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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다정 Dec 08. 2022

윤상훈 1편

Yoon Sanghoon from South Korea

 로스 아르고스를 떠나 로그로뇨Logroño까지 가는 길은 맞바람이 심해 고생했다. 그 흔한 목도리나 방한 마스크도 없이 온 나는 목티를 끌어 올려서 이로 물고 갔다. 이가 없으면 잇몸으로 산다는 게 이런 것인가. 그래도 이는 있어서 다행이다 생각하며 로그로뇨에 도착했다.

      

  다음 날 아침 두 동생과 헤어져 안 선생님과 나는 버스를 타고 약 두 시간을 달려 부르고스Burgos로 이동했다. 순례길 이후 이어지는 포르투갈과 모로코 여행을 포기할 수 없어 고심 끝에 내린 결정이었다. 두 시간의 버스 찬스로 3일 정도의 시간을 벌 수 있었다. 여전히 뚜벅뚜벅 그 길을 걷고 있을 두 동생과 다른 순례자들을 생각하니 마음 한구석이 불편했다. 하지만 내 몸이 느끼는 당장의 편안함은 그 모든 불편한 감정을 잊게 할 만큼 강력했다.   

   

  현대 문명의 달콤함에 잠시 취했다가 눈을 뜨니 어느새 내 눈앞에는 웅장한 부르고스 대성당이 나타났다. 그 근처에서 헤매고 있는 젊은 한국인 남자와 함께. 오늘 아침 마드리드에 도착하여 바로 부르고스로 왔다는 그는 우릴 무척 반가워했다. 그의 들뜬 마음을 나는 누구보다 잘 알 수 있었다. 나 역시 나흘 전 시수르 알베르게에서 처음 안 선생님을 만났을 때 딱 그 심정이었으니까.  

  

   그렇게 나도 처음으로 누군가에게 앞서 이 길을 경험한 사람이 되었다. 나도 사실 초짜라 별다를 것도 없는데 그 후에도 이 남자는 꼭 내 남동생처럼 ‘누나! 누나!’하며 이것저것 묻고 내 이야기에 눈을 반짝이며 귀 기울였다. 그가 바로 나에게 찾아온 세 번째 기적, 상훈이다.    

 

  드디어 열린 부르고스 알베르게! 순례자의, 순례자에 의한, 순례자를 위한 알베르게가 있다면 바로 이런 곳이리라! 하나부터 열까지 순례자들의 편의를 고려한 설계와 편의시설에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신이 나서 샤워도 하고 그동안 밀린 빨래까지 해서 뜨끈뜨끈한 라디에이터에 널어놓으니 ‘아, 정말 행복이 이런 것이구나.’ 싶었는데, 침대 머리맡에 개인 전등과 충전을 위한 콘센트까지 마련되어 있었다. 맛있는 과자가 골고루 담겨 있는 추억의 ‘종합선물세트’가 떠올랐다. 이곳은 그야말로 순례자를 위한 종합선물세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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