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섬에서 다시 섬으로 (3)바람이 허락하는 섬 : 추자도 #2
추자도는 상추자도와 하추자도가 있고 두 섬은 다리로 이어져 있다. 올레 완주의 가장 큰 난관을 추자 올레로 꼽는다. 걷기 힘든 것뿐 아니라 날씨가 좋아야 갈 수 있고 운이 나쁘면 하루나 이틀을 더 섬에서 발이 묶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제주 올레 완주를 하려면 가장 먼저 추자도를 다녀오라고 추천하는 사람도 있다. 추자 올레는 상추자도에서 하추자도 신양항에 도착하는 18-1과 신양항에서 출발 상추자도 추자면사무소에 이르는 18-2 두 개의 코스가 있다. 원래는 한 개 코스였으나 둘로 나뉘었다. 난도가 높고 배 시간이 잘 맞지 않아 하루 만에 두 길을 모두 걷기 어렵다. 오전에 도착해서 한 코스, 다음 날 나머지를 걸은 뒤 오후 배로 제주도로 오는 1박 2일의 일정이 가장 효율적이라는 것이 내 생각이다. 추자도에서는 주로 민박에 머무는데, 석식과 다음 날 조식을 준다. 조금 부담스러운 가격이지만 적당한 식당을 찾기가 쉽지 않고 길을 걸어 피곤한 길손들에게 나쁘지 않은 시스템이다. 상대적으로 편의 시설이 많은 상추자도에서 1박을 하는 것이 좋다.
우리는 올레 안내소 삼춘의 조언을 듣고 급히 떠났는데 그때 다녀오기를 정말 잘했다 싶었다. 애초에 가기로 계획했던 날이면 가지 못했거나 가서도 고생깨나 했을 것이었다. 어른의 말은 듣는 것이 항상 옳다.
18-2코스를 걷고 나서 숙소에 도착하자 등산복을 잽싸게 빨아 널었다. 추자의 바람과 쏟아지는 햇살의 에너지는 후줄근한 옷에 새 기운을 넣어 주었다. 다음날, 평소보다 더 찌뿌드 한 몸을 일으켜 다음 코스를 걸었다. 가는 길에 기왕이면 나발론 하늘길을 거쳐서 가보기로 했다. 방송이나 인터넷에서 여러 번 본 적이 있어 어떨까 궁금했다. 잘 만들어진 데크길을 따라 올라 본 하늘 길은 깎아지른 절벽이 바다로 내닫고 있었고 내려다보는 것만으로 다리가 후들거렸다. 혹여나 떨어질까 봐 절벽에 걸쳐진 다리 난간을 꽉 잡고 내려왔다. 그렇게 산으로 또 바다로 이어진 길을 따라 천천히 걸었다. 산 위에서 보는 초록의 숲과 주황의 마을 지붕이 이루는 색의 조화는 기가 막혔다. 카메라에 다 담지 못한 느낌은 오래 보고 가슴에 채우는 것으로 대신했다.
예초리 기정길을 지나니 천주 박해 때 모자의 슬픈 이야기가 있는 황경한의 묘소가 있었다. 눈부신 햇살아래 서있는 십자가는 슬픔을 배가 시켰다. 자식만은 노비로 살지 않게 하려는 일념으로 젖먹이를 바닷가에 두고 간 지독한 어매의 마음은 어땠을까. 그렇게 헤어진 엄마와 아들은 평생 만나지 못했다. 아들의 무덤 앞에서 나는 올레 11길에서 본 어머니의 소식을 조용히 전해 주었다.
몽돌 해변을 지나 올레길이 끝나는 지점 마을 어귀에 작은 정자가 있었다. 여느 곳과 달리 마루 바닥이 반질반질 윤이 나게 닦여 있는 걸 보아하니 누군가 마음과 애를 쓴 것이 느껴졌다. 염치 불고하고 신발을 벗고 올라가 드러누웠다. 코끝을 스치는 선선한 바닷바람을 느끼며 나도 모르는 사이 잠이 들었다.
섬에서 다시 섬으로 이어진 길을 걸으며 보고 느낀 추자의 산 바다 마을 그리고 사람의 이야기는 내 마음에 그대로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