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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지호 May 26. 2024

한국 출국부터 미국 입국까지

미서부 여행 프롤로그


 출발은 2024년 4월 16일 화요일 점심이었다. 4월 중으로 여행을 간다면 언제부터 언제까지 갈 수 있을지 꽤 오랬동안 고민해보았다. 이번 학기 여행은 총 3번으로 계획했었는데 1차 여행은 일본, 2차 여행은 미국, 3차 여행은 북유럽 이렇게 되어있었다. 그러나 4월 초 일본 여행을 갔다와 보니 가장 큰 변수 하나가 있었다. 바로 소리지기 타임(타임은 필자가 소속된 학교 단체인 '소리지기'의 시설 '음악감상실'을 부원이 지정된 시간마다 관리하는 일종의 무급업무를 말한다) 대타를 구하는 일이 생각보다 힘들었다는 것이다. 한 분께서 대타를 맡아주시긴 했지만 그걸 믿고서 여행을 갔다오는 건 무책임한 일이었다. 만약 진정으로 여행을 가야만 했더라면 이번 학기의 타임을 대신 맡겠다는 말을 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내 여행에 대한 계획이 어떻게 될지 불투명했으니 휴학생의 남는 시간을 기부할 수 있다는 선택을 했었다. 이에 대한 책임은 여행을 갔다올 미래의 나에게 미뤄둔 셈이었다.


 쨌든 이러한 이유로 여행은 타임이 있는 월요일을 최소로 포함하는 일정을 짤 수 밖에 없었다. 결국 출국은 화요일로, 귀국은 일요일이 되어야 했고 이에 맞춰 항공권을 구입했다. 이에 맞춰 미국에 있는 사촌형, 친구 G와 일정을 맞춰보았다. 미국에 발을 내딪은 후 가장 먼저 만날 사람은 사촌형이었고, 형이 지내는 방에서 신세를 지기로 결정되었다. 그리고 거기서 머물동안 며칠간은 형과 함께 LA와 산타모니카를 둘러보기로 했다. 


 사촌형과의 일정은 미국에 도착해서야 확정되었지만, G와 지낼 일정은 심사숙고하여 출국 전까지 확정해야 했다. 쟁점은 미서부에 위치한 주요 자연경관 - 캐니언, 데스밸리, 요세미티 - 중 어떤 곳을 갈 것인지, 간다면 어떻게 갈 것인지 등을 논했다. 이전 글에서 밝혔듯 차를 빌리는 방안은 탈락하고 다른 경유지까지 고려하다보니 캐니언, 데스밸리를 투어 프로그램으로 갔다오는 것으로 결정되었다. 이외에도 어디, 언제 G와 처음 만나게 될지나 이후에 이동은 어떻게 할지 무엇을 할지 등을 정하게 되었다. 앞선 글에서 적은 표보다 미세하게 자세한 정도로 일정이 정해진 후에야 그만둘 수 있었다. 



 출국 사흘 전, 일본에서 새로 생긴 취미를 미국에서도 즐기기 위한 준비를 했다. 일본에서 일회용 필름 카메라를 구입해 30장 남짓의 기록을 남겼다. 손가락이 화면을 가려 못쓰게 된 건수가 삼할을 넘지만 묘하게 아찔한 느낌을 받았다. 세상에 물리적인 각인을 남겼다는 인상이 지워지지 않았다. 그 이후로 미국 여행 전까지 필름 카메라를 마련해 가져가겠다는 생각을 줄곧 가지고 있었다. 결국 원하는 기종을 찾은 후 중고장터에서 거래가 가능한 게시물마다 연락을 돌리자 단 한군데에서만 가능하다는 연락을 받을 수 있었다. 토요일 밤 8시에 중고 거래 일정을 잡은 후 그 날 다른 일 하나도 없이 약 30만원 정도 되는 돈을 주고 올림푸스 xa를 사왔다.


 출국 이틀 전, 어머니의 충고를 귀담아 두고 있었기 때문에 전날에 하려던 짐정리 및 출국 준비를 하기로 마음먹었다. 바로 할 수 없는 사정이 있었지만 말이다. 다니던 색소폰 동호회에서 금요일에 전화가 왔었다. 일요일 오전에 시간이 되냐고 했다. 연습할 시간은 있다고 하니까 그날 오이도 버스킹이 있다며 나오라고 했다. 일단은 알겠다고 했지만 근 한 달간 색소폰을 입에도 못댔는데 설마 데려갈까 했었다. 일요일 오전 10시보다 조금 늦어 연습실로 가니 왜이리 늦었냐며 조금만 연습하고 바로 가자고 했다. 결국 오이도로 끌려가 같은 곡 3곡 - 울어라 열풍아, 초혼, 바위섬 - 을 3번씩 불어야 했다. 어떤 모임에서 가장 막내인 상황은 달갑지 않다. 하물며 색소폰 동호회면 내 다음으로 젊은 분은 40살 위로 올라가야 한다. 도저히 버티기 힘들어 도중에 탈출했다. 출국 준비를 해야 하는데 시간이 없다고 하니 보내주셨다. 사실 고모가 집에 와서 도와주시기로 했는데 이미 오셨다고 둘러댄 건 거짓말이긴 했다. 집에 오는 길은 한 분이 데려다 주셨는데 거기서 젊을 적 밴드하시던 이야기, 술담배하느라 건강 망친 이야기, 여기 말고 실용음악학원같은 곳으로 다니라는 조언 등을 받을 수 있었다. 이 이야기 이후로 색소폰 동호회는 가지 않기로 생각했고 지금은 말씀드린 후 나왔다.


