걷기 운동은 대표적인 유산소 운동이다. 걷기보다 안전하고 확실하고 가성비 좋은 운동은 없다. 몇 년전 안산에 사무실을 운영하던 때에 걷기 운동을 위해 아침에 집에서 부터 안양역까지 한 정거장을 걸어가서 전철을 타고 올때는 명학역에서 내려서 관악역까지 두 정거장을 걸어서 집에 왔다. 이렇게 걸으면 하루에 만이천보에서 만삼천보 정도 걸을 수 있었다. 그러나 사무실을 폐쇄 후에는 매일 주기적으로 걸을 기회가 없어 일부러 걸으려고 안양천이나 안양 예술공원을 산책하였다.
2018년 가을 친구들 모임에서 산티아고 순례길 걷는 이야기가 화제에 올랐고 아내의 친구의 신랑이 산티아고 순례길 800키로를 완주했다는 이야기를 듣고 나도 도전하고 걷고 싶은 욕망이 생겨 여러 가지 자료를 수집하였다.
산티아고 순례길을 걷기전 몇가지 점검사항 중 하나가 비슷한 환경에서 직접 걸어보면서 자신의 체력을 점검하라는 것이었다.
집에서 가까운 관악산 둘레길과 북한산 둘레길등 근처에 유사한 둘레길은 많이 있으나 스페인의 산티아고 순례길과 비슷한 환경을 걷기 위해서는 제주의 올레길을 걷는 경험을 얻는 것이 좋다는 충고를 받아들여 아내와 둘이 제주 올레길을 걷기로 결정하였다.
‘올레’는 마을 큰길과 집을 연결하는 골목을 의미하는 제주어로, 제주 올레는 2007년부터 2014년까지 제주도를 한 바퀴 도는 21개의 정규 코스와 제주의 작은 섬을 도는 5개의 알파 코스를 포함해 총 26개 코스로 이루어졌다. 「사단법인 제주올레」가 제주도 곳곳을 보고 걸으며 체험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마을과 마을을 연결하여 개설한 길로서, 여행자들에게 제주의 가치와 아름다움을 다시 느낄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2015년 11월에 준비 없이 친구 부부와 네명이 7코스를 힘들게 완주하고 언젠가는 다시 걸으려던 생각도 있었고 마침 4월은 결혼기념일도 있고 현지 환경과 날씨도 비슷하여 사전 점검한다는 가벼운 기분으로 아내와 둘이 걷기로 하고 공항에서 가장 가까운 18번 올레길을 시작으로 1번과 3번 길을 걷기로 결정하였다. 이렇게 결정한 것은 세곳 모두 숙소가 길의 시작점에 위치한 곳이고 거리도 20Km내외로 유사한 환경을 가진 곳이라 판단하여 결정한 선택지였다.
18번 길은 간세라운지를 시작으로 조천읍 만세동산까지 가는 코스로 제주의 구도심을 거쳐 조천읍 만세동산 주차장까지이다.
전날 저녁 늦게 제주에 도착하여 동문 시장 인근 호텔에서 숙박후 아침은 동문 시장 안의 해장국집에서 든든하게 먹고 약300미터를 걸어가서 18번 코스의 출발점인 간세라운지에서 기념 촬영을 하고 출발하였다. 출발부터 골목길의 표시를 잘못 읽어 제주 구도심의 옛 골목길을 굽이 굽이 돌아 최익현 유배지 표석까지 두불럭을 약 삼십분을 헤메고 나서야 길을 반대로 걸었다는 것을 알아채고 다시 역으로 걸어 겨우 사라봉 입구에 도착하였다.
하루의 출발이 불안하면 힘든 하루가 된다고 옛어른이 말씀하시더니 그말이 하나도 틀리지 않았다.
도심의 사라봉은 동네 뒷동산으로 많은 주민분들이 정상 근처에서 각자 열심히 운동하고 있었고 우리는 정자에 올라 주변을 둘러 보았다. 맑은 날씨에 멀리 제주항의 부두가 보이고 먼 바다의 배들이 정박하고 있는 것이 안양에서는 볼 수 없었던 먼진 광경이었다.
그러나 일의 발단은 사라봉을 지나 오면서 벌어졌다. 사라봉을 내려와서 별도봉 옆길로 가야 하는데 그 길은 많은 사람이 지나는 길로 올레길 표시 외에도 천주교 순례길, 불교 순례길, 지방단체의 순례길등 많은 단체에서 서로 나무 가지에 천으로 비표를 하여 길표시를 하였는데 낡고 바래서 서로의 색이 구별이 안되었고 사리봉에서의 하산길은 동네 건강 걷기길이란 느낌이 들어 편한 마음에 좌우 살피지 않고 그냥 걸었다.
