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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각선생 Mar 10. 2024

독거 어르신의 생신 기념일 1화

화려한 왕년을 자랑하셨던 아버님

살짝 열린 현관문틈 사이로 초인종 대신 똑똑 두 번 노크를  했다.

눈치 빠른 지영 씨가 진즉에 누른  통화버튼에 어르신의 음성이  집 안과 전화기 두 군데서 동시에 전해진다


"집에 계셔서 다행이다~


이미 문은 열려 있었지만 행여 놀라실까 우리 맘대로 벌컥 열고 들어가진 않는다.

문이 활짝 열리고 처음 마주한 어르  미소가 했다.

인자한 표정 속에  첫만남이지만 편안함이 느껴졌다

의례적인 첫인사를 마치고 나면 잠깐의 썰렁함이 돈다

어색한 분위기가 오래가지 않게 재빨리 선물공세로

분위기를 띄우인공의 머리에 귀여운 고깔을 드린다.

어르신은 우리가 무안하지 않게 기분 좋게 응해 주신다.

그리고 신나는 축하 노래 생신잔치의 흥을 돋운다.

이 순간만큼은 내 부모요, 우리가 그의 손주요, 자식이다.

진심을 다해 노래를 부르고 나면 어르신 입가에 함박 소가 퍼진다

이번에도 성공이다

늘 조용했던 집에 이쁜 딸들이 셋이나 와서 오랜만에 북적북적 사람냄새를 풍기니 얼마나 좋으실까?

안 해도 진심으로 좋아하심이 느껴졌다.

이 맛에 봉사한다

도란도란 마주 앉아 어르신과 눈을 맞춘다.

어떤 대화를 해야 편안한 교감을 나눌 수 있을까?

적어도 가식적이지 않고 가성비가 높은 시간이고 싶다

그렇게 눈을 맞추다 보면 어르신이 앉아계신 주변으로 하나쯤 눈에 들어오는 물건들이 다.

보통 어머님들은 아기자기한 화분에 한가득 애정을 담으시고, 아버님들은 돌이나 호두로 본인만의 지압도구 만들어 생활의 지혜 뽐내기에 여념이 없으셨다.


오늘 눈에 들어온 물건은 한편에 북이 쌓인 병원 약들이다

한눈에 보기에도 그 양이 꽤 많다

어디가 많이 안 좋으신 건지, 무슨 약이 이리도 많은지 조심스레 여쭌다.

어르신은 이 약에 대해 하시고 싶은 말씀이 으셨다

걱정으로 건넨 한마디에 우리는 그간 살아오신 역사도 함께 들을 수 있었다

어르신은 소싯적, 법학도를 꿈꾸던 꿈 많은 청년이었다

경북에서 농사를 짓던 가난한 집안에서 대학은 꿈도 꿀 수 없던 상황이었지만 좋은 머리로 아이들을 과외시키며 그 돈으로 학업을 이어갈 수 있었다

지금은 돌아가셨지만 법대 동기들과의 추억을 회상할 땐 마치 그때로 돌아간 앳된 청년의 모습도 언뜻 보였다.

물론 듣다 보면 한 번씩 알아들을 수 없는 이야기도 있었지만 중간에 굳이 그 흐름을 깨진 않았다

알아듣는 건 긍정의 호응으로~ 못 알아듣는 건 못 알아듣는 대로 조용히 경청하며 들었다.

들은 내용을 종합해 보면 어르신 약에 얽힌 사연은 이러하다

공부를 많이 해서 후천적으로 안 좋아진 눈에 노안이 겹치며 급작스레 이상을 감지하셨다

병원을 찾았는데 하필 담당 의사를 잘못 만나 치료 시기를 놓친 탓에 눈더 악화되었다

다른 병원을 찾았으나 최근 불거진 전공의 파업 이슈로 이 문제가 안정화 될 때까지 버티기 위해 약을 넉넉히 받아오신 거였다 

노안이라 어쩔 수 없는 상황일 수도 있다는 걸 본인 스스로도 알지만 왕년에 똑똑한 사람들에게도 큰소리 땅땅 치며 살아오신 인생인데 그깟 돌팔이 놈이 본인을 아무것도 모르는 노인 취급을 해서 많이 얹찮았다는 말을 우리에게 하고 싶으셨던 게다

실제 어르신은 80이 넘은 연세에도 아직까지 신문을 구독하신다

눈도 안 좋은데 어떻게 보시냐고 여쭈니 돋보기로 보거나 루테인을 먹으면 한 번씩 잘 보인다고 하셨다

매사에 긍정적이고 평생 늙지 않는 배움의 열정이 대단하시다

어르신은 속에 하고 싶은 말들이 너무 많은데 이걸 어찌 다 참으셨나 싶다

한 해 두 해 먼저 떠나보낸 친구들이 늘면서 이제는 허심탄회하게 이런 소소한 대화를 나눌 친구가 없다는 게 참 슬퍼 보였다

건강한 하루를 함께 버틸 수 있는 벗이 있다는 건 인간이 누릴 수 있는 또 하나의 축복 아닐까?

건강한 내년을 기약하며 어르신께 아쉬운 작별 인사를 건넨다

어르신은 문 앞까지 나와 우리를 배웅해 주셨다

그리고 문은 항상 열려있으니 언제든 놀러 오라고 하셨다

요즘은 세상이 무서워 다들 현관문을 꼭꼭 잠겨놓고 사는 데 사실 그보다 더 무서운 건 안에 사람이 있는지 없는지도 모르는 세상의 무관심 아닐까?

어르신 생신잔치 봉사를 마치고 집에 돌아오는 길,  

여러 감정들로 생각이 많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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