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사람과 내가 40여년을 한 이불 속에서 지내면서 암묵적으로 동의한 것 중 하나가 서로 싫어하는 일은 억지로 시키거나 하기를 바라지 않는 것이다. 그중에서도 이제는 애들까지 이해하고 같이 도와주는 것이 백화점에서의 쇼핑이다. 내가 쇼핑 자체를 싫어하는 것은 아니다. 마트나 재래시장을 간다 하면 김기사가 되어 안전한 운전으로 편안하게 모시고 물건을 사면 알아서 가방을 들어주고 물건을 담은 장바구니도 편안히 들고 다니며 이것 저것 필요하지 않아도 물건이 좋다하며 충동구매를 하거나 하도록 부추긴다.
그러나 백화점에 들어서면 입구부터 연예인 뺨치는 외모와 화장으로 무장한 직원들이 그 코너 근처에만 가도 어디에도 없는 살가운 미소를 띠우고 입구에서 부르면서 찰싹 달라붙어 이건 이렇고 저건 저렇고 정신없이 수다를 피우며 친절을 베푼다. 나는 정말 이게 싫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친절이란 "어떤 대가가 아니라, 도우미 자신의 이익이 아니라, 도움 받는 사람의 유익을 위해, 도움이 필요한 사람에게 도움이 되는 것"이라 정의했다
내가 군대 가기전 친구들과 명동의 모 백화점에 간적이 있었다. 당시 그 백화점은 생긴지 얼마 안되었지만 꽤 유명한 백화점이었다. 입구에 들어서면 미스코리아급의 안내원들이 짧은치마에 멋진 유니폼을 입고 중세서양에 서나 볼 수 있었던 얼굴 일부가 망사로 가려진 멋진 모자를 쓰고 두손을 가슴높이까지 올리고 허리를 최대한 굽혀 인사를 하는데 숫기 없는 나는 이러한 행동이 너무 불편하고 민망해서 그 앞으로 가지 못하고 뒤로 돌아갔던 적이 있었다. 지금은 없어진 추억의 한 장면이지만 없어진 이후에는 편안한 마음으로 정문을 통과한다.
이러한 마음도 잠시뿐 정문을 통과하면 어느 백화점이나 공통적으로 일층의 배치는 화장품 매장 아니면 귀금속, 혹은 고급가방 매장으로 장식한다. 집사람과 그 사이를 지나려면 화장술에 관한 강의를 한다 새로운 제품이 나왔으니 시술해 보고 가라는등 붙잡고 나는 또 어색한 표정으로 봐도 못들은 척 아니면 우리가 대상이 아니라는 듯 혹은 다른 목적으로 방문했다는 듯이 무심한 척 스쳐 지나간다.
적당한 친절은 베푸는 사람이나 받는 사람을 즐겁게 하고 나아가 감동에 휩싸이게도 한다. 그러나 이러한 만들어진 억지의 친절은 오히려 서로를 피곤하고 힘들게 한다.
퇴직후 모 회사의 영업직직원 마케팅 교육에 참석한 일이 있다. 강사의 주제는 상품을 팔지 말고 고객의 마음을 사라는 것이며 그 첫째로 친절이란 미소와 자세한 상품설명이 아니라 고객이 무엇을 원하고 무엇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가를 먼저 파악하고 대응하라는 것이었다. 오늘 상품을 팔지 못해도 그러한 친절은 고객의 머릿속에 남아 있어 결국은 다시 방문하며 결국 충성 고객이 된다는 것이다. 즉 당장의 손익보다는 미래에 투자해야 하며 그것은 힘들거나 어려운 것이 아니라 직원 개개인의 진심어린 친절이 만들어 내는 결과물이라 강조하는데 나에게는 많은 공감을 가져왔다.
서비스 종사자들이 30%가 우울증을 겪고 있다는 통계를 본 적이 있다. 관계갈등이 높아질수록 스트레스가 증가하면서 우울증 가능성이 크다고 한다. 특히 과거와 다르게 ‘손님이 왕’이다 하여 어떤 매장에서 손님이 직원을 무릅 꿀리고 온갖 욕설과 손찌검까지 하면서 자기는 최고의 고객인데 몰라본다고 직원들을 몰아세우는 영상이 인터넷에 퍼진적도 있다. 졸부들의 만행이라 할까.. 가진자의 안하무인격인 행동이 여기서만 벌어지는 것이 아니지만 나에게는 아직도 백화점은 있는자 만의 대접받고 가는 곳이라는 선입관이 있어 더욱더 접근하기 싫다. 그래서 아직도 나에게 백화점쇼핑은 높은 벽이고 넘고 싶지 않은 벽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