위험한 샛길을 벗어날 수 있었다. 아직도 그곳을 어떻게 지나갔는지 믿기지 않는다. 산 위에서 외줄타기나 하고 있는게 아닌지 하는 생각으로 앞만 보고 걸었다. 그렇게 샛길에서 아스팔트로 이어지는 길을 만나자 신나서 뛰어 올라갔다. 목적지가 코앞에 있었다. 할리우드 사인을 눈 앞에서, 그것도 잘 보이지 않는 뒷면을 본다는 건 무척이나 흥미로운 일이었다. 할리우드 사인은 연예인을 상징한다. 그렇다면 그들의 뒷면 또한 동치가 아닐까? 화려하고 대중에게 잘 노출되는 앞면과 꽁꽁 싸매고 잘 드러나지 않는 뒷면은 연예인이나 할리우드 사인이 가진 공통점이라 연결시켜보았다. 그렇게 할리우드 사인의 뒷면을 본 소감은 생각보다 거대했다는 감상평으로 일축할 수 있었다. 그냥 다른 생각보다 멀리서보면 상당히 무언가의 상징처럼 보이던 것이 전봇대 수십개를 이어붙여논 사이즈라서 예상치 못한 크기는 잘 실감나지 않았다.



 사인을 보고서 내리막길을 따라 뛰어내려왔다. 내리막은 오르막보다 위험하면서도 순식간이었다. 그렇게 언덕 중턱에 걸쳐진 주택 사이로 내려왔다. 내려가는 길에 처음으로 만난 상가에서 잠시 쉬다 갈까 했지만 적절한 카페는 찾을 수 없었다. 근처 마트에서 간단하게 물과 음료수만 사고 나왔다. 이제 무엇을 할지 고민하다가 저녁을 먹자는 결론이 나왔다. 어차피 이 근처에서 할 수 있는 건 더 이상 없고 맛있는 타코를 먹을 수 있다고 해서 우버를 타고 그곳으로 향했다. 참고로 알 사람은 알겠지만, 나는 타코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사실 타코를 포함한 '밀가루 베이스의 재료로 속재료를 싸넣은 음식을 손으로 들고 먹는 행위' 자체를 즐기지 않는다. 단순히 말하면 샌드위치, 햄버거, 타코 등 이러한 류의 음식을 꺼린다는 말이다. 그런데 미국을 대표하는 음식이 바로 햄버거, 그리고 잘 몰랐지만 타코를 빼놓을 수 없다. 그러니 어쩔 수 없이 먹는 것뿐이다. 먹으라면 또 잘 먹으니까.



 우버에 타자마자 바로 잠들었다. 형은 딱히 잠을 자지 않았던 것 같다. 내려서 형은 ATM을 찾기 시작했다. 알고보니 타코 가게가 아니라 길거리에서 점포를 차례 포장해가는 방식이었다. 그래서 현금만 받는다고 해서 어찌저찌 현금을 마련했다. 그의 친구인 D.K.도 타코를 먹으러 여기로 오고 있다고 했다. 그는 자가용이 있어서 숙소에서 여기까지 차를 타고 왔다. 미국 학생에 대한 로망! 바로 거대한 SUV를 운전하는 모습 아닐까! 그 광경을 직접 보게 된다니 설렐 수 밖에 없었다. 멋지게 차에서 내린 그와 함께 타코를 골랐다. 타코는 내 예상보다 작았다. 타코 4개와 케밥 하나를 포장했는데. 타코는 손바닥만한 사이즈였기 때문에 만약 타코로 배를 채울 생각이었다면 큰 오산이었다. 다행히 케밥은 크기가 상당히 커 이걸 어떻게 먹지 하는 생각이 들정도였다. 그렇게 포장을 마치고 D.K.의 차를 타고 집으로 돌아갔다. 가는 길에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다. 그 중 충격적인 말을 들었는데, 한국인은 모태솔로가 이제 없다는 소문을 들었다며 사실이냐 물었다. 나는 눈 앞에 반례가 있는데 어떻게 사실일 수 있겠냐고 설명했다. 체감상 그정도는 아니고 나는 잘 모르겠다고 둘러댔다. 그걸 내가 어떻게 알아요... D.K.는 한눈에 봐도 꽤 잘생기고 비율도 좋아 왜 연애를 하지 않는지 궁금하여 역으로 물어보았다. 그러자 그는 최근에 잘 되던 사이가 있었지만 'Red Flag'(D.K.와 형은 이에 대한 적절한 해석을 찾지 못했다. 나는 '쎄함'이 아닌가 물어봤지만 완전 들어맞는 건 아닌 것 같았다)라서 결국 연애로 이어지진 않았다고 한다. 역으로 한국인 여성과 결혼하는 걸 어떻게 생각하는지도 나에게 물어봤는데, 내가 딱 이틀만 같이 지내봤지만 그건 잘 맞지 않을 것 같다고 답변했다. 이건 한국인 여성이고 자시고의 문제가 아니라 한국인과 다른 나라 사람과의 성향이 잘 맞다고 장담할 수 없었다. 삶의 방식이 굉장히 다르다고 느낄 수 밖에 없었다. 서로 추구하는 자유로움의 영역과 종속의 영역이 동떨어져 있다는 인상을 받았다. 어찌되었건 한국인 기질이 미국인 기질과 잘 섞이지 못할 것이라 예상되어 그렇게 답을 주었다.



