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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각선생 May 12. 2024

우리 아들이 대기업 다녀요.

처음 마주한 건물의 모습은 실로 충격 그 자체였다.

내 나름 그동안 취약 계층에 놓인 집들을 많이 다녀 봤다고 생각했는데 아직도 아닌가 보다

그보다 더 심한 집이 있었다

누아르 장르에서나 볼 법한 어둡고 습한 건물 앞에서 우리가 찾던 주소와 일치하는 숫자를 본 순간,

나는 살짝 겁이 났다

건물 내부의 속 사정이 어떨지 전혀 가늠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언뜻 봐도 부슬부슬 벗겨지고 금이 쫙쫙 가 심란하기 그지없는 시멘트와 벽돌들,

대낮인데 컴컴한 내부와 코끝을 스치는 쿰쿰한 냄새로 인해 입구부터 잠시 머뭇거리게 된다.

나는 용기를 내 조심스레 계단을 오르기 시작했다.

이따금 자세를 낮춰 머리와 허리를 숙여야 통과할 수 있는 낮은 층고가 가뜩이나 쫄 린 심장을 더 움츠러들게 만든다

행여 시멘트 가루가 옷에 묻을 까 최대한 몸이 벽에 닿지 않게 조심스레 발을 떼보는데 좁고 가파픈 계단을 한 발짝씩 오를수록 어르신의 안위가 걱정됐다

건강하고 젊은 나도 이렇게 조심스러운데 무릎이 안 좋은 어르신들은 불편을 넘어 위험하겠단 생각마저 든다.

제일 꼭대기 층에 거주하신 어르신 댁에 다다르니 똑같은 문 두 개가 나란히 보인다

아, 그래서 복지사님이 주소옆에 우측 문이라고 써주신 거구나~

보통은 주소에 호수가 적혀있는데 여긴 우측 문이라 적혀서 잠시 생소했는데 그런 이유가 있었다.

좌측 집에도 누군가 계셨다.

크게 부산을 떨지 않아도 워낙 붙어있고 방음이 취약한 구조라 마치 한 집에 방문만 따로 달아 논 느낌이다

밖에서 사람 소리가 나니 안에선 우리가 있는 쪽을 주시하는 인기척이 느껴졌다.

왠지 옆집어르신이 살고 계실 거란 생각이 든다

괜히 우리 때문에 놀라지 않우측 집 어르신께 서둘러 전화를 걸었다

그리고 복지관에서 온 사람이라고 두 분 다 안심하실 수 있게  알려드렸다.


우측 집 문이 열리고 어르신을 뵐 수 있었다

그동안 뵈었던 어르신들과 뭔가 느낌이 다르

반갑게 맞아 주시는데 어딘가 기운이 없어 보이셨다

안색은 창백하리만큼 하얗고 무엇보다 머리카락이 하나도 남아 있지 않았다

가벼운 인사를 건넨 뒤 방안에 들어서자마자 순서대로 쭉 나열해 놓은 약봉지를 보니 뭔가 예감이 안 좋다

안방을 지나기 전, 언뜻 보이는 작은 방은 딱 봐도 정리 상태가 심각하다

이사 온 집처럼 살림이 마구 쌓여 있었다

그나마 다행인 건 어르신이 생활하시는 안방은 밝은 빛이 잘 들어왔다

가구는 싱글 침대와 미니 테이블이 전부였는데 그래도 그게 있음으로 가정집의 아늑함이 살아났다

벽에는 마리아상이나 십자가 용품이 많았다

종교가 있으신 듯하다

우리는 원래 하던 대로 어르신께 고깔모자를 씌워드리고 생신 축하노래를 불러드렸다

어르신은 잔잔하고 온화한 미소로 화답해 주셨다

무슨 약이 이리도 많으신 거냐고 여쭈니 어르신은 없이 종이 한 장을 건네셨다

거기엔 에이포 용지가 빼곡하게 현재 어르신이 앓고 계신 지병의 목록이 적혀있었는데 그중에서도 알츠하이머 진단과 최근 받은 무릎 연골 수술, 대장 용종 제거 등등 , 곡하게 세상에 존재하는 병이란 병은 다  듯하다

그래서 순서대로 드셔야 될 약들이 이리도 많았나 보다

보이지 않는 사진 외 방바닥에도 더 많은 양이 쭉 나열 돼 있다.

