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살아오면서 많은 사람을 만나고 헤어진다. 많은 만남 중에 어떤 만남은 찰나를 스치는 만남이 있고, 어떤 만남은 평생을 같이 가는 기회가 되는 만남이 된 것도 있다. 내 주변을 돌아보고 내가 아는 사람과 내가 같이 하는 사람들이 누구인가 곰곰이 생각해 본다. 어렸을 때 만나서 아직도 교류하는 친구가 있는가 하면 30년을 같은 회사에서 같이 생활한 직장 동기 중에도 연락 안 하고 지내는 사람도 있다. 또 최근에 만나서 같이 하는 사람도 있다.
고등학교를 졸업 후에는 야간열차를 타고 산행하는 것을 좋아해서 처음 만난 사람과 밤새도록 이야기하다가 겨우 도착지에 내린 적도 있었다. 당시 ‘바보들의 행진’이라는 영화가 유행했으며 그 영화 중 한 장면이 사회에 실망한 주인공이 입대하는데 여주인공과 출발하는 입영 열차 차창에 매달려 입맞춤하는 장면이었다. 당시에는 상상할 수 없던 신선하며 에로틱하여 기억에 남는 장면이었고 이로 인해 기차여행의 허황한 기대를 품고 여행 다녔는지도 모르겠다. 또 그 영화의 삽입곡으로 송창식이 부른 ‘고래사냥’이라는 노랫말 중에 ‘자 떠나자 남해바다로 삼등삼등 완행열차 기차를 타고’라는 가사가 있어 열차여행에 흥미를 더 했던 것 같다.
당시에 열차는 특급, 우등, 보통으로 구별되었고 당시 주머니가 가볍던 나는 주로 보통 열차를 주로 이용하였다. 열차를 이용하는 목적이 어디를 방문하거나 출장을 가는 등의 확실한 목적이 있던 것은 아니고 그저 기분 전환으로 열차를 타고 다녔다. 당시 완행열차로 서울역에서 부산진역까지는 약 13시간 정도 걸렸고 아침에 기차를 타면 저녁 늦게 부산에 도착하였으며 특별한 일도 없어 부산역 앞에서 국밥 한 그릇 먹고 다시 열차를 타고 서울로 돌아온 적도 있다. 이렇게 열차 여행을 계획한 때에는 거창하게 책도 한 권 넣고 도시락도 싸달라 해서 가방에 넣고 집을 나섰으며 어머니의 기분에 따라서 삶은 달걀이라도 몇 개 넣어 주었다. 하지만 여기에 붙는 수식어는 어머니 특유의 낮고 적게 혹시 누가 들으면 안 된다는 듯이 ‘너는 역마살이 있냐? 미친놈같이 쓸데없이 열차 타고 왔다 갔다 한다.’라는 말을 하지만 그 말속에 아들을 생각하는 걱정은 아직도 가슴에 남아있다.
기차를 타면 제일 먼저 하는 것이 내 자리 좌우와 앞쪽에는 누가 앉아 있는가 살펴보고 누가 대화 상대에 적합한가를 무심한 듯 찾아보고 빈자리에는 혹시 이쁜 아가씨라도 앉으면 어떻게 말을 걸어 볼까 하는 상상을 한다. 내가 먼저 자리를 잡은 날은 가져온 책을 펴들고 세상 모든 짐을 지고 가는 듯 사색에 잠긴다. 수원쯤 오면 도시락을 먹은 후 열차 뒤편의 화장실 옆에서 배운지 얼마 안 된 담배를 뻐끔거렸다. 당시 화장실은 청소를 언제 했는지 모를 정도의 버려진 공중화장실 같은 분위기였지만 그 옆에서라도 담배를 피우며 철커덩 철커덩거리는 소리에 맞추어 바닥의 철길 자갈들이 보였고 흔들리는 열차의 감각이 기분 좋게 만들어 세상의 모든 걸 가진 듯 행복했다. 자리에 돌아오면 어떤 할머니가 위엄있게 다리를 쩍 벌리고 앉아 계시는 적도 있었다. 부산진행 열차에는 좌석표가 있었지만 이런 날은 비켜달라는 말도 못 하고 그냥 그 옆에 서서 얼른 내리시기를 바라고 그냥 옆에 서 있었다. 그리고 이런 할머니들은 한두 정거장 지나면 금방 내리고 나는 다시 내 자리에 앉아 편안한 맘으로 다시 나만의 여행 재미를 추구하였다.
