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수필 121호 가을호에 발표
낚시는 어떤 이에게는 단순 취미이고, 또 어떤 이에게는 철학이며, 또 다른 어떤 이에게는 삶의 일부분이며, 생계를 위한 수단이다.
지금까지 우리가 본 방송에서의 낚시는 낚시에 미친 낚시꾼 남편과 일요 과부 신세를 거부하는 부인과의 치열한 논쟁으로 흥미를 유발하는 것이 대부분이었다. 그러나 요즈음 낚시 방송이 오락 프로그램의 한 축으로 대세를 장악하고 있다. 이러한 낚시 방송이 인기를 끌고 있는 이유는 극적인 상황전환 때문이다. 정해진 시간에 정해진 어종을 잡거나 무게를 채워야 하는데 시간이 거의 끝날 때까지 목표 달성을 못 하다가 ‘이제는 안되는구나’하고 포기하는 방송 종료 단 몇 분 전에 목표 어종을 잡는 극적인 장면이 종종 포착되어 우리에게 끝까지 노력하면 이룰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며 방송 시작부터 끝까지 긴장을 풀 수 없게 만들어 대리만족을 충분히 느낄 수 있게 하여 준다.
낚시와 나의 인연은 50여 년이 넘은 듯하다. 내가 초등학교를 졸업하기 전부터 아버님은 나를 대동하고 낚시터를 다니셨고 장소는 한강 다리 근처이거나 지금의 여의도 일대의 한강 줄기가 주류였다. 그때마다 나는 낚시가방은 물론 점심이 담긴 색도 바라고 대나무가 쪼개져서 그 안을 비닐로 덧대어 진짜 볼품없는 커다란 대나무 바구니를 자랑스럽게 들고 앞장서서 걸어갔다. 그리고 아버님은 뒤에서 뒷짐을 지고 천천히 걸어오면서 아는 사람이라도 만나면 재가 벌써 이렇게 커서 내가 빈손으로 다닌다고 만나는 사람마다 자랑하셨다.
낚시가 끝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는 바구니에 살아서 숨을 쉬는 붕어가 가득했다. 붕어가 죽으면 빨리 상한다고 물을 담고 그 위에 수초를 뜯어서 최대한 붕어가 빨리 죽지 않을 환경을 만들어서 들고 왔다. 갈 때는 바구니 안에 도시락이 있어 비록 김치에 멸치조림 등 그저 그런 반찬이지만 낚시터에서 먹는다는 생각에 신이 나서 무거운 줄도 모르고 들고 갔다. 하지만 올 때는 붕어가 펄떡거리고 물과 수초를 충분히 담아 무게가 가볍지 않았으나 그것을 들고 오면서 지나던 사람이“많이 잡았냐? 어디 한번 보자”하고“많이 잡았네! 실력도 좋네”하고 칭찬을 하면 비록 내가 잡은 것은 한두 마리 일지라도 모두 내가 잡은 듯 어깨는 힘이 들어가고 무겁던 바구니가 갑자기 가벼워지면서 신이 났다. 아버님은 그저 무심한 듯 “무는 놈만 몇 마리 잡았습니다”하고 말하지만 눈가 와 입꼬리가 올라가는 것을 나는 확실히 보았다.
당시 아버님의 낚시기술은 내가 생각해도 대단했다. 같은 장소에서 남들은 못 잡고 헛손질하고 있어도 아버님은 실수가 없었다. 이러한 기술은 장비에 대한 정성이 유난하고 물고기에 대한 열정이 유달랐던 것으로 생각된다.
아버지의 낚시에 대한 열정은 떡밥에서도 알 수 있었다. 나는 아직도 내 손으로 떡밥을 직접 만든 적이 없다. 어디든지 낚시가게 문을 열고 들어가면 가장 눈이 뜨이기 쉬운 곳에 무더기로 쌓여 있는 것이 바로 이 떡밥 봉지이다. 나는 낚시 가게의 주인이 추천하는 대로 사서 사용하였다. 왜냐하면, 현지의 분위기와 현지 붕어가 무엇을 잘 무는지는 현지의 낚시가게 사장이 가장 잘 알 것이라는 생각 때문이다.
