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각선생 Apr 19. 2024

이 대신 잇몸으로 사는 아저씨

이번에 만나 뵌 어르신은 어르신이라 칭하기엔 어째 많이 젊다.

연세를 여쭤보니 60대 후반이라고 하셨다.

요즘 60대면 손주가 있어도 밖에선 아직 어르신 소리 들을 나이는 아니다 싶어 호칭 머라고 불러야 할지 좀

난감했다

그렇다고 아버님이라 칭하기도 색한 상황이다

아저씨는 늦은 나이에 베트남 내를 만나 결혼했지만 30살 가 나이  문화극복하지 못하고 결국 이혼하셨다고 했

같이 사는 동안 아이 미래를  위해 자녀 계획 없이 지내셨다고 한다

그러다 보니 우리에게 아버님이라 불리는 게 쩌면 어색하실 수도 있겠다 싶다.

나는 최대한 호칭 없이 스무스하게 대화를 한번 이어가 보기로 했다.


아저씨는 마포 토박이로 여태껏 마포에서만 쭉 나고 자라셨

젊을 때부터 하시던 의류은 손대는 족족 망하고, 그나마 유일하게 갖고 있던 허름한 집 한 채는 당시 돈이 너무 궁해 팔았는데 자마자 그 집 값이  천정부지로 뛰었다고 말씀하셨다.

어찌나 속이 쓰렸던지 진짜 안 되는 놈은 뭘 해도 안 되는구나 싶으셨단다

다시 재기를 꿈꾸며 형편이 나은 형제들에게 조금만 도와달라고 을 벌린 후로 형님들과의 관계가 많이 안 좋아졌다고 하셨다

피를 나눈 형제도 각자 결혼하고 살면 부양할 가족들있다 보니 어쩔 수 없는 거 같다.

지금은 마포구청이나 복지관 등의 도움을 받으며 기초생활 수급자로 생계를 이어가시는 중이다.

가끔씩 동묘시장 구제 옷을 구매한 뒤 약간의 마진을 붙여 되판 돈으로 겨우 담뱃값 정도의 용돈을 버실 뿐이다.

그 좋아했던 담배도 하루가 다르게 치솟는 물가에 비용부담이 점점 지면들게 줄였다고 하신

진짜 못 참을 때만 가끔씩 그마저도 아껴서 핀다고 하셨다


집안 온통 구제 물건 채우다 니 여기가 고물상인지 창고인지 헷갈릴 정도다

이토록 먼지 날리고 좁은 환경에서 식사는 어찌 해결하시냐고 여쭈니 어차피 맛있는 음식이 있어도 마음껏 드실 수가 없다고 하셨다

그러고 보니 아저씨우리가 처음 방문 했을 때, 급하게 방들어가 마스크를 쓰고 나오셨었다

어르신 댁을 방문하면 면역력이 약한 분들은 알아서 조심하시는 경우가 많아 당연히 그 이유일 거라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다

알고 보남아있는 치아가 거의 없 민망해서 가리신 거였다

 뜯는 즐거움 이미 잊은 지 오래고, 모든 음식을 싹 다 물에 넣고 훌 저어서 죽처럼 푹 끓여드신다고 하셨다

날 우리는 복지관에서 준비해 주신 잡채와 장조림, 멸치볶음 밑반찬을 전달해 드렸는데 시다가 행여 걸릴까 봐 염려스러워 잘 다져서 끓여 드시라고 했다

안 그래도 얼마 전 허기진 상태서 허겁지겁 대충 삼켰다목에 걸려서 큰일 날 뻔하셨단다
물론 이런 아저씨의 사정을 잘 아는 복지관이나 구청에서 도움을 주기 위해 임플란트도 알아이런저런 상황으로 당장은 여의 치 않아 치아가 다 빠지면 전체 틀니로 하신다고 들었다.
어차피 임플란트도 금방 되는 건 아니라 당분간은 많은 불편함을 감수해야 하는 상황이라 그 점이 매우 안타까웠다
대화 내내 아저씨는 마스크를 한 번도 벗지 않으셨다

어디서 식사 초대를 받아도 불편해서 웬만하면 혼자 집에서 드시는 게 제일 속 편하다고 하셨다.


