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각선생 Sep 19. 2024

정리 봉사 첫 번째 집

오늘부터  내 방에서 한번 자볼까?

까다롭게 엄선된 첫 번째 집은 엄마 혼자 아들을 키우는 집이다.

엄마가 허리가 안 좋아서 집안일에 신경을 못 쓰다 보니 많이 어질러진 상태라고 했다.

방문상담을 가서 직접 뵈정말 기력이 없어 보이셨다.

오래 앉아있는 것조차 힘들어하셨다.

10살 아들은 아픈 엄마를 보며 일찍 철이 들었는지 씩씩하고 예의가 발랐다.


현관에 들어서면 바로 거실과 연결된 큰 베란다가 보이는데 거기가 어수선하니 집 전체 분위기가 어수선해 보였다.

우선은 다른 곳보다 베란다만이라도 좀 정리되었으면 좋겠다고 말씀하셨다.

착한 아들과 아픈 엄마를 보니 마음 같아선 집 전체를 싹 다 해드리고 싶지만 봉사 인원도 적은 데다 전문가들로 구성된 팀이 아니기에 전체 정리까지는 무리라 판단,  대신 베란다 외 다른 공간을 조금 더 해드릴 순 있을 거 같다.

이 날은 내 후배 강사님도 함께 동행했기에 강사님이 그날 베란다를 담당하시라 했다.

마침 이때가 4월이라 계절이 곧 바뀌는 시기니 나는 아들과 엄마의 옷을 담당하면 좋을 거 같다.

복지사님까지 총 6명이 하면 5시간이면 충분하다.

너무 힘들게 하면 담부터 봉사자님들이 참여 안 할 수도 있기 때문에 살살해야 된다.^^


어머님께 옷장이 어딨냐고 여쭤보니 갑자기 아들방으로 나를 안내하신다.

아들 방에 두 사람의 옷을 함께 보관한다고 하셨다. 그 방에는 5단 서랍장 하나밖에 없는데 어떻게 두 사람 계절 옷들이 다 들어갈 수가 있지? 의문이었다.

왠지 일이 커지겠다 싶다. 여기저기 분산 될수록 한 공간만 정리해선 해결이 안 나기 때문이다.


"어머님~ 메인 옷장은 어딨나요?

역시나 방에 마 옷장이 따로 있다.

아니 이렇게나 큰 장롱이 있는데 왜 아들방에 엄마옷을 함께 두셨을까? 아마 아들이 어렸기 때문에 그동안 생활하신 패턴 그대로 자연스럽게 이어진 거 같다.

한창 성장기에 놓인 아들이 곧 사춘기를 맞게 되면 자신만의 공간을 필요로 하기 때문에 엄마와 아들의 공간을 나눠주는 게 이번 정리의 목표가 될 거 같다.

아들방에 있는 엄마의 옷은 싹 다 엄마방으로 보내고 아들 방은 학습하기 좋은 환경 개선을 위해 책상 정리까지 마치는 걸로 계획을 세웠다.

그렇게 총 3개의 공간을 정리하기로 했다.


공간 1. 베란다 전체
● 죽은 화분 등 필요 없는 물건 버리기
● 빨래 널기 편한 동선 확보
●생필품 보관용 창고 만들기

공간 2. 아들 방 전체
●학습공간 개선
●프라이빗한 혼자만의 아지트 만들기
●엄마 일손을 도울 수 있도록 쉽게 정리할 수 있는 구조로 만들기, 예를 들면 빨래가 마르면 스스로 정해진 자리에 넣고 꺼내 입을 수 있도록 명확한 주소 만들기와 이름표 붙이기

공간 3. 엄마 장롱
●허리가 불편한 엄마 맞춤용 사용하기 편한 옷장 만들기


모든 준비는 끝났다. 이제 우리의 케미를 맞춰 볼 실전의 날!

복지사님도 기대이상으로 두 손 두 발 걷어붙이고 일손을 도우셨다. 바지 걷어올리고 양말까지 벗고 혼신의 힘을 다해 일하시는 모습이 참 기 좋았다. 나중에 따뜻한 밥 한 끼라도 사 드려야지 싶다.

사실 나 때문에 복지사님도 그간 좀 힘드셨을 거다

따지고 보면 일을 잘해보고 싶은 욕심 때문에 그런 거지 개인적으로 복지사님한테 감정은 없다.

이날 참여한 다른 봉사자님들도 정말 열심히 하셨다.

다들 살림 좀 해본 주부라 그런가 손들이 어찌나 빠른지 빨래 갤 때 내 분류 속도가 못 따라갈 정도다.

각자 맡은 포지션을 아주 잘해 내셨기에 우린 4시간 만에 세 공간을 완벽히 마쳤다.


순식간에 정리 방을 본 아들 반응도 재밌다

" 오늘부터 내 방에서 한번 자볼까?.

원래 이 방에 잘 안 들어갔는데 이젠 혼자서 잠도 자겠다고 하니 여간 기특한 게 아니다.

어머님 정리 후 달라진 베란다를 보시더니 아픈 허리로 구석구석 물청소를 하셨다.

깨끗해진 집들을 보니 아픈 것도 잊을 만큼 좋으셨나 보다.

정리는 아픈 몸과 정신을 벌떡 일으키는 놀라운 힘이 있다더니 진짜였다.


함께 봉사에 참여했던 봉사자님들도 다들 뿌듯  하셨다.

복지사님이 그러는데 정리받고 어머님께서 감동해서 우셨다고 한다.

오히려 이렇게 보람된 일을 할 수 있 기회를 주셔서 우리가 더 많이 감사하다고 전하고 싶다.


베란다

정리 전
정리 후

아들 방

정리 전
정리 후

●엄마 방 장롱


정리 후


이후신청 들어오는 집은  마음이 끌리지 않았다.

 개인적으로 컨설팅을 의뢰하는 일고객님들과 형편이 크게 다르지 않 일반 가정들이 다.

이유 없는 봉사는 지 않을 생각이 모두 거절했다.

사실 알고 보면 정작 도움필요한 집 혼자 고립된 삶으로 꽁꽁 숨어버리는 경우가 많다.

최근에 일로 은둔형 청년들을 만나본 적이 있는데 해당 기관 담당자들의 끈질긴 설득에도 연락을 피하고

마음속 깊은 동굴로 들어가서 좀처럼 나오 않았다.

그런 분들을 설득하는 과정이 쉬운 일은 아니다.

 일의 특성상 지금과 같은 상태로 마냥 주말 스케줄을 고 기다 점점 부담다.

나는 이쯤에서 사활동을 그만기로 결정했다.

봉사는 누구나 도전할 수 있지만 오랫동안 꾸준히 하는 건 쉽지 않은 일 같다.

천천히 의미 있는 일을 찾아볼 생각이다.

그때는 팔팔 끓다 넘치는 냄비 말고, 무던하게 오래 끓는 가마솥 같은 마음으로 임할 것이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