그러나 아버지는 사자가 토끼 한 마리 잡을 때도 최선을 다하여야 하듯이 밑밥도 그렇게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하셨다. 그러나 자신이 만들어서 사용하는 법은 없었고 꼭 어머니를 시켜서 방앗간에 가서 콩가루와 보릿가루 그리고 참깻묵 등을 사 오게 하여 그것을 섞어서 만드셨고 이것을 만드는 날에는 콩가루와 참기름의 고소한 냄새가 온 집안을 흔들어 놓았다. 깻묵도 참기름 깻묵만을 사용하셨고 언젠가 어머니가 참기름 깻묵이 없다고 들기름 깻묵을 사 오자 불같이 화를 내셨다. 그 특유의 호통 소리에 어머님은 그 작은 키에 자라목이 되어 더 작아지면서 돌아서서 ’없는 걸 내가 어쩌란 말이야 서울 시내를 다 뒤져서 사 오라는 거야?’라며 소리는 못 내고 중얼중얼하던 것을 들었던 기억이 있다. 나도 속으로 그거 없으면 어때, 없으면 없는 대로 하는 거지 맨날 잡아다가 아래 윗집에 나눠 주거나 하는 요리는 오직 붕어조림뿐이라 지겨웠는데 못 잡으면 어때 그냥 물가에 가서 낚시하는 것만 해도 즐거운데 하였다. 아니 더 솔직한 맘은 공부하라는 잔소리 안 듣고 낚시터에 가는 것만 해도 행복하고 즐거웠다.
요사이 낚싯대는 가볍고 탄성이 좋은 항공기 만드는 재질인 티타늄을 사용하지만, 그 당시 아버님은 낚싯대는 대나무로 만든 낚싯대를 즐겨 사용하시다가 화이버글라스로 만든 조금 무겁지만, 코팅이 되어 있어 광이 번쩍거리는 낚싯대를 사신 장비가 좋아서 고기를 많이 잡을 거라고 자랑을 하셨다. 당시 형편으로는 모든 낚싯대를 화이버글라스 낚싯대로 바꾸지는 못하고 내가 사용하던 두 칸대는 대나무 낚싯대를 사용하였다. 대나무 낚싯대는 탄성이 적어 낚싯대 끝의 처리 대가 잘 부러졌다. 붕어가 미끼를 물면 끌어 올리려는 나와 도망가려는 붕어와 한판 대결이 시작되는데 서로 힘겨루기를 하다가 초리대가 부러지는 경우가 종종 있었고 초리대가 부러지면 그날 낚시는 포기하고 뒤에서 구경만 하다가 집에 와야 했으므로 나는 부러지지 않게 노력을 하지만 실패하는 날도 있었다. 아버님은 항시 여분의 초리대 를 가지고 계셨으나 금방 고쳐 주지는 않으셨다. 그러면 난 뒤에 앉아 있거나 공연히 부러진 낚시대를 들고 내 팔뚝보다 큰 놈이 물어서 낚싯대가 부러졌다고 투덜거리며 서성거렸고 한참을 그러고 있으면 아버님은 빙긋 웃으면서 내 낚싯대를 고쳐 주시고 고기 잡는 요령에 대한 설교를 시작했으며 나는 하도 여러번 들어 외울 정도였지만 그래도 모른척 “예” “예” 하면서 얼른 고쳐 주기만을 기다리다가 재빨리 들고 내 자리로 돌아와 다시 붕어와의 싸움을 시작했다.
나의 낚시가방에는 아직도 화이버글라스로 만든 낚싯대가 하나 있다.
대나무 낚싯대만 쓰시다가 화이버글라스 낚시대를 사시고 그리 좋아하시던 모습이 아직도 기억에 남아 있어 사용은 않지만 항상 가지고 다니면서 낚시가방을 열어 낚시하기 전에 그 낚시대를 보면서 돌아가신 아버지의 흔적과 추억을 기억하기 위해 아직도 내 낚시가방에는 화이버글라스 낚싯대가 자리 잡고 있다.
작년 추석에 올 봄에는 꼭 제초제를 뿌리겠다 약속하였지만 아직도 못 뿌렸다. 이제 제초제를 뿌리기는 시기는 지났고 대신에 잡풀이라도 뽑으면서 거기에서도 아직 낚시하는지 지금도 잘 잡으시는지 물어봐야겠다. 무어라 대답하시려나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