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이제 끝 : 21길
“제주 올레 걷기 마지막 날. 아침부터 따가운 햇살. 하루 종일 맑음. 최고온도 27도씨. 바람 약간 붐.”
올레 27개 코스 중 마지막 21길을 걸었던 날 일기는 그렇게 시작했다. "끝까지, 잘?" 걸을 수 있을까 하던 걱정은 "벌써, 끝?"이라는 아쉬움으로 바뀌었다. 21코스는 11킬로 정도로 다른 코스보다 짧았다. 수고했을 이들을 배려하여 그리 구성하지 않았을까 생각했다. 길가의 키작은 꽃도 놓치지 않으며 발자국 하나 허투루 딛지 않으리라 다짐하며 걸었다. 마지막 한 개 남은 과자 조각을 깨작깨작 잘라먹는 아이처럼 최대한 천천히 걸었다. 밭길과 마을길, 바닷길, 오름길이 1/3씩이라는 길의 설명답게 조용한 마을길을 내려서니 바닷길이 나왔다. 문주란 자생지인 토끼섬을 바라보며 걷는 길은 한가로웠다. 하도 해수욕장에 이르렀다. 십여 년 전에 우리 가족 다섯이 함께 왔던 곳이었다. 십 년 치의 좋았던 기억이 한꺼번에 몰려왔다. 그곳을 혼자 걸으리라고는 상상도 하지 않았다. 들뜬 기분에 사진을 찍어 가족 단체 채팅방에 올렸다. 둘째가 오래전 사진을 바로 올려주었다. 기쁨을 나누니 다섯 배가 되었다. 그때의 추억을 되새김하고 끝나가는 올레길 걷기를 아쉬워하며 해변 벤치에 한 참을 앉아 있었다.
21길 끝에 있는 오름인 지미봉을 오르기 시작했다. 지미봉(地尾峯) - 제주섬의 끝, 오름을 내려가면 종달리(終達里) - 끝 마을. 종점으로는 딱 맞춤한 지명이었다. 누가 이렇게 기가 막힌 이름을 여기에 지었을까. 오름 정상에 올라 360도를 돌아보았다. 우도, 성산 일출봉, 말미오름, 다랑쉬 오름, 세화, 구좌의 바다가 눈에 들어왔다. 혼자서 사진을 찍고 또 찍었다. 유월의 따가운 볕쯤 아무렇지도 않았다. 멀리 1코스의 성산포와 우도를 바라보며 천천히 내려왔다. 나의 올레길 걷기는 끝이 났다. 행복했다. 그리고, 폭삭속았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