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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다정 Oct 14. 2022

안승용 2편

An Seungyong from South Korea

  쉴 겨를도 없이 나를 짓눌렀던 짐을 다 정리해서 어제 가지 못한 우체국부터 부랴부랴 찾아갔는데 대낮부터 문이 닫혀 있었다. 세상에 오후 두 시에 문을 닫는 공공기관이 어디 있냐며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속을 참고 다음 날 아침에 다시 오기로 했다. 

     

  그런데 돌아와 보니 내가 부치려고 했던 짐에 온갖 충전기들까지 다 들어 있었다. 짐들이 얼마나 원수 같았으면 닥치는 대로 다 쌌을까. 결국 대낮부터 닫아준 우체국 덕에 그 후로 나는 무사히 휴대폰도 카메라도 쓸 수 있었다. 인생지사 새옹지마, 이렇게 또 배웠다.     


  저녁에는 안 선생님이 슈퍼에서 사 오신 재료로 무려 카레를 만들어 주셨다. 이게 얼마 만에 위장에 들어가는 ‘곡기’인가. 감동하며 주린 배를 채우고 나니 시름시름 앓는 소리가 절로 났다. 첫날부터 생전 메어 본 적도 없는 12kg 짐을 앞뒤로 메고 페르돈 고개를 넘었으니 당연했다. 그런 나에게 안 선생님은 한국에서 가져오신 생강 진액으로 손수 생강차를 제조해서 감기약과 함께 건네주셨다. 

     

  생각해 보면 순례길에서 만나는 사람들은 자꾸 무언가를 건넸다. 감기약, 초콜릿, 꼬깃꼬깃 접힌 티백, 와인 한 잔, 빵 조각 등. 대단할 것도 없는 그 작은 무언가는 천리 길도 더 걸어갈 듯한 힘과 위로가 되었다. 그렇게 우리는 작은 호의를 베풀고 또 굳이 마다하지 않았다. 함께해야 걸을 수 있는 길, 그곳은 산티아고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곳도 사람이 부대끼며 걷는 곳이기에 아름다운 호의만 주고받는 것은 아니었다. 이런 일도 있었다. 에스테야Estella를 거쳐 로스 아르고스Los Arcos까지 가는 날. 일행들과 속도가 달라 혼자 뒤처져 로스 아르고스에 진입하는 막판 길은 참 멀고도 험했다.    

  

  겨우 마을에 도착했지만 알베르게가 닫혀 있었다. 우리 일행들은 어디로 간 것일까? 온갖 생각을 하며 성당 앞에 앉아 있는데 낯익은 스페인 남자가 보였다. 반가운 마음에 인사하고 내 코리안 친구들을 못 봤냐고 물으니 내 물음엔 대답도 하지 않은 채 계속 한숨만 쉬어댔다. 그러더니 여긴 알베르게가 없고 10km쯤 더 가야 있다며 휙 지나가 버렸다.     


  ‘헉! 그럼 우리 일행들은 지금 거기까지 가고 있는 것인가? 나는 이제 1km도 더 못 걷겠는데!’ 


  그렇게 날은 어두워져 절망하고 있던 그 순간 어디선가 “누나!”하고 반가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구세주처럼 나타난 동생들이 요 앞에 문 연 알베르게가 하나 있어서 자리 잡았다며 얼른 같이 가자는 것이다.

     

  ‘아, 너무 다행이다. 흥! 그래 끝까지 한숨 쉬며 떠난 밉상남, 너는 네 말대로 10km 더 걸어서 자겠구나.’ 


  주고받던 따뜻한 호의는 다 어디로 갔는지 우습게 이런 마음도 올라오곤 했다.     


  그렇게 일행과 극적으로 상봉한 그곳 알베르게에서 이번엔 안 선생님이 참치 찌개를 해 주셨다. 안 선생님의 요리 솜씨에 내가 가져간 라면 스프가 화룡점정을 찍었다. 그 뜨겁고 칼칼한 국물이 내 목구멍을 타고 넘어가는 순간, 나는 고영양 수액이라도 내 피에 흘러 들어오는 줄 알았다. 역시 우리 민족 DNA에는 매콤한 국물을 먹어야 살 수 있는 유전자가 있는 게 분명하다.     


  사실 초반에 만난 알베르게들은 시설들이 열악했다. 그래도 추운 겨울바람 속에 하루 종일 걷고 나면 그저 문을 열고 기다려주는 알베르게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행복했다. 낡은 식기, 녹슨 수저, 깨진 컵이 전부인 주방이었지만 우리에게 주어진 것에 감사하며 매일 맛있게 식사할 수 있는 곳이기도 했다. 무엇보다 함께 걸은 지 겨우 3일 만에 꼭 가족같이 정들어버린 나의 일행들이 있으니 더 이상 부러울 것이 없었다.      


  손바닥만 한 라디에이터가 전부였지만 서로를 채워주는 온기로 따뜻했던 그 순간, 안 선생님은 또 빙긋이 웃으시며 내게 포도주 한 잔을 건네주셨다.      


  그때는 몰랐다.      


  정확히 이틀 후 안 선생님 앞에서 한 시간이 넘도록 어린아이처럼 대성통곡을 하게 될 나의 운명을.  

    

  그리고 훗날 산티아고에서 다시 극적으로 상봉해 마지막 만찬까지 함께 하게 될 우리의 깊은 인연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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