서울에서 출발한 열차가 경기도를 지나 충청도에 접어들면 이때부터는 사투리의 향연과 아주머니들의 수다는 들을 만해서 기차여행의 낭만이라 할 수도 있지만 어쩌다 발효시간이 지나 상한듯한 막걸리 냄새를 풍기면서 높은 목소리에 이해하지 못할 장광설을 늘어놓으면 나는 못 들은 척 아무 냄새도 안 나는 듯이 눈을 감고 잠을 청하면서 오늘은 운이 안 따르는 것 한다. 하지만 속으로는 혹시라도 옆자리에 예쁜 아가씨라도 앉는 꿈을 상상하면서 잠시 행복한 꿈속을 헤맨다. 그러나 이러한 상상은 왜 이리도 현실과 반대인지 한 번도 그런 행복한 일이 일어난 적이 없다. 열차가 출발한 지 서너 시간이 지나면 이제는 서로가 지루해져서 옆에 앉은 아저씨나 아줌마와도 ‘어디까지 가느냐?’ ‘무슨 일로 가느냐?’는 등의 대화가 시작된다. 하지만 내가 제일 난감한 것이 어떤 일로 가느냐고 물어 볼 때이다. 그저 역마살이 있어서?? 아니면 심심해서?? 이럴 때는 없는 친척을 만들어서 부산에 친척이 있는데 일이 있어서 방문한다고 대답한다. 옆에 있던 아저씨는 군대에 다녀왔냐고 묻고 안 갔다고 하면 군대에 다녀와야 남자가 된다고 하고 본인의 군대 생활을 이야기하면 남자는 해병을 다녀와야 한다고 설파한다. 그러다가 또 옆의 다른 아저씨가 군대 이야기에 참석하면 둘은 입에서 침이 튀는지도 상관 안 하고 서로 군대에서 다른 사람은 고생하는데, 본인은 편하게 지냈다고 자랑을 하는데 아직 군대에 가지 않은 나는 뭐가 자랑이고 뭐가 고생인지 구별하기 힘들었다. 그저 옆에서 그러셨네요. 하며 추임새나 넣는다. 그러나 이러한 추임새도 잠시뿐 나는 지루함을 참지 못해 다시 사방을 둘러 보며 딴짓을 한다.
이렇게 달리는 기차는 도의 경계를 넘을 때마다 새로운 손님이 타고 내리면서 바뀌는 사투리의 향연으로 나는 이러한 말들을 들을 때마다 좁은 한반도라고 하지만 왜 이리 지역마다 차이가 나는지 한반도는 진짜 좁은 땅인지 신기할 따름이다.
지난달에 KTX를 타고 부산에 다녀왔다. 사전에 모바일로 표를 결재하고 광명역 안내소에서 발권받고 기차를 타러 승차장까지 가는데 검표하는 사람도 없고 그저 내가 탈 기차의 정차 지점의 표식 앞에 서 있으니 정확하게 그 자리에서 열차의 문이 열렸다. 코로나 여파인지 옆자리에 앉는 사람도 없고 앞뒤를 비워서 예전 같은 부산함도 없고 시끄럽던 사투리의 아저씨나 아줌마도 없었다. 조용하고 안락하게 그리고 심심하게 부산역에 도착했다. 부산까지 두 시간 반 정도 소요되고 아침에 9시경 출발하여 부산에서 점심을 먹고 업무를 처리하고 다시 광명역에 도착하니 5시가 조금 넘었다. 전국이 하루 생활권이란 말을 실감하고 느끼는 순간이다. 하지만 예전의 완행열차의 부산함과 막걸리 냄새의 정겨움은 이제는 다시 느낄 수 없음이 섭섭하고 아쉬운 맘이 가슴 한 곁에 자리 잡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