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함께 걷는 즐거움
타원형의 제주섬을 한 바퀴 도는 올레 27개 코스 걷기는 21길을 마지막으로 끝이 났다. 걱정했던 장맛비도 그때까지 오지 않았고 유월의 날씨치고 덥기는 했으나 한 여름에 비하면 견딜만했다.
하늘의 도우심에 더해 좋은 길동무가 있었다. 예전 직장 선배와 입사 동기였다. 나는 혼자서 한 달 살기 겸 올레 완주를 생각했다. 내가 두 사람에게 올레 얘기를 꺼냈더니 재미있겠다며 같이 가자고 했다. 설마 정말로 가겠나 생각했다. 나는 백수인데 반해 그이들은 일이 있었다. 하지만 내 예상은 빗나갔다. 제주의 일정과 일의 조율 끝에 초반 열흘 정도는 선배가, 후반 스무날 가량은 동기가 동행하기로 했다. 덕분에 제주 한달살이를 흔쾌히 허락했던 아내의 내 안전에 대한 걱정도 덜게 되었다. 우리는 준비부터 같이 했다. 초로의 사내 셋은 일주일에 한 번 일정, 맛집과 준비물 등에 대해 화상회의를 하며 신이 났다. 각자 걷기 연습도 병행했다. 하루동안 걸었던 거리와 속도 그때의 몸상태는 단체 톡방에 공유했다. 혼자 했으면 하다가 말았을 텐데 같이 하니 서로에게 자극이 되었다. 준비물에 대한 팁도 서로 공유했다. 같은 회사를 다니며 익혔던 철저한 준비와 협업의 자세는 기가 막히게 작동했다. 척하면 척이었다.
제주 올레 걷기가 시작되었다. 같이 걸으니 인적이 없는 숲길을 갈 때도 걱정할 일은 없었다. 상대에게 맞춰가며 걸어야 해서 자연스럽게 페이스 조절도 되었다. 낯가림이 심한 나는 식당에서 혼자 밥을 먹지 못한다. 일행이 없었으면 한 달 내내 김밥만 먹으며 걸어야 했을는지도 모를 일이었다. 함께 걷는 길은 더 풍성한 기분도 들었다. 혼자서는 놓쳤을 경치도 옆 사람이 알려 주어 알아차릴 때도 많았다. 상의할 수 있는 사람이 있으니 좋았다. 일이 생겨 의논하면 더 좋은 답을 찾을 수 있었다. 길을 잘 못 들었을 때 가야 할 길을 쉽게 다시 찾기도 했다. 다녀와서도 그때의 즐거움을 서로 나누면 기쁨이 몇 배로 커지는 것을 느낄 때가 많았다. 물론 일행이 있어 생기는 어려움도 있었다. 걸을 때와 쉴 때를 맞추다 보면 소요 시간이 더 걸리거나 걷는 리듬이 깨져서 힘이 들 때도 있었다. 좁은 방을 같이 쓸 때 불편함과 습관에서 오는 차이도 존재했다. 나의 가까운 친구도 올레길을 자신의 친구와 함께 걷다가 끝내 따로 가는 것으로 바꾸었다고 했다. 우리는 다행히 그 정도의 트러블은 없었다. 아마도 그만큼 서로 양보한 덕분이라 생각했다. 일정 부분 부자유를 감수할 수 있다면 함께 걸을 때 생기는 효용성과 즐거움은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살면서 특히나 은퇴 이후에 마음에 맞는 사람이 있다는 것은 감사한 일이다. 처음부터 잘 맞는 사람은 없다. 서로 배려하다 보면 물집이 굳은살로 변해가는 것처럼 더 좋고 단단한 관계로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 올레길의 길벗들은 지금도 서로에게 좋은 동행이 되어 주고 있다. 나만 그렇게 착각하는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