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섬에서 다시 섬으로 (3)바람이 허락하는 섬 : 추자도 #1
바람의 허락 없이는 갈 수 없는 섬. 제주와 전라의 중간 지점에 위치하고 행정구역상 제주도에 속해있으나 본섬과 사뭇 분위기가 다른 섬. 낚시꾼의 천국. 난이도 상인 두 개의 올레 코스가 있는 곳. 추자도이다.
올레 걷기 후반에 접어들면서 추자도를 갈 수 있을지 걱정이 파도가 밀려오듯 점점 커졌다. 날씨와 배편 등의 여건이 따라줘야 가능하기 때문이었다. 가기로 예정했던 날의 일기 예보가 심상치 않았다. 비도 피할 겸 잠시 들른 15코스 올레 쉼터에서 자원봉사하는 삼춘의 조언은 우리의 염려를 격발 시켰다. 그 자리에서 바로 다음 날 배편을 예약하고 추자도의 숙소 예약 날짜도 바꾸었다. 제주에서 머물던 호텔비의 중복 지출 등 현실적인 걸림돌이 있었으나 눈 딱 감고 가기로 했다. 지독한 계획형인 내 성격에 길동무가 없었다면 엄두도 내지 않았을 결정이었다. 같이 하는 이가 있으면 없던 힘도 생긴다. 인생에서 마음에 맞는 사람, 편하게 속을 내어 놓을 동무가 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행운이며 감사한 일인지 다시 한번 깨달았다.
2할의 두근거림과 8할의 걱정을 짊어지고 오전 여덟 시 제주 연안 부두에서 추자도를 향해 출발했다. 기가 막힌 택일 덕분에 배는 바다 위를 미끄러지듯 나아갔다. 새벽 일찍 일어난 탓에 까무룩 잠이 들었다 깨어 보니 물안개 속에 바다사자의 모양을 한 수덕도를 지나고 있었다. 제주항에서 두 시간여 만에 하추자도 신양항에 다다랐다. "마침내 왔구나" 스스로에게 대견해하며 하추자도와 첫인사를 나누느라 어리버리하고 있던 사이, 배에서 내렸던 많은 사람들은 하나 둘 흩어져 어디론가 가버렸다. 선착장에는 오뉴월의 따가운 햇살만이 내리쬐고 있었다. 하루를 묵을 채비에다 점심용 비상식량에 물까지 챙겨 짊어졌더니 어깨를 누르는 배낭의 무게가 만만치 않았다. 젊은 시절을 떠올리며 끈을 당겨 매었다. 명불허전. 난이도 상에 걸맞게 추자도 올레 코스는 힘들었다. 추자도의 산은 가장 높은 곳이 해발 200여 미터에 불과했다. 그렇지만 해수면에서 출발하는 만큼 그 높이를 오롯이 다 올라야 하고 경사가 급했다. 게다가 오르고 내리기가 반복되니 고통이 가중되었다. 절대적인 숫자의 크기가 난이도를 결정하는 것은 아니었다. 힘이 든다고 느끼는 것은 상대적인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살아가며 비교를 멈출 수 있으면 불행하다고 느끼는 나의 감정도 상당수 줄어들 것 같았다. 가쁜 숨을 몰아쉬며 오른 대왕산 꼭대기에서 김이 풀풀 나는 비상식량을 먹으며 사방에서 불어오는 바람과 탁 트인 바다 조망을 마음껏 즐겼다. 그날 우리는 그럴 자격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