사실  이 정도면 혼자 계시면 안 되지 않나 생각부터 든다

그때 옆에 있던 친구가 정막을 깬 한마디를 건넸다

태블릿, 핸드폰 등 집에 있는 기기들이 다 요즘 유행하는 최신 기계들이 많은 것 같다고 말씀드리니 어르신께선 이게 다 아들이 사준 거라고 하셨다. 

아들이 대기업에 다닌다고 말씀하시는 어르신의 입가에 언뜻 미소가 번진다.

아들은 얼마 전에도 이곳에 와서 함께 식사를 하고 갔다고 자랑하셨다

우리가 집마다 그 사연을 속속들이 알 순 없지만 아버지를 편한 곳에 모시지 못하는 아들 마음은 오죽할까? 

처음 본 내 마음도 이렇게 안 편한데 아드님 마음은 더 많이 아플 거 같다.

어르신은 우리랑 대화하며 잠시 앉아 있는 시간도 많이 버거워 보이셨다

 서둘러 어르신의 건강을 당부드리고 헤어질 채비를 했다

복지관에서 준비해 주신 밑반찬을 전달해 드릴 때  보니 인스턴트 즉석 음식 몇 종류도 누가 사놓고 간 게 보인다. 3분 요리 사골국 같은 거 말이다.

어르신 무릎 연골수술을 받은 지 얼마 되지 않아서 아마 당분간 이 아찔한 계단을 직접 못 오르내리시지 않을까 싶다

생각난 김에 나는 좀 전에 교회에서 받은 두부 간식을 심심할 때 드시라고 건네어 드렸다

어르신은 불편한 몸을 이끌고 우리를 배웅하기 위해 느린 걸음으로 앞까지 나오셨다

어르신께 건강하시란 말을 끝으로 계단을 내려오는데 마음이 참 그렇다

여태껏 봉사 마지막 집을 홀가분하게 나섰을 때랑은 많이 다른 감정이다.

집에 다 와 갈 무렵 친구로 등록되지 않은 낯선 이로부터 장문의 카톡 메시지가 왔다

스팸인가 싶어 차단하려고 보니 프로필 사진이 낯이 익다

토마스라는 세례명을 보니 천주교를 상징하는 듯하다

순간 좀 전에 뵈었던 어르신이란 생각이 든다

내 번호를 그 새 저장 하셨나?

아까 문 앞에서 내 번호로 전화를 걸었던 게 생각났다

놀랍기도 하고 반갑기도 했다

어르신은 내게 앙증맞은 이모티콘과 나훈아가 테스형이라는 알 수 없는 장문의 글을 보내셨다

아마도 어르신들 세계에서 유행하는 오늘의 좋은 글 같은 덕담이 아닌가 싶다.

나도 어르신께 귀여운 이모티콘으로 답변을 남겨드렸다

어르신은 다음 날 또 새로운 덕담 글을 보내오셨다

그 잠깐 인연을 허투루 흘리지 않으시고 내게 덕담으로 고마움을 전하시는 그 마음이 참 따뜻하시다

사실 난 복지관에서 준비해 준 선물을 전달해 준 것 밖에 한 게 없는데 그에 비해 과분한 선물이 아닐 수 없다

어르신의 따뜻한 덕담 선물거절하지 않을 생각이다

어르신께 온 카톡을 보고 한번 더 어르신을 기억하고 기분 좋게 읽는다면 어르신도 분명 뿌듯한 하루가 되실 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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