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레 걷기 부록 : #2 오름의 여왕 다랑쉬
제주에는 360여 개의 오름이 있다고 한다. 하루에 한 군데를 오르면 일 년이 걸린다. “일 년, 365일”이라는 단어의 의미를 생각해 보면 오름은 제주 사람의 일상이자 삶이라는 생각이 든다. 오름은 자체로도 좋고, 봉우리에 올라 사방을 둘러볼 때 보이는 바다와 산의 조망도 이루 말할 수가 없다. 힘들게 한라산 정상까지 오르지 않아도 그와 유사한 기분을 느끼고 누릴 수 있다. 제주도 곳곳에 오름이 있지만 “섬의 동쪽인 구좌읍 일대는 특히나 오름이 많고 아름다워 오름의 왕국이라고 부른다.”* 많은 이들은 다랑쉬 오름을 오름의 여왕이라고 한다. 다랑쉬의 어원은 여러 가지가 있으나 산봉우리의 분화구가 마치 달처럼 둥글게 보인다고 하여 다랑쉬라고 한다. 해발 382미터로 인근의 다른 오름보다 높다. 하지만, 덩치만으로 여왕의 칭호를 부여받은 것은 아닌 것 같다. 근처에 더 높은 오름도 있기 때문이다. 다랑쉬오름은 제주 구좌를 지나다 보면 어느 곳에서도 눈에 띈다. 대지에 힘차게 발을 딛고 서 있으며, 근엄한 모습이 자신이 그 구역을 다스리는 자임을 웅변하는 듯하다.
올레 코스를 완주했던 날, 우리는 바로 다랑쉬 오름으로 향했다. 그동안 글로만 보았던 다랑쉬 오름을 직접 확인할 수 있다는 생각에 가슴이 설레었다. 오름 입구까지 왔다가 발길을 돌린 적도 있어서 오래 묵혀둔 숙제를 하는 기분도 들었다. 오름 입구에는 잘 갖춰진 데크길이 있었다. 푸르름이 절정인 나무가 일자로 쭉쭉 뻗은 초입을 지나니 햇빛도 들어오고 주위 풍경도 조금씩 보였다. 방문자들을 배려한 것인지 지그재그로 길이 나 있었다. 중간 지점에 이르자 다랑쉬오름 바로 옆의 아끈다랑쉬오름이 보였다. 동그랗게 패인 분화구도 오름의 자태도 새끼다랑쉬라는 이름처럼 작고 귀여웠다. 쉬엄쉬엄 걸어서 오름의 가장 높은 곳에 올랐다. 정상에서 분화구를 보니 감탄이 저절로 나왔다. 바다 깊은 곳을 내려다보는 기분이었다. 몸을 던져 분화구 위를 날아보고 싶었다. 사방에서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오름의 정상에서 느끼는 눈 맛은 비할 것이 없었다. 한라산의 기운이 거기까지 이른 것 같았다. 한라산의 화산 활동으로 생겨난 기생화산이므로 그 느낌은 이유가 있을 것이었다. 곡선 그 자체로 예술인 용눈이 오름도 지척에 있었다. 보통의 오름보다 오르기에 힘이 들었지만 가지 않았으면 아쉬움이 클 뻔했다. 한라산을 중심으로 섬 한 바퀴를 걸었던 것처럼, 분화구 주위를 돌았다.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 - 제주편, 유홍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