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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지호 May 27. 2024

사촌형과 오래간만의 재회

미서부 여행 1일차

 사촌형은 나오자마자 보이는 위치에서 헤드셋을 낀채 난간에 기대고 있었다. 입국자가 쏟아져 나오는 곳은 기다리는 일행들이 위에서 내려다보며 알아볼 수 있도록 되어 있었다. 나는 나오며 형에게 인사를 건넸지만 장발이 된 터라 나를 쉽사리 알아보지 못했다. 더 가까이 가자 그제서야 알아보았다. 캐리어를 끌고 오르막을 올라 형과 가까이 마주보게 되었다. 형은 명절마다 한국에 한두 달은 머무는 편인데 이번 학기는 오지 못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고모와 고모부는 더이상 다 큰 사촌형 둘을 데리고 한국을 왔다갔다 하지 않았다. 두 사촌형 모두 대학원을 다니느라, 대학 졸업을 앞두고 있느라 바쁘기도 했다. 이번 여행동안 잠깐 신세를 질 둘째 사촌형은 UCLA 공대에 다니고 현재 졸업학기라고 했다. 졸업학기에 방해를 해도 괜찮은 건지 의아하긴 했지만 상관없다며 흔쾌히 친절을 베풀어주었다.


 공항을 나서자 특유의 신고 날카로운 향기가 퍼졌다. 나중에서야 알았는데 미국 전반적으로 깔린 향은 대마였다. 심한 곳은 아예 숨을 쉬기 힘들 정도이다. 담배와 차이가 있다면 타르의 거친 향이 없어 숨을 가로막지 않으나, 향이 폐를 타고 머리 쪽 신경을 향해 쿡쿡 찌르며 눈 안쪽이 피로해진다. 곧바로 알아채기는 힘들지만 공업용 화학물질에서 나는 묵직함이 빠져있어 쉽게 접할 수 없는 계열이라 낯설게 느껴졌다. 이국의 냄새가 깔린 공항에서 근처 우버 스테이션까지 셔틀을 타고 이동했다. 우버는 처음 타봐서 꽤 긴장했지만 사촌형이 알아서 불러주었다. 호출된 구역으로 가서 차를 기다리니 평범한 그러나 테슬라 승용차 한 대가 우리 앞에 멈춰섰다. 우버 혹은 리프트는 일반 차량처럼 생겼지만 택시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다. 그래서 우리나라처럼 루프에 택시 고깔이 없다. 오로지 차 번호를 본 후, 내 앞에 멈춰서면 "For OO?"으로 내가 부른게 맞는지 확인해야 한다. 


 우버에 타고서 형과 대화를 했다. 이전에 한국에 왔을 때 한국어가 능숙하지 않아 어떻게 대화해야 하나 걱정했다. 다행히 못본 사이에 한국어 실력이 많이 늘어 소통하는데 문제가 없었다. 형과 대화할 때는 무슨 이야기를 했는지 기억이 나지 않을 정도로 다양한 이야기를 했다. 가장 빈번히 튀어나온 주제는 한국과 미국의 문화 차이였다. 그 중 하나로 미국은 파티 문화가 있어 서로 친해질 기회가 꽤 있다는 사실이었다. 아예 모르는 사이어도 파티에서 만나기도 하고 나중에 아는 체도 할 수 있다. 그 외로는 나이 차이를 세세하게 따지지 않는다거나 하는 문화는 앞으로 적응해야할 사안이었다.