동묘시장에서 사 온 구제 옷 중에는 밍크코트가 유독 많는데 아저씨는 이걸 팔기도 하지만 리폼이나 수선도 할 줄 아는 기술자

오래전부터  알던 찐 단골들만 가끔 찾아와 물건을 사 거나 수선을 맡기고 간다고 하셨다.

아저씨의 손기술 참으로 놀라웠다

오래된 구두의 밑창을 가는가 하면 낡고 해진  패딩 소매단을 수선할 줄도 아셨다

가장 놀라웠던 건 긴팔 소매 밍크코트를 조끼로 리폼한 거였는데 털 옷이라 잘못 재단하면 수습이 불가할 만도 한데 결의 방향으로 면도칼을 이용해 정하게 자르면 털 빠짐없이 재단이 가능하다고 하셨다.

이 모든 작업을 미싱이 아닌 오직 손바느질로 하신다니

놀랄 노 자 

이렇게 좋은 기술이면 봉제 공장에 취직도 가능하신 거 아니냐고  여쭈니 현재 건강 상 문제 때문에 업이 불가하다고 하셨다

동네 벼룩시장이나 프리마켓 알아보는 게 집에서 마냥 손님을 기다리는 것보단 나을 거라고 말씀드리자 그런 루트 잘 모르셨다.

그래서 제 블로그라도  올려드릴 테니 어떤 기술들이 있는지 세세히 알려달라 하니 아저씨는 방구석구석 물건 이모저모 들고 나와 기술들을 본격적으로 어필하기 시작했.

이 정도면 생활의 달인 한번 출연하셔야 되는 거 아닌가 싶다

아저씨의 기술은 다음과 같다

기술 1. 신발 밑창 갈기
기술 2. 구멍 난 점퍼나 해진 소매단 수리하기
기술 3. 고가의 가죽 가방 구두약으로 광내기
기술 4. 긴소매 밍크를 조끼로 리폼하기


고가의 모피 수선은 아무 데나 맡기면 안 되니까 혹시 관심 있는 분들은 마포 손기술의 달인 아저씨에게
한번 의뢰해 보길 바란다.

아저씨와 이런 얘기를 나누다 보니 여간 재밌는 게 아니다.

마치 독거노인을 위해 봉사를 간 게 아니라 달인을 만나러 온 방송 작가가 된 기분이다.
한참 대화하던 중 갑자기 아저씨는 줄 게 있다며 방에 가서 뭘 찾아 나오셨다

유일하게 작은 사이즈라며 함께 봉사하러 간 막내 지영 씨에게 입어보라고 하셨

선물로 주고 싶다고  가져가서 입으다.

입어보니 아주 맞춤으로 지영 씨에게  잘 어울렸지만 지영 씨는 아저씨의 선물을 받지 않았
하나라도 더 파길 바란 듯하다.
우리는 웬만하면 어르신들께서 주시는 음료수도 그냥 넙죽 받아먹기 머 해서 되도록 거절는 편이다
본인이 아끼시는 걸 주시는 그 마음만 땃하게 받는다
딱 봐도 덩치가 있어 보였는가 한번 입어보라고 빈말도 하지  않으셨

장사하신 분이라 그런지 썰미가 보통이 아니시다


신기한 구제 옷실컷 구경하고  아저씨와 많은 대화를 나누다 보니 직접 동묘시장을 녀온 느낌

헤어짐이 아쉽다는 건 그 만남이 그만큼 좋았단 증거다

아저씨와의 헤어짐이 못내 아쉽고 긴 여운으로 남았다

다음 달은 어떤 어르신을 만나 뵙게 될까?

처음엔 그냥 의무감으로 듣기만 했다면  언제부턴가 어르신들의 다음 이야기가 점점 궁금해진다.




이전 08화 90세 향연의 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