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Jimmy Park Mar 29. 2024

015 비로소 잭 웰치가 되었다

Jailbreak

"Willingness to change is a strength, even if it means plunging part of the company into a total confusion for a while." (Jack Welch)


언제쯤 눈시울 붉히지 않고 돌아설 수 있을까?


2010년 MIT에서 MBA를 할 당시 학교에 유명인사들이 와서 강의를 하곤 했다.

어느 날, 복도 게시판에 잭 웰치가 온다고 안내문이 붙었다.

잭 웰치? 그 잭 웰치 말인가?

책에서만 보던 그가 온다는 말에 나는 가슴이 콩닥콩닥 뛰었다.


당일, 나는 한 시간이나 먼저 강당에 들어가 앞에서
두 번째 줄 가운데쯤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가까이서 보고 느끼고 싶었다.

드디어 시간이 되고 그가 강당 문을 열고 들어왔다.

검은색 양복에 노란색 스트라이프 넥타이를 매고
한 40대 후반 정도 되어 보이는 여성분과 함께 들어왔는데

등도 살짝 굽은듯했고 왜소한 할아버지 느낌이었다.

기대와 너무 달라서 살짝 놀랐다. 하지만

스피치를 시작하는 순간, 청중을 압도하는 힘 있는 목소리와 강렬한 눈빛...

아, 이분 잭 웨치였지...


강의 후 나는 용기를 내서 손을 번쩍 들고 미리 준비했던 질문을 했다.


"강연 너무 감명 깊게 잘 들었습니다. 당신은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경영자이고
한국에서도 예외가 아닙니다. 당신의 스피치를 직접 들을 수 있어서 영광입니다.
아마도 수 없이 들었던 질문이겠지만, 당신의 Vitality Curve에 대해 직접 듣고 싶습니다.
하위 10%의 멤버를 계속 해고한다는 것을 부정적으로 평가하는 사람도 적지 않았을 텐데
그들에게 어떤 말씀을 하시고 싶으신지 궁금합니다."

그는 옅은 미소를 띠며 질문이 끝나자마자 기다렸다는 듯이 대답을 시작했다.

"나는 경영자지만 회사만을 생각하지 않습니다. 사람을 생각합니다.
회사는 멤버 없이 존재할 수 없습니다. 나는 회사 멤버 한 사람 한 사람의 인생을 존중합니다.
그들은 많은 시간을 회사에서 보내고 있고, 회사와 삶을 분리해서 생각하기 어렵습니다.
누군가가 회사에서 하위 10%에 속한다고 해서 그들이 바보이거나 멍청이는 아닙니다.
다만 현재 하고 있는 일이 그 사람의 역량에 최적이 아닐 가능성이 매우 높습니다.
그리고 그런 상황에서 그는 절대 행복할 수 없어요.
다른 선택지를 주는 것이 그들에게 다시 행복해질 수 있는 기회를 주는 것이라 나는 믿습니다.

당장은 좀 억울할 수 있고, 리더로서도 미안한 마음이 들 수 있지만
그런 감정 때문에 남은 인생을 불행하게 지내는 건 정말 바보 같은 짓입니다.

그들에게 새로운 기회를 줘야 합니다.
인정받고 다시 행복해질 수 있는 기회를 회사가 빼앗으면 안 됩니다."


뻔한 대답이었다. 하지만

진심에 찬 눈빛과 한치의 떨림도 없는 확신에 찬 목소리에 난 완전히 압도되었다.
결국 진정성이었다.
당당하게 자신의 믿음을 말하는 그 대답 하나로
꾸부정하게 강당에 들어섰던 그 할아버지는 비로소 다시 잭 웰치가 되었다.

그 이후 나는 일하면서 그날 잭 웰치의 대답을 수 없이 되새기곤 했다.
  

(Jack Welch at MIT)


LG에서 신사업전략팀장을 하던 당시,
우리 팀에 나보다 9살이나 많은 부장님이 한분 계셨다.