 30분 정도 시간이 흐른 후 형이 지내는 숙소에 도착했다. 6인 기숙사인데 대부분 한인 2세였다. 그래서 기본적으로 한국어와 영어를 섞어서 대화했다. 숙소는 전반적으로 더러웠다. 특히 처음 들어갈 때 깜짝 놀랐던 것이 문이 고장나서 대문을 잠그지도 못하고 문고리가 자꾸 빠졌다. 내가 부순줄 알고 형을 빤히 쳐다보자 형은 원래 그러다면서 능숙하게 문고리를 다시 껴넣었다. 그 앞에는 6인의 신발이 자유롭게 널브러져 있었고 주방과 식탁, 티비와 소파가 최대 효율로 위치하고 있었다. 거실을 공용으로 사용하면서 2인 1실의 방이 총 3개가 있다. 그래서 기본적으로 6명이 있지만, 전원 숙소에 있는 일은 드물었다. 각자 생활 패턴이나 수업이 다르기도 했고, 심지어는 각자의 친구나 여자친구를 데려와 원래 인원보다 많은 경우도 있었다. 형이 있는 방에는 2개의 침대와 3개의 컴퓨터가 놓여져 있었다. 모두 공대생이라 좋은 성능의 데스크톱을 하나씩 두고 있었고 모니터는 2개씩 달려 있었다. 놀랐던 건 각자의 컴퓨터 위에 놓여진 물품 상당수가 일본 애니메이션 굿즈였다. 포켓몬스터, 스파이패밀리, 귀멸의 칼날 등 알아볼 수 있던 일제와 한국의 김채원 포스터가 크게 한 장 붙어 있었다. 



 방에 들어가자 안쪽 침대에서 누군가가 자고 있었다. 그는 사촌형의 룸메 D.K.(아마 대니얼 킴의 약자인 것으로 기억한다)로 기상 시간이 되지 아직 일어나지 못했다. 그는 나를 보고 간단히 인사를 건넨 후 다시 잠들었다. 우리는 짐만 놔둔 후 다시 밖으로 나왔다. 구름 한 점 없었지만 바람은 그 사실을 잊게 할 정도로 서늘하게 불어왔다. 아침 겸 점심을 먹기 위해 주변을 둘러보고자 밖을 거닐었다. 새각보다 깔끔하고 고요한 느낌이 어색했지만 간간히 보이는 노숙자를 보면 여기가 미국이라는 걸 여실히 깨달을 수 있었다. 식사의 후보지는 우버에서 여러 질문을 통해 'CHIPOTLE'[치폴레]로 결정되었다. 멕시칸 음식 체인점으로 대학생의 값싸고 간단한 식사를 해결해주는 곳이다. 무슨 메뉴인지 알 수 없어 형이 먹던 대로 먹겠다고 했다. 형이 뭐라뭐라 영어로 주문하면 점원이 이를 알아듣고 그대로 담아주었다. 서브웨이와 비슷한 느낌으로 다양한 선택이 가능했다. 여기에 나초칩과 과카몰리, 본토의 코카콜라까지 시켰다. 자리를 잡고 먹어보니 먹을만 했다. 처음으로 먹는 미국 음식치고 어렵지도 않았고 특별하지도 않았다. 앞으로도 계속 느낄 점인데, 미국 음식은 특별하지 않다. 그게 아니라면 내가 음식에 대해서 특별함을 감지하지 못할 정도로 둔감한 사람일 수 있다. 원래도 음식에 대한 관심이 크지 않았으니까. 몇 가지 특징이라면 있는데, 미국은 우리나라에 비해 달지 않고 - 자국민도 달다 느낄 정도이긴 하지만 - 짜고 시게 만든다. 만약 미국 음식이 궁금하다면 당장 음식에 설탕을 반절로 줄이고 소금을 곱절로 넣으면 쉽게 예상해볼 수 있다.