 차에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숙소에 금세 도착했다. 거실에 있던 TV로 한국 예능을 틀어 놓고 포장해온 음식을 펼쳤다. 케밥은 양이 너무 많아 다 먹지 못했고, 손도 대지 못한 타코는 형이 다 먹어 치웠다. 밥을 먹고는 오후에 열심히 걸었던 탓에 더러워진 몸을 씻었다. 역시나 온수가 안되는 샤워실에서 냉수 마찰을 해야 했다. 저번에 한번 경험했으니까 버틸만 하다면서 이를 꽉물고 씻었다. 샤워를 마치고 나와서 원래 여기는 온수가 나오지 않는지 물었다. 그러자 1분은 기다려야 물이 따뜻해진다는 충격적인 소식을 듣게 되었다. 그러면 나는 여태 1분도 기다리지 못한 성질머리를 가졌다는 것이고, 온수가 나옴에도 나는 따듯한 물로 씻지 못했다는 뜻이었다. 어차피 내일이면 여기를 나갈 건데 이게 무슨 소용이냐면서 투덜거렸다. 그러자 형은 자기도 여기 와서 한 달 동안 차가운 물로 씻었다며 위로해주었다. 잠깐 이야기가 끝난 후 TV에 연결된 닌텐도 스위치로 게임을 뒤적거렸다. 그러던 중 '스매쉬 브라더스'를 하게 되었다. 나는 처음에 하진 않고 그냥 지켜 보았다. D.K.와 사촌형은 이 숙소에 있는 - 숙소에 놀러오는 사람을 포함해서 - 모든 사람들 중 가장 잘한다고 들었다. D.K.는 공격의 귀재, 사촌형은 방어형 스타일을 가졌다고 한다. 그래서 둘 사이에 끼기는 무서워 한동안 지켜보았다. 그동안 과제를 해야한다면서 들어갔던 스티브가 다시 나와서 하자 나도 거기에 잠간 꼈다. 30분간 정신없이 게임을 하다고서 자리가 마무리되었다. 


 이제 슬슬 내일을 준비해야 했다. 다시 비행기표가 제대로 되었는지 확인한 후 내일 라스베이가스에서 만나야 할 G군과 소통했다. 한국에 있을 때는 시차가 있어 연락이 미묘하게 어긋났는데 여기서는 완전히 시간대가 동일해 그런 불편이 전혀 없었다. 내일 각자 언제 어디서 출발, 도착하는지를 확인하고 일정을 정리했다. 나는 내일 5시 비행기였기 때문에 3시에는 공항에 도착해야 했다. 일정을 정리해보니 아침에는 어제 가보지 못했던 LA 국립묘지를 가보고, 점심을 먹은 후 형이 안내해주는 UCLA를 돌아다니고 공항으로 가면 딱 맞았다. 그렇게 일정을 정리하고 핸드폰을 조금 뒤적거리다가 잠들었다. 아마 쓰던 소설이 있어 노트북을 꺼내놓았지만 피곤해서 그냥 잠들었다.



 미국여행 2/12 진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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