 집에 온 후 출국 준비를 하던 중 비자가 필요한지 의문이 들었다. 무비자라고 알고 있었는데 아무런 준비가 필요없을리가. 9.11로 외국인에 대한 경계가 심한 나라가 아무리 우방국이라도 쉽게 들여보내진 않겠지. 그래서 찾아보니 ESTA라는 사전 준비가 필요했다. 여러 인적 사항을 넣어 놓은 후 ESTA를 발급받으면 출입국에는 문제 없었다. 그러나 그걸 출국 이틀 알았다는 게 첫 번째 문제, ESTA 발급에 최대 48시간이 소요된다는게 두 번째 문제였다. 결국 헐레벌떡 신청한 후 발급 메일이 오기까지를 기다렸다. 엄마는 내가 표값 날리고 숙소값 날릴까봐 계속 걱정했다. 발급을 빠르게 해주는 과정도 있다더라, 돈을 더 내면 할 수 있다더라, 다른 사람들은 뭐 못나갔다는 말 있었는지 찾아보라며 하시다가 늦은 저녁에 발급 메일이 왔다는 걸 보신 후에야 안심하셨다. 


발품 팔 당시 라이카 매장에 들러 봤던 브루크너 100주년 기념 모델. 렌즈에 안톤 브루크너의 정보가 적혀 있다


 출국 하루 전, 구입한 필름 카메라에 맞는 필름을 구입하기 위해 충무로에 들렀다. 이전에 필름 카메라 매물이 있을까 발품 팔아보려고 들렀던 적이 있었다. 이번에는 딱 필름만 구입하려고 가게 두세 군데만 찍고 필름 총 세 통을 구입했다. 


 그렇게 출국 준비를 마치고 공항으로 향했다. 공항은 여전히 사람이 많았다. 작년 여름 대만을 갈 때는 여기서 과 교수님을 만나기도 했다. 화훼학 강의를 들었던 교수님을 공항에서 뵙자 나도 모르게 큰 소리르 인사를 드렸던 기억이 있었다. 오늘은 그런 특별한 이벤트는 없었다. 고모의 부탁으로 사촌형에게 전달해줄 물건이 가득 담긴 캐리어 하나와 옷은 가서 사입으면 된다며 7일치의 옷만 담은 작은 내 캐리어를 들고 수속 절차를 밟았다. 고모의 캐리어는 손잡이가 망가져 있고 바퀴도 2개만 달려 있어 들고 다녀야 했다. 덕분에 어깨가 한쪽으로 기울어진 채 공항을 누볐다. 체크인을 하고 캐리어를 맡기고 나서 홀가분해진 채로 비행기 탑승구 앞으로 갔다. 12시 50분 출발인데 10시 30분부터 기다려야 했다. 유튜브를 뒤적거리다 김밥 한 줄과 생수 하나를 사들고 먹으면서 기다렸다. 비행기에서 뭘 할지 정해두질 않았지만 책, 노트북, 저장해둔 영상이나 노래 등 버틸만 할 것이라 생각했다.


 비행기에 탑승하고 나서 아이들의 울음소리가 컸다. 앞으로 힘든 여정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12시간 동안 비행기에 갇혀 애들이 쥐어짜는 소리나 듣고 싶지 않았다. 다행히 여러 소음은 음악 소리에 가려져 크게 신경쓰이지 않았다. 갈 동안 들었던 음악은 베를리오즈 Harold in Italy, Syphonie fantasique, 멘델스존 아바도 버전, 베토벤 Missa solemnis, 브루크너 9번 교향곡 정도를 들었다. 이거 다 합쳐도 6시간이 채 안된다. 음악을 들으면서는 <보바리 부인>을 읽거나 노래만 듣거나 - 그대로 잠들기도 했다 - 소설을 써보는 등 준비해갔던 일은 다 해봤다. 그럼에도 질리자 이전에 다운받아 갔었던 '침펄토론 합본판'을 봤다. 밥 먹을 때는 어차피 다른 짓을 못하니까 제격이었다. 시간이 남자 비행기 좌석에 달린 스크린으로 미디어를 뒤적거려봤다. <거미집>이라는 영화가 눈에 띄어 봤다. 적절한 코믹 요소가 있어 시간을 때우는데 제격이었다. 내가 영화에 큰 기대를 하는 것도 아니고 안목이 있는 것도 아니라서 수준이나 다른 요소는 눈에 들어왔던 것이 없었다.


미국의 건물은 낮고 오와열을 맞추고 있었다


 그렇게 시간을 보내다가 노트북으로 소설이나 찌그리고 있었는데 육지가 보이기 시작했다. 그때부터 남은 시간이 얼마인지 확인했었다. 아마 1-2시간 내로 착륙한다고 했었다. 그래서 쓰던 글을 적당히 마무리했다. 에어팟을 끼고 눈을 감았지만 잠이 오질 않았다. 한국 시간으로 자정에 가까운 시간이었지만 미국은 이제야 아침을 맞았다. 


 착륙 후 보딩 게이트가 비행기와 연결되는데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한 30분은 앉아서 기다린 듯 했다. 공항에 입성하니 영어밖에 안보이는 진풍경이 펼쳐졌다. 한평생 영어는 세계 공용어로만 접했지 어느 곳의 모국어인 적이 없었다. 그렇게 공항을 둘러보며 정신없이 걷다가 다다른 임국 심사대에서 ESTA, 여권 및 간단한 신상정보를 제공하고 나올 수 있었다. 짐을 찾고 게이트를 나서자 사촌형이 기다리고 있었다. 한국 시각으로 새벽 1시, 미국 LA 기준 아침 9시부터 미국 여행이 시작되었다.



미국 여행 0/12 진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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