 식사를 하고 다시 방으로 들어갔다. 형이 다음에 어딜 가볼지 생각해보기 위해 나에게 몇 가지 질문을 했다. 형은 나와 다르게 어트랙션과 같은 체험을 즐겼다. 나는 돈내고 죽을 경험을 하는 걸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족속이라 결사 반대했다. 그러한 이유로 LA 명물로 꼽히는 디즈니랜드나 유니버셜 스튜디오를 기피했던 것이기도 하다. 심지어 그보다 놀이기구에 초점을 맞추어 거꾸로 떨어지는 기구가 즐비한 곳도 데러다 줄 수 있다고 했지만 필사적으로 거절했다. 결국 형은 내 취향에 맞춰 차분한 곳을 찾아주었고, 그 결과로 LACMA(LA County Museum of Art)로 가기로 했다. 다만 내가 시차 때문에 피곤할테니 조금 잔 후 출발하는 것이 어떻겠냐 제안했다. 그리 피곤하지 않았지만 나중을 생각하여 잠깐 잠들기로 했다. 남의 방이기도 하고 잘 모르는 사람이 둘 이나 있으니 편하게 잠들지 못했다. 적어도 자세는 말이다. 정석으로 위를 보고 정자세로 눕진 않았지만, 침대 모서리에 간신히 몸을 걸쳐 놓고 발은 밖으로 빼놓은 후 엎드려 잤다. 그대로 기절했고 기억도 나지 않으니 어찌되었건 푹 자긴 했다. 원래 1시간만 자고 가기로 했지만 일어나보니 2시쯤 되었다. 2시간 넘게 잤던 셈이다. 일정에 무리가 갈 정도는 아니었기에 서둘러 미술관으로 향했다. 가는 길에 우버를 탔는데 살면서 만났던 사람 중 가장 운전을 못해서 충격을 받았다. 여러 생각이 들어 내리자마자 형에게 LA는 원래 운전이 이렇냐며 의아해했지만, 질문을 마치기도 전에 방금 우버 기사는 어떻게 면허를 땄는지 알 수가 없다는 말을 했다. 내가 이상한 것도 아니었고 미국이 운전을 못하는 것도 아니었다.



 LACMA에는 1층부터 3층까지 차례로 LA를 기반으로 활동했던 예술가, 미국적인 작품, 현대 예술품을 관람할 수 있었다. 그래서 가장 흥미로웠던 지점은 3층이었다. 그 전까지는 시차때문에 졸면서 작품을 봤다. 이제는 버틸 수 없다하는 시점에 3층에 가니 익숙한 작가나 작품도 볼 수 있었다. 일본에서도 큐비즘에 관한 전시를 보고 왔기 때문에 거기서 앞뒤로 이어지거나 봤던 작품이 많아 익숙하게 관람했다. 하지만 작품에 대한 설명이 영어인 탓에 완전히 맥락을 이해하지 못한 점은 아직까지도 아쉽다. 다른 것보다 미술은 아직도 보는 눈이 없어 설명이나 맥락, 역사를 이해하지 못하면 잘 와닿지 않는다. 하지만 내가 멍청한 걸 어쩌겠어요. 그렇게 자포자기 하고 딱 보고 느껴지는 심상을 위주로 느끼기로 했다. 맥락은 대충 미술관에 걸린 순서대로 짜맞춰서 해석했다. 그러니 어찌저찌 즐길만 했다.



 이후에는 바로 옆에 있던 타르 피트 공원에 잠시 들렀다. 아스팔트의 재료인 타르가 땅에서 솟아난다고 한다. 그곳에 빠져 죽은 동물은 분해되지 못한 채 그대로 원형을 보존하고 있어 고고학 자료로 쓰인다고 하는데, 그곳을 구획하여 만든 곳에 바로 타르 피트 공원이다. 원래는 여기서 나온 화석을 전시하는 박물관도 있지만 운영 시간이 지나 들어갈 수 없었다. 근처만 돌아다녔는데 울타리가 쳐진 곳에는 타르가 은은히 삐져나온 곳도 있었지만 이미 발굴이 다 되어 흙으로 매워진 곳도 많았다. 몇 군데는 작은 연못이었는데 타르가 올라오느라 공기방울이 뽀글뽀글 올라오고 주위로 기름띠가 둘러져 있었다. 공원 틈틈이에는 타르가 나와 임시로 콘을 세워 막아둔 흔적도 보였다.