처음엔 나이가 열몇 살 이상 차이나는 멤버들과도 잘 어울리시며 즐겁게 일하셨다.
연말엔 멤버들 부부동반으로 송년회를 하기도 했고
한 번은 홍은동 부장님 댁에 가서 형수님과 함께 맥주를 한잔 하기도 했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부장님의 얼굴이 매우 어두워 보이기 시작했다.

어린 멤버들과 어울리지 못하고 자꾸 겉도는 느낌이 들고

연구원들과 일할 게 있다면서 우면동 연구소로 자꾸 자리를 비우셨다.


문득 잭 웰치의 그 대답이 떠올랐다.

혹시 내가 부장님을 억지로 잡고 있는 게 아닐까?
더 행복한 시간을 보내실 수 있는 기회를 내가 막고 있는 게 아닐까?

고민 끝에 나는 우면동에 찾아가 부장님을 뵙고 조심스럽게 말했다.


"부장님, 요즘 행복해 보이지 않으세요. 제가 너무 죄송해요.

혹시 다른 일 해보고 싶은 건 없으세요?"


그렇게 여쭤본 지 세 달 후, 부장님이 회사를 그만두셨다.


"회사를 20년 넘게 다녔는데 다니면서 참 재밌게 일했던 것 같아.

그런데 꿈이 없어지니까 언젠가부터 별로 즐겁지가 않더라고.

회사 안에 있을 땐 참 따뜻하고 안정적이었는데

막상 나가서 뭘 해야 할지 솔직히 좀 불안하기도 하지.

집사람은 지금도 나한테 세상을 너무 모른다고, 철없다고 그래.

그래도 난 좀 설레기도 하고 기대도 되고 그러네..."


그 사람을 진심으로 위한다면
그의 행복을 가로막지 말고 정말 객관적으로 냉정하게 말해주는 것이

리더가 해야 할 일이라고 잭 웰츠가 말했었다.

나도 이게 정말 부장님을 위한 길이라고 믿고 오랜 고민 끝에 힘들게 말씀드렸었는데

차라리 이게 좋은 기회인지도 모르겠다고,
혼자서는 용기 내지 못했을텐데 먼저 말해줘서 고맙다고 부장님이 말씀해 주셨다.

그래서 용기 내길 잘했다 스스로 자위하고 있었는데

막상 떠나신다고 하니 부장님 걱정도 되고 왠지 자꾸 눈물이 나려고 했다.


팀장으로서 내가 할 수 있는 건,

HR부서와 잘 이야기해서 퇴직금 외에 2년 치 연봉을 받을 수 있게 합의한 일과
부장님이 회사에 적을 둔 채 미래를 준비하실 수 있게
조금의 시간을 벌어드린 일뿐이었다.


부장님이 떠나시던 날,
회사 앞 하이브랜드를 돌면서 형수님께 드릴 최고급 목도리를 샀다.

정성스레 손 편지를 써서 같이 넣었다.


"부장님, 시원섭섭하시죠? 이거 별거 아닌데 형수님 드리고 싶어서 샀어요."

"에이 뭐 이런 걸... 집사람이 좋아하겠네. ㅎㅎ"

"종종 연락드릴게요 부장님."

"고마워 박팀장, 너무 애쓰지 마. 나 그동안 재밌었어.  
일부러 연락하려 해도 잘 안되고, 그러다 또 우연히 마주치기도 하고...
사는 게 그런 거지 뭐. 또 어딘가에서 봐 우리..."  


눈물이 그렁그렁한 내게
인생을 다 깨우치신 것 같은 말씀을 남기고 부장님은 떠나셨다.

그 후로 한번 정도 연락이 되었던 것 같다.

지금은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계실지 모르지만
예전처럼 밝은 모습으로 형수님과 행복하게 지내고 계시면 좋겠다.

그러면 너무 좋을 것 같다.


(Muffler Shopping, Powered by DALL.E3)


작가의 이전글 014 행운을 기획하라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