사월 중순이라 정오가 가까운 시간에 태양은 힘을 쓰기 시작했고 아침으로 먹은 해장국은 화장실을 소리 높여 부르고 있었다. 또 아내는 길이 뭔가 이상하다고 자꾸 재촉하며 확인해 보라고 하였지만 나는 감만 믿고 맞다고 우기면서 빨리 따라 오라고 큰소리 치면서 앞장서서 걸어갔다.
하지만 걸어 갈수록 길은 이상한 곳으로 가고 있었고 제주 4부두, 5부두를 지나자 같이 걷던 사람도 없어 뭔가 이상하다는 것을 느끼고 불안감이 엄습했지만 주변에 물어 볼 사람도 없고 아내의 표정은 일그러져 있어 특단의 조치를 취할 수 밖에 없었다.
나의 특단의 조치란 지나는 택시를 불러 타고 코스 종점까지는 아니더라고 점심식사 할 수 있는 곳까지 이동하려고 하였으나 ‘개X도 약에 쓰려면 없다’는 옛말 대로 지나는 택시도 없고 태양은 점점더 힘쓰고 내 속에서는 화장실을 부르는 그때 구세주가 나타났으니 자전거를 타고 지나는 어르신이 길 건너에 보이는 것이었다. 나는 배낭을 길 옆에다 벗어 던지고 6차선 도로를 가로 질러 뛰어가려고 하자 아내는 건널목으로 건너라고 소리쳤지만 무시하고 그냥 도로를 횡단하여 달려가 어르신에게 문의 하니 오만과 고집의 결과는 참담하단 걸 다시 한번 느꼈다. 다시 사라봉 아래 코스 표식점까지 되돌아 와서 올레길 표식점을 하나 하나 확인한 결과 별도봉 옆으로 돌아서 가야 할 길을 그냥 가로 질러 편하게 하산 방향으로 걸었던 것이 원인이었다.
별도봉을 지나 잠시 쉬면서 속이 급해서 잘못들었다고 얼렁뚱땅 넘기면서 앞으로 잘 보고 갈테니 믿으라 하면서 물을 건네니 그것도 사과라 느꼈는지 아내의 표정이 조금은 풀어진 것 같다.
급한 것도 해결하고 길도 앞으론 표식 잘보고 가겠다고 하고 점심은 당신 좋아하는 걸로 먹자고 하니 멀리서 불어 오는 바람도 알아 주라는 듯 시원하게 불어 왔고 삼양 검은 모래 해변 표식이 보이니 바닷가를 끼고 도는 코스가 최상급의 산책코스로 그동안의 잘못 보고 돌아 돌아 걸었던 여러 가지 힘든 것들이 모두 바람에 날려 가는 듯 하고 뜨거운 햇살도 축복으로 느껴지는 듯이 눈부시게 다가왔다.
좋아 하는 것으로 사준다 하였지만 해변근처에는 문을 연 식당이 한곳 뿐이었고 점심시간이 지난 때라 메뉴도 한두가지 탕만 된다 하여 평소에 즐겨 먹던 우럭 매운탕으로 주문했다. 그러나 현지의 우럭 매운탕은 약간 비려서 덜 익은 듯 하여 종업원에게 더 끓여 달라 하자 여기는 그것이 더 우럭의 맛을 낸다고 하면서 이상한 듯 쳐다보지만 나는 내 입에는 맞지 않아 더 푹 익혀 달라 하여 우럭의 구수한 맛이 우러 나올 때 까지 끓여서 먹으니 속도 풀어지고 오후에도 걸을 수 있는 기운이 샘 솟는 듯 하였다.
식사 후 만세동산까지는 좌우로 살피면서 올래길의 표식을 따라 걸으니 무사히 완주 하였다. 사실 올래길 18코스는 별로 인기 있는 길도 아니고 특별히 제주만의 특징을 보여주기 위한 길도 아닌 듯하다. 그러나 삼양해변을 지나면서 제주 토속적인 밭과 만세동산 가기전의 마을 길은 전통 제주의 농가를 보여 주고 4.3사태의 역사적인 면을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하여 준다.
이번에 올래길을 걷고 나서 샌티아고의 순례길은 제주와 다른 식사환경과 주거 환경등으로 내가 적응하기에는 여러 가지 문제점을 알려 주었고 이박삼일의 짧은 시간이지만 준비성 없이 출발한 여행이 어떠한 결과를 보여주는지 몸으로 확실하게 체험하는 시간이었고 산티아고 순례길을 간다고 마음먹기 전에 사전 준비가 얼마나 필요한지 다시 한번 느끼게 하는 여행이었다.
내년에는 제주 한달 살기를 작정하고 와서 나머지 길을 완주하고 산티아고 순례길은 나만의 버켓리스트 맨 마지막에 꼭꼭 숨겨놓고 평소에 많이 걷도록 노력하면서 버켓리스트의 마지막을 지우도록 할 것을 다짐하여 본다.
제주 올레길 3코스시작점에서 2019년 4월18일 아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