 이렇게 오후를 보내고 나니 어느새 저녁을 먹을 시간이 되었다. 저녁은 근처 Farmer's Market에서 해결하기로 했다. 내가 미국에 갔으면 가보고 싶다고 한게 미국의 거대한 수퍼마켓이라고 했었는데, 그게 시장을 가보고 싶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졌다. 시장은 그리 크지 않다. 미국의 건물이라 해도 높지도 않으니 1층 규모의 작은 식당이 점포를 열어서 운영하고 있었다. 아마 학교 운동장의 절반 정도되는 크기가 아닌가 싶다. 그 안을 둘러보던 중 패티를 고기 뭉치로 주는 햄버거집을 골라 주문했다. 음식은 괸장히 짰다. 미국 음식이 짜다는 사실은 이때 처음으로 자각했다. 형에게 미국 음식이 원래 이렇게 짠지 묻자 "오히려 한국 음식은 소울이 부족하다"며 미국 음식에 담긴 철학을 소개해주었다. 짜다는 건 곧 영혼이 담겨있다는 사실. 이때 아마 한국 음식이 지나치게 달다고 말했다. 그건 나도 동의하지만 미국은 음식에 단 맛 자체가 없으니 조금만 달아도 그렇게 느끼는게 아닐까.


 밥을 다 먹고서 옆에 있는 쇼핑 거리로 나갔다. 내가 미국에 올 때 옷을 덜 챙긴 후 직접 사서 입겠다고 말해놓았다. 형은 내가 브랜드 옷을 사겠다는 의미로 이해했다. 그래서 "옆에서 옷 살만한데 많아~"하고 따라간 곳에는 야외 아울렛처럼 뭐가 많았다. 당연히도 브랜드의 비싼 옷을 오른 물가와 높은 환율을 끼고 살 생각은 없었기 때문에 간단히 둘러보았다. 가다보니 서점이 있었는데 미국의 책은 어떨지 궁금해져 잠시 들어가보았다. 미국의 책은 결코 싸진 않았지만 그래도 한국보다 다양한 책이 있었다. 최소한 자기계발서라고 할만한 책도 우리나라보다 많았고 쓰레기 같은 어그로보다는 진짜 성공한 사람의 수가 훨신 많았던 것 같다. 실제로도 미국은 영향력 있는 사람이 많으니 그런 사람들이 내는 책도 훨씬 많을 것이고. 그리고 소설이나 다른 역사 비문학 책에 대해서도 큰 카테고리로 다뤘다. 4층 정도 되는 크기에 서점을 크게 운영하니 구경하기 좋았다. 인상깊었던 건 미국은 책을 추천하는 문구를 직접 자필로 작성하여 진열해놓는데 '이런 책은 어떠신가요?' 하는 느낌을 주어 접근성을 높였다. 또한 책의 디자인이 우리나라가 상당히 수준이 높은 편이라 해서 유심히 보았는데 그건 맞는 것 같기도 하다. 근데 미국 책 감성이라는 것도 확실히 존재한다. 우리나라의 책 디자인은 이제 너무 감성적인 영역으로 치우쳐진 것 같은데 미국은 아직 큼직한 텍스트와 저자의 얼빡샷, 단순한 일러스트를 애용한다. 미국의 책을 보다가 우리나라 책을 보면 디자인은 나은 것 같긴 한데... 암튼 그런 차이가 있다는 정도는 확실히 보인다. 들어가서 생각해보니 책을 사줘야할 사람이 생각났다. 우연찮게 미국에 도착하자마자 연락이 된 지인이 있었다. 기념품을 사오라고 말한 김에 영어책 한 권을 가져가기로 했다. 여건이 되면 책을 좋아하고 영어로 책을 읽을 수준인 사람 모두에게 책을 사주고 싶었지만 가격이 만만치 않길래 포기해야 했다. 그래도 부탁을 받은 사람에게 선물은 꼭 챙겨가야 해서 까먹지 않기로 다짐했다. 다행히 11일 후 공항에서 무사히 책 한 권을 구입했다.



 서점을 나오고서는 아울렛을 조금 더 둘러보다보니 벌써 해가 지고 있었다. 해가 점차 저물어가면서 점차 사람과 눈높이를 맞춰가는 시점이 되었다. 더 이상 할 만한 건 없었지만 아직 숙소로 돌아갈 수 없었다. 아직 해가 지지 않아 가는 길에 어두워지면 아깝기 때문에, 무엇보다도 지금 가면 엄청 막힌다는 형의 당부때문이었다. 할 수 없이 근처에 잠시 있다가 가기로 했다. 근처에 공원이 있으니 미국의 공원을 한 번 둘러보는 것은 어떻겠냐는 말이 나왔다. 아울렛 바로 옆에 붙어 있는 공원이었는데 그 크기가 우리나라의 공원들과 비교해서 꽤 커 놀랐다. 그 안에 들어가 있는 운동 편의시설이 여러 개 - 유소년 야구장, 테니스장, 농구장, 풋살장, 수영트랙(폐쇄), 티볼장, 바베큐장 - 가 있어 운동하는 사람들이 한가득 있었다. 그 사이에는 잔디에 누워 쉬거나 개를 산책시키며 뛰다니는 사람들도 있었다. 우리나라에 흔치 않은 공원이라 그런지 다양한 운동을 하기 어려운 우리 집 근처 공원 몇 군데가 생각났다. 지금와서 생각해보니 그 공원이 그리 크다고 할 만하진 않았다. 그러나 운동시설이 집약된 공간이라는 점은 분명했다. 확실히 외국에서 운동에 대한 접근성이 다른 점은 부러워할 만 하다.


 어느덧 해가 지고 나서 우버를 잡고 숙소로 돌아갈 수 있었다. 숙소로 가자마자 라스베가스로 가는 비행기 티켓을 찾아보았다. 이틀 뒤 G와 라스베가스에서 만나기로 했지만 비행기 루트만 알아보고서 표를 구해놓질 않았다. 형과 일정을 맞추기 위해서라는 핑계였지만 실상은 귀찮아서 그랬다. 그때가서 구해도 늦지 않는다는 무모하면서도 올바른 확신 덕분에 표를 확인한 후 아직 남아 있는 오후 비행기를 구매해 놓았다. 누군지 모를 아저씨의 얼굴이 박혀 있는 알래스카 항공의 국내선을 이용했는데, 교환이나 환불이 괸장히 까다로운 항공사라며 잔뜩 겁을 먹었지만 별다른 방도는 없었다. 이후에 씻지도 못한 채 침대에 쪼그려 누워 애매하게 잠들었다. 여러 사람의 대화 소리가 들렸지만 도저히 몸을 일으킬만한 힘도 나지 않고 궁금하지도 않아 그대로 누워있다 보니 10시 즈음에야 눈이 떠졌다. 곧바로 내일 무엇을 할지 생각해보고자 근처에 갈 만한 곳을 찾아보았다. 산타모니카 해변, 할리우드 사인, 그리피스 천문대, 명예의 거리 등이 후보지였다. 아침에 일찍 일어나 산타모니카 해변을 오른쪽에 끼고서 자전거를 탈 생각이었다. 그리고 점심을 먹고서 명예의 거리 방향으로 가 시내 구경을 한 후 밤이 되면 그리피스 천문대로 가 야경을 보면 되겠다 생각했다. 아쉽게도 이 계획은 반절만 성공하게 된다. 다음날 사정이 그렇게 되었다.


 밤에는 비행기에서 쓰던 소설을 마저 끄적이다가 잠들었다. 그 소재가 더 이상 떠오르지 않자 손이 가질 않았다. 구상을 위해 노트북을 덮었고 자연스레 잠잘 준비를 하게 되었다. 이렇게 여행 1일차가 끝났다.



 미국 여행 1/12 진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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